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and Power (`인디언의 노래` 중에서) Joanne Shenandoah
사이버형 수도공동체 '까따꿈바묵상회'에서 올리는 [묵상음악] 중에서
http://cafe.daum.net/catacumba
여기 올려드리는 인디언 일러스트레이션, Susan Seddon Boulet의 그림들을 웹 속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 느낌은 뭔지 모를 알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엔 작가의 이름이나 그림에 대한 설명을 전혀 얻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그 상태로 아주 오래도록 간직해온 그림들입니다.
상당한 뉴에이지적 사상의 흐름을 잡아낼 수 있는 소스가 많은 그림들이죠?
그래서 쉬 이 그림들을 블로그에 올리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쯤 전에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카페 '인디언 영성' 코너에 올리면서
이 그림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 서핑을 해보았네요. 그리고 비로소 Susan Seddon Boulet의 작픔 세계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그림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면서 느낀 것은 섬세하면서도 정밀한 붓의 텃치와 환상적이면서 몽환적인 색채의 조화, 그 큰 아름다움이 '예술적'이라기보다는 '영적'이라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 영적인 느낌이 강해질 수록 그 시각적 아름다움과 상관없이 제 영과는 절대로 하나 될 수 없는 거리와 깊이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예, 저는 아닙니다. 이 그림들이 아무리 영적이라고 해도 이 그림들은 제 영성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반대합니다. 다른 영의 영적인 기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디언 영성'이라는 표면적 주제에 대해선
다름이나 분리감이 아닌 오랜 익숙함과 친밀감으로 텃치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오히려 제 본성에 아주 근접해 있는듯한 인디언 영성이 최근 제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앞서 올려드린 Alfredo Rodriguez의 인디언소녀들 그림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그 어떤 일치감인데...
아직 그 실체에 선명히 접근하진 못했습니다.
이 또한 제 영적인 순례의 여정 중 아직 들어서보지 못한 길로서 한 번은 들려 갈 길이라 여겨집니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기독교권 내에서 쉬 받아들여질 것같아 보이지 않는... 여튼, 그런 중 여기 올려드리는 Susan Seddon Boulet의 영혼에 관한 그림들은 제가 끌리는 그 인디언 영성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라 그래서 더 정리해 보고픈 욕심에서 올려 둡니다.
제게 이 그림들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그런 만큼 위험성도 감지합니다.
<이와 더불어> 사이버형 수도공동체 [까따꿈바묵상회]에서 제공하는 '묵상글'과 '묵상음악'을 함께 소개드립니다.
깊이있는 영성의 본질로 이끌어 주는 시대 속 정갈한 샘물과도 같은 수도자들의 공간입니다.
자칫 제가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 미혹될 수 있는 그림들이라
이에 대한 안정장치와도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일까요?
제가 영적인 신뢰를 두고 있는 까따꿈바에서 제시하는 인디언 영성에 관한 음악과 메시지로 말입니다. ^^*
수도의 삶과 영성.
저는 이것을 특정계층의 구별된 사람들만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 '성직'이라 구별된 영역권 내의 '성직자'들께선 인정치 않으실 견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까따꿈바묵상공간의 운영진에서 역시 이를 수용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교황과 교회, 전례와 전통을 중시하는 가톨릭에서는 좀처럼 수용되기 어려운 견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입어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누구나가 갖추어야 할 신앙의 근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경건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늘의 백성들이 갖추어야 할 영성으로요.
'까따꿈바묵상공간'을 그러한 영적 수도의 삶을 체험하며 배울 수 있은 곳으로 소개드립니다.
크리스천 서적 중에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있습니다.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깊고 고요한 중에 골방에서 만나주시는 우리 주님은
또한 우리를 현실 가운데 세우시며 이를 단련하시고 발휘케 하십니다.
골방에서의 기도의 영성, 산 중에서의 기도의 영성. 사막에서의 기도의 영성,
그렇게 형성된 영성은 골방과 산 중, 사막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도시와 거리, 시장과 광장에서의 영성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까따꿈바... 카타콤... 그 지하 은밀한 곳의 영성이 도시로, 나라로, 전세계로 퍼져 나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르렀듯이요.
생명은 움직임이고 영향입니다. 곧 힘입니다.
영성은 움직이는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이 곧 바른 영성이라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를 피박하며 카타콤의 순교자들을 만들어 내던 제국의 모습을 도리어 이 땅의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군요. 그뿐입니까?
교회와 주님의 이름으로 이 땅의 작은 자들을 핍박하고
세상 권력과 타협하고 세상 권세로 위장한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치는 시대이지요. 그뿐입니까? 돈이 모든 사람들의 정신적, 물질적 지배자로 군림하며 세상의 가치를 이끌고 온갖 음란과 퇴폐와 폭력과 거짓이 인터넷, 매스컴 등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파워가 인간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삼는 시대를 살고 있지요.
이 모든 정신적 학정 속에서 숨어들 수 밖에 없는 갈한 영혼들에게
카타콤(까따꿈바)의 영성이 더 깊이 사모함으로 바람이 되는 때입니다.
이에 사이버 속 수도공동체, '까따꿈바묵상공간'을 소개드립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사제)입니다. 그 제사장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덕목이요, 근본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어둡고 혼탁한 시대 속에서 등불을 비추려면 말입니다.
특별한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기본을 갖출 수 있는 공간으로 소개합니다.
http://cafe.daum.net/catacumba (_._)*
가톨릭의 종교적 전통이나 인간적 권위가 만들어내는 틀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묵상공간의 중심에 뿌리내려져 심겨있는 복음의 메시지들에 마음을 모으고 기도의 형식과 틀 속에 간직된 말씀의 영상들을 보라는 것입니다. 짤막히 소개되는 일상의 언어들 속에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인간의 태도를 배우자는 것입니다.
by 개울이 리니, Mizmor S린.
까따꿈바묵상공간 http://cafe.daum.net/catacu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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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항구>
사람들은 미래의 실존에 대한 굳건한 신념과, 만족스러운 믿음에 대한 깊은 영적 갈망을 갖고 있다. 그 같은 믿음은 안정된 인격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그처럼 영혼이 닻을 내릴 항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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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의 회상>
어린 시절의 우리는 베푸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명의 가르침은 그런 아량을 잊게 했다.
애초에 우리는 자연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인공의 삶을 살고 있다.
그때는 작은 조약돌 하나도 소중했다. 날마다 크는 나무도 경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겨우 돈으로나 가치를 따질 수 있는 풍경화 따위를 섬기고 있다니!
우리는 변했다. 우리는 자연의 바위를 부숴 벽돌을 만들고, 그 벽돌로 마음의 벽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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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7-9]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
이 세상의 부(富)는 빌려온 것이다. 진실로 좋은 것은 아무도 혼자 소유할 수 없다.
태양은 황금빛 햇살을 내리고, 대지는 샘솟는 옥빛 물을 선사한다.
옥수수의 녹색 이파리를 만지듯, 우리는 그 생생함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가운데 그 어느 것도 하루 이상 가질 수 없다. 찰나가 지나면 그 아름다움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기억 뿐이다.
올바른 행동에 대한 회상과 사람들에 대한 소중한 기억. 이것 하나만은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글, 인디언의 삶의 지혜'>
[자료출처 : '두올묵상집'에서 발췌 / 편집: 까따꿈바 묵상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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