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삼하 11장 1-27절)
1.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샤하트)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야사브)
그 해는 유대교 1월이고, 1월은 아빕월이고, 태양력으로는 3-4월이 된다. 겨울에서는 전쟁을 미루고, 봄이 되면 전쟁하는 것이 관례적이었다. 왜냐하면, 겨울은 우기였기 때문이다. 샤하트는 멸하고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승리한 것을 의미한다. 랍바만 남아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랍바는 암몬의 수도였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다. 야사브는 앉아있다 라는 의미다. 즉 전쟁중에도 긴장감 없이 평온하게 있다는 말이다. 거의 압몬을 함락할 직전까지 왔기 때문이다.
2-4.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저녁은 영적 어두움을 나타낸다. 다윗은 군사적으로 강성해졌지만, 영적으로는 어두움에 있다는 것이다. 다윗은 순간 육의 눈으로 목욕하는 여자를 바라본다.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여자들이 하는 월경이 끝났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다윗은 율법을 따라 생각하는 것이다. 선악지식나무는 율법을 상징하는바, 그는 선악과를 따 먹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율법에 따라 월경하는 여인은 가까이 할 수 없었는데, 이제 가까이 할 수 있으므로 다윗이 그의 마음을 여인에게 완전히 빼앗긴 것이다.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다윗이 보낸 전령이 말하기를 엘리암의 부친이 다윗의 책사였으며, 우리아는 다윗의 충실한 부하 장군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밧세바는 엘리암의 손녀이고, 우리아의 아내인데요 라고 반문 비슷하게 말을 하는 것이다. 전령이 말을 했음에도, 다윗은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오고 문제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다윗은 백성을 보호하기는 커녕 절대 권력으로 백성, 특히 전쟁 중인 신하의 장수의 아내를 범하고 만 것이다. 이는 사울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것은 우발적인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계획적인 면이 있는 것이다.
5-9.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다윗이 전쟁터에 있는 우리야를 불어들여 집으로 돌아가 그의 아내와 동침하도록 유도하고, 결국 아이가 태어나면, 자신의 행위가 묻힐 수 있다는 계산이었는데, 우리야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10-11.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네페쉬)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우리야는 왕의 명령에 불복종했다. 그 이유는 우리야가 다윗의 행동과 말에 대해서 의심을 한 것이며, 결국 자신의 아내를 범했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이 말의 핵심은 아내와 잠자리를 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이다. 전쟁 중인데, 자신을 불러서 아내와 자도록 유도한다면,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윗이 전령들을 보내서 밧세바를 왕궁에 오도록 했고, 밧세바도 전령을 통해 왕에게 전달하도록 편지를 써서 보냈으므로, 소문이 났을 가능성이 있으며, 비상식적인 다윗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왕의 혼(네페쉬)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네페쉬는 혼이 아니라, 육적 생명을 의미한다. 다윗이 이런 명령을 했지만, 결국 당신도 육적 생명에 불과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야는 밧세바와 잠자리를 갖지 않으므로, 자신의 생각을 증명해 보이려 했을 것이다.
12-13.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우리야는 다윗의 명령에 계속 불복종하며, 버티었다. 다윗이 보기에 우리야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상적인 모습이 아닌 것이다. 다윗이 보기에 우리야가 무엇인가 알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계속 자신의 말에 불복종하는 것은 밧세바 일로 자신을 저항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14-17.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다윗의 생각은 또 다른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밧세바의 일로, 다윗은 충신인 부하 우리야를 전쟁에서 죽도록 마음 먹은 것이다. 우리야는 죽을 각오로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는데,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왜 우리야는 다윗에게 죽을 각오로 행동을 했는가?
전쟁 중에 싸우다가 죽게 되었다면, 그는 영광스러운 죽음이 되지만, 다윗은 결국 밧세바를 범했다는 것이 온 나라에 퍼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야의 복수극이 되는 것이며, 다윗을 하나님께 고발하는 것이다. 그는 이방인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다. 그만큼 신앙심도 있었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워주셨는데, 그가 부하의 아내를 빼앗고, 나아가 부하를 전쟁에서 죽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게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보여준다. 성도에게 옛사람과 새사람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든지 성도는 옛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성도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옛사람은 죽어야 할 대상이며, 새사람은 태어나야 할 대상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18-21.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요압이 우리야만 전쟁의 앞부분에 세운다면, 의도적으로 죽게 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므로, 부하 몇 명을 함께 적진 앞에 세워 우리야 뿐만 아니라 부하 몇몇도 억울하게 죽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요압이 다윗에게 보고할 때 신중하게 글을 쓴다
다윗이 성 가까이 가서 싸우다가 군사들이 죽게 되었는가 물어보면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는 것이다. 요압은 이미 다윗의 의도를 알게 된 것이다.
22-25.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 이르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다윗은 목적을 달성하였으므로, 요압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서로 마음을 통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밧세바 간음은 우리야를 죽게했고, 더 많은 군사를 죽게하는 결과가 되었다.
26-27.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행동은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와 아이를 낳게 한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그의 아내를 삼으므로 완전한 간음의 은폐를 시도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다윗이 권력을 이용해서 부하를 죽도록 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다윗의 근본적인 악은 탐욕에 있다.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는 것이다. 그래서 남의 것을 권력으로 빼앗으려 하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성도의 심령 속의 옛사람은 탐욕으로 오염된 존재이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한다. 옛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는 베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로부터 생명나무가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