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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二章 무너지는 천녀군림탑(天女君臨塔) 1 혈탑은 지년 일 년 이상 무림의 금지였다. 처음 혈탑이 만들어졌을 때, 혈기를 참지 못한 백도인들이 몰려들었으나 이제는 누구 하나 찾지 않는 귀역으로 화해 버렸다. 음사하게 퍼지는 마기. 내공이 약한 자라면 스물거리는 마기에 의해 피가 얼어붙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상관안은 아랑곳 않고 걸음을 계속했다. 얼마나 갔을까? 상관안은 다시 경고문을 보게 되었다. <혈탑금지(血塔禁地). 함부로 발을 들여놓는 자는 음양무상대진(陰陽無常大陣)의 영기(靈氣) 아래 죽으리라. 안으로 들고 싶은 자는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려라! 보름달이 뜰 때, 천녀교의 사자가 와 혈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할 것이니…….> 상관안은 허공에 뜬 채 경고문을 살피며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경고비를 넘어 더 짙은 안개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휘휙-! 몸을 뒤집어 가며 날아들기를 일백 장. 상관안은 짙은 안개를 뚫고 달리다가 어디선가 불어 오는 극히 강한 열풍(熱風)에 휘말리게 되었다. 몸이 숯으로 화하는 듯 고통스러웠다. "진세(陣勢)가 생각보다 강하군." 상관안은 놀라 옆쪽으로 비스듬히 십오 장을 날아갔다. 허공을 가로질러 열풍이 이는 곳을 벗어났다 여기는 순간, 어디선가 눈바람이 일어나 몸을 휘감았다. 피와 뼈가 꽁꽁 얼어붙는 듯하며 옷 위로 흰 서리가 한 치 정도 형성되고 머리카락이 얼음 덩이로 변했다. "대단하군. 음기와 양기가 함께 있군. 이것이야말로 음양진경 안의 수법이다. 과연 금지라 할 만하군." 상관안은 잠깐 진기가 흐트러지는 느낌을 받았으나 곧 정상으로 돌아설 수 있었다. 그는 보 통 사람과 판이한 체질을 갖고 있었다. 열과 독, 그리고 한기는 그의 몸에 영향을 줄 수 없 었다. 과거 세 알의 역골대선단(易骨大仙丹)을 복용했기 때문에 그런 특수한 체질이 된 것이었다. "하하… 이것으로 나를 막을 수는 없다." 상관안은 웃으며 다시 안으로 파고들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진세가 강렬해졌다. 하나, 상관안은 몸을 조금도 쉬어 가지 않았다. 그는 진의 구조가 어떤 것인가 골똘히 생각 하면서 주위 경물을 살피며 안쪽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쌍심마법을 익힌 탓이었다. 진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가운데 호신강기를 일으켜 진세에 저항하고, 그러는 동시에 비천유성신법을 시전하는 것이니… 한 사람으로 세 사람 몫을 한다 할 수 있지 않는가? 휘휙-! 상관안은 진세에 의한 바람보다도 빨리 움직였다. 음양무상대진은 아주 광범위했다. 상관안은 그 안을 돌아다니다가 한 시진 만에 진을 뚫고 나갈 길을 ㅊ게 되었다. '단방의 지혜가 보통이 아니군. 나를 한 시진이나 고생하게 할 수 있는 기문진을 만들었으 니…….' 상관안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힘겹게 찾아 낸 진도(陣圖)를 머릿속에 그리며 몸을 솟구쳐 올 렸다. 유령같이 달리기 일각, 상관안은 춥고 뜨거운 기운을 뚫고 지극히 아름다운 장소에 이를 수 있었다. 우선 거대한 탑 하나가 보였다. 하늘을 꿰뚫을 듯 높이 서 있는 돌탑 하나가 있었다. 높이가 이십(二十) 장(丈)에 달해 일(一) 리(里) 밖에 서 있는 상관안의 눈에도 아주 거대하게만 보 였다. 석탑 표면에는 주사(朱砂)가 발려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거대한 홍석산(紅石山)으 로 보였고, 너무나도 신비스럽게만 보였다. 탑은 모두 십팔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은 십팔층 지옥(地獄)을 연상케 하는 것인데, 각 층의 난간마다 백골 일백 개가 주렴같이 걸려 있었다. 혈탑에 저항하다가 잡혀 죽은 강 호 백도고수들의 잔해가 그것이었다. 혈탑은 천도봉 정상에 우뚝 솟아 있었다. 혈탑 동쪽 아래 거대한 제단(祭壇) 하나가 세워지는 중이었고, 수많은 홍의인들이 개미 떼같 이 부지런히 일하는 중이었다. 딱- 딱- 딱-! 망치질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고, 목수와 석공을 독려하는 감독관들의 목청껏 외치는 소리 도 있었다. 혈탑성회를 준비하는 무리들의 수는 수백에 달했다. '준비가 대단하군. 그러나 잔치는 치뤄지지 못하고 해산될 것이다.' 상관안은 비웃음을 흘리다가 천녀제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한참 돌아보았으나 특별 히 의심이 나는 장소는 혈탑 하나뿐이었다. '저 안에 있단 말인가? 아니다. 단방의 성질로 보아 저 위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낭 산에서처럼 지하에 있을 것이다.' 상관안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끌려 몸을 납작 엎드려 귀를 땅에 대 보았다. 천리지청술을 운용해 보는 것이었다. 과연 땅바닥 저 밑에서 들려 오는 쇠사슬 돌아가는 소 리가 있었다. '지하에 거대한 소굴 하나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천녀교의 비밀 소굴인 것이다. 과거 낭산에 있던 천녀교 총단이 이 아래로 이사 왔으리라.' 상관안은 쾌재를 부르다가 몸을 일으켜 슬쩍슬쩍 바위로 몸을 가려 가며 혈탑을 향해 접근 해 갔다. 십여 장 갔을까? 커다란 깃발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사람의 등판이 눈에 들어왔다. 등에 장 검을 메고 거들먹거리는 폼이 제법 높은 지위에 있는 자로 여겨졌다. '수고하고 있을 필요 없다. 내가 푹 자게 해 줄 것이니, 한 가지만 사실대로 말해 다오.' 상관안은 마음 속으로 외치다가 손을 슬쩍 내저었다. "엇!" 깃발을 들고 왔다갔다하던 몸뚱이가 한 치 정도 떠올랐다가 상관안이 머물러 있는 넙적한 바위 뒤로 끌려 들어왔다. 상관안은 그 순간 그의 연마혈을 점하고 그의 목에 손가락들을 대고 얼음 구덩이 안에서 흘 러나오는 말소리같이 차게 말했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入口)가 어디 있느냐?" "누… 누구냐?" "묻는 대로 말해라!" 상관안이 눈을 부릅뜨자. "혈… 혈탑 맨 아래층 가운데 지하로 향한 계단이 있다." 장한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뇌옥은 어디 있느냐?" "그… 그것은 지하 맨 아래층에 있다." "그 안, 누가 잡혀 있는지 아느냐?" "수… 수십 명이 잡혀 있다. 그… 그들은 모두 참수당할 것이다. 그… 그들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 장한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상관안은 그의 흔혈을 점해 쓰러뜨린 후, 그의 몸에서 홍색 장포를 걸쳐 입었다. '진짜 천녀제 실혼여마가 내게 천녀교를 물려주었으니, 천녀교의 의복을 입는다 해도 비겁 한 일은 아니다.' 상관안은 이렇게 자위하며 홍의인으로 화신했다. "흠, 이 정도면 괜찮군." 상관안은 웃다가 바위 뒤에서 걸어 나와 아주 큰 걸음걸이로 혈탑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도 그를 주의해 보지 않았다. 붉은 옷 입은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 있으니, 그럴 수밖에. 상관안은 백 보 정도 걸어 바로 혈탑 아래에 이를 수 있었다. 혈탑으로 들어가는 문은 아주 거대했다. 가로 오 장, 그리고 높이가 삼 장이었다. 거대한 마차 세 대가 한 줄로 늘어서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인데, 그 주위 검수 백팔 명이 늘어서 있었다. <천녀군림탑(天女君臨塔)> 천하에서 가장 크다 할 수 있는 오 장 길이 편액 하나가 걸려 있었다. 금빛 휘황찬란한 당금 강호에서의 천녀교의 위세를 단적으로 드러냈고, 백팔 검수들의 위영 도 아주 놀라웠다. 상관안은 약간 멈칫하다가, 홍의인들 서넛이 백팔검수들을 등한시하고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따라가면 되겠군.' 상관안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기고 홍의인들을 따라 혈탑의 문을 향해 걸 어갔다. 순간. "서라! 하위 제자가 어찌 혈탑 안으로 드느냐?" 백팔검수 중 맨 오른쪽에 서 있던 자가 상관안을 가로막았다. "하하… 하위 제자라니,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상관안의 눈빛이 붉게 달아올랐다. 천녀교 비전의 적양마기공(赤陽魔 功)을 시전하지 못한다 면 그러한 눈빛을 만들 수 없다. 상관안은 슬쩍 오른손을 쳐들어 보였다. 그의 오른손은 묵옥으로 만든 듯 검게 변해 있었다. 흑마장(黑魔掌). 천녀제에게 비학을 전수받은 자가 아니라면 감히 시전할 수 없는 절기이다. 무사의 눈에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신분을 감추고 계신 분이군.' 무사는 겁에 질려 다시 길을 가로막지 않았다. 천녀교의 적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철석같이 여기고 있는 자들이 있는지라 상관안을 적 이라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흠……!" 상관안은 다른 사람이 또 길을 막을세라 재빠른 보법을 시전해 혈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안은 거대한 대전이었다. 바닥이 붉은색 벽돌로 이루어졌고, 위쪽은 청색(靑色) 유약(油藥)을 발라 구운 질 좋은 벽돌 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주 텅 비어 있는 곳인데, 아래로 향한 계단 하나가 있고 위로 향한 계단 하나가 보였다. 계단 주위 고수로 보이는 홍의인들이 늘어서 상관안이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지 켜보고 있었다. 상관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보다 앞서 들어선 홍의인들이 아래로 향한 계단을 통해 모습을 감추는 것을 확인한 후, 급히 아래로 향한 계단 앞으로 다가갔다.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일곱 명의 홍포노인이 일제히 길을 막았다. "이놈, 이급무사가 어찌 이 안으로 들려 하느냐? 일급호법만이 이 안으로 든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들 중 가운데 선 자가 크게 외쳤다. "고약한 놈!" 상관안이 갑자기 노해 외치며 오른손을 들어 그의 왼쪽 뺨을 후려갈겼다. 짝-! "어이쿠!" 상관안을 향해 호통치던 늙은이가 얼굴을 피로 물들이고 휘청이는 찰나, 여섯 늙은이들의 손이 번쩍 쳐들려 갔다. "웬 놈이냐?" "미친놈이 아니고는 이럴 수 없다." 여섯 노인이 성나 외칠 때, 상관안이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듯 소매 속에서 녹옥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천녀령(天女令)> 그것은 실혼여마가 단방에게 빼앗기지 않은 두 가지 물건 중 하나였다. 그것이 나타나자 일곱 노인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속… 속하들은… 어르신네를 처음 보는지라……." 그들의 어투는 어느 새 공손하게 변해 있었다. "나는 천녀제께서 비밀리에 거둔 제자이다. 혈탑성회에 참석하기 위해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왔다. 이불지가 바로 나의 아내다. 너희들은 이후 나를 교주(敎主)로 섬겨야 할 것이다." 상관위가 허장성세를 부리자, 모두 경악해 마지않았다. "흠……!" 상관안은 그들이 아직 완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 오른손을 가볍게 내 저었다. 천녀교 비전수법 귀령진기(鬼靈眞氣)가 발휘되어 검푸른 그림자를 만들었으며, 상관안에게서 칠 장 떨어진 붉은 벽돌 바닥에서 모래가 일어나며 한 자 깊이 장인 하나가 새겨졌다. "아아……!" "과… 과연 장래의 교주님이시군요! 감쪽같이 모른 저희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모두 그제서야 믿는 눈치였다. 상관안의 거만함이 그들을 믿게 했고, 귀령진기가 그들의 마음 속에 약간 있던 의혹감을 없 애 버린 것이었다. "나는 먼 길을 급히 왔다. 그래서 의관을 정하지 않은 것이다. 너희들의 죄는 아니다." 상관안은 그제서야 부드러운 표정이 되어 품안에서 엄지손톱만한 야명주(夜明珠) 일곱 알을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일곱 노인의 눈알에서 생기가 감돌았다. "사부는 어디 계시냐? 이 안에 계시다는 전갈을 받았는데?" 상관안이 명주알을 노인들 쪽으로 굴리며 묻자. "안… 안에 계십니다. 지금 폐관 중이십니다." 일곱 노인들이 일제히 절을 했다. 명주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순간이었다. "그럼 불지도 연공 중이겠군. 음양무상신공을 아직 익히지 못했을 테니?" "예!" "지금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누구냐?" "삼노(三老)입니다. 항마무성거에 대한 비밀을 알아보고 급히 돌아오는 중이지요." "쯧쯧, 일부러 수고할 필요가 없었는데……." "예… 에?" "항마무성거 안에는 네 사람이 타고 있다네. 중원무성, 그리고 천룡신협과 천지대협, 그리고 항마령주가 타고 있네. 여기 오기 전, 알게 된 사실이네. 아마… 천녀교 사람들 중 자네들이 처음 알게 됐다 말할 수 있을 것이네." 상관안은 서둘러 말한 후, 일곱 노인 사이로 걸어들었다. 일곱 노인이 얼른 비켜 자리을 내주었다. "허엄!" 상관안이 헛기침을 하고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자, 일곱 노인들이 명주알을 각기 하나 씩 취한 후 감개무량한 표정들이 되었다. "헤헤… 장차 교주님이 되실 분과 교분을 맺게 되었으니, 우리들의 장래는 훤히 뚫린 것이 라 할 수 있네." 따귀를 얻어맞은 자가 뺨을 문지르며 말하자. "그분은 정말 뛰어난 분이시지 않는가? 장차 교주가 되신다면… 태상교주가 하지 못한 일도 능히 하실 것 같네." 모두 상관안이 보인 위엄에 감탄해 했다. 그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천녀교라는 곳이 원래 비밀로 뒤덮인 곳이니, 그럴 수밖에. 상관안은 계단을 밟는 순간, 그림자같이 움직여 계단을 스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상관안은 단숨에 백여 개 계단을 스치고 돌바닥에 몸을 내릴 수 있었다. 그가 경미한 소리를 내고 돌바닥에 떨어져 내릴 때, 상관안보다 한발 앞서 아래로 내려선 세 명의 홍의인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누구냐?" "여기서 신법을 시전하다니?" 모두 백 세 노인들이었다. 그들이 고개를 돌리는 찰나, 그들의 얼굴 위를 뒤덮는 지영(指影) 한 무더기가 있었다. 파팍-! "으음……!" 셋 중 둘은 그 자리서 정신을 잃었고, 가운데 선 노인 하나가 연마혈을 점혈당한 뻣뻣한 몸 이 되어 신음 소리를 냈다. "나를 뇌옥으로 안내해라!" 상관안의 눈에서 신광이 폭사되었다. "어… 어떻게 이 안으로 들어왔느냐? 설… 설마 날개가 있어 음양무상대진을 훌훌 날아 넘 은 것은 아닐 텐데?" 자지러지게 놀라는 홍포노인은 새로이 혈탑제일호법이 된 관외삼기(關外三奇) 중 첫째였다. "어서!" 상관안이 눈을 부라리자. "여기까지 왔으면 다 왔다. 굳이 노부가 안내할 필요는 없다. 저기 쇠문을 부수고 들어가면 철책을 볼 수 있다. 그것을 열면 바로 뇌옥이다." 홍포노인이 눈짓으로 오른쪽에 있는 철책을 지적했다. "알겠다." 상관안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철책 있는 쪽을 향해 장력을 발출했다. 그의 손바닥이 백색으로 물들었다가 흰 기류를 일으켜 내자, 천 근 무게는 되어 보이던 철 문이 철가루로 화해 큰 무더기 하나를 형성하며 안쪽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귀… 귀신이군." 관외삼기의 첫째는 그 수법에 놀라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상관안은 그의 몸뚱이가 나뒹굴 기 전 철문 안으로 들어섰다. 상관안은 이제 정체를 발각당하기 쉽다 여기며 혼신 공력을 다해 신법을 시전했다. 십 장 달리자 오리알 굵기 철주 사십 개로 이루어진 철책이 나타났다. 그 주위는 많은 사람 들의 모습이 있었다. 상관안의 몸이 홍영으로 화해 철책을 향해 폭사되어 가는 듯하더니,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철기둥이 산산이 박살났고 그 근처에 있던 자들이 거의 동시에 뒤로 나뒹굴었다. "어이쿠!" "크으으……!" 비명 소리가 요란할 때, 상관안은 혈탑 지하의 뇌옥 깊숙한 곳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상 관안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몸뚱이는 지옥으로 꺼져 버리는 영혼인 양 아주 신비롭게 움직여 어둠에 잠긴 뇌옥 안 으로 빨려 들어갔다. 직후. 땅- 땅- 땅-! 혈탑 지하가 타종성(打鐘聲)에 의해 혼란될 대로 혼란되었다. "적이 나타났다!" "강적 하나가 뇌옥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적을 막아라!" 혈탑의 고수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같이 길길이 뛰며 뇌옥 쪽으로 몰려들었다. 급박하게 울려 퍼지는 종성. 혈탑의 권위가 그 종소리로 인해 잃게 되는 것만 같았다. 고수의 수가 점점 불어났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섣불리 뇌옥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각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종소리는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이각이 지날 무렵. "우……!" 종소리를 한 번에 없애 버리는 지극히 강한 장소성(長嘯聲)이 있었다. 장소성이 시작되며 놀 라운 일이 벌어졌다. "으아악……!" "귀… 귀가……!" 뇌옥으로 가는 길목을 막아 섰던 이십여 명 고수들이 일제히 고막을 막으며 나뒹굴었다. "크아악……!" "으으으윽……!" "우……!" 장소성 소리가 그들의 비명 소리를 압도하는 가운데 그들의 오공(五孔)에서 검은 피가 흘러 나왔다. "우……!" 지축을 뒤흔드는 장소성 소리는 사람만을 골라 충격을 안겨 주는 천하에서 가장 강한 장소 성이었다. 장소성의 주인은 흑의청년이었다. 그는 등에 회색 옷을 걸친 장한 하나를 업고 있는데, 그 뒤 이백여 명의 추레한 차림의 죄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뒤따르고 있었다. "와와……!" "우……!" 흑의청년은 지옥 안에서 걸어 나오는 사신같이 무서운 반면, 관세음보살같이 자비스럽기도 했다. 혈탑고수들에게는 사신이고, 그 뒤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라신선같이 고마운 존재였다. 바로 상관안이었다. 상관안이 업고 있는 사람은 북천검사의 아들 이능운이었다. 그는 허약해 질 대로 허약해졌으나 상관안이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데 감격해 눈빛에 생기를 담고 있었 다. '그 요사한 계집이 죽는 순간을 잠자느라 보지 못하고 넘겨서는 안 되지.' 이능운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천녀교에 잡혀 혈탑성회 때 참수당하기로 되어 있던 강호의 명망 있는 협사들이었다. 남칠성(南七省) 북육성(北六省)의 고수들이 골고루 끼어 있는데, 모두 무공을 잃어 초췌할 대로 초췌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만은 생기에 차 있었다. "우……!" 상관안이 터뜨리고 있는 장소성은 그들의 귀에는 전혀 거칠게 들리지 않았다. 상관안의 장소성은 사람을 가려 위력을 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고, 그 위력은 천뢰 지곡과 비슷한 정도였다. "우……!" 상관안은 혈탑 지하에 있는 사람들이 다 쓰러지는 것을 바라는 듯 장소성을 끊이지 않고 걸 어 계단 근처에 이르게 되었다. 그 순간이었다. 백색 인영 하나가 바람같이 나타나며 상관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이었군. 백독곡 안에서 죽은 줄 알았는데……." 상관안 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백의여인은 나이 스무 살 전후로 보였고, 아주 농염한 미모를 갖고 있었다. 오똑한 콧날과 딸깃빛 입술이 아주 아름다운데, 두 눈에서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와 미모를 흐리게 하고 있었다. 바로 이불지(李佛芝)였다. "고약한 놈! 여기까지 오다니……." "이불지!" 상관안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너는 혈홍문주의 딸이 아니냐? 그런데 왜 혈홍문의 원수인 천녀교를 따르고 있는 것이냐?" 그러자 이불지가 발끈한 표정이 되었다. "호호호… 나에 대해 그리 잘 안다는 것이 신기하군. 그러나… 너는 아직 속사정을 모르고 있다. 혈홍문은 나의 가문이 아니다. 나의 원수일 뿐이다. 나는 원래 혈홍문에서 태어나지 않은 여인이었다." 그녀가 그리 말할 때였다. 수인(囚人) 무리 중에서 걸어 나와 눈시울을 붉히는 추면 중년인 하나가 있었다. "불… 불지야……." "너… 너는 단장협(斷腸俠)이 아니냐?" 이불지가 놀라 외치며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는 추면 중년인의 눈길이 너무도 낯이 익지 않은가? 이불지의 전신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아… 아버지!" 이불지는 얼굴을 칼자국으로 덮고 있는 사람이 바로 십여 년 전, 헤어졌던 아버지 이검엽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나다. 어서… 내 곁으로 와라. 천… 천녀제를 따라서는 안 된다." 이검엽도 뇌옥 안에 잡혀 갖은 고문을 당해 거의 죽게 된 상태였다. 그는 지금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검엽의 눈에선 혈루가 흘러내리고 있다. 이불지는 차마 그 눈길을 마주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으으, 아…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아… 아버지일 수 없다. 나… 나의 아버지는 나의 어 머니를 능욕한 죄값을 치르고 십이 년 전, 어머니에게 죽었다. 나… 나의 아버지는 이승에 없다." 이불지는 생각하기 괴로운 듯 고개를 내젓다가 상관안을 향해 양 손을 쳐들었다. "모두 네놈 탓이다." 우르르르릉-! 그녀의 두 손에서 각기 다른 성질의 기운이 일어났다. "음양무상신공을 전수받았군. 그러고 보니… 너는 천녀제가 네 어미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 구나!" 상관안이 기다렸다는 듯 왼손 하나를 내밀어 두 줄기 기류에 저항하는 흰 기류 하나를 뻗어 냈다. 꽝-! 폭음과 함께 세 줄기 기류가 한데 뭉쳐졌다. 내가고수들이 가장 꺼려하는 내공 대결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으으……!" 이불지는 상관안의 내공이 자신의 내공을 수 배 능가하는 것이라는 데 자지러지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낭패감을 느낄 때, 상관안이 신공을 거두지 않은 채 청아하게 말했다. "천녀교를 떠나겠다고 말한다면 용서해 주겠다. 내 말에 따른다면 당장 진기를 회수해라. 그 러면 살 수 있다." "……." 이불지는 상관안이 말을 한다는 데 놀라다가 기회로 삼고 오히려 배의 힘을 가했다. 그러나 상관안이 일으켜 내는 진기의 힘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으으……!" 이불지가 점점 더한 괴로움을 느끼며 두 다리를 돌바닥 안으로 파묻어 가자, 상관안이 측은 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아버지를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으으……!" "어서 진기를 거두어라. 천하의 악녀 단방은 네 어머니가 될 자격이 없다. 아버지의 품안에 안겨라!" "으으……!" 이불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직 신음 소리를 낼 뿐이었다. 마음을 돌리게 한다는 것 은 아예 틀린 일 같았다. "불지야……." 단장협으로 화신했던 이검엽이 크게 외치는 순간. "에잇!" 이불지가 갑자기 양 손을 거둬들이며 기합 소리를 터뜨렸다. 그 누구도 상상 못했던 일이었 다. 꽝-! 상관안이 한 손으로 일으켜 낸 태극선강이 그대로 뻗어 나가 이불지의 앞가슴을 휘감았다. 펑-! "아악!" 이불지는 금방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런!" 상관안이 놀라 그 뒤를 따르며 능공섭물진기를 시전해 냈다. 이불지의 몸뚱이가 그의 손에 잡혔다. "나… 나를 놓아 주세요." 이불지는 상관안을 원망하는 눈빛이 아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상관안을 올려다보며 고개 를 가로저었다. "불… 불지 낭자, 왜 죽기를 자처했소?" 상관안이 눈시울을 붉히고 묻자. "아… 아버님이 살아 계시니 됐습니다. 저… 저의 목숨을 버리고, 아버님의 목숨을 구했다 여기겠습니다." "아……!" "저… 저는 일 년 동안 세상을 원통해 한 나머지,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회… 회개 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어… 어머니가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그분은 저의 어머니 이십니다." "낭자……." "당… 당신의 말소리는… 나… 나의 낭군(郞君)을 닮았습니다. 그… 그리고 눈빛도 닮았습니 다." 이불지의 말이 상관안을 목메게 했다. 이불지는 과거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나… 나는 소협 손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어… 어머니가 죽인 셈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죽 게 되다니, 꿈… 꿈이 아닌지요?" 이불지의 오장육부는 상관안의 일 장에 완벽히 파괴된 후였다. 화타나 편작이 되살아난다 해도 그녀를 살릴 수 없을 것이다. 이불지의 눈에선 생기가 사라졌다. 회광반조일까? 죽어 가던 이불지의 눈이 돌연 환하게 타올랐다. 이불지는 죽어 가며 말하다가 피 묻은 손을 겨우 놀려 품안에서 피에 젖은 비단 수건 하나 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꼭 쥐며 눈을 스르르 감았다. 수건을 영원히 남에게 빼앗기기 싫다는 듯. 그 수건 안에는 한 장의 인피면구가 들어 있었다. 이불지는 만장호 바닥에서 그것을 꺼낸 이후 한순간도 그것을 놓지 않았었다. 이불지의 몸은 점점 차게 식어 갔다. "으흐흐……!" 이검엽이 딸 곁으로 다가서며 벽에 머리를 찧었다. 과거 한순간의 정욕(情欲)을 이기지 못하고 무림제일기녀 단방을 능욕했던 것이 지금의 슬 픔을 만든 것이리라. "으흐흐……!" 쿵- 쿵-! 이검엽의 머리가 깨지며 피가 펑펑 솟았다. 상관안이 보다 못해 만류할 때였다. "호호호……!" 혈탑 지하를 떨게 하는 광기에 찬 웃음소리와 함께 상관안을 향해 다가서는 중년부인 하나 가 있었다. 얼마 전 검주 죽림 안에서 상관안을 암습한 바 있는 신비한 용모의 소유자인데, 손에 면구 한 장을 쥐고 있었다. "호호호……!" 여인의 얼굴이 코와 입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졌고, 웃음소리는 사람의 웃음소리 같지 않게 광기에 찬 것이었다. 그 얼굴은 혈홍문주의 아내였던 무림제일기녀 단방의 얼굴이었고, 웃음소리는 천녀제의 웃 음소리였다. "흐흐… 모두 무너져 버렸구나!" 단방은 한참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거두고 딸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물기가 서 렸다. "어리석은 계집!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니… 그것만 갖추었다면 나와 똑같아졌을 텐데… 네 가 쉽게 죽지 않고 나와 힘을 합했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대라 한들 한 번 싸워 볼 만했을 텐데……." 단방은 중얼거리다가 상관안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아주 차게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상관안이 단방의 얼굴을 잊지 않고 있듯, 단방도 상관안의 얼굴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소!" "호호… 이가 놈이 아니었다면 너… 너는 내 아들로 태어났을 것이다." "흥!" 상관안이 냉소를 쳐 응수하자. "그래, 어찌 살았느냐?" 단방이 갑자기 표정을 변화시켰다. "그 정도로 나를 죽게 할 수는 없었다." "호호… 그때 죽은 것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사실 나는 너를 큰 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래 서 네가 나타나면 찾아가 죽이려 했었다." "흥! 잘못 생각했소." "무슨 소리냐?" "내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당신이 어머니를 죽였소. 그래서 나는 병약한 몸으로 세상에 나왔소." "그렇지." "나는… 오래 살 수 없는 몸이었소." "맞는 소리다. 한데, 어떻게 내가고수가 되었느냐? 어떤 기연이 있었느냐?" 단방의 눈빛이 야릇한 빛을 발했다. "당신이 나를 구했지 않소?" 상관안이 비웃으며 오히려 되물었다. "내… 내가 너를 구했다고?" 단방의 몸이 휘청거렸다. "하하하… 당신이 나를 병들게 했고, 음양혈로로 나를 살렸소. 병을 주고 약을 주었으니, 빚 은 갚은 셈이오." "네… 네가 그… 그놈이었더냐?" 단방은 그제서야 상관안이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하하하… 그뿐이 아니오. 당신은 또 하나 큰 실수를 저질렀소. 그것은… 사부로 모시던 노 파를 살려 준 일이오." "그… 그 늙은이 말이냐?" "하하… 그 불쌍한 여인이 한 가지 수법을 전해 나를 이렇게 강하게 했소. 이제 그 한 가지 수법을 펼쳐 당신을 징계할 것이오." 상관안이 단호히 말했다. "호호호… 네놈이 기고만장하군. 하나, 음양무상신공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것은 네가 잘 알 것이다." 단방이 손을 번쩍 쳐들었다. "잘 알고 있소. 내가 잘 안다는 것은…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알 것이오." 상관안의 말이 그녀를 함구케 했다. "나는 이길 수 있소. 그것은… 솔직한 말이오. 아시겠소?" 이때 상관안이 비웃으며 이능운을 등에서 내려놓고 두 손바닥을 들어올리자, 손바닥이 흰 기류를 일으켜 냈다. 순간, 단방이 자지러들 듯 몸을 휘청거렸다. "그… 그렇군. 이제 보았더니, 흑의선협(黑衣仙俠)이 바로 네놈의 사문 사람이었군." 단방은 그제서야 상관안이 태극선강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얼굴을 눈빛같이 희게 물들였 다. 만장호에서 흑의선협과 일 장을 겨룰 때 태극선공의 무서움을 이미 체험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상관안이 흑의선협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가공할 위력을 지닌 태극선강, 그것이 흑의선협보다 고강해 보이는 상관안의 손에서 시전될 때의 위력은 필설로 형용키 어려울 것이다. "으으……!" 단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단방!" 그 순간, 상관안이 눈을 부릅뜨며 단방을 향해 신형을 폭사시켰다. 상관안이 허공을 디디며 단방 쪽으로 다가서자, 단방이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다가 등판을 벽에 부딪치고 몸을 휘청였다. 그리고는 이를 갈며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음양무상신공이다!" 단방의 부르짖음이 뇌옥 안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의 오장육부를 뒤흔드는 가운데, 뜨겁고 찬 기류가 일어나 상관안 쪽으로 날아갔다. 우르르르릉-! 두 줄기 기류의 힘은 이불지가 시전할 때에 비해 세 배는 강했다. 음양무상신공이 일어나는 찰나, 상관안이 눈을 질끈 감으며 태극선강을 뿜어 내 단방 쪽으 로 시전했다. 이불지를 상대했을 때에 비해 다섯 배는 강한 것이었다. 그리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한 일격 이었다. 천하제일신공인 태극선강이 극심한 살기 아래 시전되며 음양무상신공 쪽으로 날아갔다. 두 줄기 성질 다른 기류가 근접되며 회오리가 일어났다. 가운데 있던 이불지의 시체가 피모래로 화해 사라져 갔고, 돌바닥에 열이 났다. 일순 흰 기류가 뜨겁고 찬 기류 속으로 파고드는가 하더니, 혈탑 십팔층 꼭대기까지 뒤흔들 리며 기우뚱하게 되었다. 우르르르릉-! 혈탑이 반으로 쪼개지는 가운데 처절한 비명 소리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카아아악……!" 피떡같이 뭉그러져 날아 올라가는 백의여인 하나가 있었다. 여인의 몸으로 세상을 풍미하고 산 희대의 여마두. 강호에는 천녀제라 알려져 있고, 신분은 무림제일기녀인 단방이 태극선강 아래 오장육부가 박살이 되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꽝-! 그녀의 시신이 벽에 부딪쳐 피를 뿌릴 때,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외팔이 중년사내 하나가 언제 꺼내 들었는지 비수 하나를 꺼내 자신의 심장 속으로 밀어넣었다. "모… 모두 내 죄다!" 검을 꽂고 죽어 가는 사나이는 바로 사도제일인 이검엽이었다. 이검엽의 딸, 이검엽의 아내였던 여인, 그리고 이검엽 자신이 죽어 가는 가운데 혈탑이 붕괴 를 시작했다. 우르르릉- 꽝-! 거대한 돌더미가 떨어져 내려 세 구의 시체 위를 덮었다. "올라갑시다!" 상관안이 세 구의 시체를 쓸어 보다가 앞장 서 계단 위로 올랐다. "와와……!" 천녀제의 죽음에서 강호 평화의 시작을 피부로 느낀 군협(群俠)이 환호성을 토하며 따라 계 단 위로 올라갔다. 상관안이 호신강기를 일으켜 돌더미를 퉁겨 내는 통에 군협은 조금도 다치지 않고 위로 오 를 수 있었다. 혈탑은 군협들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완전히 함몰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십팔층 위에서부터 무너져 형체도 찾지 못하는 돌무덤으로 화하고 말았다. 여마의 한스런 인생(人生)이 만들어 낸 혈탑은 여마의 최후와 함께 지상(地上)에서 사라져 가 버린 것이다. 2 천도봉 위에서 거행될 예정이었던 혈탑대성회가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대신 항 마무성거의 출현과 함께 백도의 복파대전이 열리게 되었다. 이제 강호를 휩쓴 혈겁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열흘 후, 천하에서 가장 큰 경사가 검주 땅에서 벌어져 황산의 연회보다 더 많은 손 님을 불렀다. 무림의 젊은 맹주 옥면무성(玉面武聖) 상관안(上官雁). 그가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 이난음을 아내로 맞는 예식이 그것이었다. 예식을 주관하는 사람은 중원무성이었고, 강호의 수만 고수들이 참석해 그 자리를 빛내 주 었다. 상관에게는 어떠한 찬사도 아깝지 않았고, 어떠한 명성도 영예도 값진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무림에 평화가 시작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大尾> |
첫댓글 그동안 잘 보았습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