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경은 어떤 책인가?/ 디모데후서 3:16-17
설교자: 마경훈목사
요즘 저희 교회에 성경 읽기 바람이 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 아내는 금년에 26독을 했고, 10독, 20독을 넘어선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성경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성도님들이 성경 읽기에 힘쓰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영하 수십 도의 칼바람이 부는 러시아의 어느 겨울날, 스물여덟 살의 청년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이 집행 되는 기둥에 묶였습니다. 황제에 반대하는 모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총살형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사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 멀리서 한 기마병이 황제의 감형 편지를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단 몇 초 차이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러시아에서 가장 춥고 악명 높은 시베리아 옴스크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감옥으로 가던 길에서 한 부인이 그에게 신약성경 한 권을 건넸습니다. 수용소에서 유일하게 허락해 준 책은 오직 그 성경뿐이었습니다. 그는 중노동을 견디던 4년 동안, 매일 밤 성경을 닳도록 읽었습니다. 내 힘과 똑똑한 머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의 생각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특히 그의 심장을 강하게 울린 말씀 요한복음 12:24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는 씨앗 하나가 땅에 묻혀 썩어 없어져야 열매를 맺듯이, 자신의 교만한 마음과 억울한 고통도 썩는 밀알처럼 하나님 앞에 깨어져야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성경으로 변화 되어 수감생활을 마치고 감옥 문을 나섰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인하여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후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명작을 썼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과 감옥에서 만난 성경 말씀을 녹여내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죄 용서와 참된 사랑을 전하는 위대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책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위대한 책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역사상 가장 많이 인쇄되었고, 가장 많이 팔렸으며, 가장 널리 번역된 책입니다. 성경은 문화와 인종의 경계를 넘어 지구상 거의 모든 사람에게 보급되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처음으로 찍어낸 책은 성경이었습니다. 성경만큼 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책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위대한 책인 이유는 성경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입니다. 성경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성경의 위대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요?
저는 몇 주 동안 “성경은 어떤 책인가?”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 설명은 필요한 부분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 계시성
하나님은 피조세계와 질적으로 다른 초월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성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열어 보여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시가 필요합니다.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가 아무리 뛰어난 지능을 가졌더라도 인간의 스마트폰, 비행기, 우주 과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차원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초월자 하나님에게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자신을 보여주신 것이 계시입니다.
성경이 다른 책과 다른 점 중에 대표적인 것은 계시성입니다. 계시란 ‘가려져 있던 베일을 벗겨 명백히 드러내 보여준다(ἀποκάλυψις 아포칼립시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뜻, 그리고 진리를 사람들에게 직접 열어 알려주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사람에게 계시가 필요한 이유는 영적인 면에서 맹인이기 때문입니다. 맹인은 자기 앞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없듯이, 인간의 유한한 이성과 탐구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영생의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면, 인간은 하나님도, 구원의 진리도 알 수 없으며, 참된 생명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조각품이 전시관 한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두꺼운 암막 천으로 덮여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아무리 돋보기를 들이대고 학문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천 겉면을 분석해도, 작품의 인물이 누구인지, 조각가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와서 그 천을 확 벗겨내니 비로소 그 조각의 온전한 형체와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성경은 인간이 추측한 조각품이 아니라 하나님이 천을 걷어 보여주신 걸작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지혜나 이성으로 하나님을 탐구하여 도달한 학문적 결과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 된 인간을 향한 구원 계획을 성취하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감추어진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친히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하신 자기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습니다. 일반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 역사, 인간의 양심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와 신성을 보편적으로 드러내신 계시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죄와 구원의 길도 알 수 없습니다. 일반계시는 짙은 안개에 갇힌 조난자의 손에 있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안개 속에서 나침반은 대략적인 동서남북 방향만 가리킬 뿐, 낭떠러지가 어디에 있고, 생명의 피난처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는 말해주지 못합니다.
특별계시는 안개 속에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과 같습니다. “전방 10미터 앞 우회전하여 안전지대로 이동하십시오.”라고 말하는 음성 내비게이션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안개 속에서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신 최종 안내서가 성경입니다. 특별계시는 하나님께서 성경과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 구원의 길을 명백히 밝혀 보여주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참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깨닫게 됩니다.
존 칼빈은 성경을 ‘희미한 눈을 밝혀주는 안경’에 비유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조명입니다. 아무리 좋은 안경을 껴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빛이십니다.
시편 119:18입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자기 눈을 열어서 진리를 보게 해달라는 시편 기자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계시성 때문에 기도하며 성경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성령님의 조명이 있어야 성경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가 믿어지고 진리가 알아지는 것입니다.
2. 영감성
성경의 또 다른 고유한 특징은 영감성입니다. 디모데후서 3:16 말씀처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여기서 ‘감동(感動)’과 ‘영감(靈感)’은 같은 의미입니다. 헬라어로는 ‘테오프뉴스토스(θεόπνευστος)’로, ‘하나님(테오스)’과 ‘호흡하다(프네오)’가 결합하여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듯이 성경의 모든 말씀에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친히 불어넣으신 사건이 곧 감동이며 영감입니다.
오케스트라 무대에는 바이올린, 트럼펫, 팀파니, 플루트 등 모양도, 재질도, 소리도 완전히 다른 수십 개의 악기가 올라옵니다. 한 명의 지휘자가 악보를 들고 지휘를 시작하면 모든 악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장엄한 교향곡을 만듭니다. 성경은 1,600년에 걸쳐 왕, 어부, 학자 등 40여 명의 기자가 저마다의 어투로 기록했으나, 성령님이 지휘자로 이끄셨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라는 완벽한 하모니가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기자의 성품과 어휘를 사용하시되, 성령님의 감동으로 간섭하셔서 성경에 하나님의 진리가 오류 없이 기록되도록 영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순한 인간의 글이 아닌,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6장에 보면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 돌을 캐내는 채석장에서 미리 돌을 온전히 다듬어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 현장에서는 도끼나 쇠방망이 같은 연장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각기 다른 산에서 각기 다른 석수들이 수년 동안 깎아 온 돌들이었지만, 설계자의 완벽한 치수대로 다듬어졌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렸습니다. 서로 만난 적도 없는 40여 명의 저자가 오랜 세월 깎아 낸 글들이 성경이라는 하나의 완전한 작품이 된 것입니다. 이는 오직 성령 하나님이 유일한 설계자이자 감독자이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숨결과 영이 담긴 말씀이기에, 성경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으면 영적 터치가 일어납니다.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닙니다. 말씀이 상한 심령을 어루만지고, 죄를 찌르며,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악한 영들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삶의 수많은 문제에 명확한 해답을 줍니다. 나아가 마음의 병과 육체의 질병까지도 치유하는 생명력으로 역사합니다.
1789년 영국 군함 바운티 호에서 선상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선원들이 배를 장악하고 외딴 피트케언 섬으로 도망쳤습니다. 이들은 원주민들과 어울려 술을 빚고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살육과 방탕을 일삼았습니다. 결국 존 아담스라는 사람과 소수의 원주민 여성, 아이들만 살아남는 지옥 같은 섬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담스는 선장의 트렁크에서 성경 한 권을 발견하고 읽다가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매일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수십 년 후 한 미국 선박이 그 섬을 방문했습니다. 그 섬은 범죄나 폭력이 전혀 없고 사랑과 찬송이 가득한 평화로운 기독교 공동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의 영감성이 살인자의 손에서 무기를 버리게 하고 공동체를 살려낸 것입니다.
영감성을 이해하기 쉽게 저주파로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가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흔히 받는 저주파 치료는 미세 전류로 신경을 자극해 통증을 차단하고, 뭉친 근육을 풀어 몸을 회복시킵니다. 겉으로는 작은 자극 같지만, 깊은 곳까지 침투하는 파동이 몸을 치료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영적인 물리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거룩한 영감이 저주파처럼 우리 영혼몸에 역사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하나님의 생명 파동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듭니다. 그 결과 굳어버린 심령이 부드러워지고, 죄와 상처의 통증이 사라지고, 영혼의 연약함을 치료하여 새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읽으며 영적인 물리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3. 무오성
성경의 세 번째 고유한 특징은 무오성입니다. 성경은 완전하시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원본에는 역사, 과학, 구원의 모든 영역에서 오류가 없습니다. 나아가 성경은 신앙과 삶의 모든 기준에 있어 결코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입니다.
성경에 오류가 없는 첫 번째 이유는 기록을 명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결코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결함이나 오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경 말씀 자체가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17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기준은 변합니다. 하지만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셋째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께서 저자의 한계와 연약함을 완벽히 통제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저자의 자유로운 성품과 언어를 사용하시면서도, 죄와 무지로 인한 오류가 말씀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지키시고 주권적으로 간섭하셨습니다.
성경에 모순이 있어 보이는 이유는 말씀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무지와 한계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사본을 베껴 적는 필사 과정에서 생긴 미세한 오기나, 성경이 기록된 고대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 이성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과거에 비평학자들이 성경의 명백한 역사적 오류라고 공격했으나, 이후 고고학적 발굴로 성경 기록이 정확했음이 입증된 사례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헷 족속은 히타이트 제국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헷 족속이 강대한 민족으로 40회 이상 등장합니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 세속 역사 문헌 어디에도 헷 족속의 흔적이 없어, 성경 비평 학자들은 성경이 지어낸 가상의 민족이라며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1906년 독일 고고학자 휴고 빙클러(Hugo Winckler)가 튀르키예 보아즈쾨이에서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와 1만여 장의 점토판 문서를 발굴했습니다. 이로써 헷 족속은 이집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거대한 제국이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다니엘 5장에는 바벨론이 멸망하던 밤 술잔치를 벌이다 죽은 벨사살 왕이 나옵니다. 하지만 고대 역사에는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 나보니두스로 기록되어 있어, 벨사살 이야기는 다니엘서의 오류이자 후대의 위작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854년 이라크 우르에서 발굴된 '나보니두스 원통 비문'을 통해, 나보니두스 왕이 통치 말기에 아라비아 테마에 머물며, 장남인 벨사살에게 섭정을 맡겨 공동 통치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다니엘이 벽에 쓰인 글을 해석했을 때, 벨사살은 다니엘을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왜 다니엘을 나라의 둘째가 아니라 셋째 치리자로 삼았을까?” 그런데 '나보니두스 원통 비문'을 통해 1위 나보니두스, 2위 벨사살, 3위 다니엘이라는 것이 증명되어 저의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다윗에 관한 오류 가능성 제시였습니다. 1993년 텔 단(Tel Dan) 발굴 전까지 자유주의 학자들은 다윗을 전설 속 인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9세기의 아람어 석비에서 '다윗의 집(House of David, 다윗 왕조)'이라는 글자가 명확히 판독되면서 다윗의 실존을 확인하였습니다.
성경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미숙했습니다. 성경은 티끌만 한 오류도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의 무오성을 온전히 신뢰하고, 성경을 신앙과 삶의 유일한 절대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매일 낮 12시 정각이 되면 시계탑의 종을 치는 관리인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종소리에 맞춰 손목시계를 맞췄습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신사가 관리인에게 “당신은 무엇을 보고 낮 12시를 정확히 맞춰 종을 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관리인은 “저 건너편 유명한 시계방의 대형 괘종시계를 보고 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신사가 그 시계방 주인에게 “당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시계를 맞춥니까?”라고 묻자, 그는 “저 시계탑에서 매일 낮 12시에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맞춥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경험은 이처럼 서로를 기준으로 삼다 다 함께 오류에 빠집니다. 성경은 인간끼리의 합의가 아닌, 초월적인 표준입니다. 성경은 무오하기에 참된 기준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세상의 소리나 자신의 감정이 아닌, ‘성경은 이 일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를 묻고 점검하는 거룩한 습관을 갖어야 합니다. 살아가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진리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을 때는, 지체 없이 오류가 없는 성경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4. 충분성
성경의 네 번째 고유한 특징은 충분성입니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진리는 66권 성경 안에 충분히 갖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구원을 위한 또 다른 예언이나 환상, 새로운 계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역사 속 신앙고백을 통해 성경의 충분성을 확고히 선언했습니다. 1647년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장 6절)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신앙과 삶에 필요한 하나님의 모든 뜻은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거나 필연적인 추론을 통해 얻을 수 있으므로, 성령의 새로운 계시나 인간의 전통을 막론하고 성경에 아무것도 덧붙일 수 없다"고 엄히 규정했습니다. 성경만으로 구원과 성도다운 삶의 모든 지침은 차고 넘칩니다.
교회사 속 수많은 이단은 성경의 충분성을 부정하고 성경 외에 다른 것을 찾다가 미혹의 늪에 빠졌습니다. 2세기 몬타누스는 성경을 넘어선 직통 계시를 주장하다 파문당했고, 조셉 스미스는 천사에게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며 몰몬경을 덧붙여 몰몬교를 만들었습니다. 현대의 신천지나 통일교 등 자칭 재림주와 교주들 역시 “기존 성경만으로는 구원이 불완전하다”며 교주의 특별한 계시를 성경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벗어나 새로운 신비 체험이나 은밀한 계시를 쫓는 순간, 영혼은 치명적인 영적 파멸의 길로 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의 충분성을 말할 때 흔히 마주치는 오해가 있습니다. “성경이 모든 것에 충분하다면, 왜 성경에는 고차원 수학 공식이나 주식 투자 비법, 혹은 맛있는 요리 레시피는 나와 있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충분성은 결코 세상 지식을 다 담아낸 백과사전식 충분함이 아닙니다. 성경의 목적과 한계는 구원의 길과 거룩한 삶의 도리에 충분한 것입니다.
새 차를 사면 ‘차량 취급설명서’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엔진오일 교환 주기, 타이어 공기압, 안전 운전 수칙, 등 차를 운행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책에는 된장찌개 끓이는 법이나 피아노 치는 법이 안 적혀 있으니 엉터리 책이다.”라고 불평한다면 우스운 일입니다. 성경은 백과사전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이 구원받고 천국까지 안전하게 가는 데 필요한 지침이 담긴 구원의 취급설명서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며,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필요한 진리는 66권 성경 안에 완벽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의 구원과 신앙의 길을 알기 위해 세상의 헛된 지혜나 신비주의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기록된 말씀 하나만으로 우리는 온전해지기에 충분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걸작 ‘모나리자’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명암, 구도, 표정까지 화가의 의도가 100% 담긴 완작입니다. 그런데 관람객 중 한 명이 붓을 들고 와서 “모나리자 얼굴에 눈썹이 없으니 내가 눈썹을 그려 넣겠다.”고 칠한다면, 그것은 예술 작품에 대한 모독이자 범죄입니다. 성경 66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하신 구원의 완성작입니다. 여기에 무언가를 더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걸작을 훼손하는 영적 범죄자입니다. 성경은 성경 자체로 충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의 네 가지 특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계시성입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인간의 어두운 눈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하나님과 구원의 길을 하나님께서 친히 베일을 벗겨 명백히 보여주신 책입니다.
둘째, 영감성입니다. 하나님의 영감 있는 말씀이기에, 영적인 물리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무오성입니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우리 신앙과 삶의 유일한 절대 기준입니다.
넷째, 충분성입니다. 죄인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66권 안에 완벽하게 갖추어진 구원의 완성작입니다.
성경은 장식용 고전이 아닙니다. 설교 서두에 말씀드린 도스토옙스키를 기억하십니까? 영하 수십 도의 차디찬 시베리아 감옥에서 그를 다시 살려낸 것은 성경 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영적인 치료를 받았고, 죄와 절망의 늪에서 건짐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온 세상에 감동을 주는 생명의 작가로 거듭났습니다.
그를 변화시킨 그 말씀이 지금 우리 손에 있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놀라운 책을 곁에 두고도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습니까? 세상의 헛된 조언에 흔들리고,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내 주관적인 감정과 기분에 휘둘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영감이 충만한 성경을 날마다 읽으며 영혼의 물리치료를 받으십시오. 집중해서 읽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쇼츠 영상 보기를 잠시 미루고 성경을 한 장씩만이라도 읽어보십시오. 하루를 시작하면서 한 장, 출근할 때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 장, 버스에 올라타서 한 장,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 장, 집에 돌아올 때도 버스 기다리면서, 버스 안에서 한 장씩, 집에 돌아와서 한 장, 잠자기 전에 한 장, 이렇게 짬짬이 성경을 봐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집중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닌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를 묻고, 그 무오함에 삶의 영점을 맞추십시오. 다른 헛된 표적이나 지혜를 찾아 헤매지 말고, 이미 우리 손에 주어진 성경의 충분성을 신뢰하며 순종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리할 때 본문 말씀처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되는 유익을 얻을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구원의 확신과 생명의 능력이 삶 속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