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반 다이크( Anthony van Dyck , 1599-1641년)는 플랑드러( 저지대,네델란드 지역) 사람이다. 특히, '플랑드르 그림'의 대표적 초상화가로 유명하다.
루벤스에게 배우고 그의 조수로도 있었다.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티치아노·베로네세등 베네치아대가의 감화를 받았으며, 영국의 회화 특히 초상화에 영향을 끼쳤다.
부드러운 구도와 선미한 색채로써 종교, 신화, 우의적인 제재도 취급하였으나 초상화가로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영국 화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17세기 유럽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의 한 사람이다.
1632년 부터 찰스 1세의 의 궁정 화가로서 죽을 때까지 200점이 넘는 초상화를 남겼다.
대표작으로〈십자가 강하〉,〈찰스 1세의 초상〉등이 있다.
아리 셰퍼 (1795-1858년), 네델란드
그림의 제목이,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에 나타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 말라 테스터의 영혼
쇼팽과도 친했든 이 작가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현실에서 일어나는 극적인 장면들을 그리기를 좋아 하는 화가였다.
위 제목의 이야기는 실제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작가가 단테 신곡에서 꺼집어냈다
검고 어두운 배경에 하얀 나신의 미인이 보이고 두 사람의 남자가 무겁고 우울한 표정으로 서 있다
여자는 프란체스카, 남자는 파올로다
여자는 통통하고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이고 남자도 천에 얼굴이 반이 가려져 있지만 미남이다
둘 다 행복한건지 아주 절망스러운건지 복잡한 느낌으로 그려져 있다
옆에 서 있는 두 남자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다
여자와 남자는 이태리 두 귀족집안인데 로마오와 줄리엣 처럼 원수 집안이다
그러다가 두 집안 어른들끼리 화해를 위해 정략결혼을 하자고 추진하는데,
정략결혼을 원치 않았든 프란체스카였지만 맞선을 보는 장소에는 키도 훨씬하고 미남인 파올로를 보고 첫 눈에 반하고 결혼을 승락하게 되지만,
첫 날 밤을 치루는 남자는 뜻밖에도 그의 형인 조반니로 등이 굽고 다리도 저는 불구자였다.
허나 업질러진 물이 되어 결혼을 무효로 할 수는 없고 불행한 결혼 생활이 시작 되는데 조반니는 성격도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다
형 대신 선을 보러갔던 파올로는 죄책감에 형수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잘해 준다.
그러다 선남과 선녀 사이에는 사랑이 싹트게 되고 단테가 왜 지옥문 앞에서 두 사람이 검은 바람에 휩싸여서 떠돌고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파올로는 우느나고 대답을 못했고,
프란체스카가 왜 우리가 이렇게 시작이 됐는지 이야기 하게 되는데 원탁의 기사에서 아더왕 왕비와 원탁의 기사 이야기 처럼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 실행이 된다
그러다가 남편 조반니가 이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알고 불같은 성격으로 집으로 달려가니 마침 둘이 섹스를 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고 프란체스카는 파올로 위에 올라가 애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등 뒤에서 찌른 창이 프란체스카를 관통하고 파올로 가슴까지 들어간 것이 보이고 두 사람이 즉사했다고 한다.
명백한 불륜이고 간음이기 때문에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룰 수 없었고 당시에는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루지 못하면 지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두 사람은 저런 모습으로 서로 안고 영혼이 바람에 휘날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의 그림이다
램프란트 그림이다
램브란트
카날레토( 1697-1768년) 베니스,
주데카 운하의 바치노 디 산마르코
반 다이크 그림
바로크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그림 마르가리따 공주다.
이 화가는 24세 때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로 발탁돼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펠리페 4세와 가족들을 그렸다.
펠리페 4세는 오직 벨라스케스에게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할 정도로 그를 신뢰했고, 화가 역시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왕에게 존경을 보냈다.
둘의 우정은 여느 왕과 궁정화가 사이에서 보기 어려울 만큼 깊었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그림들에서 삼촌이 조카를 바라보는 듯한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당시 스페인 왕실은 궁정화가에게 공주의 성장 과정을 그림으로 기록하게 했는데,
‘흰옷의 어린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공주가 가장 사랑스러웠던 다섯 살 때(1656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쓱쓱 그은 듯한 선 몇 개로 흰색 원피스의 주름을 묘사한 신기에 가까운 붓터치가 돋보인다.
공주는 열다섯 살 때 외삼촌 레오폴드 1세와 정략결혼해 네 아이를 낳은 뒤( 그 중 셋은 요절한다) 22세의 나이로 출산 중 유명을 달리했다.
근친 결혼으로 인한 유전병으로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녀의 어릴 적 사랑스러운 모습은 세계 미술사에 영원히 남았다.
좋은 그림들 많으나 지루하니 다음으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