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37) 간웅(姦雄) 조조
한편, 동문을 나선 조조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며, 고향인 진류를 향하여 거침없이 달렸다.
그러나 중모현(中牟縣)에 이르러선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기어코 수문장을 비롯한 병사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말에서 내려라!"
관문을 지키는 수비병의 창 끝에 에워싸인 조조는 이미 낙양에서 내려진 수배령에 의하여 덮어놓고 말에서 끌어 내려졌다.
"조금 전에 낙양에서 조조란 자를 보기만 하면 체포하라는 엄명이 내렸는데, 당신은 암만해도 풍채와 용모가 낙양에서 내려온 인상서와 비슷하다!"
조조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러나 그런 기색을 보일 조조가 아니었다.
"나를 조조라고요? 하하하... 사람을 잘못 보아도 한참 잘못 보셨소. 나는 한낱 객상(客商)에 불과한 황보(皇甫)라는 사람이오."
"어쨌든 우리들이 당신을 마음대로 놓아 줄 수는 없으니 경비대장님께로 가자!"
조조는 꼼짝없이 본부로 끌려갔다.
수비대장 도위 진궁(都尉 陳宮)은 조조를 보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앗! 이 사람은 조조가 틀림없다. 나는 전일 낙양에서 근무한 일이 있어서 조조를 여러번 본 일이 있었다. 그대가 황보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수비대장 진궁은 조조를 체포하게 된 것을 크게 기뻐하면서 그를 곧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크게 기뻐한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수배령에는 조조를 체포한 사람에게는 상금 천 냥을 하사함과 동시에 만호후(萬戶侯)의 벼슬을 내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그는 조조를 체포한 부하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려주며, 마음대로 먹으라며 특별 지시를 내렸다.
아무러한 조조도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옥문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앞으로 전개될 자신을 향한 조치에 불안감과 함께, 신상 변화에 대한 어지러운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렇게 밤이 깊어가던 어느 때,
"조조! 조조!"
하고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며 옥문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자기를 부르는 사람은 수비대장 진궁이었다.
"무슨 일인가?"
"당신은 낙양에서 동 승상에게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었다는데, 무슨 이유로 그를 배반하다가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
진궁이 물었다.
조조는 태연히 이렇게 대꾸했다.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 수 있으리오? 그대는 나를 이미 사로잡았으니, 여러 말 말고 빨리 나를 낙양으로 압송하여 상이나 받도록 하게!"
"음 .... 당신은 사람을 보는 눈이 이렇게나 어두운가?"
진궁의 대꾸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뭐라구?"
"당신이 사람을 너무 깔보기 때문에 한마디 해 본 것이오. 나 역시 평소에 큰 뜻을 품고 있으면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점에 있어서는 당신 못지 않다고 생각하오."
조조는 그 소리를 듣자, 자세를 바로잡으며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듣고 보니 고마운 말씀이오. 귀공이 그런 뜻을 품고 있다면, 나도 나의 진심을 말하리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나라의 녹(祿)을 받고 살아온 가문이오. 따라서 내 주인은 항상 한나라 황실이었소.
그러나 동탁이란 자는 황제를 제멋대로 폐하고 백성을 상대로 포악함을 일삼고 있으니, 내 어찌 이런자를 죽이려 하지 않았겠소?
천운(天運)이 따르지 않아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이렇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실패도 각오했던 몸이니 더 이상 미련은 없다오."
진궁은 그 말에 감격되는 바가 있는지, 즉시 옥문을 열고 조조를 불러내었다.
"조 공은 어서 나오시오. 귀공은 어디로 가던 길이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영웅들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동탁이란 자를 당당하게 쳐부술 생각이었소."
진궁은 그 말을 듣고 더욱 감격해 하며,
"조 공의 말을 듣고 보니 기쁘기 한량없구려! 나도 뜻하는 바가 있으니 우리 함께 큰 일을 도모해 보는 것은 어떻겠소?"
"귀공도 동탁을?"
"내가 무슨 사사로운 원한이 있어서 동탁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오. 국가의 대의(大意)를 위해, 나 역시 동탁을 쳐부술 생각을 품고 있었소."
"엣? 귀공도?...."
"나도 이 자리를 버리고 조 공과 함께 천하의 의병들을 불러 모으는데 아낌없이 협력을 할 터이니 우리 빨리 위험지대에서 벗어납시다."
진궁은 조조의 손을 잡아 이끌며 앞길을 재촉하였다.
"아아, 하늘이 무심치 않아 내가 사지에서 귀인을 만났구려!"
조조는 크게 감격하며 진궁이 이끄는 대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진궁은 마굿간으로 가서 튼튼한 말 두 필을 꺼내며 말한다.
"조공은 이 말을 타고 성문 밖 동쪽, 십 여리에 있는 만월정(滿月亭)이란 정자에서 나를 기다려 주시오. 나는 이 길로 사저에 가서 가족들에게 급히 피신하라고 말하고 뒤따라 가겠소."
"그럼 뒤따라 오시오."
조조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야간 도주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사흘후....
만월정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함께 말을 달려, 석양이 짙어가는 저녁무렵에 도착한 곳은 성고(成皐)라는 곳이었다.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보냈구려."
진궁이 말고삐를 늦추며 중얼거리는 말에, 조조는 채찍을 들어 맞는 편에 보이는 울창한 숲을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는 붙잡힐 염려는 없으니, 오늘밤은 저 숲속에 있는 집에서 편히 쉬어가도록 합시다."
"저 숲속에는 누가 있소?"
"여백사(呂伯奢)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내 선친과 형제의 의를 맺은 분이오."
"그렇다면 안심할 수 있겠구려 갑시다그려!"
두 사람은 여백사의 집을 찾았다.
주인은 불시에 나타난 두 사람을 보고, 반가워 하면서도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자네는 무슨 죄를 저지르고 도망을 다니는가?"
"네? 제가 도망을 다니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조정에서 전국 각지에 자네 인상서를 보냈다고 들었다네."
"아, 그 애기 말씀입니까? 제가 역적 동탁을 죽이려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체포령이 내린 것입니다."
조조는 이곳까지 도망오게 된 연유를 여백사에게 솔직히 말해주었다.
그러자 여백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오신 분은 누구신가?"
"아참, 소개가 늦어 죄송합니다. 이 분은 진궁이란 분으로 심중에 큰 뜻을 품고 저를 사지에서 구출해 주신 분입니다."
여백사는 조조의 말을 듣고 나자 진궁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한다.
"처음 뵙습니다만 이제 앞으로도 조조를 많이 도와 주십시오. 귀공이 아니었다면 조씨 일문이 멸족을 당할 뻔 하였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돌연한 폐를 끼치게 되어 오히려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면 고단하실 테니 쉬고 계십시오. 우리 집에 마침 술이 떨어져서 내가 서촌(西村)에 가서 술 한동이를 받아 오겠습니다."
여백사는 말을 마치자, 나귀를 타고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조조와 진궁은 여장을 풀고 마주 앉아,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가지러 간 주인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는데, 날이 어둡자 후원에서 <써억 썩 >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릴까?....)
조조는 의아해서 눈을 크게 뜨며 귀를 기울여 보았다.
(음... 틀림없이 칼 가는 소린데! 그러면 주인은 술을 사러 간다는 핑게를 대고, 우리들을 관가에 밀고해서 상을 타려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그렇게 생각하고 모든 신경을 귀에 기울이고 있으려니까, 후원쪽에서 누군가가,
"묶어 가지고 죽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여보시오, 진 공! 큰일 났소. 저놈들이 우리를 죽이려는가 보오. 사태가 이리 되었으니, 우리가 저놈들을 먼저 죽이고 도망갑시다."
조조는 진궁에게 이렇게 말한 뒤에, 칼을 빼 들고 후원으로 들어갔다.
후원에서는 네 명의 장정들이 예상한 대로 칼을 갈고 있었다.
조조는 그들을 발견하자 불문곡직, 벼락같이 달려들어 모조리 목을 잘라 죽였다.
그러고도 혹시나 숨은 사람이 없는가 하고 부엌을 들여다 보니, 부엌 바닥에는 곧 잡을 양으로 잔뜩 결박을 지어 놓은 돼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뿔사!" ....
진궁은 그 모양을 보고 깜짝 놀라며 조조를 돌아다보았다.
"우리가 잘못 알고 생사람을 죽였구려."
진궁은 지나치게 경솔했던 것을 크게 뉘우쳤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후회 한 들 소용 있겠소? 자, 이제 우리는 빨리 도망이나 갑시다."
진궁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그러나 후회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므로 두 사람은 이내 길을 떠났다.
두 사람이 여백사의 집을 떠나 한 마장쯤 갔을 때, 저편에서 나귀에 술동이를 매달고 오는 여백사를 만났다.
여백사는 두 사람을 보자, 깜짝 놀란다.
"아니, 왜 이렇게 급히 떠나는가?"
"죄 지은 몸이 어찌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내가 자네를 위해 돼지까지 한 마리 잡으라고 했으니 다시 돌아 가세. 내 집에서 하룻밤쯤 묵어 가기로 무슨 걱정인가?"
"어디 잠깐 들러서 볼일을 보고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꼭 오도록 하게 기다리겠네."
조조는 거짓말을 적당히 꾸며 대고 여백사와 헤어졌다.
그리고 조조는 얼마만큼 가다 말고 진궁을 돌아다보며,
"진공은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시오!"
하고 말을 돌려 여백사가 사라진 뒤를 부리나케 쫓아가더니 잠시후 돌아왔다.
"어디를 다녀오신게요?"
진궁이 조조에게 물으니 조조가 대답하기를,
"방금 여백사를 뒤따라 가서 그를 죽이고 오는 게요."
하고 태연히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진궁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니, 우리가 이미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만으로도 가슴아픈 일인데, 어쩌자고 선대의 의형제분까지 또 죽인단 말이오?"
"여러말 말고 어서 가기나 합시다."
"어쩌자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냐 말이오? 더구나 여백사같이 착한 사람을..."
"생각해 보시오. 그 사람이 집에 돌아가서 자기가 부리던 하인들이 내 손에 죽은 것을 알게 되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원망할
게 아니오?"
"그야 물론 당연한 일이겠죠.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원망한 나머지 관가에 달려갈 것이고 그러는 날에는 우리가 위험에 처 할 것이 아니겠소?"
"그래도 죄없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될 일이 아니오?"
"천만에! 내가 남을 배반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남이 나를 배반하게 해서는 안 되는 법이오! 그것이 나의 인생 철학이오. 자, 이제는 과거지사의 일로 묻어두고 어서 빨리 도망이나 갑시다."
"....."
진궁은 조조의 대답에 어의가 없었다.
그리하여 묵묵히 조조의 뒤만 따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심정은 매우 복잡했다.
(이 사람은 천하를 구원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빼앗으려는 야망에 불타는 사람이구나...)
진궁은 조조를 따라나선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조조의 뒤를 따라 가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