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산 등반(2015.04.29)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쫒기는 사람처럼 서둘러 버스 정류장을 찾아헤매 다녔다. 서울이란 곳, 사람 북적대고 이 혼잡한 거리 상황에서 빨리 탈출을 하고 다음을 이어가야지. 그리고...
'다섯시 차를 타야지!'
어젯밤 그렇게 생각하며 잠들었다. 너무 일찍 잠을 깨었다. 평소보다 이른 잠자리에 들었으나 12시경 잠이 깨어버린 것이다.
맘약한 사람이란 무슨 일을 앞두면 마려운 강아지마냥 총총대기 일쑤이고...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다시 잠에서 깨어보니 새벽 두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눈을 더 붙이려 노력? 내사전엔 그런게 없다는걸 잘알기에 포기를 해야했다.
에라! 짐이나 챙기자. 잠이 예민한 것은 왠지 무슨 일이 있으면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잠에서 일찍 깨어버리는 태생적, 병(?)적인 성격탓이리라.
강화도 마니산(472m)을 가기로 마음 먹었었다. 갑자기 김삿갓 개씸대감 혼내주려 새벽길 떠나가는 것도 아니고, 웬 강화도행이냐고?
다름아닌 며칠전 KBS2에서 방연한 '영상앨범 산' 프로그램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니산을 가보았는지 기억도 없는데다 텔레비젼에서 보는 마니산의 암릉 모습이 가슴에 다가왔었다.
거리가 너무 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다보니 제대로 연결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지만, 어째든 자신과의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는 일념(고집?)으로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섰다.
새벽 5시, 고속버스안은 승객들로 꽉찼다. 나만 부지런을 떠는가 싶었더니 다들 바삐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숙연해졌다.
서울 터미날 도착 8시 40분,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려 다시 머리속에 담겨진 신촌행 2호선으로 환승했다.
다시 신촌역에서 내려 강화버스터미날으로 가는 3000번 버스를 타려는데, 정류장을 찾기가 어렵다.
예전엔 마장동 종합시외버스터미널이라면 나같은 시골뜨기들의 발걸음 고민을 해결해 주었는데, 이젠 그게 없어졌나 보다.
길가는 몇몇 사람에게 묻다가 나보다 못한넘도 있겠다 싶어 나홀로 네비게이션을 가동하기로 했다. 순간 눈앞에 3000번 버스가 지나갔다.
게섯거라! 버스를 따라 300여m 가량 정류소로 이동하여 다음차를 기다렸다. 배차간경이 8분정도라고 하였으니...
드디어 강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젠 절반은 성공하였다는 안도의 생각에 심호흡을 했다. 잠시후 옆좌석에 할아버지 한분이 타셨다.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정보를 얻을 심산으로 말을 걸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나는 외지 사람이고 나이가 올해 80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잘라 말하신다. 실망...
누가 잡아먹어요? 박정하시기는...그런데 조금 있으니 무슨 생각이셨는지 내 얼굴을 한번 쳐다 보시더니 먼저 말문을 여신다.
사실은 자신이 강화도 토박이시라고. 그리고는 묻지도 않아도 지나치는 풍경과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으신다.
처음엔 왜 그렇게 대하셨을까? 행여나 나를 떠 보시려고? 문득 군대생활때 내게 유독 잘대해주시던 선배 부사관님 생각이 났다. 그분의 고향이 강화였었지.
할아버지의 말씀은 계속되었다. 김포와 강화엔 군인들이 정말 많은데, 그 중에서도 해병대가 많단다. 부대옆을 지나며 저게 해병대 2사단이고, 저건 대대건물이라는둥 차창에 보이는 것마다 내레이션을 해대신다.
나도 이참에 궁금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이럴땐 산보다 사람, 강화 특산품 인삼달인 물처럼 진국이셨다. 덕분에 강화터미날까지는 심심찮게 도착했다. 할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강화도, 다리(강화대교)란걸 건너긴 건넜는지? 섬아닌 섬이다. 이곳은 고려 무신정권때 몽고군에 쫒겨 항몽활동을 하던 임시 도읍이었고, 단군왕검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는 삼량성, 나라에 큰일이 있을때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참성단의 전설과 유래...
하여간 우리에겐 단순히 강을 건넌 섬이고, 그 섬중의 자그마한 산이라기 보다는 숨은 역사가 깊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생각 갖게하는 곳임엔 틀림이 없다.
강화터미널은 상당히 혼잡스러웠다. 차려입은 아줌마들이 많았고, 이유를 물으니 군내에 있는 고려산 진달래축제가 있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니산행 버스를 타고서도 코스잡기가 어렵다. 버스가 서는 정류소를 정확히 파악하여야 하는데 지리가 서툴어 묻기도 쉽지가 않다.
일단은 마니산행이라고 팻말붙은 곳에서 차(42번)에 올랐다. 그런데 이놈의 차가 웃긴다. 마치 마을버스처럼 이곳 저곳을 도는데 매우 헷갈렸다.
등산로 입구가 여러곳이니 더 헷갈렸다. 일단 화도(산방리)에 있는 마니산 매표소 입구에 내렸다.
매표소를 지나면 길은 두갈래로 나누어진다. 한쪽은 계단(1004)길이고, 다른 한쪽은 거리가 먼 단군길이다. 어느 코스이든 그리높지 않은 산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만약 입구에다 차를 세워 두었다면 오를때와 내려올때 각각 코스를 달리하면 더 좋다. 그리고 정수사로 내려가는 코스도 따로 있다.
산에 대한 욕심이 생겨 점심 먹는시간 5분정도를 제외하곤 쉬지않고 코스를 옮겨다니다 보니 실제 산행시간은 세시간이 넘었다.
사진 찍느라 시간을 많이 소모하여 바삐 하산하여 시간을 보니 3시가 조금 넘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다행이 간이 버스정류소에서 좋은 분을 만났다. 나또래, 아니 나보다 몇살은 더할 듯한...그사람도 나처럼 혼자 산행을 왔는데, 평소에도 산을 좋아하여 훌쩍 떠나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니기가 싶지않다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산을 좋아하는 점은 나와 닮은 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군내버스(32번)를 타고 양촌면(양곡)으로 향했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사람은 나더러 사진을 많이 찍던데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나의 사진창고를 만들어 그곳에다 보관 한다고 하였더니 주소를 달라고 하였다.
양촌면에 도착하니 문득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전원일기' 생각이 났다. 최불암과 김혜자 등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하였던 농촌생활의 애환을 훈훈하게 풀어가던 드라마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변하듯 양촌도 그 옛날 전원일기속의 풍경이 아니었다. 주변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거리 사진을 찍고 배우들의 사진도 옮겨왔다.
양촌에서 우리는 다시 버스(22번)를 옮겨탔다.그리고 그사람은 몇정거장 더 가서 내리고, 나는 김포공항 근처의 계양역에서 내렸다.
그사람 덕분에 돌아오는 길을 시간을 단축하고, 편한 여행이 되었다. 연락처라고 알아올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늦었다.
나는 그사람이 알려주는대로 계양역에서 고속터미날행 지하철인 일반열차를 탔고, 고속버스를 타고 밤늦게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긴장되고 피곤한 하루였지만 기분은 상쾌하였다. 강화도 마니산까지, 오늘 하루 차를 몇번이나 탔던가?
택시 2번, 고속버스 2번, 지하철 3번, 시외버스 4번 무려 11번씩이나 탔었네. ㅎㅎ
나는 다녀오긴 하였지만 산을 좋아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도 서울 근교의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청계산과 남한산성의 하루 산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다.
그나마 돌아 올때는 동행자가 있어서 차를 한번 덜탔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나는 산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 산을 오르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너무 더워 산을 못가고 옛추억을 소환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