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총선이 끝났다. 이번 총선은 아무도 예상 못할 결과들이 쏟아졌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였으며 이는 지난 대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의 연장선으로 분석할 수 있다.
국민이 주도권을 쥐고 정치권을 견제하는 시대
이번 총선은 국민들을 얕잡아보는 기성 정치세력이 크게 심판받은 선거였다. 민심이 기성 정치세력을 떠나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은 투표장을 외면하였다. 46.0%에 그친 총선투표율은 과반수가 되지 못함과 더불어 17대 총선에 비해 15%나 급락한 수치로써 역대 전국단위 선거사상 최저의 투표율이다. 일례로 경기 시흥을 선거구에서는 34.0%의 투표율을 기록하는데 그쳤는데 51%의 득표로 당선된 민주당 조정식 후보는 전체 유권자 가운데 17%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투표율이 30%대에 머무는 지역구만 전국적으로 20여개에 달한다. 이처럼 투표율이 낮은 현상은 간접민주주의의 대표성에 논란을 발생시킬 정도로 한국정치 풍토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투표율이 낮은 주된 원인은 국민들이 기성 정치권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고 기대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찍을 후보가 없거나, 지지하는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없고 당선권에 있는 후보들에겐 도저히 표를 줄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투표 거부를 통해 자신들의 뜻을 표출했다. 국민들은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낮은 투표율을 통해 기성 정치권에게 경고를 하였다.
극도의 낮은 투표율과 함께 투표를 한 국민들도 고도의 정치적 선택을 통해 기성 정치세력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번 총선 결과의 특징은 어느 누구도 완승, 완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선거의 쟁점이었던 견제론, 안정론 모두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어떤 정치세력도 정국을 주도할 수 없는 절묘한 상황에서 국민이 직접 정치세력들을 견제하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형성되었다.
한나라당은 지난 총선 당시 압승했던 열린우리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했지만 누구 하나 ‘압승’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대선에서 큰 표차로 승리하고 정당 지지율이 50%를 넘나들었다는 점에서 이번에 한나라당은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총선을 치른 셈이다. 그러나 결과는 이런 조건에 비해 볼 때 사실 초라하다. 한나라당이 과반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투표율이 과반을 못 넘겼으므로 사실은 국민의 1/4에게만 선택받은 셈이다. 거꾸로 말하면 국민의 3/4는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이 한나라당과 정부의 독주를 견제한다는 점이 뚜렷이 드러났다. 과반을 넘겼음에도 결코 웃지 못하고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 때문에 한나라당 스스로도 ‘압승’이란 표현을 쓰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은 민주당에게도 비록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치는 의석을 주었으나 지역 정당으로 만들지는 않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은 나름대로 성과를 올렸다고 자평하나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면서 정국 주도권을 쥘 정도에는 못 미쳤다. 민주노동당은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열악한 조건에서도 지역구 두 석을 포함하여 총 5석을 얻으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진보신당은 원내진출에 실패했으나 노회찬, 심상정의 의미 있는 득표와 정당투표에서의 성과를 이루었다. 창조한국당도 지난 대선에 못 미치는 득표율을 얻었지만 원내 진출에는 성공하였다.
이처럼 누구 하나 만세를 부를 수도, 좌절할 수도 없는 선거 결과를 통해 국민들은 정치권 모두에게 각성할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국민의 뜻을 따르면 언제든 승리할 수 있다는 점까지 보여주었다. 이로써 정치권에는 주도권을 쥔 정당이 없이 긴장된 정국이 조성되었으며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확히 말하면 모두가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국면이 형성되었다.
민심이 기성정치권을 떠나는 현상은 각 정당의 주류세력과 중진들, 다선 의원들이 대거 낙선되는 현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실세들이 대거 패배하면서 정치권 물갈이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무소속 후보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전체지역구의 10.2%에 달하는 25명의 무소속후보가 당선되었는데 이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래 역대 최다 무소속 당선 기록이다. 무소속 후보들은 지역적으로도 영남과 호남지역, 수도권에 고루 분포해 있어 기성 정치세력인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을 심판하였다.
이처럼 국민들은 기성 정치권 전체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판결을 내렸으며 그만큼 새정치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었다. 이제 정치권의 가장 강력한 세력은 바로 ‘국민’이 되었다. 국민들은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뜻을 실현시킬 정치세력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스스로 ‘정치세력’이 되었다. 국민들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정당이든 과반 정당으로 만들 수 있으며, 역으로 심판하고자 하면 완전히 몰락시킬 수 있다는 점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안고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세력이 나타난다면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 압도적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의 주권 의지는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국의 한국 정치 개입 구상은 국민들의 손으로 저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친 박근혜 계열 무소속 의원까지 모두 더하면 개헌선인 200석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 200석은 허구에 불과하다. 전체 의석의 2/3를 차지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국민들의 지지율은 투표율인 46%를 감안할 때 30%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보수 정당 지지율에 지나지 않는다. 친미반북세력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면 향후 정국에서 친미반북적 노선을 강하게 밀어붙이려던 미국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의석수만 믿고 무리한 정책들을 강행하다가는 2004년 탄핵 역풍이 재현될 수도 있다.
또한 친미반북공세가 국민들에게 먹히지 않은 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은 친미반북공세를 통해 보수진영의 약진은 물론 진보진영까지 흔들어놓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거의 실현되지 못했다. 총선 직전 민주노동당 내에서 이른바 ‘종북주의’ 논란이 터지면서 탈당 사태까지 벌어졌고 남북관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이번 총선에서 ‘종북’, ‘친북’ 등은 쟁점이 되지 못했다. ‘종북주의당’으로 매도된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2석을 포함한 5석으로 예상외의 성과를 올린데 비해 ‘종북주의’를 비판했던 진보신당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심지어 경남 사천에서는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민노당 당선되면 우리시는 전국에서 종북지역 지목. 우리 친북지역인으로 지목 그건 안 돼지요. 지인연락”이라는 흑색선전까지 난무했으나 결국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이 승리하였다.
이처럼 국민들은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는 낡은 대결 관념을 이미 극복하였다. 이로 인해 진보진영에 친미반북세력을 육성하고 진보진영을 분열시키려던 미국의 구도에 일정한 타격이 가해졌다.
비교적 선전했으나 아쉬움이 남은 진보진영
진보진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여전히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진보진영의 분열에 대하여 냉정하게 평가했다는 점이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힘든 싸움을 한 정당은 민주노동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에서 낮은 득표를 올린데 이어 대선 평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른바 ‘종북주의’ 시비와 탈당 사태까지 난관이 중첩되는 최악의 조건에서 총선을 맞았다. 국민들에게는 ‘종북주의당’ 딱지와 함께 기성 보수정당이나 하는 구태의연한 분열 행태가 연일 언론을 통해 주입되었다. 여기에 당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던 당직자들, 활발한 활동을 하던 당원들이 대거 탈당하면서 후보 마련이나 정책 마련 등 선거 준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당이 이대로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심각한 위기의식이 팽배한 속에서 당을 살린 것은 바로 기층 당원들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이었다. 이들이 벌인 적극적인 구당운동으로 전국 각지에서 집단 입당이 끊이질 않았으며 민주노총, 전농 등 많은 단체들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희생적으로 총선 후보를 대거 배출, 비례대표 포함 무려 113명의 후보가 출마하게 되었다. 이는 한나라당, 평화통일가정당, 통합민주당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수다.
당원들의 힘은 비례대표 후보 선출에서도 나타났다. 준비도 부족하고 논란도 많았지만 오직 당을 살려야한다는 일념으로 당원들은 투표율 50%를 넘기며 비례후보 선출을 성사시켰다. 이후 선거운동에서도 기존 활동 당원들이 대거 탈당한 조건에서 많은 당원들이 직장에 휴가를 신청하고 선거운동에 나섰으며 여러 진보단체들도 지역구에 실무자와 선거운동원을 파견하여 선거운동을 적극 도와주었다.
이처럼 당원들의 힘과 진보단체들의 단결로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에서 노동자, 농민 출신 후보들을 당선시켜 계급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비례대표 3명을 더해 총 5명이 원내 진입에 성공하였다. 비록 지난 총선에 비해 의원수는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탄핵 역풍으로 유리했던 당시에 비해 훨씬 열악한 조건이었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비교적 선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여전히 진보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민의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지역구에서 집권 여당과 힘겨운 싸움을 통해 두 명의 후보가 당선되고 비례대표로도 3명이 당선된 것은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에게 여전히 기회를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기성 보수정당처럼 당권을 둘러싸고 내분을 일으키고, 변혁지향 정당답게 변혁적 내용으로 총선 쟁점을 형성하는 능력도 부족하고, 지역민과 밀착하여 꾸준히 대중사업을 펼치지도 않았으며, 대중투쟁으로 정부를 견제할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데 대하여 국민들은 국회의원 5석이라는 절제된 평가를 하였다. 민주노동당은 여기서 교훈을 찾아야 하겠다.
또한 언론에 철저히 배제된 민주노동당과는 달리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총선에 도전했으나 한 석도 건지지 못한 진보신당의 모습에서도 진보진영은 심각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진보신당은 애당초 심상정, 노회찬의 선전 속에 비례후보의 당선으로 18대 국회에 입성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결성한 시점이 굳이 총선 이전인 이유도 진보신당의 기본목적이 ‘원내진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18대 국회에서 단 한 석의 의석도 얻지 못해 원외로 밀려나고 말았다. 심상정(경기 고양 덕양갑)은 한나라당 손범규에게, 노회찬은 (서울 노원병) 한나라당 홍정국에게 근소한 차로 패배하였으며 정당투표에서도 2.9%에 머물러 비례의석을 단 한 석도 얻지 못하였다.
만약 노회찬, 심상정이 민주노동당에 남아서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당선이 거의 확실했을 것이다. 또한 민주노동당 정당득표율 5.7%에 진보신당 2.9%를 더하면 8.6%이며 상승효과까지 고려하면 거의 10%에 육박하는 정당득표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며 이렇게 되면 비례후보 5~6명이 당선되는 꼴이다. 즉,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을 뛰쳐나가지만 않았어도 민주노동당이 이번 총선에서 비례의원 5~6명, 지역구의원 4명으로 사실상 17대 총선에 준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17대 총선이 탄핵 역풍으로 민주노동당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는 점과 당시에 비해 지역구의원이 배로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승리라고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성과다. 하지만 진보신당이 떨어져나가면서 이러한 성과들이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진보신당이 의회 진입에 실패한데는 진보진영의 분열을 일으켰다는 점이 기본 원인이지만 진보신당이 보여준 진보적이지 못한 모습에도 원인이 있다. 진보신당은 반북적 정책을 통해 시대 변화를 선도해갈 진보세력으로서의 모습에서 이탈하였고 개량주의적 노선을 통해 진보적, 변혁적 정당이라기보다 시민운동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정책 대결보다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노회찬, 심상정 등 소수 수도권 명망가 후보들에 선거운동을 의지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진보신당의 정당득표율이 수도권만 유독 높은 이유다. 또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들이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것이야 필요하다지만 박중훈, 문소리, 하리수 등 연예인들이 선거운동의 전면에 나선 것은 진보정당으로서 올바른 선거운동 형태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노회찬, 심상정의 석패, 비례의원 진출 한계선인 3%에 0.1% 못미치는 정당 득표,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5석은 반북, 개량적 노선을 버리고 진보진영의 단결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충고이다. 민주노동당은 여기서 교훈을 찾고 변혁적 노선을 철저히 견지하면서 진보진영의 단결을 이루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하겠다.
과반을 차지했으나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없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
일부 언론들은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보수화되었다고 평가하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 실재 보수표는 약 2~30%를 유지하면서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다만 진보나 중도적 성향의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갈수록 낮아져서 마치 보수표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진보개혁성향의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기존 진보개혁정당들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한다. 정부와 수구보수 정당들에 제동을 걸고 싶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대안 정당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투표는 무의미하다. 이런 기본 관점을 가지고 기존 정치세력들에 대한 평가를 해보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여세를 몰아 총선에서 거대여당을 형성한다는 한나라당은 목표했던 170석에 한참 못미치는 153석의 성적을 올렸다. 원래 한나라당은 적극적 투표층에서 높은 지지를 얻기 때문에 투표율이 낮을수록 선거에 유리하며 투표 당일 투표율이 낮게 나오자 내심 기대를 많이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투표율 50%도 안 되는 선거에서 성적은 과반수에 턱걸이하는 선에 그쳤으며 1달 전만 하더라도 50%를 구가하던 정당지지율은 37.5%로 급락하고 말았다. 여기에 낮은 투표율까지 감안하면 실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과반 의석은 허수이며 국민들의 지지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이명박 집권을 실질적으로 이끈 신보수세력들은 이번 총선을 계기로 박근혜 계의 구보수세력을 누르고 당권을 장악하고자 한나라당 전체 공천 중 140여석을 ‘친이’ 세력이 독점하면서 ‘친박’ 세력을 몰아대었지만 이명박의 측근들은 총선에서 연거푸 쓴잔을 마셔야 했다. 이명박 정권의 최고실세로 인정받던 이재오(서울 은평을)는 창조한국당 문국현에 밀려 낙선하였으며 한나라당 사무총장 이방호(경남 사천)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게, 대선에서 당 실무를 지휘한 정종복 제1사무부총장(경북 경주)은 친박연대 김일윤에게 패배했다. 이명박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대선에서 활약한 박형준(부산 수영)도 무소속 유재중에게 패배하였다. 이외에도 오세경(부산 동래), 김희정(부산 연제), 박승환(부산 금정) 등 이명박의 측근들은 당선이 유력한 영남지역에 출마해서 낙선하였으며 윤건영(용인 수지), 윤진식(충북 충주), 송태영(충북 흥덕을), 박명환(서울 광진을), 김해수(인천 계양갑)등도 줄줄이 낙선하고 말았다.
이에 비해 ‘친이’ 계의 공세에 밀려 한나라당을 탈당, 친박연대를 결성하는 등 생존을 모색하던 ‘친박’ 세력들이 다수 당선되고 같은 수구정당인 자유선진당도 대전충남 지역당으로 18석을 차지하면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수구보수세력들은 이전투구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만약 ‘친이’ 계의 핵심들이 연달아 낙선하면서 ‘친이’ 세력이 위축되고 내부 주도권 다툼이 발생하는 틈을 타고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의원들이 한나라당에 복당하면 당 내에서 이명박-박근혜 계파의 양강 구도가 다시 형성되면서 내분이 가속화될 것이다. 반면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친이’ 세력의 공세가 지속될 경우 박근혜와 ‘친박’ 의원들이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독자세력화하거나 친박연대에 합류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구보수세력들은 한나라당과 ‘친박신당’으로 양분되면서 심각한 분열 양상을 띠게 된다.
이처럼 한나라당을 기준으로 보면 분명 여대야소의 국회이지만 국민들의 낮은 지지와 보수세력의 분열로 이명박 정부가 마음껏 독주할 수 없는 기묘한 정치질서가 마련되었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에게 심판의 칼날을 들이밀지는 않았으나 냉철한 경고를 한 셈이며, 이는 이명박 정부의 폭주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수구보수세력에 비하면 중도개혁세력들은 더 열악한 결과를 얻었다.
통합민주당은 애초에 목표하였던 100석에 한참 모자라는 81석을 획득하였다. 다만 대선 패배 직후 호남지역당으로 전락할 우려까지 표출되던 상황에서 충청과 수도권 20여석을 확보하고 영남권에서도 2석을 확보하면서 향후 정국대응력을 확보하는데는 성공하였다. 문제는 당내 핵심세력이라 할 수 있는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등과 유인태, 신기남 등의 중진들이 줄줄이 낙마하였으며 이인영, 임종석, 오영식, 우상호 등 ‘전대협’ 출신 386세력들이 낙마하여 크게 위축된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이들의 몰락은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중도개혁세력의 생명력이 위험 수위에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통합민주당의 핵심세력들과 386의 몰락은 국민들이 중도개혁세력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핵심세력들의 몰락은 대선 패배의 연장선에서 확실한 물갈이를 요구하는 것이며 구태의연한 정치 행태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 386의 몰락은 과거 진보운동에 몸을 담았다가 권력을 쥐고는 여기에 안주하여 자주, 민주, 통일 운동에 무관심한 세력들에 대한 냉정한 심판이다. 6.15 공동선언 이행도, 국가보안법 철폐도, 공정한 한미관계 정립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도, 민주민생문제 해결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국민들의 심판을 받았다. 이제 민주당이 살아남으려면 국민들의 뜻에 따라 새정치를 실현할 새로운 인물로 물갈이를 하든지, 기존의 인물들이 참회하고 새로 거듭나든지 해야 한다.
민주당은 일부에서 예상했던 참패는 모면하여 국민들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셈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다음에도 찾아올지는 기약할 수 없다.
한편 호남지역에서는 ‘DJ계’라 할 수 있는 후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지원(전남 목포)을 제외한 김홍업(전남 무안, 신안), 한화갑(광주 북갑)등은 탈락하고 말았다. 호남지역에도 정치권 물갈이 요구가 거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개혁공천을 통해 민심을 되돌려보려 하였으나 대안인물이 부재한데다 개혁공천마저 용두사미식으로 끝나면서 새정치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또한 총선 쟁점도 형성하지 못해 능력 부족을 다시금 표출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연일 언론을 장식했음에도 민주당이 이 정도의 득표밖에 하지 못한 것은 결국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의 연장선에서 민주당이 결코 이명박 정부를 견제할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진보와 중도개혁 중간지대의 틈새시장을 노린 창조한국당은 지난 대선에서 얻은 5.8%에 못 미치는 3.8%의 정당지지를 얻었다. 문국현이 이재오를 꺾으면서 가능성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사실상 문국현 개인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말았다.
진보진영은 국민을 믿고 거듭 태어나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일단 국민들의 경고를 받은 만큼 함부로 폭주하기는 힘들 것이다. 벌써부터 각종 언론에서 한반도 대운하 추진이 힘들어졌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였고 수구보수가 개헌선 까지 차지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본성상 얼마 지나지 않아 오만에 빠져 친미반북, 반민중적인 행태들이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심각한 국면으로 빠지면서 심각한 긴장국면이 조성되고, 맹목적 친미사대주의에 빠져 몰락하는 미국과 한 배를 타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으로 민생 경제가 파국으로 치달으며, 군사독재를 방불케 하는 공안탄압이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민심 이반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침묵하는 54%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지지해서 침묵하는 게 결코 아니다. 한나라당은 2004년 눈에 보이는 수치만 믿고 탄핵을 밀어붙였다가 역풍을 맞은 경험이 있다. 지금도 과반수니 개헌선이니 하는 수치만 믿고 반민족, 반민중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급격한 몰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총선 전부터 이명박 정부가 임기를 채우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들이 나돌았다. 그 분수령은 2010년 지방선거가 될 것이다. 반민족, 반민중 폭주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으로 한나라당이 급속히 몰락하는 속에서 치를 지방선거는 국민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세력, 진보세력에게 절호의 기회가 된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진영은 국민의 본심을 이해하고 국민을 믿으며 새정치 실현을 위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2012년 자주적 민주정부 건설의 문을 활짝 열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배짱을 갖고 혁신 또 혁신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우선 민중중심의 투쟁 원칙을 확고히 틀어쥐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로 한국사회의 기본 과제인 자주, 민주, 통일에 밀착한 변혁적 요구로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 변혁지향적인 정당과 단체라면 당연히 전략적인 요구에 맞게 의제를 설정해야 하며 전술적으로도 진보진영이 정치권에서 주도권을 쥐자면 반드시 변혁적 요구를 중심에 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핵심 정책으로 내건 등록금 문제는 일면 긍정성도 있지만 부족점도 있었다. 청년학생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나 어느 정도 총선 쟁점이 되려고 하자 여타 정당들이 너도 나도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다르지 않은 공약들을 내놨으며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조차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렇게 되자 민주노동당이 등록금 문제에서 확고한 우위에 서지 못하게 되었고 크게 부각되지도 못했다. 국민들 눈에는 다 비슷한 정치세력으로 보이는 것이다.
둘째로 운동 방식도 민중중심의 운동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이번 총선은 유례없이 대중투쟁이 진행되지 않고 끝났다. 언제부터 진보진영이 선거운동에 매몰되어 대중투쟁을 무시했는지 모를 일이다. 대중투쟁 없이 승리한 선거는 지금껏 없었다. 강력한 대중투쟁을 통해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확실한 세력이라는 것을 보여줄 때 국민들도 진보진영에 지지를 보내기 마련이다.
진보진영은 다음으로 반드시 단결을 실현해야 한다. 이번 총선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총선 직전에 진보진영의 분열만 없었더라도 지금쯤 잔치를 열고 있었을 것이다. 진보진영은 지금이라도 확고한 변혁적 원칙 아래 통 큰 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또한 대중 속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 보수 정치권은 돈과 조직, 바람으로 선거를 진행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끊임없이, 꾸준히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들을 의, 조직화한 성과를 바탕으로 선거를 진행해야 한다. 뿌린 만큼 거두기 마련이다. 평소에는 얼굴도 비치지 않다가 선거를 앞두고 반짝 선거운동만 하는 식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평소에 대중 속에 들어가는 기풍을 만들고 대중운동을 개발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마지막으로 실력 있고 유능한 일꾼들을 많이 키워야 한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당선 유무를 떠나 득표율에서 천차만별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후보가 그동안 얼마나 실력 있고 유능한가를 보여주었는가도 중요한 요인이다. 진보진영은 몇몇 명망가에 의존하는 식으로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모두가 뛰어난 실력가, 유능한 일꾼이 되어 토론회든, 연설이든, 대중투쟁이든, 원내 활동이든, 정책 생산이든 다 보수 정당보다 잘 해야 한다.
이번 총선으로 진보진영은 많은 경험과 교훈을 얻었다. 여기에 토대를 두고 새로운 비약을 이루어낸다면 얼마든지 민중이 주인 되는 참 세상을 열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힘차게 도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