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 단체들, 구호 물품 전달 위해 폭격 중지 촉구
[기독교신문, 에큐메니칼뉴스, 매일선교소식]
세계의 유명 복지 구호 기구들이 앞다퉈 미국의 아프간
공습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이 구호
기구들은 미국의 공습이 중단돼야 아프간에 겨울이 오기
전에 구호 식량을 투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
본부를 둔 구호 기구 옥스팜 아메리카는, 미국의 공습으로
인해 구호 기구들의 활동이 어려움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구호품을 운반할 트럭 운전기사와 노무자들이 폭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갈수록 구호품 운반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옥스팜 아메리카의 회장 레이몬드 오펜하이저는 "이제
우리가 안전상의 이유로 아프간 국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밝히고, "구호품도 소진돼
가는 상황에서 국경은 봉쇄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실무자들에게
다가가지 못 하는 상황에서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UN은 아프간 내에서 구호 식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수가 7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폭격이 계속돼 구호 식량이 이들에게 보급되지 않을
경우, 막대한 인명이 희생되는 것은 물론 다가오는 겨울을
심각한 고통 속에서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펜하이저의
주장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 지역과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아프간의 겨울은 통상 11월부터 시작돼 혹독한 추위가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눈이 내릴 경우, 곳곳이 고립돼 구호
식량이나 기타 지원 물품을 사람들이 사는 마을까지 운반하는
것이 불가능해 진다. 옥스팜 아메리카는 미국뿐만
아니라 탈레반과 북부 동맹까지를 포함하는 아프간의 모든
군사 세력들에게 식량을 아프간으로 운반하는 자동차와
운송 수단을 공격하거나 방해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미국 교회 협의회가 운영하는 구호 및 개발 기구인 기독교
세계 봉사회(CWS) 역시 폭력의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CWS는 "미군은 적어도 인도주의적인 지원품들이
배달될 수 있는 '안전한 길'을 찾아 허용해야만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전통적으로, 세계의 구호 기구들은
전쟁이나 갈등의 기간이라 할지라도 지원품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인도적인 지원 활동을 펼쳐 왔다. 그러나
아프간의 경우, 폭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트럭 운전 기사와 구호 활동 실무자들의 활동이
극히 제한돼 있으며, 물품을 보관하는 일이나 분배하는
일 역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구호 기구들은
주장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아프간 사람들이 집을 떠나 난민으로
유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호 기구들은, 현재 아프간
국민들에게 필요한 구호 식량은 전쟁 이전에 비해 50% 늘어났으나,
정작 선적되고 있는 식량의 양은 이전의 절반 정도 수준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편 한 여론 조사 결과 영국인의
절반 이상인 54%가 아프간에 대한 구호 활동을 위해 폭격을
일시적이나마 중단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여론 조사 결과에 의하면, 아프간에
대한 폭력을 지지하는 사람의 비율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보복 전쟁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지'인 영국에서 이같은 조사 결과가 나온 것에 여론
조사 기관들은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또한, <가디언>이라는 신문을 발행하는 ICM이라는
기구가 지난달 30일 1000명의 서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론
조사에서도, 보복 폭격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비율은 62%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두 주일 전의 여론
조사 결과보다 12%나 줄어든 것으로, 사람들이 점차 보복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기 시작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구호 단체 직원 8명 풀려나
[조선일보]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독교 전파 혐의로 지난 8월부터
탈레반에 억류됐던 미국인 2명을 포함한 외국인 구호 단체
직원 8명이 14일 풀려나 미군 헬기를 타고 파키스탄에 도착했다고
미 국방부가 밝혔다.
국방부 관리들은 미군 특수 부대 헬기 3대가 이 날 오후
9시(한국시각 15일 오전1시30분) 카불에서 남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간지 인근 평원에서 이들을 탑승시켰으며,
모두 건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독일 소재
국제 구호 단체 '셸터 나우 인터내셔널(SNI)' 소속으로,
미국인 2명, 독일인 4명, 호주인 2명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 국무부 고위 관리들을 인용, 탈레반이 직접
이들을 확인되지 않은 비정부기구(NGO)측에 평화적으로
인도했다고 전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에서 "그들이
안전한 것에 감사하며 군이 이 작전을 수행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시는 국제 적십자사와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구조 작전을 지원했다고 말했으나
이들이 반 탈레반 세력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탈로칸 난민촌 르포 - "고향 땅 밟기도 前 굶어
죽을 판"
[국민일보]
아프간
북부 동맹이 지난해 탈레반에 내줬던 탈로칸을 탈환한 14일.
호자바호비딘 인근 오이둔쿨 난민촌에 수용된 200여명의
난민은 눈시울이 뜨거웠다.두고 온 고향을 찾는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대다수가 우즈베크족인 이들이 난민촌에
입주한 것은 겨우 12일 전의 일이다. 고향 반기가
최근 북부 동맹과 탈레반의 격전지였던 쿤두즈와 탈로칸
중간에 위치한 탓에 양쪽 등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짧은 기간에 주민 모두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중 사랑하는 아내와 네 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잃은
아룹 부틀립(45).그의 사연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란의
참화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가 가족을 잃은 것은 지난 1일. 패주를 염두에
둔 탈레반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반군에 가담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내 살해하고 집집마다 불을 놓아 소개작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 역시 아내와 네 자녀가 불 속에서 나뒹구는
것을 숨어 지켜 보아야 했다.
겁에 질린 부틀립은 이웃 친구 크왓의 집에 숨어 있다
나흘 밤낮을 맨발로 걸어 도망쳤다.
"밤에는 살을 에는 한기가 엄습했지만 오직 살아야
된다는 마음으로 탈출했습니다"
친구인 크왓 역시 두고 나온 형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틀립의 꿈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의지할
피붙이 하나 없지만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가 그나마 연명할
수단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가
정착할 돈 한푼 없는데다 아직 탈레반이 있을까 두려워
선뜻 귀향할 수 없다"고 그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고향으로 향하는 북부 동맹 지도부의 연이은 차량 행진을
눈물로 지켜본 부틀립은 다 해진 난민촌 천막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틀립은 프랑스 구호 단체 액티드(ACTED)의 도로 공사
참여 대가로 얻는 약간의 식료품과 구걸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부틀립은 "텐트와 신발, 의약품이
있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그는 "구호품 대부분이 국경을 넘어 호자바호비딘으로
온 것으로 안다"며 "이제 근거지를 옮겼으니
구호품도 탈로칸으로 모일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고향 땅을 밟아 보기도 전에 굶어 죽을
모양"이라면서 "우리처럼 작은 난민촌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며 말했다.
美가 씨 뿌린 아편 나라
[국민일보]
파키스탄 국경도시 페샤와르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는
카이버 패스를 지나다보면 한 변이 100여m, 높이가 2∼3m나
되는 담이 정사각형으로 둘러쳐진 대저택을 볼 수 있다.
"끼니마저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가난한 난민촌
부근에 이런 거대한 저택이 어떻게 들어설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주변에 널리 퍼진 양귀비를 보는 순간 해결된다.
난민 취재를 위해 동행한 아프간 가이드는 "이곳
저택의 주인이 얼마 전 파키스탄 당국에 붙잡혀 카라치에서
형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언덕에서
내려다본 담장 안은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난민촌 사람들의
모습과 전혀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이나 아프간은 아편이 판을 치는 곳이다.
심지어 토르캄 난민촌 취재를 위해 동행한 카이버의
무장 경찰조차 이곳 마약상으로부터 시커먼 생아편을 중인환시리에
태연스레 뇌물로 받고 있었다.
페샤와르의 경우 눈동자가 풀린 채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 대부분은 아편 중독자다. 20,30대 젊은이는
물론 어린이조차 아편을 흡입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프간은 지난해 세계 아편 소비량의 70%를 공급한 아편
공급 기지다. 아프간에서 생산된 아편은 파키스탄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인접국에서 소비되거나
터키를 거쳐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으로 퍼져 나간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주요 마약 생산국으로
분류,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프간에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뒤 아편 재배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유엔 마약 통제 프로그램(UNDCP)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해 아편 생산량이 지난해의 6% 수준인 185t에 불과했다.
이같은 수치는 지난 99년 4581t 생산에 비하면 엄청나게
줄어든 것이다. 아편 재배가 줄어든 것은 올 초 탈레반의
지도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가 아편을 '반 이슬람 식물'로
규정하면서 시작됐다.
실제로 대부분 농가가 아편 재배를 포기하거나 생산량을
줄인 상태며, 아프간 남쪽 헬만드 지역에서만 지난 해 4만2853㏊의
아편이 재배됐으나 올해에는 모두 7606㏊로 91%의 감소율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탈레반
장악 지역에서는 아편 재배가 줄고 있는 대신 이들과 맞서고
있는 북부 동맹 장악 지역을 중심으로 아편 재배가 급속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편 재배를 묵인하는 대신 여기서 나오는 자금을
무기를 구매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북부 동맹 장악
지역인 바다크샨의 경우 지금까지 아프간 전체 생산량의
83%에 달하는 6342t의 아편을 생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왜 아프간이 이렇게 아편에 물들었을까. 여기에는
미국의 역할이 상당 부분 있었다는 게 파키스탄과 아프간
주민들의 생각이다.
즉 미국은 79년 옛 소련군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이른바
'모기 작전'을 단행했다. 모기 작전이란 아프간 지역에
아편을 퍼뜨려 소련군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아프간 반군의 군사 자금을 조달토록 한다는 것이다.
지난 99년 영국에서 출간된 '성스럽지 못한 전쟁(Unholy
War)'에는 프랑스 정보 기관이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모기 한 마리가 얼마나 '곰(소련)'을
못살게 구는지 알고 있느냐. 대통령이 곰을 직접
잡지 못한다면 모기(아편)를 이용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과연 아편의 효과는 대단했다. 아프간에서 고전하던
소련군은 9개월마다 부대를 교체해야 할 만큼 아편 중독이
심각한 상태였으며 지금까지도 중앙아시아에는 당시 아편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다.
문제는 옛 소련이 철수하면서 미국은 아편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없이 아프간을 버린 점이다. 이것이 결국
아프간을 세계 1위의 아편 생산국으로 만들고 주변국까지도
병들게 했다는 것이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생각이다.
결국 모기 작전 최후의 피해자는 아프간도 파키스탄도
아닌 미국이 된 셈이다.
5년만에 자유 찾은 카불의 女人들
[동아일보]
탈레반군이
수도 카불 등 주요 지역에서 밀려나면서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5년 만에 다시 찾은 '해방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탈레반 정권하에서 기도로 소일했던 남자들은 성직자들이
탈레반군과 함께 퇴각하면서 회교 사원(모스크) 대신 길거리로
몰려나왔으며 집에만 갇혀 지내던 여성들도 세상 밖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곳곳에서 약탈이 자행되면서 유엔 아동
기금(UNICEF)과 세계 식량 계획(WFP) 등 국제 원조 단체들은
14일 마자르이샤리프 등 일부 지역에서 구호물자 선적을
중단하는 등 혼란스러운 양상도 계속 남아있다.
◆ 달라지는 여성=탈레반 퇴각 후 가장 달라진
모습은 길거리에 등장한 여성들. 탈레반은 남성 가족이나
친척을 동반하지 않았을 경우 여성의 외출을 전면 금지했지
때문에 길거리에서는 여성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탈레반 퇴각 후 북부 동맹이 약속한 취업과 교육의
기회를 알아보기 위해 남성을 대동하지 않고 외출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15일 보도했다.
특히 여성 교육이 허용되면서 과거 건물 지하에서
비밀리에 운영됐던 여학교들에는 입학 지원자들이 4∼5배씩
늘기 시작했다.
92∼96년 내전으로 남성들이 대거 사망하면서 현재 아프가니스탄
인구 2000만명 중 여성 인구는 65%에 가까운 1300만명에
달하고 있다. 아프간 여성 해방 단체인 여성 혁명
동맹(RAWA)은 여성의 취업이 즉각 허용될 경우 공무원 교사
등 일부 직업에서는 1∼2년 내에 여성의 비율이 5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 아직은 부르카=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북부
동맹이 약속한 자유를 환영하고 있지만 아직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탈레반 퇴각 후 외출에 나선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대부분은 아직 온몸을 감싸는 부르카(눈까지 망사 처리한
아프간 여성 옷) 차림이었다. 전직 의사인 나지바
아심(34)은 "탈레반 정권 하에서 여성들은 부르카를
쓰지 않으면 돌로 맞아 죽거나 염산 세례를 받았었다"면서
"북부 동맹이 어떤 사람들인지 정확히 알기 전까지는
부르카를 쓰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다.
AP·AF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북부 동맹에 참여한 일부 부족들이
탈레반보다 훨씬 여성을 억압해온 전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북부 동맹 실력자인 압둘 라술 사야프
장군은 14일 여성의 부르카 착용이 아직 필요하며 여성에
대한 투표권 허용을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RAWA의
세히르 사바 의장은 14일 "여성에 관한 한 북부 동맹도
탈레반과 같은 원리주의자들"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여성의 자유가 크게 신장될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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