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숲에 가다 2026 4 15
화담숲,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조선시대 선비 서경덕을 기리는 숲으로 짐작하였다. 황진이가 간곡하게 손을 내밀어도 끝까지 뿌리친 유일한 선비가 화담 꽃화花못담潭 서경덕이니 말이다. 아니란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아호 화담 조화로울화和대화담이란다. 회사를 떠나기 전부터 화담숲을 계획했단다.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과 사람을 사랑했단다. 마음을 터놓고 정담을 나누라는 뜻의 이름을 내건 화담숲이었다. 다녀온 사람들 모두 칭송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숲 중의 숲이 아니겠는가.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에 위치한다니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다.
하루의 방문객을 제한한단다. 예매가 필수란다. 봄이 한창인 4월과 5월에는 예매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니 나중에 한가할 때 가보기로 미뤄 두었다. 4월 초에 딸아이가 전화를 했다. 화담숲 가요 엄마 도율과 하율 데리고 봄나들이 가요. 예매하기 힘들다는데 예매는 했어? 당근에 들어가면 암표를 파는 게 있는데 마침 여러 장 파는 사람이 있더라구. 그랬다. 미리 표를 사두었다가 돈을 조금 더 얹어서 파는 암표가 여기에서도 성행 중이란다. 야구장이나 유명한 가수의 콘서트장만 그런 줄 알고 있었다. 숲을 미끼로 돈을 벌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삶의 까칠한 실마리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 든다. 돈 벌이가 없어 살아가는 일이 막막한 사람에게는 그나마 다행한 일이기는 하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화담숲을 자세히 볼 수 있겠으나 일단 나는 상상에 보았다. 나무들은 울창하고 길가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진달래와 벚나무와 소나무등 군락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울창한 숲을 상상하였다. 아직 4월 초입이라서 물론 나무들은 새싹을 막 틔우는 중일 것이다. 울창한 숲은 아닐 것이나 나는 겨울나무를 좋아한다. 겨울을 견뎌낸 나무의 굵은 둥치도 감동이지만 수없이 많은 잔가지들을 하늘 높이 펼쳐들고 있는 모습 또한 감동이다. 온 힘을 기울여 살아가는 생명체의 위대함을 엿 본 느낌이기 때문이다.
화담숲 입구에서 동물모형 정원을 만났다. 쉼터 의자들이 놓여있고 둘레에는 작고 앙증맞은 꽃들이 정갈하게 심어져 있었다. 바닥은 모래로 되어있어 어린아이들이 놀기 알맞은 장소였다. 사자와 낙타와 코뿔소가 실물 크기로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손자를 동물 등에 태우고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사진을 찍었다. 동물원에서도 여러 번 만났고 그림책에서 보았던 동물들인지라 손자는 손뼉을 치며 좋아하였다. 사자와 낙타와 코뿔소를 어눌한 말투로 불러댔다. 손자의 표정이 곧 우리의 표정이다. 손자가 웃는만큼 우리도 웃었다. 레일을 달리는 모노레일이 있어 어린이나 노약자는 쉽게 산에 오를 수 있었지만 우리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변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예상대로 여기저기 심어놓은 작은 꽃들, 팬지와 금송화뿐만 아니라 특히 수선화가 지천이었다. 나무들이 울창한 야트막한 산을 넘고 넘고 산길을 돌고 돌아 돌아오는 조금은 멀다 싶은 길일 것이라 상상하였다. 아니었다. 산 한쪽 면에 돌고 돌아 올라가기 편한 길을 만들어놓았다. 평지를 걸어가는 느낌인데 알게 모르게 구불구불 올라가는 오르막길로 산 정상 부근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유모차가 올라가기 편한 정도이니, 나이 드신 분들도 어렵지 않게 따라 다닐만하였다.
어슬렁어슬렁 걷다보니 처음으로 진달래 기슭을 만났다. 이제 막 싹눈을 부풀리고 있는 나무들은 그늘을 만들지 않아 햇살이 숲 구석구석까지 가득했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양편으로 진분홍빛 진달래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굵은 소나무와 어우러진 진달래는 한폭의 동양화였다. 사람들은 떠날 줄을 몰랐다. 사진을 찍거나 앉아서 쉬거나 모두 평화롭고 즐거운 얼굴이었다. 건물과 차들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에 비하면 그곳은 유토피아였다. 손녀딸 하율을 진달래꽃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분홍빛 아가씨가 방긋!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진실이다. 다음번에는 진달래꽃길을 이 할미 손을 잡고 걸어가자꾸나. 하율아! 네 오빠처럼 말이다.
돌고 돌아 지루하고 힘들다 싶을 때쯤 수선화 군락지가 나타났다. 노랗거나 주황빛이거나 꽃잎이 홑잎이거나 겹잎이거나 닮은 듯 다른 수선화가 언덕배기 산자락에 빼곡하게 피어 있었다.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에 서너 차례 말씀하셨다. 천상이라는 곳에 올라갔구나. 조금만 더 있다가 오라는구나 내 방에 꽃무늬 도배지로 도배를 하고 있는거야. 그 천상을 생각나게 하였다. 벚꽃이 중간 중간에 한창인지라 노랑빛과 흰빛의 조화가 아스라했다.
돌고 돌아 심심하다 싶을 때쯤에 늘씬한 자작나무가 즐비하게 마중 나왔다. 아직은 키만 훌쩍 자라 자태를 뽐낼 단계는 아니지만, 자작나무 사이사이에도 수선화가 한창이었다. 자작나무의 흰빛 길쭉한 몸뚱이는 얼마나 적막하고 경건한가. 기도 중인 수도승처럼 말을 버린 듯 하였다. 그 사이사이에 돌탑과 바위들은 또 얼마나 근엄한가. 노랑의 수선화들이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유치원 아이들처럼 해맑은 얼굴을 들어올리고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듯 하였다.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와 졸졸졸 흘러가는 도랑물 소리는 자연의 반주였던가.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소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하나하나에서 단아함과 품위가 느껴졌다. 그만큼 사람의 섬세한 손길이 여러 차례 지나갔음이었다. 소나무는 헐거워 보일 만큼 가지나 솔잎을 잘라내지 않으면 산골 더벅머리 소년 같은 덥수룩한 모습이 되고 만다. 볼품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곳 소나무들은 우람하거나 기우뚱하거나 허리를 잔뜩 구부렸거나 호수를 바라보거나 제 나름대로 형상을 지녔다. 사람처럼 말이다. 잘 손질된 소나무를 보면 고결하고 품격이 높은 선비를 생각나게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가지를 뻗어 고결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형국이다. 소나무 길을 걷는 동안 마음이 고즈녁해지고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말소리가 조용해지는 것은 왜였을까? 꽃들 사이에서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고 발걸음이 경쾌하였다.
아래쪽으로 거의 다 내려오니, 엷은 빛깔의 봄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맑고 너른 연못에는 분수가 뿜어져 나왔고 주변에는 수풀들과 꽃들과 바위가 어우러져 완벽한 수채화 풍경이었다. 조금 더 뒤쪽으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뒤쪽으로는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연못을 끼고 개나리와 진달래와 소나무와 기와집이 어우러져 있어 고궁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딸과 사위와 손자와 손녀와 함께 인증 샷 찰칵! 행복 찰칵!
우리는 아랫녘에 주차를 했고 화담숲 입구까지 경사진 길을 20여분 올라가야 했다, 화담숲길을 따라 1시간 넘게 올라갔고 다시 30여분을 내려왔으니 2시간을 걸은 셈이었다. 만보기에 숫자가 만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화담숲, 다른 계절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숲이 우거진 6월 아니면 단풍이 곱게 든 시월에는 어떤 모습일까?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딸과 사위와 손자와 손녀와 함께였던 그날 그 시간.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이 범벅인 사탕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린 것 같은 그날 그 시간과 같은 날이 다시 오기를 기다려봐야지. 소나무 군락지에서 만난 우뚝한 소나무처럼 나를 가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