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림왕(재위371-384년)
소수림왕은 고국원왕의 아들로 이름은 구부이다. 소수림왕은 고대국가 체제정비를 완성한 왕이다. 소해주류왕 혹은 해미류왕이라고도 한다.
미천왕 때부터 시작된 고구려의 대외팽창은 고국원왕 때 좌절되었다. 모용황에게 왕릉이 파헤쳐지고 신하를 칭하며 백제에게는 왕이 살해되는 등 치욕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소수림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땅에 떨어진 왕위를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사상의 통일을 시도하였다. 즉 불교를 수용한 것이다. 불교를 통해 백성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불만을 해소하고 왕과 부처는 동일하다는 왕즉불사상을 강조하여 왕권 강화를 시도하였다.
또한 불교의 수용과 더불어 유교 교육기관인 태학을 설립해 유교이념인 충효사상도 널리 보급했다. 소수림왕의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초부족적 고대 국가의 지배질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이념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율령도 반포하였다. 왕을 정점으로 하는 하나의 공법체계를 형성한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시행은 다음 왕인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최전성기를 제공해 주었다.
소수림왕은 내부체제 정비와 병행하여 대외관계에도 꾸준히 팽창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선왕의 복수를 하기 위해 잇달아 백제를 공격하기도 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다음 왕들에게 선왕의 복수를 하지 않는 한 평상시에도 갑옷을 벗지말라고 유언할 정도로 백제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있었다. 378년에는 북방에서 일어난 거란족과 싸우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모용황의 전연이 멸하고 중국 대륙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전진과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써 국력의 분산을 막고 내정 개혁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끈질기게 괴롭혔던 전연의 멸망은 고구려에게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