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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후에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성경 연구*.20.184.189https://usabiblestudy.com/holy_spirit/3061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2 오호. 5:17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오래된 것은 지나갔고, 새로운 것이 왔습니다! (NIV)
이 구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와 주로 믿으면 새 사람/다른 사람/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믿고 거듭난 신자가 된 후 새사람/다른사람/다른사람이 되었습니까?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매트. 16:13-17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지만 당신은요?” 그는 물었다. “당신은 내가 누구라고 말합니까?”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사람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NIV)
베드로는 예수를 그리스도시요 메시야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도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ROM. 10: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NIV)
본문은 베드로와 120명의 제자들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자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요한복음 3:5-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은 육을 낳고 영은 영을 낳느니라. '너는 거듭나야 한다' 하는 내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바람은 마음대로 분다. 그 소리는 들리지만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그와 같습니다.” (NIV)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와 주로 영접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 즉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요 새로운 피조물임을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120명의 제자를 포함한 베드로는 오순절 전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0:17-20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하니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짓밟고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노라. 아무것도 당신에게 해를 끼치 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NIV)
본문은 예수의 칠십인과 열두 제자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고 확증합니다.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 오순절 이전에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매트. 14:25-31 밤 사경에 예수께서 호수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로 나가셨다. 제자들은 그분이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렸습니다. “유령이에요.” 그들은 겁에 질려 소리쳤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즉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바로 나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주님, 만일 주님이시라면 저에게 물 위로 오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오세요.” 그가 말했다. 그러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빠져가기 시작하면서 “주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쳤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니라. (NIV)
성경 전체 역사를 통틀어 예수님 외에 베드로만이 물 위를 걷고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매트. 10: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그들에게 악귀를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NIV)
사도 베드로와 제자들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 악귀를 쫓아내시고 질병과 질병을 고치는 체험을 했습니다.
매트. 26:31-35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모두 나 때문에 버릴 것이다.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는 “모든 사람이 주 때문에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희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습니다. (NIV)
매트. 26:56-57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그러자 제자들은 모두 그분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데리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모였느니라. (NIV)
Matt. 26:31-35, 56-57 사도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그렇게 말했지만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새 사람/새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체포되자 도망쳤습니다.
매트. 26:69-75 그때 베드로가 뜰에 앉아 있었는데, 한 여종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너도 갈릴리 예수와 함께 있었느니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 모두 앞에서 그것을 부인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문으로 나갔더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느니라”고 말하였다. 그는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라고 맹세하며 다시 부인했습니다. 조금 후에 거기 서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당신의 말투가 당신을 돋보이게 하니, 당신도 그들과 한패가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자신을 저주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하고 맹세했습니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습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밖으로 나가서 몹시 울었습니다. (NIV)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구원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자 새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예수님의 추종자요 제자임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매트. 27:30-33 그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지팡이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계속 때렸습니다. 희롱을 다한 후 겉옷을 벗기고 그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그들이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강요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였더라. 그들은 골고다(해골의 장소라는 뜻)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NIV)
사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돕지 않았습니다.
매트. (마 27:57-61) 저물매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하니 빌라도가 내주라고 명령했습니다. 요셉은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는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놓고 가셨습니다. 거기 무덤 맞은편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습니다. (NIV)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결코 그분의 시신을 무덤에 두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20:19-20 안식 후 첫날 저녁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였더니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NIV)
제자들이 모였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요한복음 20:26-28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문들이 잠겨 있었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라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어 보아라. 내 손 좀 봐.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더 이상 의심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NIV)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적어도 세 번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악령을 쫓아내고 질병과 허약함을 고치는 능력을 체험하면서도 전도하러 나가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21:1-3,13-14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느니라.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출신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다른 제자 두 사람이 함께 있었더라.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갑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우리도 함께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예수께서 오사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었습니다. (NIV)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복음 전파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전도하고 악귀를 쫓아내며 질병과 질병을 고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설교자와 전도자가 되기 위해 더 이상 신학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예수님의 제자들 외에는 오직 하나님과 이 세상 최고의 스승에게서만 배운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외에는 아무도 예수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예수님께서 체포되셨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자와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세 번 만났지만 결코 복음을 전하러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베드로는 다른 여섯 명의 제자들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그는 어부라는 옛 직업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구원자와 주님으로 믿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다른 사람/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위에 언급된 모든 기록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믿고 그리스도인의 삶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배우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새 사람이나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음을 확증해 줍니다.
요한복음 21:13-17 예수께서 오사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는 “내 양을 돌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베드로는 예수께서 세 번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자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는 “주님,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예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IV)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말씀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이것을 세 번이나 물으셨는가? 베드로는 오직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사랑의 성취를 가능하게 합니다. 사도 베드로에게는 오순절 이전에는 사랑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배우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새롭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과 복음 전파를 위해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는 이점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현대의 그리스도인”이 새로운/다른/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난 120명의 제자들은 어떻게 새롭고 다른 개인이 될 수 있었습니까? 이 답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찾아야 합니다. 2000년 전 이 땅에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현재의 그리스도인들도 120명의 제자들처럼 새롭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그 점을 자세히 알려 줍니다.
사도행전 1:4-5,8 한번은 그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에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그러면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NIV)
행 2:1-4 오순절 날이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에 가득하며 그들은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그들 각자 위에 임하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 모두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NIV)
사도 베드로를 포함한 120명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 오순절 날에 성령세례/성령의 능력/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본문은 확인하고 있습니다.
행 2:14-16 그러자 베드로가 열한 제자와 함께 일어나 소리를 높여 군중에게 말했습니다. “유대인 여러분과 예루살렘에 사는 여러분, 내가 이 일을 여러분에게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세요. 당신 생각처럼 이 사람들은 술에 취해 있지 않습니다. 아직 아침 9시밖에 안 됐어요!
아니다. 이는 선지자 조가 말씀하신 것이니라…
행4:1-4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베드로와 요한에게 나아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며 예수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므로 그들은 크게 불안해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그들을 다음 날까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사람이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NIV)
본문은 베드로가 오순절 이후에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음을 확증해 줍니다.
행 5:18-25 그들은 사도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그들을 끌어내었습니다. “가서 성전 뜰에 서서 사람들에게 이 새 생명의 온전한 소식을 전하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지시받은 대로 성전에 들어가서 백성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대제사장과 그 동료들이 도착하여 이스라엘 장로들의 전체 모임인 산헤드린을 소집하고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도착했을 때 경찰관들은 그들을 그곳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가서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우리는 감옥이 굳건히 잠겨 있고 문 앞에 경비병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성전 경비대장과 대제사장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와서 말했습니다. “보세요! 당신께서 감옥에 가두신 사람들이 성전 뜰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NIV)
베드로와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오순절이 되기 전에 문들을 모두 닫고 있었습니다. 오순절 이후 그들은 성령(그리고 불)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즉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거나 체포되거나 감옥에 갇히는 일 없이 계속해서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순절 날. 오순절 이전의 사도 베드로의 사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 세례/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고는 새 사람/다른 사람/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믿은 120명의 제자들과 베드로는 어떻게 새 사람/다른 사람/다른 사람이 되었습니까? 위에 언급된 성서 구절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줍니다. 120명의 제자들처럼 단지 성령세례/성령의 능력을 받음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개인 교사로 함께할 수 있는 이점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새롭고 다른 개인이 되는 것은 확실히 가능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충만함.
빌리 그래함 목사는 성령의 능력에 대해 논평했습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심지어 결혼 생활, 가족 관계, 기타 모든 관계와 같은 친밀한 영역에서도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교회를 활력있고 성장하는 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즉 기독교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불행하게도 이 힘은 무시되고, 오해되고, 오용되었습니다. 우리의 무지로 인해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단락시켰습니다.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오늘날 당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성경적 진리는 우리가 회심할 때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세례는 중생할 때 일어난다. (Billy Graham, The Holy Spirit, Preface , xii,65,69,79)
Billy Graham은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성경적 진리는 우리가 회심할 때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세례는 중생할 때 일어난다”는 말은 고린도전서를 잘못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비성경적이다. 12:13. “우리는 회심할 때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라는 메모는 “우리는 회심/중생 후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로 되어야 합니다.
성령침례가 중생할 때 일어난다는 것을 가리키는 성경적 언급은 없습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심지어 결혼, 가족 관계, 기타 모든 관계와 같은 친밀한 영역에서도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친 교회를 활력 있고 성장하는 몸, 그리스도교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으로”라는 말에는 옳고 그른 요소들이 섞여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세례,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후에는 성령의 능력을 받기까지는 결코 성령의 능력이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친 교회를 활력 있고 성장하는 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기독교계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라는 주석은 “성령 세례를 통해 하나님은 지친 교회를 활력 있고 성장하는 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로 읽어야 합니다. 몸, 즉 그리스도교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힘입니다.” 지친 교회는 활력있고 성장하는 몸으로 변화될 수 없으며,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성령침례에 관한 잘못된 번역과 해석을 참을 때 기독교계는 활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힘은 무시되고, 오해되고, 오용되었습니다. 우리의 무지로 인해 성령의 능력이 단락되었습니다.”라는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빌리 그래함 목사가 쓴 성령에 관한 책은 상당히 오류가 있고 비성경적이며 큰 혼란을 낳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성령으로 당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성경(요한복음 7:37-39; 20:22; 누가복음 24:49; 사도행전 1:5,8; 2:1-4; 8:14-19; 10:1-48; 19:1- 7, 고린도전서 12:13, 갈라디아서 3:2, 에베소서 5:18)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개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빌리 그레함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령의 실재를 힘으로 알았던 초기 교회의 남자, 여자, 어린이들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이 오순절 날 경험한 강력한 능력의 돌진은 우리에게 신약성경을 주신 시대의 특징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위기에도 대처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죄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이며, 이것은 거듭남을 통한 성령의 능력으로 공급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거듭났습니까? 당신과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순간 우리는 새로운 본성을 받았습니다. (빌리 그래함, 서문 xvi, 61.)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실체를 세력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은 여기서 성령을 성령하나님으로 취급하지 않고 세력으로 취급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능력의 근원이신 성령의 실체를 알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직 성령세례, 즉 성령의 능력 충만을 통해서만 완전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결코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오순절 날에 경험한 권력의 돌진은 우리에게 신약을 준 시대의 특징이다”라는 설명이 옳다. 그러나 120명의 제자들이 회심 후 오순절 날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함, 즉 성령(불) 세례를 받았을 때에만 그들은 성령의 권능을 경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즉 중생/회심 후에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위기에도 대처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실 수 있다”는 말씀은 맞지만 신자들은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즉 중생 후에 어떤 위기에도 대처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빌리 그래함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신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너희와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순간 새 성품을 받았다”는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듭난 후에, 새 성품을 받은 후에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사람/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NKJ는 바울의 개종에 대해 논평합니다.
기독교를 유대 나라 밖으로 전파하기 위한 주요 전략가는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자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사람이 다메섹으로 여행하던 중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고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The New King James Version, “ The Bible: Book for All Times” from A Reader's Guide to the Holy Bible ,” 1983년 개정판 Thomas Nelson, Inc.)
이 기록은 옳지만 바울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여행하다가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고 그리스도께로 회심한 후 아나니아가 예수의 이름으로 그에게 안수함에 따라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바울은 유대 민족 밖으로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바울은 회심한 후에 성령세례, 즉 성령의 능력을 받았고, 성령의 능력 곧 세례를 받은 후에는 새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RA Torrey는 성령침례의 필요성에 대해 논평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고 기대하시는 봉사를 위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세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다양한 기독교 사업에서 사람들을 주일학교 수업을 가르치고 개인 일을 하고 심지어 복음을 전하도록 세우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회심하고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대학 및 신학교 과정을 포함할 수 있지만 아직 성령 세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경건하고 대학과 신학교 교육을 받았으며 합리적으로 정통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이제 우리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성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니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이 일을 받기까지는 이 일을 맡아서는 안 될 매우 필수적인 또 다른 준비가 있습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힐 때까지 기다리라(문자 그대로 앉으라).”
한 저명한 신학 교수는 모든 목회 후보자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만났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나아가 더욱 명확해야 합니다. 모든 목회 후보자에게 우리는 “당신은 성령세례를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첫 번째 복음 전파자에게 “위로부터 능력을 입힐 때까지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안수받은 목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사역에 부름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해당됩니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일을 중단해야 하며,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는 그 일을 계속해서는 안 됩니다. (RA Torrey, 성령의 인격과 사역 , p.173.)
이 주장은 철저히 성경적입니다. Torrey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후에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고린도전서의 잘못된 번역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2:13은 정통입니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영어 번역본은 이 구절을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라고 잘못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번역을 통해 비오순절주의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중생하는 순간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린도전서를 잘못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비성경적이다. 고전 12:13을 번역하면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느니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성령으로/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즉, 우리 모두는 중생/회심 후에 성령으로/성령으로/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아직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3:5-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내가 네게 '너는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느니라.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이와 같습니다.” (NKJ)
1 Cor. 5:17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오래된 것은 지나갔고, 새로운 것이 왔습니다! (NIV)
1삼. 10:6,9-10 주의 영이 네게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할 것이요 그러면 당신은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돌아섰을 때 하나님께서 사울의 마음을 바꾸셨고 그 날 이 표적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NIV)
요한복음 3:5-8의 말씀은 구약과 신약의 신자들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모든 신자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태어났고,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태어났습니다. 1 Cor를 통해. 5:17, 누구든지 하나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왔습니다. 사울 왕의 경우, 성령이 그에게 임하시기 전에 그는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었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0장 6절을 이해하려면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안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과 예수 안에 있는 것은 성령 안에 있는 것”이라는 성령 교리를 기억해야 한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느니라”와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다”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성령이 그들 안에 계시고 그들 위에 임하심”에 대한 자세한 토론을 참조하십시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신다”라는 문구는 회심 후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사무엘상 10장 6절은 사울이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을 때, 즉 그가 성령으로(그리고 불로) 세례를 받았을 때 다른 사람/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태어났고 오순절 이전에 이미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오순절 이전에는 새롭고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행동은 오순절 이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날, 즉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은 날부터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후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아직 성령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도 결코 다른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기독교 사역자는 그가 있는 곳에서 사역을 중단해야 하며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계속하지 말아야 한다”는 Torrey의 주장은 옳고 정당합니다. 성경적.
회심 후 성령세례를 받으면 깊은 확신을 갖게 됩니다.
1 테스. 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니라 우리가 어떻게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 가운데서 살았는지 여러분은 아십니다. (NIV)
바울의 말(“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이른 것임이라”)은 로마서의 문구와 일치해야 합니다. (고전 15:18-19)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표적과 기사의 능력 곧 성령의 능력으로 말과 일이며 .그러므로 내가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전하였노라”(NIV). 두 구절 모두 사도 바울이 쓴 것입니다. 그래서 1 Thess의 문구. 1장 55절은 우리가 성령세례, 즉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깊은 확신을 가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거듭나기만 한다면 깊은 확신을 갖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세례를 통해서만 깊은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자. 5:22-2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그런 일을 금지할 법이 없습니다. (NIV)
성령 세례를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하면 삶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성령의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에프. 5:18-25 술 취하지 마십시오. 술에 취해 방탕하게 됩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대화하십시오. 너희는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고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교회의 구주시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 같이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NIV)
에베소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5:18은 헬라어 본문을 잘못 번역한 것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성령의 기쁨이 충만하라”로 읽어야 합니다. 에프. 5:18-25은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거듭난 후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성령의 기쁨이 충만할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새 힘을 얻습니다.
이다. 40:29-31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약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느니라 청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넘어지느니라. 그러나 주님을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들은 독수리처럼 날개로 솟아오를 것이다. 그들은 달려도 지치지 않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NIV)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친 자에게 힘을 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세례의 능력을 통해 힘을 주실 것이라고 추론해야 한다.
이다. 41:17-20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이 물을 구해도 물이 없습니다. 갈증으로 인해 그들의 혀가 말랐습니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그들에게 응답할 것이다.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메마른 산에 강이 흐르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리라. 내가 사막을 연못으로 바꾸고 메마른 땅을 샘으로 바꾸겠다. 내가 사막에 백향목과 아카시아와 도금양과 올리브나무를 심을 것이다. 내가 황무지에 소나무와 잣나무와 잣나무를 함께 두리니, 이는 사람들이 보고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셨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창조하신 것을 보고 깨닫고 깨닫게 하려 함이라. (NIV)
문구(이사야 41:17-20은 요한복음 4:5-19; 7:37-40; 고린도전서 12:13b와 일치함)는 물을 찾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이 주어진 물을 받게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신에 의해. 성령세례의 권능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요한복음 4:5-19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그곳은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밭에서 가까운 곳이더라.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앉으시니라. 여섯시쯤 됐어요.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왔을 때 예수께서 “나에게 물을 좀 주겠느냐?” (그분의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이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어떻게 나한테 술 한잔 달라고 할 수 있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네게 물을 달라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물 길을 데가 없고 우물도 깊습니다. 이 생수를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우리 조상 야곱이 우리에게 우물을 주며 친히 그 샘물을 마셨고 자기 아들들과 양 떼와 소 떼도 마셨으니 당신이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그 여자가 예수님께 “주님, 그 물을 나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가서 남편에게 전화해서 다시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남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사실은 당신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남자도 당신의 남편이 아닙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은 정말 사실입니다.” 그 여자가 “주님, 제가 보니 당신은 예언자이십니다.” (NIV)
요한복음 7:37-40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큰 소리로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 말씀은 그를 믿는 자들이 나중에 받게 될 성령을 뜻하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셨다. 그의 말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이 사람은 그 선지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NIV)
요한복음 4장 5~19절의 말씀은 요한복음 7장 37~40절의 말씀과 일치한다.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성령이 주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스어 동사 람바노를 잘못 번역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들은 후에 그의 충만함을 받을 성령이라”고 읽어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그들이 아직 성령으로 충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7:37-40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미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령 세례를 받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이 사실을 통해 “중생하는 순간에는 어떤 그리스도인도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성령의 교리로 확립될 수 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한복음 7장 37~40절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NIV)
엡. 6:10-17 끝으로 여러분은 주 안에서와 그분의 강력한 능력으로 강건하십시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굳게 서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발에는 평안의 복음의 준비를 하라.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NIV)
여기에서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이라는 단어가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모두 사탄의 역사로 요약됩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준 후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께 임하셨을 때,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마귀의 일을 멸하고 재림하실 때까지 복음을 전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능력, 즉 마귀와 싸우기 위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능력은 오직 성령의 불 세례를 받아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없고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도 불가능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비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불립니다.
2 팀. 2:3-4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처럼 우리와 함께 고난을 견디십시오. 군인으로 복무하는 사람은 민간인 업무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휘관을 기쁘게 하기를 원합니다. (NIV)
빌렘. 1:1-2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갇힌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이자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모이는 교회에 편지합니다. (NIV)
엡. 6:11-12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NIV)
본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라고 불린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 군인의 지휘관이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군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한 영적 세력인 귀신의 모든 세력을 이기기 위해 지휘관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권세를 받아야 합니다. 능력과 권세 없이는 악한 영적 세력의 모든 세력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주신 능력과 권세는 중생 후 성령 세례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갈 3:26-28 Πάντες γὰρ υἱοὶ θεοῦ ἐστε διὰ τῆς πιστετἐν Χριστῷ Ἰhnσοῦ·ὅσοι γ ὰρ εἰς Χριστὸν ἐβαπτισθτε, Χριστὸν ἐνεδύσασθε. οὐκ ἔνι Ἰουδαῖος οὐδὲ Ἕlamlamnν, οὐκ ἔνι δοῦλος οὐδὲ ἐλεύθερος, οὐκ ἔνι ἄρσεν καὶ θῆλυ·
π άντες γὰρ ὑμεῖς εἷς ἐστε ἐν Χριστῷ Ἰennaσοῦ.(BNT) NIV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NKJ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다.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이나 자유인도 없고,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NIV와 NKJ는 26절과 28절의 그리스어 en Chisto Iesou(ἐν Χριστῷ Ἰennaσοῦ)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로 정확하게 번역합니다. 그러나 NIV와 NKJ는 그리스어 eis Christon(εἰς Χριστὸν)을 “그리스도 안으로”로 잘못 번역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으로”가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너희 모두 그리스도 안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라는 문구는 세례를 통해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다는 의미로 추론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모두 세례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갈리아어에서는 “세례를 베풀다”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3:26-28은 성령세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세례를 말하고 있는데, 이는 비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는 물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세례를 받기 전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그 안에 있습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있었으니,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물로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은 너희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라는 문구는 그리스도 안에서 물로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비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다는 의미로 추론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다/그리스도를 입다”라는 문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ROM. 13:12-14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과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정욕을 행하지 말며 다툼과 시기로 행하지 말자. 그러나 너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성취하려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아니하느니라
… 4:23 그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NKJ)
로마서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했습니다. 13:14은 문자 그대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부 단어가 생략된 것으로 추론해야 합니다. 로마서에는 “갑옷”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13:12은 로마서에서 암묵적으로 사용됩니다. 13:14. 그러므로 신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갑옷을 입었다고 추론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말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에베소서에도 “새 사람을 입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4:23은 문자 그대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부 단어가 생략된 것으로 추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의 의와 거룩함을 옷 입었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추론되어야 합니다.
에프. 6:10-11,13 끝으로 내 형제 여러분, 주님 안에서와 그분의 힘의 능력으로 강해지십시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NKJ)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입으라”고 말하면 말이 안 됩니다. “너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라”(롬 13:14)거나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3)고 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일부 단어가 생략된 것으로 추론해야 합니다.
골 3:8-10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노함과 노함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더러운 말이라.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옛 사람을 그의 행위와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 새롭게 된 자라 (골
3:12 )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부드러운 자비와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십시오. (NKJ)
골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NKJ)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부드러운 자비와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입으라', '사랑을 입으라')는 말 그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문구에는 생략의 사용법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생략되거나 이해된 단어가 의미가 있는지 찾아야 합니다. 에프. 5장 18절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Eph에는 생략의 용법이 적용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5:18. 에베소서에서는 “기쁨”이라는 용어가 생략되었습니다. 고전 5:18-21, 그러므로 “성령의 기쁨이 충만하라 혹은 성령의 기쁨이 충만하라” 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이 됩니다. 여자. 고후 3:26-27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저자)의 옷을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은 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즉 그리스도 안에서 물 세례를 받았다면, 그들의 옷과 몸은 물에 젖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옷은 비유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군사의 군복으로 바뀌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을 때 이미 예수님의 군사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군사가 된 후, 주님의 명령으로 예수님 안에서 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군사의 군복을 입었습니다. 이는 비유적으로 물세례를 받을 때 예수의 군사의 옷을 입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3장 26-27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군인은 군인의 제복을 입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군인으로서 물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인 군인의 군복을 입어야 합니다. 또한 군인의 군복을 입는 모든 군대의 군인은 상급과 하급의 계급을 가져야 합니다. 군대에 지휘관이 계급을 부여하지 않은 군인은 없습니다. 그것은 상식이다. 사무엘상 18장 5절에는 사울 왕이 다윗에게 군대에서 높은 지위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군인은 권위를 부여하는 계급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물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군복을 입는 모든 기독군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세례를 통해 부여하신 권세를 증거하는 계급을 가져야 한다.
요한복음 20:22-23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내쉬시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하시니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NKJ)
*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하시니”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시되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지은이) 누가복음
24장 49절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NIV)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NKJ)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예루살렘과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될 것이다. (NKJ)
120명의 제자들은 오순절 이전에 이미 물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령과 불 세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즉,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 안에서 물로 세례를 받았고, 하나님의 군복, 즉 하나님의 군사의 군복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물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군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주신 대열의 하나님의 군사의 군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누가복음 24:49)고 명령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미 높은 권위를 입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머물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 날 이전에 아직 능력과 권세를 입지 않았음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계급은 군대 내에서 권위와 권력을 수반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군대에서 계급은 권위와 권력을 수반합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오순절 날 120명의 제자들에게 이 권세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물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또한 그는 중생/회심, 즉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성령세례를 통해 능력과 권세의 계급을 지닌 제복을 입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