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시> 2019년 겨울호.
경안리에서 외 1편
맹문재
정형외과, 노래방, 순대국집, 부동산 중개소
법무사, 치과, 한의원, 가구백화점……
어느 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간판들이 즐비한
경안동 행정복지센터 주위를
더 이상 살필 수 없었다
강민 시인이 1950년 8월
열여덟 살 북한군 동갑내기와 밤새 얘기하다가 헤어졌다는
경안리 주막을 찾는 일은
애처로웠다
여관 간판이 보이기도 했지만
들어가 물어본 일 역시 허무했다
그래도 문학 강의하러 갔던 경안리
겨울바람처럼 떠나오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병원 침대에서 들려주던 시인의 말을
유언으로 듣는다
이놈의 전쟁 언제 끝나지…… 우리 죽지 말자……
악수를 나누고 새벽에 헤어졌던 그 북한 동갑내기를
한 번 만나고 싶어
비오는 날
처음 가보는 회룡역에서 의정부 경전철로 갈아타고
곤제역에 내렸는데
비가 내린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묻고 물어 도착한 집은
커피숍처럼 밝은데
비는 여전하다
빗속에서도
고종사촌 동생은 웃으며 맞는다
일밖에 모르는 고모님을 닮아
제대로 놀아보지 못한 우리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이 없다
중학생 때 남산타워에 놀러간 것이 유일하다
가냘프게 웃는 다른 동생들 속에
필리핀에서 온 지 삼 년 되었다는 제수씨가 있고
조카아이가 그 곁에서 걸음마하는
의정부 보람병원 장례식장
좀처럼 비는 그치지 않는데
나는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건넸다
맹문재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 『기룬 어린 양들』 등 있음.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