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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ver.me/F5Fy5OZW 로쓰 5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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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ver.me/5bdWuIqO 존볼비 4단계
충격과 무감각-그리움•갈망•분노-와해와 절망-수용
지극히 개인적 해석)
애도캠프는 사별한 사람들이 모여 경험을 공유하면서 치유되는 심리프로그램의 일종이다.애도의 다섯단계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 과정이 모두 애도 캠프인 셈이다.시는 결과와 목적이 아니라 과정과 수단을 묘사하여 주제를 부각한다.
*(로쓰 5간계)1. 충격의 단계 2.분노의 단계 3. 타협(죄책감)의 단계 4. 절망(슬픔)의 단계 5.수용의 단계
*(존볼비 4단계)1.충격과 무감각 2.그리움•갈망•분노 3. 와해와 절망 4.수용
이 시의 핵심은 너, 손, 사슴의 은유일 것이다.
너는 고인(또는 반려동물), 손은 고인과의 추억의 장.생생한 느낌, 사슴은 고인과 내가 일체감을 느끼면서 탄생하는 합체생명을 상징
애도 캠프 / 김지연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 *너무 슬퍼서 부정
그렇게 생각한 아침에도
손을 뻗으면 허공에서는 손이 자라났다
(고인이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런 아침에도 이불을 떠나고
이것 좀 봐,
자꾸 옆을 돌아보며 걷게 될 때
(고인이 살아 있는 것 같아 옆을 보며 걷는다)
손안에 들어와 갇히는 풍경이 많았다 손안의 세계를 움켜쥐고 걸었다 그것은 너무 가볍고 너무 작아서 작은 틈새로도 줄줄 흐르기 쉬워서 잡은 손에만 온 마음을 쏟아야 했다
(고인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언제였더라 우리는 서울숲을 함께 걷고 있었지
뿔도 없이 동그랗고 작은 머리를 가진 사슴 한 마리가 우리를 쫓아왔어
(과거 고인과 함께 했던 서울숲. 사슴은 고인과 나의 합체를 상징)
녀석의 등을 쓰다듬으면 얇은 가죽 아래 움직이는 가느다란 여러 개의 뼈가 느껴졌지
(그 합체생명은 생생하다)
손가락에 닿는 손허리뼈를 어루만지며 걷는 동안
잘못 뭉친 눈송이처럼
손을 떠난 순간 바스러질 것 같던 그 등을 생각했다
(고인이 떠남에 따라 그 합체생명이 위기를 느낀다)
러시아에서는 사슴을 만나면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래
(합체생명은 매우 위험하다.정을 주고받으면 상처받을 수 있다)
손목의 끝에 달린 것이 그냥 사라진다면 함께 길을 걷기에 좋은 가볍고 따뜻한 손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고인과의 추억의 느낌을 놓아버리면 새로운 손이 만들어진다)
잡은 손에만 온 마음을 쏟으며 옆을 돌아볼 수 없는 마음으로 걷다가 앞으로만 향하는 눈빛으로 걷다가 손목의 끝에 달린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극도로 슬퍼하고 있다는 것은 치유되고 있으며 수면으로 올라오기에는 너무 이른 감정들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피 흘리는 사슴 한 마리가 도로에 누워 있었다
(합체생명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둘 중 하나는 나여야 했어
(슬픔이 극에 달한다. 죄책감)
사슴을 껴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기도는 등 뒤의 길을 지웠다
(간절한 기도로도 되돌릴 수는 없다)
사슴의 굳어가는 몸이 풀을 쓰러뜨리고 있다 발보다 먼저 길을 만들고 있다 누운 풀 위로 발이 겹쳐지고 있다 사슴의 아직 따뜻한 피는 내 발자국으로 굳어간다
(합체생명이 내면화되고 새로운 길을 낸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닷가 별장에 있었다
친구들이 모두 둘러앉자
바닷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꽉 잡아
(슬픔을 바닷물로 정화한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공백/무-상실-애도의 문화성-결코 봉합되지 않으며 새로움으로 확장)
손을 잡으면 손목의 끝에 매달린 인간의 무게는 분명하고 묵직했다
(여럿이 경험을 공유하면 애도의 슬픔을 마침내 극복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무게가 있다)
(관련 철학)
애도과정이란 가족과의 사별로 인해 극심한 인격적인 위기와 정서적 충격을 경험한 사별 가족이 사별에 대하여 적응해 나가기 위해 경험하게 되는 슬픔의 과정을 말하며 고인이 없는 환경에 다시 적응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이다. 애도과정은 하나의 지적이고 정신적인 과정으로 피할 수도 서두를 수도 없으며, 타인이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어려움과 고통의 과정이기도 하다. 애도 전문가인 E. Kubler-Ross는 애도과정을 다음과 같이 단계를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충격의 단계
가족과 사별하게 된 남아 있는 가족은 충격에 휩싸여 정신이 멍해지고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벌어진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게 사실일까? 어떻게 그런일이 일어났는가? 그 일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고인이 정말로 떠나버렸음을 믿기 시작하게 된다. 이때 자기도 모르는 치유의 과정이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부정해 왔던 모든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둘째, 분노의 단계
슬픔 , 공포, 아픔, 외로움 보다 먼저 다가오는 분노는 죽음을 막을 수 없었던 자신과 예기치 못했던 부당한 상황에 화가 나는 것이다. 분노의 대상에는 한계가 없다. 친구, 의사. 가족, 고인 뿐 아니라 신의 권능이나 자비에 이르기까지, 분노 아래는 고통이 숨어 있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기분이 그것이다. 분노하고 있다는 것은 치유되고 있으며 수면으로 올라오기에는 너무 이른 감정들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셋째, 타협(죄책감)의 단계
단계에서 수반되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만일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과 희망의 미궁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부분을 생각해 낸다. 타협은 유가족이 각 단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는 중간 정거장으로, 강한 감정들이 지배하고 있는 공간들이 각각 거리를 두고 유지되도록, 흐트러져 있는 혼란 상태에 질서를 부여한다.
넷째, 절망(슬픔)의 단계
타협의 단계가 지나면 관심은 현실로 이동하게 된다. 공허감이 드러나고 슬픔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깊게 침투한다. 홀로 남겨져 삶에서 소외되어 애써 세상을 살 의미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러한 절망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치유될 수 있는데, 피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 곁에 '앉아서' 합당한 이 감정을 충분히 느낌으로서 가능하다. 역설적이게 절망은 밑에서부터 새롭게 일으켜 세워준다. 성숙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고 평소에 다가가지 못했던 영혼의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다섯 째, 수용의 단계
수용이란 이상 없음이나 괜찮다고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인이 실제로 떠나버린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새로운 현실이 영원한 현실임을 인정함을 말하는 것이다. 즉 고인이 퇴장한 이 새로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치유되는 동안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고인은 어떤 존재였는지 깨닫게 되고 , 떠나버린 사람과 함께 삶을 살아가며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수용하게 된다를 것은 안좋은 날보다 좋은 날을 보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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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애도 캠프 / 김지연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한 아침에도
손을 뻗으면 허공에서는 손이 자라났다
그런 아침에도 이불을 떠나고
이것 좀 봐,
자꾸 옆을 돌아보며 걷게 될 때
손안에 들어와 갇히는 풍경이 많았다 손안의 세계를 움켜쥐고 걸었다 그것은 너무 가볍고 너무 작아서 작은 틈새로도 줄줄 흐르기 쉬워서 잡은 손에만 온 마음을 쏟아야 했다
언제였더라 우리는 서울숲을 함께 걷고 있었지
뿔도 없이 동그랗고 작은 머리를 가진 사슴 한 마리가 우리를 쫓아왔어
녀석의 등을 쓰다듬으면 얇은 가죽 아래 움직이는 가느다란 여러 개의 뼈가 느껴졌지
손가락에 닿는 손허리뼈를 어루만지며 걷는 동안
잘못 뭉친 눈송이처럼
손을 떠난 순간 바스러질 것 같던 그 등을 생각했다
러시아에서는 사슴을 만나면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래
손목의 끝에 달린 것이 그냥 사라진다면 함께 길을 걷기에 좋은 가볍고 따뜻한 손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잡은 손에만 온 마음을 쏟으며 옆을 돌아볼 수 없는 마음으로 걷다가 앞으로만 향하는 눈빛으로 걷다가 손목의 끝에 달린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피 흘리는 사슴 한 마리가 도로에 누워 있었다
둘 중 하나는 나여야 했어
사슴을 껴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기도는 등 뒤의 길을 지웠다
사슴의 굳어가는 몸이 풀을 쓰러뜨리고 있다 발보다 먼저 길을 만들고 있다 누운 풀 위로 발이 겹쳐지고 있다 사슴의 아직 따뜻한 피는 내 발자국으로 굳어간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닷가 별장에 있었다
친구들이 모두 둘러앉자
바닷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꽉 잡아
손을 잡으면 손목의 끝에 매달린 인간의 무게는 분명하고 묵직했다
<심사평>
김지연의 「애도 캠프」 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세계의 뚜렷함과 아름다움은 독보적이었다. 상한 세계의 속살을 만지고 있는 듯한 구체적인 감각, 인간이라는 형태를 지닌 우리가 공유하는 슬픈 아름다움, 이 지구의 수많은 너와 나들 사이에서 명멸하는 마음의 파편들을 쓰다듬는 손길과 목소리, 더없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호흡으로 이어지는 그의 시들을 읽다 보면, 투명한 눈물이 묻어나는 것 같다. 빛 가운데 있는 죽음과 시작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그의 중층의 시선은, 무엇이든 망가뜨리고야 마는 이곳의 시간들에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맞서는 용기를 보여준다. 다시 새로 시작되는 빛 앞에 한 걸음 내딛는, 시인에게 축하를 보낸다. _하재연(시인)
<수상소감>
여름 한낮에 카페 앞에 혼자 엎드려 주인응 기다리는 검은 개를 봤다.그날 햇빛은 무엇이든 관통해버릴 것처럼 투명하고 날카로웠다. 그 빛조차 개의 윤곽을 쓰다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단단한 등을 하고 있었던 검은 개.개의 검은 색은 너무 검어서 지금까지 검다고 말했던 모든 것을 다르게 말해야 할것 같았다.
(생략)
언어는 너무 넓어서 앞과 뒤가, 왼쪽과 오른쪽이, 천장과 바닥이 대기처럼 계속뒤바뀌는 것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천국이 있다면 가장 필요한 느낌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곳, 아침에일어나면 믿음의 근거가 이불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여긴 천국이 아니고 어떤 날에는 무자비하게 찾아오는 아침 속에서 눈을뜨고 이불ㄹ 떠나야 한다. 이곳에서 믿음의 근거는 끝에부딪히면 다시돌아오는 시선으로부터 눈 앞에 없으면 등 뒤에 있을 거라고 믿는 믿음으로부터 온다. 나에게 시를쓰는 일은 이런 시선을, 믿음과 마음을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생략)
애도 캠프의 마지막 연은 갑자기 밀려드는 물 속에서 친구들과 손을 잡고 떠오르던 꿈을 꾼 다음 썼다.
(생략)
늘 부족하겠지만 부족함과 싸우는 대신 부족하기에 강하고 아름다운 일에 대해 고민하겠습니다.믿음의 근거를 깨끗한 이불 속에 누이는 마음으로 질문에 답하는 질문으로 계속 쓰겠습니다.언어에 의해 생산되는 풍경을 믿고 믿음에 마음을 기대고,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믿음만이 유일한 믿음이란 듯이
첫댓글 https://youtu.be/ZBQZNHLvc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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