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건반 앞에서>
청춘은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아이 같아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도를 누른 후, 아이는 남은 87개의 건반 중에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 겁에 질려요. 너무 많은 건반, 너무 많은 검은 색과 하얀 색, 너무 많은 화음, 너무 많은 가능성. 보면대에 놓인 악보는 사실 하나도 읽을 수 없는데,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 모른 채 손가락에 힘을 주지도 풀지도 못하고 울먹이는 것이 바로 청춘의 얼굴. 안쓰러워서 사랑스러운, 그저 처음 피아노 앞에 앉았을 뿐인 우리.
<아이 엠 그라운드>
방방인지 봉봉인지로 불렀던 놀이 기구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트렘폴린이라는 것을 배운 순간, 왠지 삶의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피자 가운데 놓인 삼발이 플라스틱이 피자 세이버라는 사이버펑크한 이름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마치 우주의 비밀을 엿본 느낌이었다. 물결에 부서지는 노란 햇살이 윤슬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듣게 된 후로는, 반짝이는 모든 눈부심이 기꺼워졌다. 그저 가로수였던 나무들이 느티나무, 이팝나무, 플라타너스, 왕벚꽃나무가 되고부턴, 혼자 걷는 거리가 더 이상 쓸쓸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서 시작하자.
네 이름을 알게 된 내 세상이 또 어떻게 변할지 가슴이 설렌다.
<인생에 꽤나 도움이 되는 영화 용어>
맥거핀은 마치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스토리와 별 상관이 없는 영화적 눈속임 장치를 이른다. 전개와 무관하면서도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아 혼란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서류 전형에서 42번째 떨어진 일, 괜히 일터에서 괴롭히는 선배, 처참하게 차인 고백이 당신이라는 영화의 맥거핀이다. 비록 지금은 그것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것처럼 압도적이고 두렵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당신의 삶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살짝 스포를 하자면 사실 이번 생에 당신을 힘들게 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다 맥거핀이다. 알았으니 이제 눈물을 닦자. 코를 풀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자. 언젠가는 반드시 들통나기 마련인 맥거핀을 제치고, 당신의 진짜 스토리를 풀어낼 차례. 레디, 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