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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곰의 공포와 블랙모기와의 전쟁
나는 산에 가기 전날은 잠을 설친다. 이번도 예외가 아니었다.
멀리 카나다 까지 와서 첫 등반을 하게 되어 더욱 그렇다. 얼마나 기다렸던
황금 같은 은퇴휴가인가? 생각만 해도 흥분되어 가슴이 뛴다.
산행 준비물을 세밀히 점검하고 막내딸에게도 무엇 무엇을 챙기라고 했다.
새벽 7시에 눈을 떴지만 너무 일러서 빈둥거리다가 8시경에 일어나
아침을 간단히 들고 김밥을 싸서 9시 반에 밴 승용차(렌트카)를 몰았다.
이곳 썬더베이에 오자마자 동생이 휴가를 내서 2박3일을 캠핑을 갔던 곳이
바로 '슬리핑 자이언트 주립공원'이였다---세계에서 가장 큰 '슈피어리어'호수의 최북단에 위치한 '씨블리 반도'의 끝에 있다. 이 호수는 한반도 전체크기보다 더 넓다고 한다.
호수가 아니라 해양이라고 해야 맞다. 끝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길게 일자(一字)로 누운 인디언 '잠자는 거인'을 만나러 다시 가는 것이다. '워드롭 로드'와 '발삼 로드'를 돌아 카나다의 유일한 대륙횡단 하이웨이 17번 도로를 질주한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뻥 뚫린 고속도로다.
집에서 1시간가량 동쪽으로 달려 587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이제부터 긴 반도의 시작인 것이다. 차로 30분 이상을 들어간다. 지난 번 캠핑 때 지나면서 많은 야생동물을 만나, 우리는 오늘도 뭔가가 나타날거라고 잔뜩 기대를 걸었다. 대륙횡단 철도 밑을 통과 '패스 호수'를 지나 아스팔트길을 달리는데 야생사슴 한 마리가 떡 버티고 서서 우리를 쳐다본다. 작고 예쁘게 생긴 어린 사슴이었다.
나는 사슴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서 구경하다가 서서히 출발했다.
곰과의 조우를 생각하며 잔뜩 긴장하다
10시 40분 드디어 캠프그라운드 표지판 입구에 도착했다.
안내 지도를 펴들고 오늘 등반코스를 '쏘여~ 트레일'코스로 잡았다. 가장 가까운 거리로
'잠자는 거인'의 인디언 머리 부분에 해당된다. 총 길이가 12km가 되는 '잠자는 거인'의 신장이다.
그 중에 가장 높은 곳인 머리 부분에 있는 전망대(lookout)를 가는 것이다.
큰 주차장이 있고 구석에 작은 안내판이 보인다. 몇몇 사람들이 먼저 와서 안내지도를 본 후 출발한다. 나는 대충 약도를 그려서 무인매표소를 통과했다.
만일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는데, 앞서 가는 사람들이 보여 일단 안심은 했지만
우리와 같은 코스로 가는지 어떤지 모른다. 11시경 오솔길로 접어들어 너무 늦은 출발시간에 쫒기듯이 달려갔다. 6.7km 트레킹 거리로 나와있어 쉽게 생각은 되었지만 초행이라서 하산이 늦어지면 산 속에서 흑곰이나 늑대, 산양, 표범, 사자, 뱀 등 어떤 동물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참을 직진해서 내려가는데, 우측으로 샛길이 보였다. 언뜻 보니 아주 좁은 길이라서 그냥 지나쳤다.
가다가 숲 속에서 불쑥 야생동물이 튀어나오면 어쩌나---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걷는다.
다른 생각은 못하고 오직 곰 생각에 깊이 빠진다. 흑곰은 성질이 순하기 때문에 위협을 주거나, 새끼를 2,3마리 거느리지 않았으면 덤벼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누가 그걸 장담하랴!
머리끝에서부터 땀이 솟으며 줄줄 땀방울이 얼굴로 내려온다. 무더운 6월의 한낮시간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한참을 가다보니, 길이 직선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난 길이 안나왔다. 아차! 싶다. 아까 지나친 소로길이 바로 '쏘여~ 트레일'로 가는 길이었다.
호수에 빠진 바다사자의 포효를 우연히 만나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1시간 가량 시간을 낭비한 우리는 큰 낭패다 싶었다.
발길을 돌려 힘없이 돌아오다가
" 그냥 가지 말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곳 부근에 있는 "씨 라이언(sealion)" 절벽을 보고 가자!"고 제의했다. 모두 찬성이다.
30여분을 빽하여 우측으로 표지판 안내를 따라 너덜바위를 10여분 오르니 탄성을 자아내는 경치가 나타났다.
' 아---멋지다. '
아유--무서워!'
길게 난 콧구멍과 붉은 몸통바위 형상이 마치 바다 사자를 닮은 것이다. 호숫가에 불쑥 튀어나온 '바다 사자'의 머리 모습을 멀리서 구경하고 돌아섰다.
이 바위를 구경하는 지점에 적색 글씨로 '이곳은 아주 위험하니 절대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시퍼런 호숫물을 내려다보니 천길 벼랑인데도 아무런 안전시설이나 방책이 없다.
" 카나다는 이상한 나라야. 이런 곳에 위험표지판만 덜렁 하나 세우다니!!"
" 맞아요... 돈이 없는 나라도 아니고..."
이정표도 아주 작게, 자연을 너무 사랑하는 국민
이곳에서 오늘의 등반목표인 '잠자는 거인'의 머리가 멀리 보인다.
우리는 아직도 그 커다란 거인의 발끝 부근에 있다. 벌써 낮 12시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출발지점도 못 벗어난 우리는 발길을 재촉했다.
20분만에 조그만 각목을 박고 적색 바탕에 흰 글씨의 이정표지판이 나왔다.
" 나무 부자 나라에서 이건 또 무슨 일인가?"
" 좀 크게 간판을 만들어 세우면 안 되는가? "
" 자연을 자식처럼 사랑한다더니...참---못 말리는 국민이군!"
이 안내 표지판을 지나치는 바람에 왕복 2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젠 쉬지도 않고 달려 갔다와야 오후 6시경에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좁은 소로로 들어서면서 햇볕은 따갑게 내리쬐고, 침엽수림이 하늘 높이 솟아 사방이 꽉 막힌 길이 이어진다. 금방 숲속에서 뭔가가 나올 듯---무시무시하다.
나는 긴 나무 장대를 구해서 곰의 출현에 대비한다.
숲 속에서 까마귀(?)가 후드득 하고 나른다. 섬찍 놀라면서 경계를 한다.
짐승은 안보이고 취나물의 천국이 나타나다
줄곧 장대를 흔들면서, 지팡이로 쓰기도 하며 쉬지도 않고 숲속 길을 걷는다.
아--지루하다. 대 평원에 난 소로길이라 변화가 없다. 바람도 안 통하고 미칠 것 같다.
집에서 가져온 물병 2개가 벌써 바닥이 낫다. 이렇게 더울 줄이야!!
서울의 8월 무더위와 맞먹는 것 같다. 휴---
한시간 동안 오면서 야생동물이라곤 이따금씩 보이는 독수리, 까마귀, 청설모와 꼬리다람쥐, 이름 모를 나비들 뿐 큰 짐승은 없다.
바짝 마른 대지의 열기로 허덕허덕대는데 처음으로 만난 계곡 물소리가 반갑다. 여기서 잠시 쉬며 시원하게 세수하고 물통에 물을 받아 꿀꺽 마셨다.
" 아-- 시원하다..."
" 그런 샘물을 절대 먹지 마요!"
" 괜찮아. 산삼 썩은 물이야.."
" 그런 데 뱀의 알이 섞여 있데요!!"
다시 출발,10여분 후 처음으로 두 개의 트레일이 만나는 삼거리가 나왔다.
'써우빌 호수 트레일'에서 들어오는 길이다. 3.7km, 3km, 등 이정표를 자세히 보고
직진했다. 확실하게 이 길이 맞다. 여기서부터는 약간 경사진 고갯길이 나타난다.
아직도 먼 여정이 남아 있다. 정상까지는 적어도 2시간은 더 가야 한다.
"아휴--다리 아파... 좀 쉬었다 가요!!"
"이제 진짜로 본격 등산이 시작되는 거야!!"
자꾸만 멀리 뒤쳐지는 아내와 딸을 기다려서 행색을 보니
피곤한 기색이 보이고, 얼굴이 허옇게 사색이 되어 허덕였다.
주변을 보니 취나물이 자라서 잎이 손바닥 크기만하게 자란다. 이곳에는 취나물이 크기도 하다. 일조량이 많아서 인지 나무도 크고 굵다. 모든 게 크다.
나물 밭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내가 자꾸만 채취하려고 지체하여
내려가다가 시간 나면 실컷 뜯어가자고 타이른다.
다시 길을 잃고 헤매기 30여분--오지에 들다.
삼거리에서 언덕을 3개를 넘어 1시간을 들어가니 큰 자작나무가 폭설과 폭우에 쓰러져 있다. 이 부근에는 도로에 물이 흐르고 습한 지대가 많이 나타났다.
뿌리는 넓고 짧다. 덩치는 힘겨울 정도도 크다. 여기 저기에 쓰러진 고사목들이 즐비하다. 북위 49도 이상 카나다 숲의 일반적인 형태--- 한 겨울만 지나면 폭설의 무게를 못 견디고 넘어지는 것이다.
오후 1시---배가 고파온다. 물만 먹고 무려 4시간을 걸어온 우리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호수 '쏘여~베이"에 도착했다. 잔잔한 호숫가에 돌밭이 보이고, 벤치까지 설치해 놓았다.
눈이 쏙 들어간 우리는 자갈밭에 자리를 펴고 가져온 김밥을 꺼내 맛나게 먹었다.
콜라와 이슬주도 곁들이니, 이제는 잠이 솔솔 퍼붓는다. 그러나 가야 한다. 이런 산 속에서 늦으면 큰일이다.(물론 야간 산행을 대비해 랜턴을 준비했지만....)
여기서 두 번째 조난이 또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이정표에 거리 700m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아주 좁은 길( 금년 들어서서 아무도 온 등반객이 없는 듯)로 들어가 한참을 찾다가
다른 길이 안 보여서 직진 한 것이 또 길을 잃은 것이다. 이런 곳은 조난사고가 많겠다 싶다. 분명히 좌측으로 꺾어져야 정상 전망대로 가는 길인데,,,
이상하다!! 직감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다시 30분을 빽하여 겨우 이정표를 발견하였다.
등산 길이 보이지 않는 미로로 들어선다. 오지 탐험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길 표시도 안보이고, 발자국도 없고, 쓰러져 뒹구는 나무와 돌,바위가 전부다.
이리저리 길을 찾아 오르니 갑자기 급경사지대가 나타났다. 정상이 어렴풋이 올려다 보인다. 참나무와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고목에는 썩은 나무에 피는 영지, 운지 버섯이 많이 달렸다. 하기는 이런 오지에 누가 와서 이런 걸 채취하겠는가?? 자연 그대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 카나다 사람들에겐 아무 필요가 없는 버섯이다.
시꺼먼 블랙모기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다.
그냥 지나쳐 급하게 올려친다. 중간 쯤 오르니 아까 밥 먹은 호수가 보이고 산등성이가 가까워진다. 이정표에는 2km인데 왜 그리도 먼지---가도 가도 우회하는 길이 멀기만 하다.
그런데 새로운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가 오후 되니까 우리를 괴롭힌다.
. 이제는 그놈의 '블랙 후라이'라는 카나디언 모기가 득실거린다. 소리도 내지 않고 달려든다. 습지 가까이 갈수록 더 심하다.
모기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시커먼 모기는 한참 물은 후에야 겨우 따갑다.
그제서야 알고 때리면 피가 툭 터진다. 흉측하고 징그럽다.....
우리는 나뭇잎을 따서 앞에서 부채 부치듯이 흔들면서 길을 개척해야 했다.
시간이 자연히 점점 지체되어 걱정이다.
오늘 한국의 산악인에게 '잠자는 거인'은 그 모습을 쉽게 내밀지 않는 듯하다.
오후 3시 40분에 드디어 정상 정복---야호!!!!
앞이 훤히 트인 '슈피어리어 호수'의 끝없는 수평선---야호!!
고생 끝에 찾아온 즐거움(고진감래)일까???
'슬리핑 자이언트' 마운틴 머리에 올라온 우리 일행, 아!장하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대, 협곡 아래로 절벽이 발 밑에 보인다.
이 곳 지형은 메사(mesa)로 이루어져 암벽고원에 솟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단층이다.
나나보조(nanabozo)인디언 부족들의 전설이 담긴 곳---마지막 순간까지 항전을 벌였던 금광산 보물이 숨겨진 곳이란다.
널찍한 바위에 앉아 간단히 콜라와 김밥을 먹고 기념 사진을 여러 방향에서 박고 돌아섰다. 고산지대여서 나무들이 옆으로 누워서 자란다. 한라산 정상과 비슷하다.
4시 정각에 하산시작,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어떻게 급경사길을 악바리처럼 올라 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앞으로 넘어지면 바로 황천행이다. 한 발 한 발 발길을 딛고 미끄러지고 구르면서 40분만에 '쏘오빌 호수'에 도착했다. 이제야--살았다싶다.
매표소 주차장 원위치로 복귀하는 데 무려 3시간이 걸렸다. 오면서 손바닥만한 취나물도 뜯고 쉬엄쉬엄 하산하다보니 저녁 7시경에야 도착했다.
황혼이 지는 시각,,,모기가 더 극성을 부려 팔뚝이 온통 울퉁불퉁하게 부어 올랐다. 모기와의 한바탕 전쟁을 치른 '잠자는 거인' 인디언과의 싸움은 ---- 오지 탐험 자연 다큐멘터리--- 한편의 드라마같은 대탐험이었다.
저녁 8시반경 집에 도착하니, 모두들 걱정이 태산같아 여기저기 전화도 했단다.
두 번 씩이나 길을 잃고 헤맨 썬더베이의 값진 선물(?)은 영원히 잊지 못할 해외 원정산행으로 남을 것 같다.
카나다에서도 작은 시골에 지나지 않는 인구 117,000 명의 소도시에 다소곳이 누워서 잠만 자는 '잠자는 인디언 추장'---그 머리 위를 올라간 사람은 아직도 카나다 사람도 몇사람 안된다고 한다.
2003/7/16 김양래(011-9735-2029)일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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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다 ---잠자는 거인 부부 등반기---1편 이슬비
2003 년 8 월 1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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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헤헤..저도 봤어요. Hennah
2003 년 8 월 1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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