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사계
프롤로그
연구원이 부산 영도로 이전한지 만2년이 되었다. 당초 서울 사람들은 부산으로의 이전이 마치 귀양이라도 가는 듯 두려워했지만 이제 모두들 적응이 된 듯하다. 필자도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부산 출신이지만 영도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기억밖에 없어 초기에는 다소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공공연히 영도사람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비록 2년의 짧은 기간이지만 영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만큼 그 동안 느낀 영도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 유화의 화려하고 중후한 맛은 아니라해도 가벼운 터치의 수채화 정도로는 그리고 싶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욕심이다. 영도생활이 2년밖에 되지 않는 주제에 영도를 그리겠다고하는 오만함이 영도 터주대감인 영도할미의 노여움이나 사지 않았으면 좋겠다.
봄
우리가 이전해 온 것이 3월의 초봄이었다. 부산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3월의 갯바람은 무척이나 을씨년스럽다. 기온이 높다 해도 봄에 불어오는 마파람은 옷 틈 구석구석을 헤치고 들어와 체감온도를 낮추게된다. 이것을 모르는 내륙지방 사람들은 봄추위에 어쩔줄 몰라한다. 우리가 있는 사무실은 영도 바깥쪽을 매립한 지역이기 때문에 탁 트인 외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매립지는 은폐할 구릉지 하나 없는 곳이다.
하지만 비록 견디기 힘든 마파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온다하더라도 봄은 봄. 더구나 남녘의 봄이 아닌가? 양지바른 곳에서는 2월부터 쑥이나 냉이를 키워낼 정도로 실제 온도는 매우 따뜻하다. 그래서 정월 대보름만 지나면 곳곳에서 매화 꽃망울 터진 것을 볼 수 있다. 원래 주거지로 형성된 산복도로 옆의 된비알 가정집 마당에 핀 홍매화, 청매화를 흔히 볼 수 있다. 이 무렵이면 군데군데 공터에는 겨우내 뜯어먹다 남은 유채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다. 제주도 관광지에서 보는 것과 같이 집단적으로 조성된 유채가 아니라 한 무더기씩 피어있는 유채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다.
봄의 영도는 먹거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영도는 섬이되 보통 섬이 아니다. 대한해협을 향해 돌출되어 있는 바위 섬이다. 대한해협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서 쿠로시오해류가 사철 흐르는 물살 세기로 유명한 해협이다. 몽골군이 수차례 일본 정벌에 나섰지만 거친 물살에 번번이 좌절했던 곳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그곳을 현해탄(玄海灘)이라 불렀다. ‘물살 센 검은 바다’라는 뜻이다. 이런 물살 센 곳에서 자라는 고기는 육질도 남다르다. 거친 물살에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는 도다리는 다른 곳의 도다리와 다르다. 그래서 봄이 되면 영도에서는 아주 맛좋은 도다리 쑥국을 먹을 수 있다. 육질이 쫀득쫀득한 영도 도다리로 만든. 거기에 더 나아가 현해탄에서는 다른 곳에서 잡히지 않는 어종이 있다. 바로 돌가자미가 그것이다. 일본말로 ‘이시가리’라고 하는데 부산 사람들은 최고의 횟감으로 친다. 돌가자미는 부산이라고 해서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부 횟집에만 있지만 영도에서는 쉽게 먹을 수 있다. 영도에 돌가자미를 전문적으로 잡는 소형어선이 많기 때문이다.
봄이 좀더 깊어지면 영도는 벚꽃으로 뒤덮힌다. 영도는 일제 점령기 이전부터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남항 건너편인 남포동, 광복동이 일찍부터 일본인 주거지였던 관계로 영도에도 일찍부터 일본인 거주지가 많았다. 배 건조장이나 수리소가 있어 거기 종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상업지역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옛 전차 종점이 영도에 있었던 것만 봐도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벚꽃이 많고, 대교동이나 남항동 일대에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왜식 다다미 집이 많았다. 필자의 외할아버지 뻘 되는 사람도 대교동에 살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일본식 집 구경을 많이 했다. 흔히 말하는 적산가옥이었다. 최근에는 관광지로 소문이 나면서 태종대 주변과 남항을 바라보는 갈맷길 주변, 그리고 매립지를 가르는 해자 주변에 벚꽃단지가 조성되어 화사한 봄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 벚꽃이 무르익을 때쯤이면 영도는 온통 꽃 천지가 된다. 진해 벚꽃에 못지않은 숨어있는 벚꽃세상이 펼쳐진다.
첫댓글 벚꽃하면 생각이나는 추억 하나
논산훈련소에서 신병 훈련 마치고 어디로가는지도 모른채 부산어디쯤
기차에서 내려 구르고 일어섰다 앉았다를 몇 번 버스에 올라서 잔뜩 틀어놓은 히터에
꿈속을 헤매다 눈을 떴는데 만개한 벚꽃 잎이 하얗게 하얗게 눈앞에 가득 너무 눈이부셔서 꿈인가
눈을 비비고 그러고도 못미더워 고개를 흔들때 인솔 교관의 고함 소리에 따블백 입에 물고 처량한 훈련병 현실로 돌아왔던 반여동 육군기술병과 학교교정 한세대가 흘렀지만 잊혀지 않는 추억되어 올해도 피어납니다
정말 아련한 추억이겠군요. 꿈결같은 벚꽃 추억이군요. 반여동 육국병기학교 기억납니다. 중학교 다닐 때 그 앞으로 버스 다녔지요. 주위에는 민가와 논들이 듬성듬성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