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전 읽기]
《앙굿따라 니까야 》제5권『아홉의 모음』[제4장 대 품] <머묾 경2>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의 증득[九次第住等至] - ➅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묾
7.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대한 인식이 소멸한 그곳에서,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을 모두 소멸한 그들이 머문다.
참으로 그런 존자들은 갈애와 사견이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꺼지고, 그 [禪의] 구성요소로 [감각적 욕망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했다고 나는 말한다.
'그런데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은 어디에서 소멸하며, 누가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을 모두 소멸한 뒤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서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소멸하고,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을 모두 소멸한 그들이 머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은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반가워할 것이다.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반가워한 뒤 절하고 합장하여 그를 예경할 것이다."
<계속>
《앙굿따라 니까야》 제5권
『아홉의 모음』[제4장 대 품]
<머묾 경2(A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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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문은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을 증득함[九次第住等至]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은 경전입니다.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 중 여섯째는 식무변처(識無邊處)을 증득해야 머물게 됩니다.
식무변처에는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소멸한 그곳에서,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을 모두 소멸한 그들이 머뭅니다.
그런 그들은 갈애와 사견(邪見)이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꺼지고, 그 禪의 구성요소로 감각적 욕망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했다고 부처님께서는 인정하시는데
"나는 몰라요."라고 하고 말하는 도반이 있다면 잘 설명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식무변처를 닦고자 하는 공무변처에서 위험을 보고 집착을 종식시킨 뒤 식무변처를 고요하다고 마음에 잡도리하고, 그 허공을 가득 채우면서 일어난 알음알이[識]에 대해 '알음알이, 알음알이'하면서 계속해서 전향하고, 마음에 잡도리하고, 반조하고, 추론으로 치고, 일으킨 생각으로 쳐야 한다고 합니다. '끝없다, 끝없다'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그 표상인 알음알이에 계속해서 마음을 가져갈 때 장애들이 억압되고, 마음챙김이 확립되고, 근접삼매로 마음이 삼매에 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될 때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했기 때문에 '끝없는 알음알이'라 하면서 식무변처에 들어 머문다고 합니다.
'완전히 공무변처를 초월했기 때문에'
禪과 대상, 이 둘 모두를 일어나지 않게 하고 또한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음으로써 초월한 다음 이 식무변처에 들어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선과 대상, 이 둘을 하나로 만들어 공무변처를 초월했기 때문에'라고 설했다고 알아야 합니다.
'끝없는 알음알이'
이는 '끝없는 허공'이라 하면서 이와 같이 허공을 두루 채우고 일어난 알음알이에 대해 '끝없는 알음알이'라 하면서 마음에 잡도리한다는 뜻입니다.
끝없는 알음알이라는 것은 수행자가 알음알이에 의해 닿은 그 동일한 허공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끝없이 가득 채우기 때문에 끝없는 알음알이라 합니다.
이런 알음알이가 끝없는 식무변처에 들어 머뭅니다.
여기서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소멸하고,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을 소멸한 그들이 머뭅니다.
이와 같이 식무변처에 머묾을 동료 도반에게 설명해 준다면 이들은 "훌륭합니다."라고 찬탄하고 기뻐하고 예경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식무변처에 머묾이 여섯 번째 머묾입니다
가을에 가 본 봉정암 순례길은 여름에 갔던 봉정암 순례길과는 색다른 면이 있어 사계절을 다 경험해 봐야 묘미를 더욱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오늘도 언제나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 그리고 안전을 잘 챙기시면서 정견과 자애와 연민이 함께한 넉넉한 마음으로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백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