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필. 방 프란치스코
내포의 회장과 그 동료
정산필 : ?~1798/1799, 세례명 베드로. 덕산에서 참수
방 프란치스코 : ?~1799, 세례명 프란치스코, 홍주에서 순교
원시보와 박취득의 동료인 정산필(鄭山弼, 배드로)은 충청도 덕산(徳山)고을의 양민 집안 출신이었다. 천주교에 입교하기 전에는 성격이 괄괄한 데다가 힘까지 비상하였기 때문에 모두가 그와 가까이하기를 꺼렸다. 그가 언제 천주교 교리를 접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덕산 지역에 전해진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들은 뒤부터 더없이 양순해지고. 자주 남을 도와주면서 진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마지막 식사를 동료에게 권한 순교자
시간이 지나면서 정산필은 열렬한 복음 전교 자가 되었으며, 1795년 주문모 신부가 내포 지방을 순방할, 때에는 신부에게 직접 세례를 받는 행복을 누렸다.
이때부터 그는 더욱 겸손하고 온순하고 친절해졌으며, 얼마 동안 주 신부를 돕기 위하여 그를 자신의 집에 모시고 생활하였다고 한다.
▲ 정산필은 고향 덕산으로 끌려와 무수한 문초와 형벌을 받고 참수 되었다.
그 후 정산필은 주문모 신부에 의해 내포 지방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주 신부의 예상대로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본분을 충실히 실천해 나갔다. 또 기도와 신심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교리를 가르치고 격려하는데 전심하였다.
1798년 또는 1799년에 체포된 그는 덕산 읍내로 끌려가 무수한 문초와 형벌을 당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용감하게 하느님을 증거하면서 얼굴에 조금도 동요를 나타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옥에서는 함께 갇혀 있는 동료 신자들을 권면하였고, 사형 집행일에는 사형수들에게 주는 식사를 받은 후 동료들에게 권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창조하신 음식을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먹어야 하오. 그런 다음 우리는 천국에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거요.”
참수형으로 순교한 정산필의 그때 나이는 쉰내지 예순 살 정도였다고 한다.
기쁨으로 받은 마지막 식사
한편 정산필 회장의 신앙 동료였던 방(方) 프란치스코는 면천의 ‘여’ 고을 출신으로, 감사의 비장(裨將)을 지냈다. 그러다가 고향 인근에 전해진 복음을 듣고 누구보다 빨리 받아들였다.
방 프란치스코는 천주교에 정식으로 입교하자 박취득, 원시보 등과 함께 자주 만나 교리를 연구하였으며, 매우 열심히 한 만큼 신자들 중에서도 뛰어났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순교자들의 행적을 듣는 동안 자주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히 순교하기를 열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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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홍주에서 잡힌 그는 6개월 동안 많은 형벌을 당해야만 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그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은 신자 두 명이 관례에 따라 사형 수에 게 주는 마지막 식사를 받고는 눈물을 흘렸는데, 방 프란치스코는 오히려 기쁨에 찬 얼굴로 하느님과 동정 마리아 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서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것도 하느님의 은혜이지만. 사또가 이렇게 후한 대우를 해주는 것도 섭리의 은혜인데. 어째서 당신들은 슬퍼하고 풀이 죽어 있소? 그것은 마귀의 유혹이오. 만일 우리가 천당을 얻을 이렇게도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나중에 또 어떤 기회를 기대할 수 있겠소.”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자신들의 나약함을 뉘우쳤고. 오래지 않아 거룩한 기쁨을 함께하였다. 1798년 12월 16일(양 1799년 1월 21일) 이들 셋은 함께 홍주 읍내에서 순교하였는데, 방 프란치스코가 이때 매를 맞아 죽었는지 목 졸려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