주제: 가족
가족의 빛과 그림자
신근식
우리나라 사람치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가족과의 인연은 생애 전반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삶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가정이 날마다 다투고 미워하고, 불행한 분위기라면 과연 그 삶은 어떠할까? 서로 아껴주고 이해하며 가족 간에 화목했을 때라야 비로소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에너지를 발현(發現) 해낼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가족은 늘 음양으로 존재한다.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나머지 가족들도 슬프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 중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웃고 있거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연히 미소가 지어지게 마련이다. 슬픔, 기쁨 등으로 살과 피를 나눈 내 가족의 감정은 고스란히 전염되는 법이다.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하는 가족이야말로 세상 누구보다도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도록 배려와 포용으로 애초에 설계되어 있다.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이타적(利佗的)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공동체의 기본 단계인 가족관계 마저 이기화(利己化)되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가족은 큰일이 있을 때 한 번씩 만나는 그런 사이
가족이란 같은 공간에서 쭉 살아가는 것
가족이니까 성가신 것도 즐겁거든
가족은 어머니 품속처럼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아늑한 둥지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무한정 사랑해 주는 곳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의 가족
만약 가족이 없다면 쓸쓸한 노후가 기다릴 뿐이다.
어떤 영화에선가 들었던 대사가 생각이 난다. 솔직히 말해서 어디 누가 안 보고 있으면 “제일 먼저 내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 아니냐?”고 할 것이다. 가장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가장 많은 상처를 가족으로부터 받았던 기억, 세상에서도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다. 지긋지긋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가까운 가족이라 함은 부부중심으로 일컫고 있는 부모와 자식 , 형제 등 우리의 가족이다. 내게는 아내와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모님은 얼마 전에 모친이 돌아가서 모두 없다.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여 큰딸과 작은딸은 출가하였고 모두 서울에 인근 김포에 산다. 거기다가 막내아들은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아내마저도 큰딸 손주 돌본다고 서울에 간지 벌써 2년이 흘렀다. 대구에서 같이 살던 우리 가족의 둥지에는 나만 홀로 덩그렇게 남아 있다. 아니다. 큰딸이 어릴 때 같이 놀던 ‘심바’ 이제 벌써 우리 나이로 120살쯤 되는 고양이를 맡아 돌보고 있다. 처음에 귀찮았지만 이제 정이 들어 나와 함께 나란히 가정을 지키고 있다.
옛 일곱 살 엄마 등에 업혀 새로운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마다 호기심으로 얼마나 물어댔던가? 그러나 엄마는 한 번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모두 대답해 주었다. 지금에 와서 어른이 되어 거꾸로 물으면 “그것도 몰라요? 그전에 가르쳐 주었잖아요? 몇 번이나 물어봐요?” 하면서 씩씩거린다. 예전에 뛰어놀다가 중요한 물건을 깨뜨리거나 잊어버리면 어린애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야단치기보다는 달래었다. 지금의 어른은 실수하면 용서가 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대여섯 살 때 재롱으로 부모에 대한 효를 다했다고 보기 때문에 나무랄 수 없다.
정확히 5월말에 모친상을 치르고, 친구의 권유로 삼성생명 기업재무컨설턴트(GFC)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민등록 나이로 65세까지라고 하여 생애 중 이번에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시작하였다. 6월 한 달 꼬박 교육과 삼성휴먼센터에서 3박4일 집체교육도 받았다. 보험 내용은 법인기업에 회사 돈으로 보험 가입하여 비용처리 및 개인화시키는 일이라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7월 중순에 위촉계약을 맺고 또 교육비도 받았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매일 출근하여 교육도 열심히 받았다. 관리자가 이번 달에 보험영업을 단 한 건도 못하면 해촉 시킨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번 한 번만 가족에게 도움을 받자고 설득을 했지만 가족의 반응은 냉담하여 호응을 받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나를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바로 가족이라는 것을 알기에, 결국 다른 이유도 있고 해서 해촉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혹여나 가족에게 상처를 안겨줄까봐 결단을 내렸다. 나이 들어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게 너무나 큰 사치일 뿐이다.
가족이라기보다 일가인 당숙이 있었다. 당숙은 옛날에 학교도 못 다니고 할 때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나와서 시골마을 중학교 역사 선생님을 하였다. 그분 밑에 2남 2녀를 두어 그중 둘째 아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반드시 내 집안에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놈이 한사람은 있어야 된다.”고 하였다. 본인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돌렸다. 결국 아들은 삼수해서 부산상대에 들어갔다. 아버지의 욕심에 삼 년이란 세월을 낭비하는 가족 희생양이라고 한다. 그래도 예전에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밥상, 때로는 밥 먹을 때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아버지의 밥상머리교육이 지금은 그때가 오히려 그리워진다. 늘 힘들고 지칠 때에는 이 세상이 등 돌려도 늘 내편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음을 기억하고 살았는데 현실은 멀다.
어른이 된 우리의 나이는 “단순히 살아온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있는가?”를 말하고 싶다. 비록 우리가 자식을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한다. 그랬으면서도 우리는 부모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과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결말 이후 끝없는 새로운 갈등과 뜻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가족은 따뜻한 어머니 품속처럼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무한정 사랑해 주는 곳 아늑한 둥지이자 울타리다. 다만 당신과 내가 우리의 가족이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그 공간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가족의 빛과 그림자처럼 희망과 현실의 거리가 늘 존재한다.
(20230725)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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