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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느긋하게 걸어보는 이즈하라 골목길
가브리엘 추천 0 조회 148 08.06.24 20: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마도의 중심 도시 이즈하라.

우리 나라의 작은 면 소재지 도시 같은 이즈하라는 북적이는 도시만 보던 눈에는 한가롭기 그지 없이 보인다.

너무나 작은 도시이고 일본 본토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이라

우리 나라에선 벽촌 식당에 가도 다 받는 신용 카드가 대마도 전체에선 통용도 되지 않는다.

여행자 수표,한화도 받지 않는 건 물론 여행자를 위한 편의 시설도 별로 없다.

경상도 말로 코딱까리만 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이즈하라 시내를 느긋하게 걸어서 산책해 본다.

 

 

이즈하라 카페리 터미널 건너 편 언덕에서 내려다 본 이즈하라 항구의 모습이다.

 

 

파란 지붕의 창고 바로 옆 회색 지붕의 쪼끄만 건물이 카페리 터미널이다.

매일 한번 부산서 온 카페리가 육백명 정도의 한국인 관광객을 쏟아내 놓는 것 외에는 찾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항구.

바로 앞에 오징어 잡이배와 소형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평화로운 모습을 건너편에서 찍었다.

 

 

이즈하라 다운 타운의 모습. 오래 된 일본 전통 가옥과 현대적인 건물이 뒤섞여 있는데

이즈하라를 벗어난 농어촌의 주택들은 거의 대부분 일본식 전통 가옥인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카페리 터미널에서 5분을 못 걸어가니 다운 타운이 나타났다.

 

 

가운데 개천이 흐르는 메인 스트리트의 이쪽 길과 저쪽 길을 다리가 연결하고 있다.

 

 

 

하천의 폭은 좁고 흐르는 물의 수량도 많지 않다.

 

 

 

이즈하라 시내를 관통하는 개천의 난간과 벽에 는 조선 통신사 행렬를 묘사한 그림이 걸려 있다.

한일 교류의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자는 뜻도 있겠지만 다분히 최근에 증가한 한국 관광객들을 위한 마켓팅 전략으로 보이기도 한다.

 

 

조선통신사의 행렬도가 난간 사이 노란 플라스틱판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조선 통신사는 일본의 막부 장군 앞으로 보낸 조선 국왕의 외교 사절로 1811년 까지 12번 파견되었다.

당시에 조선 통신사의 규모는 300~500명 정도였고 이들을 구경하는 인파의 구불구불한 줄을 누에에다 비교했다고 한다.

 

 

대마도번의 조선 통신사 방문 전후의 3년간의 행사 준비 및 행사 비용이 약 100만냥,

현 시가로 5580억원이었다고 하니 대마도번의 모든 관심과 재정이 모두 조신통신사에게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조선 통신사의 가마를 멘 일본인들을 보면 아랫도리는 거의 벗고 있는데

통신사와 함께 전해진 조선의 앞서가는 문화는 이들에게는 가히 충격이었다고...

 

 

도시 한 가운데를 흐르는 개천이지만 너무나 깨끗하고 작은 고기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모습이 다 보일 정도이다.

 

 

난간을 감고 자라는 덩쿨들도 세심한 손길을 거친 듯 하다.

 

 

높은 건물은 거의 없고 이층 전통 가옥의 전면만 개조시킨 상가도 많이 눈에 뜨인다.

 

 

우리 나라 70년대 이발관을 이즈하라에서 발견하다.

하도 어설픈 외관 때문에 처음엔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인가 했는데

삼색의 등이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어 문 앞으로 다가가 보니

이발사가 어떤 아저씨의 머리를 깎고 있었다. 

 

 

초등학교가 22개, 중학교가 16개,고등학교가 3개가 있으나 대학은 하나도 없는 대마도.

대학도 없고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도 없어서 젊은 층들은 다 본토로 빠져 나가 버리고

노령화가 계속 되고 있는 대마도.

그래서 그런지 여행 동안 젊은이나 아이들은 참 보기 힘들었다.

 

 

영업을 하고 있는지 폐업한건지 궁금할 정도로 허름한 <양장점>

우리 나라에서 실종된 <양장점>이란 이름이 여기엔 아직도 버젓이 걸려 있다.

 

 

다리 건너 편의 '야끼또리(焼鳥,やきとり)라는 이름의 술집(이자까야,居酒屋)

 

 

 

저녁 무렵이 되니 더 많은 메뉴의 플래카드들을 내걸었다. 헤아려 보니 무려 열 개..

메뉴는 야키도리(닭 구이), 기무치 나베(냄비 김치),활어요리, 나베모노요리(냄비에 끓인 요리),짱뽕도......

 

 

와인과 담배를 판다고 적혀 있는 상점.

블라인드는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고 조명도 없어서 장사는 하는지 의심되는 상점.

그 옆의 자판기가 더 삐까뻔쩍하다.

 

 

골목 안의 담배 자판기.

일본인들의 국민성 때문인지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사는 상점보다는 어디가든 자판기가 대세였다.

 

상대마의 히타카츠항에서 숙박했을 때 저녁 8시가 넘으니

온 마을 전체가 적막강산.....

길에도 집들에도 사람의 기척도.... 불빛도 없었는데

길 마다 자판기의 불빛만이 눈이 아프도록 빛이 나고 있었다.

 

 

목조 전통 가옥의 일층은 화장품 가게.

시세이도의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이즈하라에서 보기 드물게 매장 안이 환했던 가게.

 

  

골목을 걷다가 보면 나타나는 대마도주 가신인 무사들이 살았다는 부케야시키(武家屋)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지 담의 일부분을 차고로 개조했다. 

무사들의 집은 조선통신사들이 지나가며 집 안을 볼 수 없도록 담장을 높게 해놓았다.

 

 

 

신사의 나라인 일본.  대마도도 예외는 아니다.

규모가 크고 유명한 신사 뿐 아니라 골목 골목마다 크고 작은 신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일본 전체에 신사가 10만개 쯤 있다고 한다.

 

 

신사 앞에는 어김없이 '새가 쉬어가는 곳'이란 뜻의 도리이(鳥居)가 하늘 天자 모양으로 서 있는데 

신사로 오르는 빨간 난간과 빨간 도리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을 발견.

 

  

어느 집 뒷마당에 세워 놓은 쬐끄만 신사.

사람 키 정도 높이의 사다리 위에 코딱까리만한 신사가 차려져 있었다. 

 

 

어느 집 에어컨 아래에 있던 코딱까리만한 사찰.

보살상의 크기는 뒤의 집 안의 퐁퐁 병(?)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지장 보살에다가 꼭 앞치마 같은 옷을 입혀 놓은 것이 일본 사찰의 특징인데

골목 골목마다 무지 작은 사이즈의 신사와 사찰......과연 신들의 나라 일본이다.

 

 

한국인 관광객을 의식한 한국 요리점. 들어가 보진 않았다. 

 

 

이즈하라 우체국.

 

 

한자와 한글로 이즈하라 우체국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즈하라 우체국 맞은 편에 있던 대형 쇼핑 센터.

일본도 작은 상점들은 쇠퇴 일로를 걷고 이렇게 소비자들이 대형 소핑몰로 몰리는 추세.

 

 

이즈하라에서 가장 넓었던 도로. 다니는 차들이 거의 없는데도 신호 하나는 칼 같이 지킨다. 

 

 

지붕 날아갈까봐 타이어를 지붕에다 얹어 놓았다.

타이어 무게 때문에 지붕 무너질라....

 

 

집집마다 조금만 공간이 있으면 이렇게 열심히 화분을 키운다.

 

 

거의 무너지기 직전인 집들도 있고....

 

 

우체통은 꼭 빨간 색이라야 한다는 선입견은 일본에서 온건가....?

 

 

금석성 내의 아쿠라문 앞의 이쁜 맨홀 뚜껑이다.

 

 

전깃줄이 무질서하게 얼기설기한 것은 우리 나라나 비슷하다.

 

 

구룡포에서 본 적산 가옥과 꼬옥 같은 집을 발견했다.

 

 

얌전히 놓져진 뒷골목의 네 발 자전거.

아이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학원도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다 게임 중....?

 

 

비어 있는 마을같은 느낌의 뒷골목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만이...

우리 일행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골목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서 숨을 죽이고 걸어야 했다. 

 

 

치우지 않고 사는 일본인들도 있구나....간혹 너저분한 것이 인간적이서 더 반갑다.

 

 

그 때 어디선가 자전거를 타고 휙...나타난 남학생.

자전거를 세우고 헬멧을 벗더니 가지고 온 낚싯대를 개천에 드리운다.

 

 

일행 중 한 명이 일본어로 중학생이냐고 물으니 이 아이는 영어로 중학교 2학년이라고 말하곤 다시 낚싯대에 시선을 집중한다.

영어 발음도 좋은 걸 보니 일본인이라고 다 영어 못 하는건 아닌가 보다. 

 

 

집들도 가구들도 바깥에 나앉은 화분들도 다 오래 되었지만 청소는 어디든 깨끗하게 되어 있었고

길에 쓰여 있는 글씨(일단멈춤인가 보다)가 참 인상적이다.

 

 

보도와 차도가 분리되어 있는 길도 있다.

 

 

뒷골목 주택가의 빨래방. 어딜 가도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유령의 골목같다.

 

 

 

술집(이자까야,居酒屋)이 양쪽에 늘어선 거리. 손님은 거의 다 한국인 관광객들이라고....

 

 

컷트나 퍼머를 제대로 할까 싶은 의문이 드는 팔판미용원(우리 나라 청와대 앞 동네도 팔판동인데...)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보고 싶었는데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정기휴일이라는 팻말이 내걸려 있고 문은 닫겨 있었다.

 

 

무슨 메뉴인가 하고 읽어보았더니 또 다른 미용실의 가격표이다.

퍼머,염색,스트레이트 다 오천엔인데 커트는 사천엔.... 그러니까 거의 사만원 정도이다.

흐미.....왠 커트 값이 그리 비싼지.

우리 나라 아줌마의 헤어스타일은 짧은 퍼머 일색인데 비해 일본 아줌마의 헤어스타일은 대부분 염색에다 샤기컷 일색.

퍼머를 잘 안하는게 일본 아줌마들의 스타일이라 우리 나라 아줌마들의 뽀글한 헤어스타일은 일본에서 단번에 표시가 난다.

커트 가격이 싼 우리 나라는 퍼머하면 커트는 당근 해주는데

이렇게 커트 가격이 비싼 것으로 보아 퍼머할 때 커트값을 따로 받을거라는 추론이 나오는데 맞는지.....궁금하다.

그리고 미용실의 정기 휴일은 화요일.

우리 나라 목욕탕과 이,미용실의 정기 휴일이 예전부터 화요일인 것은 일본의 영향일까.....궁금..

 

 

선거철도 아닌데 정치인들의 벽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물어보니 정치인들의 개인 홍보 포스터라고....

 

 

동네 담뱃가게. 20세 이하의 미성년자들에게는 팔지 않는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친화은행 건물.

미쳐 사진은 못 찍었지만 대마도 전체에는 '쥬하치(十八)은행'이 제일 많았다.

버스가 빨리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발견하고도 사진으로는 못 남겼는데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쥬하치(十八)은행'의 간판을 보고 매우 좋아했다는 뒷 얘기....

 

 

무진장 튼튼한 축대. 지진이 나도 안 무너질 것 같다.

 

 

대마도의 시목인 이팝나무(히스토바타코).

이팝나무는 일본 본토에는 없고 대마도에만 있는 나무이며 와니우라 지역에 약 3000그루 자생하고 있다.

대마도에서 이팝나무 두 그루를 천황에게 보내어 왕궁에 심었더니 천황이 꽃을 보고 시를 지어 보냈다고 하며

해방 이후 이팝나무가 우리 나라에서 들어온 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밥(쌀밥)이라는 말이 격음모화로 변해 이팝나무라고 부르는데

먼데서 보면 꽃이 하얗케 송이지어 핀 모양이 마치 쌀밥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여기서 이밥이란 조선의 왕족(이씨)들이 먹던 밥이란 뜻.....

 

 

 

반쇼인 근처 가는 길에 있던  전통 가옥.

 

 

이즈하라의 다운타운에 위치한 호텔에 들어가니 호텔도.. 로비도.. 복도도.. 방도.. 다 코딱까리만 하다.

방 안에서 두 사람이 엇갈리려면 한 사람은 침대에 올라가거나 아니면 문 앞 빈 공간에 서 있어야 한다.

유럽의 호텔들이 좁기로 유명하다지만 대마도의 호텔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다.

 

 

약간 떨어져 있는 왼쪽 침대를 밀어 오른쪽 침대와 빈틈 없이 붙이고서야 겨우 창가의 침대에 걸터 앉을 수 있었다.

시트는 새 것으로 깨끗했는데 오리털 이불은 뻘건 얼룩이.....기분이 찝찝해서 덮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창가 쬐끄만 TV 옆에는 요상한 전단지들이.....

 

 

성인 채널이라면서 전단지에 찍힌 사진의 스쿨걸은 또 웬일인고.....

하여튼 재미있으면서 또 한편 실소가 머금어지는 대마도의 여정은 점점 흥미로움이 더해간다.

 

 

 Tokunaga Hideaki(德永英明) - LOVE LOV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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