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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5.11~14일에 박근혜는 평양을 전격방문한다. 초국가자본가들의 행동전위인 네오콘들의 2001년의 9.11 자해테러쇼를 기점으로 전략적 반격이 음모되고 있던 시기이다. 북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박근혜는 국빈 그이상의 대접을 받았다는걸 알 수있다. 평양방문은 유럽코리아재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016.11.5 [단독입수] 최순실, 정윤회 12년간 출입국 기록..최순실-정윤회 비선, 아직 10%도 드러나지 않았다
일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독일로 향했더라도 9월 29일 교민 행사에는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TV조선 보도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대선 출마선언은 9월 30일에 있었으며, 따라간 다른 친박 의원 없이 정·최씨 부부만 출마선언을 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는 증언이다.
윤씨 증언이 사실이라면, 조웅 목사 재판에 제출된 출입국 자료는 다시 거꾸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최씨 부부는 도대체 무엇을 감추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던 것일까. 출옥한 뒤 최근 기자를 만난 조웅 목사는 북한 관련 여부를 의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 직전까지 이사로 참여했던 유럽·코리아재단의 이사장을 맡은 프랑스인 장 자크 그로하 소장 등이 북한의 ‘이중간첩’이라는 주장이다.
트위터에서 ‘abaris@riedberg_k’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 독일 현지 교민이 확인한 독일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정·최씨 부부는 1992년 9월 3일 동업자 관계로 유벨 수입-수출(Jubel Import-Export)이라는 회사(GmbH)를 설립했다. 이 독일 현지 교민에 따르면 이 회사는 슈미텐 옆 바트홈부르크에 설립되는데, 1998년 2월 6일까지 운영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1993년쯤에는 유천호라는 교민도 동업자로 참여하는데, 다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최순실의 독일법인 ‘럭셔리(LUXURY-Handels & Vertriebs)’에 독일 쪽 공동대표로 참여하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2016.11.9 [이슈]최순실-정윤회 비선 아직 10%도 드러나지 않았다
정윤회·최순실씨 회사 얀슨 등기부등본에 기록된 ‘사실’들
정윤회씨와 최순실씨의 회사 ‘주식회사 얀슨’의 등기부등본 상에는 독일에서 만든 회사는 언급되지 않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담고 있다. <주간경향>의 정윤회씨 아버지 정관모씨의 인터뷰에서 정윤회씨의 여동생으로 밝혀진 정윤희씨는 이 회사의 이사로 기록되어 있는데, 등기부등본 상의 생년월일은 1955년 11월 30일로, 정윤회씨와 같다. 이른바 ‘정윤회 개명설’이 나왔던 근거다. 등기부등본 상의 이 회사 설립일은 1991년 6월 14일로, 최순실씨는 두 사람이 결혼 전인 1994년 6월 14일 이사로 중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최초 설립단계인 1991년 시점부터 두 사람은 함께했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 7월 말 열린 재판에 비공개 증인으로 참석한 정씨는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진행했다”고 밝히는데, 얀슨과 비덱 이전 독일에 설립한 회사들의 관계도 앞으로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다.
조웅목사의 박근혜에 대한 이야기는 실체와 기만을 동시에 포함한 정보를 cia가 부여한 것이다. 이 시기의 cia는 이미 신종주사화된 조직이다.
지금 벌어지는 순실이 소동의 쇼무대이기도한 독일에서 이미 91년에 얀센을, 92년에 유벨 회사를 공동설립한다. 직관적으로 해석해보면 영남대, 정수장학회, 육영재단에서 친동생하고 천박한 싸움 소동을 일으키며 널리 소문날 정도로 악랄하게 돈을 긁어 모으는 콩가루 집안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서 부모 암살에 이은 자신들에 대한 신변위험을 감소시키면서 긁어 모은 돈을 독일을 거쳐 이전 세탁하여 비선을 통해 봉쇄로 재정위기에 빠진 북을 지원한 것으로 추론된다. 과연 이런 추론이 맞는지 계속 이야기 해보자.
최태민 아들 "아버지 독살됐다..박근혜, 아버지 만나려고.."
2일 고발뉴스에 따르면 최 씨의 아들 재석 씨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1000억대 부동산과 골드바 등 전재산을 박근혜 씨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했으며, 이를 눈치챈 누군가에 의해 4월 중순쯤 독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최 씨는 “부친이 돌아가시기 6개월 전쯤 사우나로 불러내 ‘아무래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며 그동안 정치자금으로 보관했던 재산을 되돌려줄 것임을 시사했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임순이와 최순실 등 딸들 앞으로 분산된 부동산 등기서류를 나에게 건네줬다”고 회상했다.
최 씨는 “이후 부친과 통화를 지속했으나 94년 4월 중순 이후 전화를 받지 않아 계모 임순이에게 전화를 거니 ‘부친은 외출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면서 “하도 이상해서 두 달 만에 중국에서 귀국해보니까 부친은 이미 매장된 상태였다”고 분통을 떠뜨렸다
박근혜는 남한의 정치판에 끼여든 이후로 정치에 자신의 돈을 정말 안쓰는 구두쇠 전략으로 일관했다. 북미대전쟁의 그 당시 상황과 동시에 살펴야 최태민과 박근혜가 열심히 긁어모은 돈의 행적을 이해할 수 있다. 90년대초반 그 당시는 북은 큰 위기에 봉착해서 자금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94년영변핵위기 이전부터 한반도에는 심각한 핵전쟁위기로 내몰린다. 북은 시간을 벌어야 했고 돈도 부족했다
1991.4.16 蘇(소),北韓(북한)에 核(핵)협력 중단 경고
1991.4.16 蘇,고르비방문 전후 동해(東海)에 미사일 발사
5.2일자 보도, (워싱턴=연합(聯合))박정찬특파원=소련(蘇聯)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日本)방문을 전후해 무력과시를 위해 동해(東海)를 목표로 하는 두차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SLBM) 시험발사를 했다고 워싱턴 타임스가 1일 미국(美國)관리들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미사일 발사 시험은 고르바초프가 일본(日本)을 방문하기 직전과 직후에 이루어 졌으며 일본정부는 미사일 추락 지점이 일본(日本)본토와 너무 가까왔던 점에 대해 항의를 했다고 워싱턴 타임스는 전했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 미사일들이 소련(蘇聯) 서북쪽에 있는 바렌츠海에 있는 잠수함에서 발사돼 수천마일을 비행, 동해(東海)로 날아가는 것을 탐지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방미(訪美)중인 이께다 유키히코 日방위청 장관은 30일 딕 체니 美국방장관과 회담하는 가운데 북한(北韓)의 핵개발계획이 이 지역 안정에 가장 위협이 되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끝)
1991.10.9 북한産 金 수입량 큰 폭으로 증가
3-9월사이 1천5백kg, 연말까지 2천kg전망 (서울=연합(聯合)) 북한産 金의 수입량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9일 관계당국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수입되기 시작한 북한산 금괴(金塊)의 총 수입량은 지난 9월말 현재 1천5백89만달러어치 약 1천5백kg으로 올들어 전체 금괴 수입량 약 1만5천kg의 10%에 이르고 있다
91.4월에 친미로 전환된 소련의 고르바쵸프 정부는 북에게 핵과 미사일 개발중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원자력발전소용 핵연료 공급중지를 경고하고 북의 동해바다에 연달아 2발의 R-29 slbm을 발사하여 탄착시키는 군사적 협박을 진행하면서 고르비는 일본을 방문하며 미일과 협력관계를 과시한다.
91.2월경에 콩고 참사관 고영환이 망명하면서 모스크바 북한 대사관에서 얻어들은 중요한 정보를 털어놓는데 북이 소련 강경파를 지원해 군사쿠데타를 시도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정보를 당시 아버지 부시가 직접 고르바초프에게 전화로 알려준다.
그래서 고르바초프가 일본을 방문하면서 북의 동해앞바다에 잠수함 발사 전략미사일 2발을 탄착시키면서 위협했고 8월초에 소련은 16발의 전략SLBM을 연속해서 발사하면서 위협한다. 이에 대응해 8월 중순에 군부와 KGB는 군사쿠데타를 일으키지만 무력화되고 만다.
그 당시 KGB대령인 푸틴이 군사쿠데타에 반대해 사임한다. 이미 91년부터 전략적으로 심각한 대립과 대북 봉쇄가 진행된다.
그러자 북은 그해 10월말에 휴전선 7km떨어진 평강역 부근에서 중성자탄을 시연하면서 대응한다
1991.10.30 북한 평강역 부근서 대규모 폭발사고
국방부는 2일 "중부전선 군사분계선 북방 5-7㎞ 지점 平康역 부근에서 지난달 30일 오전1시쯤 한 차례의 큰 폭발음과 함께 섬광이 비쳤으며 이것이 우리측 관측병에 의해 관찰됐다"면서 "당시의 폭발음과 섬광의 크기로 보아 통상적인 지뢰 폭발사고와는 다른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폭발사고는 원폭실험등과는 무관한 우발사고로 추정되며 이리역 폭발사고(25t)보다 몇십배 규모가 큰 수백t급의 화약폭발로 보이며 수십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치는 인명피해와 함께 반경 4㎞ 일대 건물등이 피해를 본 엄청난 참사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상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91.11.5 지난달 30일 북한 평강역 대형폭발 100여명 사망[엄기영] - MBC
지난달 30일 새벽 1시쯤에 군산분계선 북쪽 6킬로미터 지점인 북한의 평강역에서 일어난 대형 폭발은 TNT 900톤이 폭발한 사고로써 반경 1킬로미터 지점이 초토화 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부의 한 정보소식통은 각종 정보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 이와 같은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사고로 약 100명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평강역 구내의 화약고가 폭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한차례 큰 폭발음과 섬광. 0.9킬로톤폭발규모를 재래식 폭약으로 시도한 경우는 없고 불가능하다. 미국이 재래식폭약을 단번에 터트렸던 최대량은 300톤 규모 정도이다. 0.9킬로톤의 소형화는 그 당시 핵열강들에게는 2가지 방법이 있다.
대량의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비효율적인 불발탄형식으로 폭발시키는 원시적인 방법인데 불발탄형식은 많은 양의 잔존 방사능이 산재된다. 또하나의 방법은 중성자탄처럼 작은 양의 핵물질을 완변히 기폭시키는것인데 공중에서 폭발시키면 잔존방사능이 거의 남지 않는다. 중성자탄을 기반으로 추가 핵물질, 가령 광산에서 퍼낸 천연우라늄을 덧붙이면 초대형 위력의 전략핵탄두가 되는 기폭핵탄이고, 탄도미사일 요격에 있어서 중성자발산과 충격전자파를 발산하여 파괴하는 탄두의 기본이 된다.
다시 말해서 현대적인 핵전쟁의 기본 단위가 중성자탄이다.
평강역 폭발이 러시아의 위협에 이은 미국의 겁주기식 맛배기 핵공격이었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그 당시 정황과 흐름 속에서 판단해보자. 북의 행위라는 정황을 뒤받침해주는 근거는, 평강역 대폭발 이후인 92.1.7일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를 일방적으로 발표한다. 미국의 겁박이라면 무력겁박을 이어가야 하는데 미국이 중요 군사훈련을 중지해버린다. 좀더 평강역 폭발 전의 뉴스흐름을 살펴보자.
10.22 중국(中國), 김일성에 핵개발 위협 중단 충고
한반도 비핵화 전망 높여 (워싱턴=연합(聯合))박정찬특파원=중국 지도자들은 최근 북경(北京)을 방문한 金日成 북한주석에게 이라크와 같은 핵무기 개발위협을 중단하라고 충고함으로써 한반도 非核化 전망을 높여 주었다고 워싱턴 타임스가 21일 보도했다. 워싱턴 타임스는 이날 동경(東京)발 기사에서 鄧小平, 江澤民, 李鵬등 중국 지도자들은 金에게 핵개발 게임을 중단하고 핵사찰을 수락하며 경제건설에 힘을 집중하라는얘기를 했다고 외교소식통과 분석가들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金은 중국측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한 서방소식통이 말한것으로 이 신문은 전하고 평양(平壤)에서 열릴 남북총리회담에서의 진전여부가 핵개발 우려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을 시사하게 될 것이라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이 북한에 대해 충고한 것은 소련 불발쿠데타 사건후 이번이 두번째라고 말했다.
10.22 (상보)蘇, 美측 G-PALS계획에 긍정 반응
그는 기존의 SDI계획을 일부 수정, 소국들에 의한 제한 核공격으로부터의 방위를 주안점으로 하는 조지 부시 美대통령의 이른바 제한공격 세계방위(G-PALS)계획에 대해 소련(蘇聯)측이 검토할 의향을 보인 것은 커다란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10.24 美의회, 지상 미사일 요격기지 설치 합의
상하 양원은 부시의 GPALS 계획에서 우주방위안은 반대하는 대신 지상발사 요격미사일 기지의 설치에 동의한 것이다.
10.27 對北韓(대북한) 무력사용 촉구
10.30 美.蘇,SDI기술 공유 논의
92.1.7 팀스피리트훈련 중지 선언
평강역 폭발이 미국의 공격이었다면 전술핵기반 침공훈련인 팀스피리트를 중지할 이유가 없다. 그보다는 북이 중성자탄을 접경에서 시연하자 상황악화를 우려해서 미국이 팀스피리트를 중지한 것이다.
중성자탄은 정밀타격, 핵전자전, 미사일요격, 전략핵무기의 근간이 된다. 단순한 원시적인 핵탄은 미국에 전혀 위협이 안된다. 바로 그러한 대립이 격화되고 봉쇄가 악화되는 시기에 정윤회와 최순실이 독일로 가서 무역중계회사를 2개나 설립한다.
91.6.14일에 최순실과 함께 정윤회는 정윤희(여동생?)라는 가명으로 한국에 얀슨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92.9월에 독일에 유벨이라는 회사를 공동명의로 설립한 것이다. 그 당시 북의 금 수출이 급증한다. 긴급자금이 필요했던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남한에서 얀센회사와 독일에서 유벨회사 설립은 해외이전거래를 통해 자금을 빼돌리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92.9월에 정윤회와 최순실은 독일에 유벨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 당시 북은 미러중의 봉쇄로 위기에 몰려 보유한 금을 매도할 정도로 재정위기에 빠진다. 북에 대한 경제봉쇄는 실제적으로는 중국과 소련이 친미화되어 89.12월 중국, 90.1월 소련의 원유공급가격을 시장가격으로 정상화 조치를 통고하면서 시작된다. 북의 탄도미사일 시험과 이란 배치가 급격히 진행됐기 때문이다.
[단독]정윤회 본처 아들·딸 있다.. 靑 '정윤회 문건' 사실로 확인
결혼 후 정씨는 1981년 큰딸을 낳았고 1984년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정씨는 90년대 초반 최씨와 갈라서 첫 번째 결혼 생활을 10여년 만에 끝냈다. 본처와의 이혼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정씨는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1995년 순실씨와 재혼했으며 이듬해 딸 유라(20)씨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씨의 부친(81)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라는 순실씨와 결혼 전에 이미 태어나 있었다"고 말한 바 있어 유라씨의 출생연도는 정확하지 않은 상태다.
순실씨도 정씨와 결혼할 당시 이혼 전력이 있던 상태였고 전 남편 사이에 자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인되진 않았다.
정씨는 어떤 이유인지 친아들과 거의 부자간의 정을 끊고 지내온 것으로 보인다.
정씨 아들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25년간 아버지와 왕래가 없었다"며 "그동안 아버지 연락처도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는 4~5년에 한 번 정도 휴대전화가 아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왔을 뿐"이라고 밝혔다.
정윤회는 자신이 하는 일의 위험을 알고 부인과 애들과 이혼하고 4~5년에 한번 전화할 때도 1분정도만 공중전화로 전화를 한다. 자신 가족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포석과 행동이었다. 최순실과 지난 번에 이혼한 것은 자신의 오랜 임무가 종료되어 위장결혼을 해제하는 의미이다.지금은 옛 가족의 품으로 돌아 갔으리라 짐작된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 가야했기에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