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어머니 / 해달 표성찬
오월에 찾아온 초록 속에
당신의 미소와 땀방울은
파란 향기였습니다
장독대 옆 숨은 앵두처럼
당신의 빨간 마음 동그랗게
한없이 좋았습니다
걷고 있는 자갈길처럼
당신의 사랑 덜컹거려도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익어가는 청보리 안으시며
당신의 소박한 웃음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고 피는 꽃잎 새로워라
당신의 걸음 시들하시면
목화솜도 천근만근 됩니다
안 보이시면 듣고 싶은
당신의 숨소리는 뱃속까지
전해주신 자장가라 말하렵니다.
회상 / 해달 표성찬
그리움이 새치 머릿결
끝을 타고서
새싹처럼 돋는 봄이여
보슬비 내리는 봄비에
고운 얼굴 흠뻑
가슴까지 온통 젖어도
웃는 꽃잎이여
하늘에 뭉게구름
산언덕 위로 몰고 오는
그대 모습을
나는 나는
담으렵니다
가슴으로 품으렵니다
혹시나 잊을까
혹시나 흘러가버릴까
지금은
단발머리에 웃는 그 모습
손톱만큼의 기억 사진만
가물가물 간직합니다
안부를 묻고 싶고
소식이 궁금함은
아직도 소년이다 하리오.
오월 / 해달 표성찬
봄 언덕 이름 모를 풀 향기
봄 마중 들녘 나들이 길
유채꽃 축제 속에
민들레 노랗게도 피었더라
보리피리 입술에 매달아
삘리리 소리에
나비 춤추면
멀리 아지랑이도 어깨춤인가
산허리 가다 서다 보면
소나기 발자취 뒤로
산을 붙잡은 반 무지개 피고
오솔길 비 젖은 찔레꽃
손닿으면 하얀 꽃 잎사귀
떨리는 부끄러움 그 속으로
소년 마음도 같이 숨고 싶어라
오월에 매달린 꽃
아카시아꽃 주렁주렁
한주먹 톡톡 깨물면 행여
입맞춤도 그 향일까 하였다.
지신 밟는 날 / 해달 표성찬
정월 대보름 맑은 아침
귀밝이술 한 모금에 저 너머
지신밟기 흥겨이 들려온다
징 소리 땅길 소리 울리니
장대 깃발은 솟아오르고
꽹과리 장구 북소리
고깔모자도 신바람 난다
날센 대장부 팽이 춤으로
채상모 초리 중천의 해를 돌리고
양반 대감 긴 수염과 옷소매
대나무 곰방대도 빙글 춤춘다
장끼 까투리 자랑삼는
깃털 모자 옷 사냥꾼 횡재로다
각설이 총각 어깨춤 봄바람은
개나리 처녀 앞마당에서 분다
달집은 연기 꽃 피어 달님과 도란
마을은 고요히 큰 풍년을 꿈꾼다.
그리움 / 해달 표성찬
은빛 양탄자 굽이치는 강 모래
아지랑이 줄을 타며
뜀박질하는 물새들
소낙비 내린 후
수채화 물감에 빚은 듯한 들녘
태양빛 아래로
하늘과 산을 잇는 젖은 무지개
보리 숲 풀피리
흙냄새가 꽃바람 속에 걸려오면
나는야 흙에 살리라
우리는 고향의 저 언덕에서
청산에 살리라 외쳤던가
풋 도토리 고을 메아리에
콧노래 가락 맞추어
귀밑머리 날려 보았던 청춘아
불타는 젊은 기억들은 마르고
그리움의 흔적만 남아
노을 노래에 강물도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