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별 반찬 없어도 도시락 싸 와서 점심시간이면 같이 모여서 먹고 웃고 떠들고, 그리곤 또 운동장으로 몰려나가 놀다가 종 치면 후다닥 교실로 들어오고, 정말 학교생활 참 잘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이면 담임선생님께서 분단별로 다니셔서 우린 선생님 반찬도 먹어보고 선생님께선 우리들 반찬도 잡수셨다. 점심 먹으면서 사제간, 반 아이들간 오고가는 이런 저런 얘기에 점심시간은 항상 하하, 호호, 깔깔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비록 담임선생님과 밥을 먹어보진 못했지만 반 친구들과 도시락 같이 먹으며 즐거웠던 점심시간은 수채화 같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소아·청소년기 발육에 맞춘 질 높은 식단, 학부모님들의 편의 - 그것이 학교급식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 점심시간이 어떠한가 생각해 보자. 친구들 간의 우정, 그런 거 같이 밥 먹으면서 자연스레 이뤄지는 건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그런 기회가 없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사람의 정, 학교에서의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관계, 즉 사제간 인간적인 만남, 교우관계 그런 거 혹시 학교급식이란 제도가 거둬가고 앗아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점심시간이면 급식소 앞에 긴 줄이 생긴다. 싸움 잘하는 아이들은 새치기하고, 새치기 안 시켜주면 약한 아이는 얻어 터지면서, 목 빼고 줄 서서 기다리다 식판 들고 적당한 자리 찾아 앉아 로보트처럼 밥 먹고는 일어난다. 줄 서 있는 다른 아이들을 위해 속히 식당에 빈자리를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뭔 기계들 연료 넣어주는 행위 같다.
몇 분이고 줄 서서 기다리다 기계처럼 밥 먹고 나면 아까운 점심시간이 뚝딱 지나간다. 모든 걸 똑같이 맞춰야 직성이 풀리는지 밥도 똑같이 먹인다. 균형 식단으로 편식을 교정한다고? 싫어하는 반찬이 나오면 잔반은 수북히 산처럼 쌓이고, 반찬 남긴다고 주의주면 몰래 식탁 밑에 버리고 발로 문질러 버린다.
밥 먹는 거, 사소한 거 같지만, 배고픔이라는 1차적인 생리적 욕구를 해결할 때 꾸미지 않는 사람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우리 어른들도 그렇지 않은가? 밥 한 끼 같이 먹으면서 서먹한 관계가 개선되는 경험이 없는가 말이다.
친구들 간에 뭔 우정은 고사하고 인간관계를 이룰 기회가 넉넉하지 못하니까 교실에서도 친구간에 칼부림이 나고 왕따가 성행하는 것은 아닐까?
왜 먹는 것까지도 획일화시키려 노력할까? 물론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이 최선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러나 밥 먹는 거에 관한 한은 엄마가 정성스럽게 싸 준 도시락을 싸와서 엄마와 식구들 생각하며 반 아이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먹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인간미 물씬 풍기던 그런 점심시간을 누가 빼앗아 갔는가?
도시락 - 그건 잠시 학교와 떨어져 있어도 엄마와 나, 식구들과 나를 연결해 주는 끈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인문계 고교생들의 경우 0교시 수업으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오기 일쑤이고 점심, 저녁까지 학교급식으로 해결한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 엄마의 정은 느낄까?
학교에서의 삭막하고 외로운 아이들 인간관계 - 집에서 싸온 도시락이 일조를 한다고 하면 너무 터무니 없는 말이 될까?
점심시간에 밥 같이 먹으면서 특별히 의도하고 특별히 애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제간, 반 친구들간 눈빛과 웃음, 인간적인 말이 오고가는 교실 풍경을 그려본다. 가장 중요하다는 인성교육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바로 이런 데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게 아닐까?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수업시간 내내 궁금해 하던 행복감과 즐거움, 도시락 뚜껑을 열며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자아존중감을 키우던 훈훈한 점심시간.
이런 거, 이젠 우리 같은 구세대들만이 가지는 추억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