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한 천양희(29회) 동문
"시는 내 정신의 밥"- 40여 년을 시와의 사랑에 빠져
인터뷰/ 김숙(47회·소설가)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忘草) 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천양희 시인이 서울신문사가 주관하는 제13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한 <마음의 달>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그이에 대한 이야기의 서두로는 부족한 듯하여 중간 부분을 더 조금 더 인용하기로 한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론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나는 무엇엔가 찔려본 그이를 어서 만나고 싶어 약속 전날 밤부터 설레었다. 시를 통해 그이를 안 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나는 그이의 시만 좋아했을 뿐 만난 적도 없었고, 물론 신상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이가 경남여고 선배라는 걸 안 지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선배 인터뷰가 핑계가 되어 오래 가슴에 담아 두고 있던 시인과의 만남이 당겨졌다.
기세 좋은 태풍 '나비'가 돌풍과 비를 몰고 올 것이라는 예보를 보기 좋게 뒤엎은, 초가을 볕이 제법 따갑게 내리쏘는 9월 첫째 목요일에 우리는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났다. 먼저 와 기다리며 환한 미소로 손짓을 하는 십여 년 선배를 향해 나는 어린애처럼 달려갔다. 가까이 다가가 가장 먼저 안 것은 그이가 생각보다 젊고 아름답다는 것이었고, 그 다음, 검정색 복고풍 바지 아래 꽤 굽이 높은 샌들을 신고 있다는 데 놀랐다. 까만 옷 때문인지 그이는 흰 얼굴과 커다란 눈이 유난히 돋보였다.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은 알아보기 마련이라던가, 우리는 선후배 관계라는 걸로 굳이 엮지 않아도 금세 오랜 지기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학교 선배로서는 물론 문학인으로서도 한참 선배이긴 해도 시인과 소설가인 우리는 어쨌든 동업자이기도 하니.
굳이 형식을 만들어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 별러 만난 선배님인 만큼 나는 그냥 재재거리며 놀고 싶었다. 사실 나는 그이와의 인터뷰를 위한 사전 준비로 인터넷에 실린 그이에 관한 기사와 강연, 인터뷰들을 두루 섭렵한 터라 커다란 줄거리는 이미 꿰고 있기도 해서 굳이 알고 싶은 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또 동창회보의 선배 인터뷰라는 지면의 성격상으로 보아도 그의 시적 업적이나 그의 신상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터였다. 다만 우리 동창 중에 좋은 시를 오래 써오고 있는 시인이 있고, 그이가 근래에 시집을 출간했고, 그 시집에 있는 시가 그이에게 세 번째로 상을 안겨주었다는 걸 알리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지면이 선배가 후배를, 후배가 선배를 마음으로 축하해주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이가 7년 만에 출간한 시집 『너무 많은 입』(창비)에 실린 시 <마음의 달>이 그이에게 세 번째로 상을 안겨주었다. 1996년의 소월시문학상과 1998년의 현대문학상에 이은 이번 공초문학상 수상은 그이가 예순이 넘어 받은 상이어서 좀더 특별하지 않을까. 나는 예순이 넘어서도 그이처럼 시 생각만 하고, 그래서 시가 일생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시나 소설이 아닌 그 무엇이라도 그것 생각만 하다가 그것이 일생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의 얼굴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행복해보여서 더 아름다운 선배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 마음의 카메라 셔터를 거듭 눌렀다. 찰칵 착, 찰칵 차륵 착.
공초문학상이 현대시의 거목 공초 오상순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인만큼 그이는 상을 받고 가장 먼저 공초 선생님의 묘소가 있는 수유리 빨랫골을 찾았다고 한다. 참배를 하는 동안 꿩이 와서 울다가 참배가 끝나고 내려올 무렵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 그이는 공초 선생님의 영혼이 잠시 다녀가신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단다. 까마득한 후배 제자가 찾아와 상을 받았다고 고하고 감사의 절을 올리는데 어찌 공초 선생님이 반가워하지 않으시겠는가. 그이의 마음결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동숭동 학림다방 안이 문득 숲으로 변하며 어디선가 꿩 울음이 들리는 듯도 하여 나는 잠시 말을 잊고 귀를 기울였다. 꿩의 울음은 평생 시만 알고 살아온 그이에게 장하다고,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리며 건네는 공초 선생님의 격려의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이는 왜 시를 쓰는 것일까. 그이에게 있어 도대체 시란 무엇일까. 이것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지만 그이는 명료하게 대답한다.
- '나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어요. 그럼 시가 밥 먹여주냐고 묻는다면, 나는 '시가 내 정신의 밥이다'라고 분명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쌀로 된 이밥은 우리 배를 부르게 하지만, 시는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는 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편의 시를 가슴에 넣고 하루를 너끈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한 편의 좋은 시가 가슴속을 따뜻하게 해서 평생을 거기에 기대면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요. 한 끼의 밥은 굶을 수 있어도, 정신의 허기는 사람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시가 밥의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시로써 배부른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만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다. 1965년 이화여대 3학년 재학시절에 등단했으니 그이가 시와 연애한 지 올해로 꼭 40년이 되는데, 40년을 사랑하고도 사랑에 빠져 있을 수 있다니 나는 그만 숙연해졌다.
그이는 정신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 시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시는 정신의 허기만이 아니라 현실의 허기를 채워주는 밥이기도 했다. 사람에 절망했을 때 미래가 막막할 때 시를 읽기도 하지만 생활이 나를 속일 때도 나는 시를 읽는다. 어떤 시는 소리내어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시는 외울 만큼 읽고 또 읽는다. 어떨 때는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소리도 없이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저절로 미소가 번져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나는 언제 생활이 나를 속였느냐는 듯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고 다시 생업에 뛰어들어 꿋꿋이 살아갈 수 있다. 즉, 나는 시는 쓰지 못하지만 시를 잘 먹는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 시는 곧 밥이다.
나는 그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궁금했다. 한 소녀를 영원한 시인으로 살게 하는 데는 수많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기름진 토양이 틀림없이 한몫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한시를 즐겨 쓰던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사랑채에 사람들을 불러모아 한시를 짓고 읊곤 했지요.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시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고, 붓글씨도 어려서부터 익힐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밥을 구걸하러 온 거지들에게도 먹을 것을 상에 받쳐 내줄 만큼 사람을 중히 여기던 어머니가 내 시심의 원천이 아닐까 종종 생각합니다. 척박했던 그 시절, 중학교만 졸업하면 방직공장으로 돈 벌러 가야 했던 친구들과 달리 경남여고까지 기차통학을 하는 딸이 혹 자만심에 빠지지는 않을까 우려하여 꼭 나에게 상을 들려 거지에게 내보내곤 했던 것 같아요.-
시집에 사인을 하는 그이의 글씨가 유달리 달필이었던 데는 다 내력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린 딸에게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무언으로 가르쳐주셨던 어머니가 계셨기에 그이의 시에서는 인간 냄새가 짙게 풍기는 것이리라.
경남여고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고 싶어하는 후배에게 그이는, 당시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지는 않을 때였는데도 경남여고 시절 선생님들은 주로 공부만 시켰던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단, 수업시간마다 그이에게 리딩을 시키고, 따로 영시를 알려주기도 하는 등 그이의 문학적 재능을 끌어내 주려고 애쓰셨던, 성함도 잊고 만 영어선생님 한 분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먼 기억을 되살렸다. 유치환 선생님은 그이가 다니던 때가 아니라 한참 뒤에 교장선생님을 지내셨는데 그이가 다닐 때 계셨더라면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얼핏 생각했다.
우리는 등다방, 수다방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며 그 시절로 함께 돌아갔다. 그이가 쓰던 책걸상을 내가 썼을지도 모르고, 그이가 윤이 나게 닦던 마루 복도를 내가 다시 닦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무슨 커다란 비밀을 공유한 것처럼 은밀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서로 바쁜 일들에 쫓겨 우리는 아직 해가 남아 있는 시각인데도 머잖은 날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에 만날 땐, 그이가 시가 잘 안 될 때면 간다는 새벽시장에서 만나는 건 어떨까. '늘 깨어 있어 생생한 기운을 잃지 않는 새벽시장. 어둠보다 더 두려운 권태도 떨쳐버리게 해주는'(천양희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 p.43) 새벽시장을 걸어가는 그이를 방해하지 않고, 나는 다만 그이가 걸어가는 길을 천천히 뒤따라 가보고 싶다. *
(2005년도 경남여고 동창회보에 수록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