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1994년6월, 일본나가사키의 하야시카네선거(林兼船渠)에서 건조한 카 페리선이며, 건조 후 일본 마루에이 페리(マルエーフェリー株式会社, A-Line Ferry Co.,Ltd.)사에서 약 18년간 Ferry Naminoue(フェリーなみのうえ 페리 나미노우에[33])라는 이름으로 가고시마~오키나와나하 간 운항하다가 2011년 3월 15일에 청해진해운과 MOA를 맺고, 신조선이 취항할 수 있는 2012년 10월 경 인도하기로 하고 10월 1일에 나하발 운항을 마지막으로 청해진해운에 인도되었다. 중고 선박 시장 매물로 올라온 이 선박을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에 도입하여 개조 작업을 거친 후 세월호(歲月號)라는 이름으로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했다.
인천광역시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는 세월호와 오하마나호 뿐이었으며 인터넷에서 세월호나 오하마나호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2014년 당시에는 해수부의 특혜를 받아 청해진해운이 제주항로를 독점해온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이에 대하여 해수부는 1995년 이후 인천~제주 항로에 다른 사업자가 신규 먼허를 신청한 적이 없으며, 이외에도 연안여객선 항로 대부분은 수익성이 낮아 99개 항로 중 85개 항로가 각 1개 사업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특혜의혹에 대해 해명하였다. 관련기사 #
명칭인 세월호는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의미의 歲月(해 세+달 월)이다. 사고 직후에는 정확한 한자 표기가 알려지지 않아 가장 흔한 단어로 음차한 명칭인 '歲月號'라는 명칭으로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 보도되었으나 일부 언론에서 나온 '세(世)상을 넘는다(초월(越)한다)'는 의미로 유병언 회장이 작명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34]중국 방송의 수정 보도(중국어 링크).[35] 하지만 이는 추후에 정정보도되었는데 2015년 7월 26일 구원파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에 따라 다시 歲月로 정정되었다. #
2022년 발간된 사참위 보고서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일본 나미노우에호(6,586톤, 1994년 건조)를 8억 엔(한화 115억 원)에 들여와 인천~제주 항로의 내항 여객선 세월호로 증개축해 사용했다. 청해진해운은 나미노우에호를 들여온 직후인 2012년 10월 7일부터 이듬해 2월 16일까지 전남 영암에 있는 CC조선에서 이 선박의 증개축 작업을 벌였다.
개조 이후 세월호는 많이 바뀌었다. 승객이 머무는 여객실을 증설해 승객 정원은 804명에서 117명 늘어나고 선원 정원은 1명 줄어 최대 승선 인원은 956명(여객 921명, 선원 35명)이 됐다. 객실을 증설해 승객 정원이 늘어나면서 여러 시설도 새롭게 설치되었다. 또한 선수 우현 램프가 제거됐다.
이런 개조 작업으로 선박의 무게는 239톤이 증가했고, 무게중심이 최소 60cm가량 높아진 것으로 평가됐다. 아무것도 싣지 않은 배 자체의 무게를 뜻하는 경하중량은 307톤 증가했고, 이에 따라 선박이 적재할 수 있는 최대 중량을 의미하는 재화중량은 307톤 감소했다.
세월호 증개축에 대해서 참사 직후에는 불법 증개축이라고 알려졌으나, 한국선급에 허가를 받은 것으로 증개축의 위법성은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