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사극, 영화는 역대 어느 왕 못지않게 많습니다. 그만큼 24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워낙 개혁 군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조선의 운명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가정은 금물이겠지요.
정조는 11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목도하였고, 이것이 평생의 짐이 되어 아버지의 위상 회복에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것은 ‘개인적 한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편, 평생의 업적으로 평가 받을 만한 규장각 각신(閣臣) 중심의 정치는 조선 정치의 핵심인 ‘언론·사관에 의한 공론정치’와 ‘당파 간의 견제기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안동 김씨 세력에 의한 60년 세도정치를 막아줄 다른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지요. 이 점은 정조 본인도 예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므로 그가 처한 ‘시대적 한계’의 한 사례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역대 그 어떤 왕보다도 정사에 높은 식견을 가지고 성실히 임하였지만 개인적, 시대적 한계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늘날의 잣대로, 정조의 치적을 평가한다는 것은 지난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1999년 서울대학교에서 ‘정조의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현모 교수의 말을 옮겨봅니다. “박사논문을 쓸 때 제 나이가 서른넷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부로 평가하기 전 먼저 이해부터 했어야 하는데 지금도 이해하기가 벅찹니다.”
그렇습니다. 정조에 대한 섣부른 평가보다는 그가 제시한 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과 처방들에 대하여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앞서 두 번에 걸쳐 올려드린 ‘규장각’과 ‘문체반정’에 대하여도 읽어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