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샘을 찾고 있었다.
털부숭이 얼굴에 가득한 갈증.
사내는 계곡에 머리를 들이대고 물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근처에 샘이 있을 것 같아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심정이란
바로 지금 그 사내의 심정 그대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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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계곡을 거슬러 오르던 사내는 흠칫 놀라야 했다.
"아니 왠 빛이..."
사내의 눈에 한줄기 빛이
땅에서 치솟아 오르는 것이 들어 왔던 것인데
순간 사내는 목마른 현실 보다는
혹시 금덩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황급히 빛이 솟구치는 곳으로 달려가니 그곳이 바로 샘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물도 얻고 금도 얻는 횡재를 얻었구다."
속으로 잔뜩 긴장을 할 겨를도 없이
샘을 들여다 본 사내는 그 맑은 물 가운데서
찬연한 빛을 뿜는 금덩어리를 보았다.
그냥 금덩어리가 아니라 금쪽박이었다.
바가지 모양을 보는 순간 그제서야 갈증이 의식됐고
'이게 왠 금이냐'는 생각에 그 바가지로 물을 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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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달콤한 물 맛.
손에 들고 있는 금바가지를 기특하게 바라보던 사내는
물도 얻고 금도 얻은 기막힌 횡재수를 즐겨마지 않으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금 바가지를 허리춤에 찬 보따리에 집어 넣고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무리들은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조용히 내쉬는 안도의 한숨.
사내는 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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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령산맥을 근거지로 봇짐 장수와 나그네를 노리는
도적질에 이골이 난 늙수르레한 사내들.
그 무리는 모두 일곱이었고
아미산 너머에 산채랄 수도 없고 농가랄 수도 없는 집들을 짓고
식솔을 거느리고 있었다.
남들이 얼핏 보기에는 의좋게 모여사는 화전민 쯤으로 위장 했지만
그들의 본업은 농사보다는 도적질에 치우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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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일곱의 무리는 한탕도 하지 못했다.
그날따라 지나는 길손이 없었던 것이다.
길목을 지키고 있는 일에 능란한 그들이지만
그 더운 날씨에 도적질도 나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은 참으로 이상한 날이어서
한 사람씩 물을 찾아 길목을 벗어나는 것이었고
미리 금바가지를 얻은 사내는
다른 사내에게 샘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미 그곳에서 금을 얻었고
그 남모르는 횡재를 발설하지 않기로 굳게 작심을 한 터였으므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소록소록 맺혀 있었다.
그래서 샘의 위치라도 가르쳐 주는
아량을 베풀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루종일 일곱의 도적은
그 샘믈을 차례차례 마셨다.
앞 사람이 가르쳐 주는 곳으로 가서 샘을 찾아 물을 마신 것인데
하나같이 물을 마시고 온 후에는 말이 없고 그저 심드렁한 표정으로
"오늘은 수확이 없을 모양이니
집으로 돌아가 잠이나 즐기자"는 의견을 냈다.
그래도 더 기다리자는 사내가 있었으나
일곱이 차례로 샘을 찾아 물을 마시고 온 다음에서야
'그래 집에 가서 잠이나 자도록 하자'는 의견에
뜻이 모아졌다.
말할 것도 없이 일곱명의 사내들은
그 불량스런 목자에 비밀을 간직하게 되었다.
누구도 몰래
금바가지 하나를 챙기는 비밀스런 횡재를 가슴에 묻고 있는 터에
더 이상 길목을 지키는 일이 필요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
그러나 그 횡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간 순간 더이상 횡재가 아니었다.
분명히 잘 간수한다고 야무지게 챙겨 넣었던 금바가지가
간곳이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분명히 가지고 왔는데.
그래서 허리춤이 제법 묵직 했는데 집에 오니 보이질 않다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순간적 의구심은 어떤 두려움으로 번지고 있었다.
한낱 도둑일 뿐인 자신의 처지를 생각컨데
산신령님이 큰 벌이라도 내리려는 암시일 것만 같았던 것이다.
더구나 도적질 하여 얻은 물건은
어떤 경우에라도 동료들과 공평하게 나누어 쓰는 것이
일곱 사내에게는 목숨과 같은 의리였는데
슬그머니 그 의리를 져버리고 혼자 금바가지를 챙겨버린 죄책감도
가슴을 무겁고 답답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
처음 샘을 발견했던 사내의 집으로
한사람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저 무료해 찾아 온 눈치는 아니었으나
누구하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투전판이라도 벌일까? 왠 놈의 날이 이렇게 더운지..."
딴청을 부리는 가운데도 사내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 샘물을 발견한 사내.
그러니까 처음으로 금바가지를 챙겨 넣은 사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사실은 말일세.
내가 큰 죄를 지었네. 자네들에게 속인 것이 있어."
그가 입을 떼자
모두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어서 뒷말을 하라고 재촉했다.
"자네들에게 가르쳐 준 그 우물에서 금바가지 하나를 주웠는데
내가 순간적으로 욕심이 나서 아무말 없이 주머니에 넣어 버렸지 뭔가.
그런데 그 금바가지가 말이야.
집에 와서 보니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
내가 천벌을 맏을 모양이야."
두려운 표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털어 내는 사내의 말 끝에
다른 사내들은 하나같이 뒤로 나자빠질 듯 놀랐다.
잘못을 실토하는 사내의 일이 사실은
모든 사내들의 일이었던 것이다.
"나도 그랬어.
그래서 죄 짓고 사는 놈이 기어이 천벌을 받는 것 같아.
무서워서 이렇게 온 거야."
☆☆☆
일곱 사내가 다 같은 일을 겪었고 한결같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이제 천벌을 두려워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제부터라도 죄 짓지 말고 농사나 지으며 살아야겠어.
그 이전에 천벌이 내리지 않는다면 말이야."
"아니야.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있는 평지에서 살 수가 없을 거야.
저 아미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 두번 다시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할거야."
묵직한 분위기 속에 그런저런 말들을 주고 받는 가운데
한 사내가 불쑥 이상한 제안을 했다.
"아미산에 들어가야 한다니까 생각이 나는 것이 있구먼.
낮에 샘을 본 그 근처에 옛날부터 절이 있지 않은가.
그 절에 요새 한 스님이 오셨는데
그 어른의 도력이 그렇게 높으시다는구만.
내가 듣기로는
왕을 가르치는 스님이었다고 해.
그런 도력 높은 스님이 계신 절 근처에서
우리가 나그네들의 봇짐을 털려고 했으니
아마 그 스님이 도술을 부려서
우리에게 이런 두려움을 주시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밤늦도록 얘기를 하다가 내일 날이 밝으면
그 아미산의 절을 찾아 스님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로 했다.
☆☆☆
아미산의 절에 있다는 스님은
정현(鼎賢)이라는 노장으로
일찌기 광교사(光敎寺)로 출가하여 공부를 했는데
그 영민함이 남달라 스승들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정현 스님은
아미산 칠장사(漆長寺)에서 융철(融哲) 노장으로부터
유가학(瑜伽學)을 정통으로 배웠을뿐 아니라
미륵사의 승과 오교대선에도 합격해 이름을 떨쳤다.
거기에 현종 덕종 문종으로 이어지는 왕가의 존경을 받아
지금의 문종대에는 왕사를 거쳐 국사를 지내다가
나이들어 이승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그가 유가를 공부한 칠장사로 돌아와 있는 참이었다.
미륵보살이 짓고 무착보살이 엮었다는 1백권의 <유가사지론>을
밥먹듯이 달달 외우고 그 17지(地) 행법을 익혔던 인연깊은 도량 칠장사.
정현은 이승 인연을 매듭 짓고 본래 온 바도 없이 왔던 그 자리.
말하자면 본래의 자기 자리(本處)로 돌아가기 위해
젊은 시절 시퍼렇게 밤을 밝히며 마음속의 어둠을 헤쳐냈던
정든 도량으로 돌아 와 있었던 것이다.
☆☆☆
"스님. 스님 계십니까?"
일곱의 시커먼 사내들이 더위를 훠이 훠이 털어내며
조심스럽게 스님을 찾아 왓다.
기다렸다는 듯이 지긋한 눈길로 맞이하는 노스님 앞에
엎드린 일곱 사내는 한 입인 듯 어제의 기이한 사건을 털어 놓고
"그저 한 번만 자비를 베푸신다면
다시는 못된 짓 아니하고 착하게 살겠습니다"라며 말꼬리를 낮췄다.
"그래. 자네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니
내 보건데 부처님의 자비가 이미 그대들 가슴을
넘치도록 충만해 있음 일세."
뜻 밖의 말을 들은 사내들이 동시에
노스님을 쳐다보는 순간 노스님은 벽력 같이 소리쳤다.
"이 사람들아. 잘못된 과거를 다 내개 주고 나가거라.
어서 그 잘못된 과거를 꺼내 봐."
☆☆☆
그 우렁찬 요구에 질린 사내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그 쩡쩡한 목소리의 여운이
아미산을 휘감는 듯한 침묵 속에서 사내들은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과거생의 깊은 불연(佛緣)이 한꺼번에 열렸던 것일까.
일곱 사내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깍고 출가를 했다.
그리고 노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나한의 경지에 들어섰다.
일곱의 도둑이 과거생의 인연을 돌이켜 드디어 도를 이룬 일을 기려
사람들은 아미산을 칠현산(七賢山)이라 불렀고
절 이름도 칠장사(七長寺)라 고쳐 썼다.
노스님은 입적 후
나라로부터 혜소국사(慧炤國師)란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