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실토실, 쫄깃쫄깃’
배에서 갓 잡아올린 녀석 초장찍어 한입에 '쏙' "요즘 한창 제맛 날때죠"
낙지보다 못한 취급받다 다양한 요리법 생기면서 귀한 몸으로 신분상승
30일 열리는 쭈꾸미 축제 많이많이 찾아오세요
‘오동통한 살집, 졸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맛.’ 주꾸미 철이 돌아왔다. 주꾸미의 본고장 충남 서천 앞바다에선 요즘 주꾸미잡이배들의 싱싱한 봄맛 길어올리기 작업이 한창이다. 3월 말~4월 중순 이 지역을 찾는다면 주꾸미와 함께 오백년 묵은 동백나무숲이 붉은 꽃송이들을 발치에 깔아놓고 펼치는 꽃잔치를 덤으로 즐길 수 있다. 맛과 멋이 어우러진 봄바닷가 여행이다.
●소라껍질마다 숨은 살오른 주꾸미
“오늘은 토실토실한 놈들이 많이 나오네.” 서천 서면 마량포구에서 20여분 거리의 앞바다. 주꾸미잡이를 나온 이만구(44)씨가 굵직한 소라껍질이 줄줄이 달린 줄을 당겨올린다. 소라껍데기 서너개중 하나 꼴로 주꾸미가 들어 있다. 줄을 당기며 한손으로는 쇠꼬챙이로 주꾸미를 빼내 물통에 던진다. 당기고 빼내고 던지는 동작은 거의 한순간에 이뤄진다. “지금이 한창 제맛을 낼 때죠. 잡숴보실라우” 이씨가 주꾸미 한마리를 치켜든다. 익혀먹는 것보다는 산 주꾸미를 초장에 찍어먹는 맛이 그만이란다.
소라껍질은 전통적인 주꾸미잡이의 요긴한 장비다. 긴 줄에 소라 껍데기를 일정한 간격으로 달아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혀 놓으면 주꾸미가 ‘제집인 줄 알고’ 들어가 숨는다. 어부들은 하루나 이삼일에 한번씩 바다에 나가 줄을 당겨올려 소라껍질에 든 주꾸미를 끄집어내면 된다. 한 줄에 보통 100개 안팎의 소라를 다는데, 바다에 내릴 때 이 줄 수십가닥을 이어 바다에 가라앉히고 부표에 깃대를 세워 표시해 둔다. 이렇게 한번에 가라앉히는 소라껍질 수가 많게는 수만개에 이를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소라껍질로 잡은 주꾸미는 ‘침을 맞아’(쇠꼬챙이에 찔려) 오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요즘은 그물을 가라앉혀 두고 산채로 잡는 ‘낭장망’을 많이 쓴다. 일부에선 금지된 방법인, 그물로 바닥을 훑는 ‘끌방’을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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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량포구 위판장에 들어온 쭈꾸미 분류작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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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높아 갈수록 비싸져
주꾸미는 낙지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작고 다리도 짧다. 맛에서 낙지보다 한수 아래로 쳐왔으나, 최근 구이·전골·샤브샤브 등 다양한 요리방법이 개발되며 미식가들을 사로잡고 있다. 산란기를 앞둔 3~4월이 가장 많이 나오고 맛도 좋은 때다. 4월 이후엔 맛이 질겨지고 깊은 바다쪽으로 이동해 잡히는 양도 줄어든다. 70년대까지 철사줄에 10마리씩 꿰거나(한 뭇), 1000마리씩 상자에 담아(한 동) 값싸게 거래됐지만 요즘은 찾는 이들이 늘면서 값이 많이 올랐다. 2~3년 전 ㎏당(10마리 안팎) 3000원 선이던 것이 요즘은 경매가가 1만원을 넘을 때가 많다. 날씨와 출어 규모, 전날 잡힌 양에 따라 그날 들어올 주꾸미의 경매가가 아침에 미리 결정된다. 지난 14일 마량항 주꾸미 경매가는 1만1700원. 전날엔 8200원이었다. 양이 많을 때는 소라껍질로 잡은 것보다 그물로 잡은 것이 더 비싸게 거래된다. 마량리 이장 조광병(53)씨는 “개펄과 모래가 반쯤 섞인 곳에서 잡은 주꾸미가 맛이 가장 좋은데, 홍원·마량 앞바다가 바로 그런 곳”이라며 “영양·맛이 모두 최고”라고 말한다.
마량리 동백나무숲 들머리 바닷가에선 30일~4월12일 ‘동백꽃·주꾸미 축제’를 한다. 주꾸미요리 장터, 민속놀이 장터, 소라껍질을 이용한 주꾸미 낚시터 등이 마련되고, 각종 공연이 이어진다. 29일 오전엔 요리경연대회가 열린다. 서천군청 문화관광과 (041)950-4018.
서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leebh99@hani.co.kr
※여행정보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나들목을 나와 21번를 타고 가다 607번 지방도를 만나 서면 춘장대쪽으로 우회전한 뒤 팻말 따라 마량리로 간다. 주꾸미잡이로 이름난 마량항과 홍원항은 차로 10분 거리.
<먹을거리> 마량·홍원항 부근 대부분의 횟집 등에서 주꾸미 관련 음식을 낸다. 마량리 동백나무숲 들머리의 서산회관(041-951-7677)은 주꾸미전골을 잘 하는 집. 육수없이 주꾸미와 미나리·양파·깻잎 등 야채에 고추장을 넣어 자작자작하고 얼큰한 전골을 만든다. 2만~4만원. 마량리 포구의 서해안횟집(041-952-3177)은 주인이 직접 고깃배를 부리며 자연산 회만을 내는 집. 광어·도다리·도미 등 1㎏에 5만원.
<묵을곳> 마량·홍원·무창포해수욕장 일대에 여관·민박집들이 있다. 2만5000~4만원. 마량리 동백정별장(041-952-2245)은 별채 5동을 갖춘 민박집이다. 낡은 것이 흠이지만 주변에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주인도 친절하다. 방2개·부엌·욕실을 갖춘 별채가 1박 평일 7만원, 주말 1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