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
이 호윤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정리도 못하는 편이라 넘치는 물건들에 파묻히기도 일쑤다. 모처럼 만의 정리 중에 서랍 안쪽 깊숙이 넣어둔 지퍼백을 발견했다. 머릿속으로 헤아려보니 3년은 된 것 같다. 엄마처럼 순하고 여린 핑크와 연록의 동그랗고 두툼한 아크릴 수세미가 들어있었다. 뜨개질하던 엄마 생각이 번뜩 났다.
앓고 계시던 파킨슨병이 심해지면서 붓글씨를 그만둔 엄마는 뜨개질을 하셨었다. 조끼며 목도리, 깔개도 떠주셨는데 그것도 나중엔 힘들어 하셨다. 그래도 아예 손은 못 놓고 아크릴 실로 수세미를 떠주셨다.
엄마가 떠 주신 수세미는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다. 마트에서 파는 여느 수세미와는 비교가 안되었다. 까슬까슬한 은사를 포함한 반짝이는 예쁜 색깔과 다양한 모양이었고 가벼운 아크릴사를 두툼하게 이중으로 떠서 한번만 문질러도 손쉽게 얼룩이 제거되었다. 사용 후엔 쉬이 마르고 세제를 묻히면 속 깊은 엄마의 보이지 않는 사랑처럼 풍성한 거품을 내뿜었다. 1년이나 되었을까? 그마저도 힘에 부친다며 동그란 모양으로만 몇 개씩 만들어 삼남매에게 고루 나누어주시고는 영영 떠나버리셨다.
그다음 해, 그러니까 재작년 설 연휴 때다. 동서 형님들과 다과를 즐기던 중에 수세미 뜨개질이 다시 유행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엄마가 주신 수세미가 두 개 남았는데 차마 못 쓰겠노라 하곤 울컥해버렸다. 수세미가 더 이상 거품을 내어주지 못하면서 주방에서 퇴장해버렸는데 그 마지막 두 개는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수세미 속에는 엄마의 사랑이 봉인돼 있는 것만 같았다. 바로 위 동서 형님이 “에구~” 하시더니 마침 가방에 실이 있으니 얼른 떠서 주마고 하셨다. 그러고는 정말 앉은 자리에서 예쁜 원피스 모양의 수세미를 두 개나 떠주셨다. 형님이 수세미를 뜨는 순간 나는 어린애처럼 마음이 풀어져 버렸다. 다 쓰면 어떡하냐고 하니 또 떠서 주겠다고도 하셨다. 형님이 엄마가 되었다. 이제 엄마의 수세미를 보면서도 형님의 수세미를 떠올리게 되었다.
물끄러미 수세미를 바라보다 형님께 전화를 걸었다. 벌써 1년이 다 되도록 오지 않고 계신 형님. 코로나 때문이라고 하지만 제사와 어머님 생신 때도 아주버님 혼자 오셨다. 그런데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시댁 어른들은 당사자 스스로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먼저 물어보시는 법이 없다. 혼자 내려오시는 아주버님이 말씀 안 하시니 모두 궁금해 할 뿐 난처해 하실까 싶어 묻질 않는 것이다. 형님이 나보다 연세가 한참 위이시라 내가 형님께 묻기는 더욱 어려웠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잘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형님은 밝은 목소리로 반가워하셨다. 이번 설엔 내려오겠다고 하셨다. 명절 음식 준비는 일찌감치 해놓고 있을 테니 천천히 내려오시라 했는데 너무 늦지 않게 오셔서 만두도 함께 빚었다. 미소 띤 얼굴로 들어오는 형님 손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커피 번과 따끈한 커피도 들려있었다. 아, 다행이다. 이제 해결되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가 물었다. 언니와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와도 되느냐고. 집안의 귀여운 막내딸이었던 착한 조카는 우리 딸과 친자매처럼 지낸다. 선이 굵은 성격이며 음악과 게임을 좋아하는 것까지 둘은 닮았다. sns 덕분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둘은 서로의 비밀이나 영역을 존중해 주는 것 같다. 어쩌면 집안 풍속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으로 깊이 아끼고 함께 하되 때로는 한발 물러서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 모른 체해 주는 것 말이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어릴 때 혹시 말 트임이 늦거나 걸음마를 못 떼도 아무도 알은체를 안 했다. 이따끔씩 보는 조카들에게 공부 잘하냐고 묻는 법도 없었다. 취업이나 결혼에 관한 잔소리뿐 아니라 왜 아이 소식이 없냐고도 묻지 않는다. 관심이 없냐고? 그렇지 않다. 도움이 필요할 땐 물심양면으로 온 가족들이 돕는다. 기쁜 일이 생기면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맘껏 웃고 슬픈 일엔 어깨를 기대며 그래도 외롭진 않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일까? 명절이 아닐 때도 자주 모이는 편이다.
내 부모님도 모른 체해 주시는 일이 많았다. 맘속 깊이 사랑을 품고 지켜보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우연인 듯 도움의 손길을 내미셨다.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이러한 부모님을 갖게 된 것은 내게 크나큰 행운이다. 모른 체하는 것은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 것인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딸애가 놓치는, 혹은 놓칠지 모를 기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수시로 끼어들곤 했던 것이다. 아이는 후에 그것을 두고 그렇게 못미더웠느냐고 하소연을 했었다. 여전히 조급한 엄마지만 그래도 조금은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체할 수 있었을 때 아이는 성큼성큼 큰 걸음을 내디뎠다.
언제부턴가 그 어떤 진리도 언제나, 누구에게나 옳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 만물이 제각기 다 다르듯이 우리 집안의 가풍이 항상 좋기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이 모른 체하기가 점점 좋아진다. 너무 가까이 와서 들여다보려 하고 심지어 내 운전대를 잡으려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욱 그렇다. 무심한 듯하지만 언저리에서 잠자코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싱크대 위에 무심한 듯 놓여있는 하찮은 물건일 수 있겠지만 주방 살림에 없어선 안되는 예쁜 수세미처럼 묵묵히 있다가도 담뿍 사랑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첫댓글 선생님은 참 복이 많으신분 같네요
친정이나 시댁이나 다 잘지내시니
어쩌면 엄마가 만들어 주신 수세미는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귀중품이 되겠네요
귀중품이지요~감사합니다~^^
남는 수세미 있으면 하나 주슈...잘 간직하게..
ㅋㅋㅋ
한걸음 뒤로 물러서 지켜보면서 응원해주고
결정적인 순간에 우연처럼 손을 내미는...
이상적인 가족 사랑이네요.
좋은 글 감상 잘 했습니다~^^
이상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ㅎㅎ) 좋은 면만 기억하려 애쓰는 중입니다~다들 아시겠지요? ^^
서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거지요.
수세미에서 삶의 철학이 술술 풀려나오네요.
수필과비평 진출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선생님. 선생님께 수필을 배우면서 철학도 인생도 배우고 있어 행복합니다~
'모른체 하는 것이 믿고 기다려 준다는 것이다.' 동감입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일수록 모른체하는 것이 잘 안될 때가 있지요.
나도 호윤 샘처럼 무심한 듯하지만 언저리에서 잠자코 기다려주는 사람,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되려고 마음 먹어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의 경우엔
마음먹는다기보다 걍 막연한 바람입니다만 (어쩐지 핑계대고 한쪽 발을 슬며시 빼는 것 같지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계의 미학이군요. 적당한 거리두기.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지요.
소리만 요란한 관심보다 소리없는 관심만큼 큰 힘은 없다는 것을 깨우치는 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소리없는 관심...맞습니다. 어렵지만 멋진 일이지요. 감사합니다~^^
수세미를 오브제로 한 글 잘 보았어요.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셔서 더 공감이 가요.
전 일명 행복한 이기주의자라 해요.
따로 또 가치를 추구하는 인생관이 저랑 닮아서 깊은 공감을 했어요.
고생하셨어요.
그러셨군요~ 엄청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