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기기관차의 추억===
1970년도에 처음 철도에 들어 올때에는 증기기관차로 철도수송을 하였으나 디젤기관차, 전기기관차, KTX고속열차시대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수같이 흐르는 세월은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며 세상을 많이도 바꾸어 놓아 격세 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처음 발령을 받았던 시절 아마도 모든 대지의 사람들이 잠든시간에 어둠을 헤치고 검은 연기와 기적소리를 내품으며 천지를 진동시키고 달리던 아련한 추억의 시절이 그리워 증기기관차의 달리는 위용을 담아 봅니다.
KTX 300k/h 고속열차가 질주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추억이 잠겨있는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는 아련히 귓가를 맴돌고 있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최고의 발명품 증기기관차는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에 의해 개발되여 한세기동안 세계방방곡곡의 교통수단이 되었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달리는 증기기관차의 낭만적인 모습을 보니 지나간 옛 발자취가 새록 새록 그리워 지기에 되돌릴수없는 옛 시절이 그리워진다.
선진 외국에서는 관광용으로 증기기관차를 운행하며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1970년2월20일 목포기관차사무소에 기관조사로 첫부임을 하였으며,
기관조사로 발령받은 나는 보조기관조사로 증기기관차조에 근무가 지정되여, 미카형 스팀기관차가 목포-광주간 통근열차를 운행하였기에 기관사 본무기관조사 보조기관조사 3인이 승조가 되어 보조기관조사로서 임무를 수행하다.
1970년 1년여간 목포기관차사무소 증기기관차조에 근무가 지정되여 입환과 목포-광주간 통근열차에 직접승무하며 화상작업과 화구에 석탄을 투탄하며 힘든 근무를 하였다.
처음 발령을 받았던 시절 아마도 모든 대지의 사람들이 잠든시간에 어둠을 헤치고 검은 연기와 기적소리를 내품으며 천지를 진동시키고 달리던 아련한 추억의 시절이 그리워 증기기관차의 달리는 위용을 담아 봅니다.
증기기관차가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며 칙칙폭폭 애환서린 기적소리와 힘찬 출발의 시동을 온 누리에 알렸던 시기에 장엄하고 아름다운 인생여정 나의 철길인생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증기기관차는 일제가 1945년 패망과 함께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운행하다 버리고 간 기관차와 시설을 인수받아 운행하였기에 남한과 북한은 신호시설, 급수시설, 기타 모든철도설비와 장비가 일제로부터 인수 받은 것이다.
남한에는 증기기관차동영상이 공개된 것이 거의 없어 북한의 동영상을 실어본다.
한국철도 최초의 증기기관차 운행은 1899년 9월 18일 경인선(인천-노량진)을 달렸던 모갈 탱크형 증기기관차이며 그 이후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가 개통된 후 1901년 푸러(PRAIRIE)형 증기기관차, 1904년 소리(CONSOLIDATION)형 증기기관차가 도입되고,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터우형(TEN WHEELER) 증기기관차등이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1905년 경부선 개통에 이어 경의선(1909년), 호남선(1914년), 경원선(1914년) 등이 개통되면서 전국적인 철도망이 형성되었다.
일제 침략기에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의 물자와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철도를 부설하였다.
우리민족의 마음과 몸과 혼을 빼앗고 대한민국 국토의 모든것을 할퀴고 파괴하는 일제의 침략의 야욕에 노예로 또 그들의 향락과 그들의 노예로 삼고 그들의 헛된 야심의 전쟁터로 내어몰던 그 도구가 조선철도였다.
특히 일제시절 호남선 운행은 목포에서 서울을 가려면 대전을 도착하여 기관차를 바꾸어 서울로 가도록 한 것은 일제가 김제,와룡,부용등 호남곡창지대의 쌀과 농산물을 경부선을 이용, 부산항으로 옮겨 수탈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니 나라를 빼앗긴 서글픈 역사의 단면이다.
북한의 현재는 증기기관차가 거의 사라지고 현재는 만포선을 달린다는 말이 있지만 북한이 2003-2005년 전후로 증기관차는 국제열차외 지방노선은 대부분은 이런 기차가 다녔다고 합니다.
연료난 때문이긴 하는데 북한의 기차는 평균속도는 시속 30km, 보통 운동선수 마라톤 달리기 수준입니다.
삐걱 삐걱 귀에 거슬리게 소리가 나는것은 물자부족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한국도 70년대 전후로 증기관차가 다녔습니다.
===목포추억사진첩===
옛시절 사진을 올려 추억하고자 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추억이란 잊어버리려 해도 잊을 수 없어 평생토록 꺼내 보고 또, 꺼내 보는 마음속의 일기장이며, 추억은 지나간 그리움의 시간들이기에 추억을 더듬어 봅시다.
국립철도학교 1970년2월20일 졸업, 목기소에 발령 부임인사후 조동화의 기억으로 지도실과 운용실부근에서 촬영된 추억의 사진으로 알고 있었던 사진이, 김종섭친구가 확인하여 종섭친구가 1971년1월19일 군입대로 지도실에 군입대 휴직 인사차 들리여 신고하니 지도원님들이 모두 나와 군입대의 아쉬움으로 동기생들 불러내어 추억의 사진으로 남았다는 종섭친구의 기억이 정확하오.
종섭친구!
내기억이 틀렸음을 정중히 사과하오.
내친구 김종섭은 글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 명필이었지.
천직의 직장의 지도원님들이 글씨가 명필이라 지도실에서 대기하는날 예쁜글씨를 써주고, 이쁨을 많이 받아 군입대인사차 들리니 사진도 촬영하고 위로 해주었구나.
사진속 홍안의 앳된 모습들!
그들도 세월이라는 단어에 세상의 풍파를 헤치며 오다보니 늙어 버렸네.
한번뿐인 인생길, 군에 다녀오고 결혼하고 자식낳고 천직의 직장생활하며 가족 먹여 살리느라 보니 늙어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지.
늙었다는 것은 행복이라 표현하면 틀린말은 아닐껄.
부모님 탯속에서 태어나 수도 없는 사람들이 꿈도 펼치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죽고, 병이나서 죽고, 자살하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셀수 없이 많음을 안다면 나이먹었다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
잘 살아 왔다는거지.
감사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여.
첫 발령을 받은 목포!
당시만 해도 증기기관차에서 디젤로 바뀌는 과정에 있었지만, 입환기와 통근차는 증기기관차로 운행했기며 초임 발령을 받은 우리들의 근무는 증기기관차조에 지정되여 근무했지.
증기기관차의 추억을 잊을수 없어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지.
이자현기관사님 김육권기관사님 유흥원씨 강영식씨 이기풍씨등이 증기기관차 추억으로 떠오르는구먼.
광주행 저녁통근차 출고준비하는데 고내수 출신 이기풍씨가 나의 보조였는데 그만 화상정리하다가 불을 꺼쳐먹어 전지도원님들이 나와 침목을 화구에 넣고 겨우 불을 살려, 열차 지연 않고 운행했던 기억이 아련히 떠 오르는구먼.
참으로 인간의 운명이란 알수가 없네.
한치앞을 모르는것이 인생길이여.
서울에서 변호사를 하는 부부가 홍천에 주말농장을 운영하며 주말이면 홍천으로 내려와 텃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하였는데,
2022년 5/1 70대의 변호사 가장(74세)이 아내(69세)와 아내친구2명과 함께 주말농장에 텃밭에 심어 놓은 채소를 수확하여 나누어 먹고, 휴식하러 갔는데 4명이 주말농장에 불의의 화재사고가 발생하여 4명 모두가 타 죽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네.
소방서 관계자에 의하면
“욕실에서 2명이 발견, 주방에서 2명 발견” 되었다고 하는데 4명 모두 이세상에 없으니 사고원인이 무엇일까?
변호사는 금요일 사고 하루전 혼자 내려와 텃밭을 가꾸었고,
부인은 친구2명과 토요일 산나물 캐러 홍천에 내려와 전원주택을 찾았다 참변을 당했다 하는데 의문점이 많구먼.
인간사 새옹지마란 말이 맞는말 같여.
다죽어 버렸으니 원인규명이 될수 있을까?
조동화의 벗님들 행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김종섭친구가 1971년1월 군영장을 받아 작별인사차 지도실에 들린후 지도실부근에서 지금은 폐차되어 사라진 4000호대 기관차를 배경삼아 기념사진을 남겼네요. 서종건 선임지도조역, 지도원님들과 한기섭기관사님 강혜진기관사님과 동기생친구들이 사진을 남기었네요.
그러니까 종섭친구가 군입대한다고 신고 하는날 여러장의 추억사진을 남기었구먼.
한기섭기관사님은 100만키로를 무사고로 돌파하여 철도에서 유명한 기관사였지요.
김종섭친구는 군 제대후 강혜진기관사님과 처남 남매지간이 되였지요.
이시절에는 흑백 카메라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이사진의 주인공은 조동화로구나. 김종섭친구가 군입대차 목포기관차 지도실에 들려 군 입대한다고 신고후 누가 사진을 눌러 주었네. 이 젊은이도 석양의 노을이 되었네요.>
<김종섭친구가 군입대 신고차 지도실에 들린후 사무소를 둘러보다가 입사동기생 최화종과 스팀기관차 앞 발판위에 올라 기념촬영한것이다.>
<오신재 김종섭 조동화 한가로이 목포시가지 구경 나왔구먼>
<빛바랜 이사진은 군 입대전 김종섭친구가 유달산정상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이구나. 세월은 덧없고 김종섭친구도 황혼의 나이가 되였구나.>
<목포에서 순수하고 순진했던 새파란 20살의 젊은 친구들 김종섭 오신재 조동화 막 사춘기에 접어든 여학생들과 사진을 찍었었네.>
<1970년 쉬는날 조동화 유형기 조호연 세명이서 유달산에 올라 목포시가지를 구경하다>
<유종회 야유회 날이다. 야외행사에 마이크까지 준비하여 즐거운시간을 갖었었다. 장소는 어디인지 기억이 않나는구먼.>
===빛바랜 추억의 사진첩===
1969년도 철도학교 시절 여름방학때 조성곤생가를 방문, 빛바랜 사진이라 공개합니다.
1969년 여른방학 중 조성곤입사동기생 생가를 방문하여 성곤동생들과 인근의 천태산 정상에 올라가 시골마을 풍경을 감상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다.
추억이 그리워 조동화는 현업에 근무할 당시 이평의 조성곤 어머님을 문안한 추억이 새롭다.
어머님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저세상으로 가시고 인생무상이로구먼.
조성곤입사동기생은 철도에 10여년 근무후 교육계로 전근하여 서울대학교 행정처장으로 퇴직하였다.
성곤친구! 흐르는 세월속에 지나간날들은 추억만이 아롱거리네.
사진속 옥곤아우는 저세상 사람이 되였고, 세상사 야속하구먼
성곤 입사동기생친구 새로운 시간의 시공에서 건강하고 행복하시구려.
인생사 공수래 공수거아닌가.
마음비우고 살게나................
<천태산에서 바라본 시골 풍경이여>
<마당 옆 허청 앞에서 조동화인물사진을 찍어 주었네. 허청안에서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이 보이는것 같여.>
《삶의 보람과 즐거움》
두 눈이 있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두 귀가 있어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두 손이 있어
부드러움을 만질 수 있으며
두발이 있어
자유스럽게 가고픈 곳 어디든 갈수 있고
가슴이 있어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삶의 여정에서
돌아오면 내 한 몸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날 반겨주는
소중한 이들이 기다린 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내가 누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침에 보는
햇살에 기분을 맑게 하며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마음이 밝아질 수 있으니
길을 걷다가도
향기로운 꽃들에게 내 눈 반짝이네
한 줄의 글귀에 감명 받으며
우연히 듣는 음악에
지난 추억을 회상 할 수 있으며
위로의 한마디에
우울한 기분을 가벼히 할 수 있으며
보여 주는 마음에
내 마음도 설레 일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는 행복을 생각합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건강한 모습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이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오늘도 감사 하다는 것을…..
오늘이라는 좋은 날에…
좋은 글 중에서
인간의 노화과정
老化는 生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기의 흐름' 이라는 유명한 動物學者 "콘호드"의 말이 있습니다.
'老化'에는 개인差, 男女의 성차(性差)가 있으나 의사들은 유전(遺傳)성에 많이 관계된다고 합니다.
눈의 老化는 7~10歲부터 시작되고,45-50歲에 이르러서 비로소 노안(老眼)이 되는 것을 자기스스로 인지하고 발견하게 되며.
'미각(味覺)은 13歲 때부터 老化가 시작되니, 4~50代가 되면 味覺신경이 老化하여 13歲前 먹었던, 최고의 음식 맛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게 되며, 나이를 먹을수록 짜게 먹기가 쉽다고 합니다.
體力은 17歲부터 老化하기 시작합니다,
운동중에서 가장 체력을많이 소모하는 운동이 자유형 장거리 수영입니다.
대개 올림픽에서 이 종목에 우승하는 선수는 17~18세 전후인데, 이 승자도 4年 후 올림픽의 이 종목에서는 다시 승자는 되지 못합니다.
'혈관(血管)은 10~12세부터 老化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죽은 깨, 기미는 10세에 시작하여 25세쯤 눈에 띄게 됩니다.
특히 혈관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더 老化하는데, 越南戰에 참전하여 전사한 20代 청년 병사들의 血管이 40代와 같이 老化된 상태로 된것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腦(뇌)는 20歲 때부터 老化하는데, 20歲가 지나면 하루 腦세포가 10萬개씩 죽는다고 합니다.
뇌세포는 출산할 때 약140억개로 一生동안 늘지는 않습니다.
뇌세포 중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뇌세포수는 약 40억개이고, 20세 후부터는 하루 10만개가 노화하여 죽으니, 10年이면 3억 6천개, 30年이면 약 10억개가 죽고, 80歲 쯤 될 때는 사용하던 40억개 중반인 약20억개가 죽게 되며 노망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腦를 많이 쓰며 단련을 잘 시키면, 腦細胞는 덜 죽습니다.
老化방지를 위하여 글을 하루에 2 時間정도 쓰시거나 읽으시면 10만개가 죽지 않아, 老化를 방지할 수 있으므로 살아계실 때까지 건강하게 살도록 매일 글을 쓰도록 권장하는 바입니다.
특히 腦의 老化로 記憶力이 나빠지더라도 腦를 잘 쓰며 단련을 잘 시키면, 腦의 전두엽(前頭葉) 즉 창조를 관장하는 부분만은 그리 쉽게 老化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前頭葉의 단련방법으로서는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거나, 글을 짓는 것이 제일 좋고, 룰이 있는 운동경기를 하며 자제력을 기르고 讀書와 글 짓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TV를 보면서 필요한 것을 메모하거나 新聞을 읽으면서 언더라인을 하고 메모를 해둔다던가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그것에 관련되는 배경을 상상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40代 이후부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쉽게 여러가지 성인병이 시작되는 수가 많다 합니다.
이 成人病은 일단 발생하면 완치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高血壓, 中風, 心臟病에 가장 나쁜 것이 소금끼와 스트레스(stress)입니다.
그러므로 可能한 한 싱겁게 먹고 스트레스를 解消하도록 하며 糖尿病의 原因이 폭음, 포식, 밤 새워 노는 것,
또한 일만 죽어라 하고 취미가 없는 생활 등은 이런 성인병의 促發原因이므로 제거하도록 하며, 아직도 근치가 어려운 癌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니,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곧 진단을 받아 조기 치료를 하도록 하여야 하며 初期 癌은 완치시킬 수가 있다 합니다.
특히 60~80代에는 男性은 위암(胃癌)에 대한 정기검사를, 女性은 子宮癌에 대한 정기검사를 받아 조기발견을 하는 것이 가장 필수항목입니다.
또 70견(肩), 류마치스 등도 스트레스에 의한 老化와도 관계되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생활이나 "라인댄스" 운동이 필요합니다.
60~80代는 老後를 위하여 趣味生活을 곧 시작하여, 무엇이든지 Life Work로써 활동하며 쉼이 없이 마라톤 式으로 조금씩 매일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Computer 공부, 書藝, 讀書, 골프, 여행, 음악감상, 낚시, 등산 등 무엇이던 몸과 머리를 쓰는 일을 꾸준히 趣味로 계속하는 것이 老化방지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비교적 安定된 60~80代 우리님들께서는 글을쓰고 음악을 벗삼아 수준 높고 지혜로운 規則生活를 하시고 신체와 두뇌를 꾸준히 써가며 근심 걱정버리고 고민과 스트레스없이 즐겁게 살아가실 것을 간곡히 권장합니다.
참고로 조선시대만해도 평균수명이 30살을 넘지 않았습니다.
물론 거의 비슷한 시기의 로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아생존율이 극도로 낮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평균수명은 19세 로마시대의 평균수명은 28세였습니다.
16세기 유럽인의 평균수명도 21세를 넘지못했으며 1900년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47세, 이씨조선 역대 왕들의 평균수명도 47세였습니다.
나의 초년인생 경험담
1970년 鐵道에 入門하여 40여년을 철도에 젊음을 불사르고, 무엇하나 만족스럽게 이룩 한 것 하나 없이 흘러간 歲月!
1970년2월20일 목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 초임발령으로 사회 초년생이 되어 목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철도는 증기기관차(영국의 조지스티븐슨 1829년발명)의 운행에서 디젤전기기관차로 동력이 바뀌어가는 과정에 있었으며, 목포-광주간을 운행하는 몇 개열차는 증기기관차사업이 있었으므로 신규발령된 기관조사에게는 증기기관차승무로 지정되어 기관사1인 본무기관조사1인 보조기관조사1인 3명이서 하는 근무형태로 기관사는 운전만담당하고 기관조사는 교대하여 석탄을 투척하여 증기를 가열시켜 증기기관차가 움직이므로 석탄을 투척하는 작업이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힘을 쓰는 작업이었기에 어려운 작업이었다.
칙칙폭폭, 철컹철컹 한밤의 정적을 깨며 기적소리를 직접울리면서 달렸던 추억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추억삼아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시골의 어른들은 기차소리에 깨어 많은 자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허구한 이야기는 아닐것이요, 그래도 인정있고 살기가 좋았던 시기는 그때 그옛날이 좋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순천철도국 목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의 사회초년생은 2년6개월의 반복되는 임무후 1972.8.29. 군에 입대, 전주 35사단에서 6주간 훈련을 마치고 후방기 교육을 춘천에서 2주간의 훈련후 강원도 인제 현리 공병부대 의무실 위생병으로 자대 배치되었다.
군생활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35사단 훈련병때 모악산KBS송신소 건설 작업시 모악산아래에서 세멘 한포대씩 등에 메고 정상까지 오르던일이 가장 내인생에서 힘들었던 일이었답니다.
자유인 趙東和는 黃金萬能主義의 核家族 개인주의 세상에서 옛시절의 인정은 찾아볼수 없고 하루면 수도없는 갖가지 사건사고 홍수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속에 나자신도 예외가 될수 없듯 바쁜일상으로 어영부영 하루가 흘러간다.
자유인 조동화의 신조는 삶의 여로에서 이세상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부질없다” 하면서 그냥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이른 아침의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곧 해가 뜨면 사라질 허망한 존재가 인생아닌가?
다산 정약용선생은 인생은 부질없다고 했지요.
고향산천에 가보면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라는 말이 실감이 나듯이, 그옛날 사람들은 모두가 떠나가고 우리도 언젠가는 떠나갈 것이다.
이세상 살면서 아옹다옹 살아봐야 무엇하겠는가.
이리도 한세상 저리도 한세상 즐겁고 재미나게 살면 그것이 행복 아니겠는가요.
사람의 운명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많이 배우고 학식과 직위가 높다고 오래사는 것도 아니며 행복한 것도 아니고, 재물이 많다고 오래사는것도 아니며 행복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의 운명은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사람은 떠나가고 인생 무상이다.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이런 문답이 있다. ‘세상의 하고많은 놀랄 일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 사람이 주변에서 남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인생이란 하룻밤 이슬과 같다"라는 말처럼 오늘하루도 소중히 생각하며 즐거운 삶을 영위해야 하겠다.
스티븐 잡스 임종시 메시지
세계적부호 애플의 최고 경영자 스티븐잡스(1955-2011, 56세 암으로 사망. 아이폰출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인물이면서 아이폰(iPhone) 출시로, 세상을 바꾼 천재 스티브잡스가 병상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남겼던 메세지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나는 사업의 세계에서 성공의 정점에 이르렀다.
남들이 보기에 내 삶은 전형적인 성공의 본보기였다.
하지만, 일 빼놓고는 즐거움이 별로 없었다.
결국 재산이란 내가 익숙해진 삶의 한 단편이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병상에 누워 삶 전체를 회고해보면, 그처럼 자부했던 명성과 재산은 곧 닥쳐올 죽음 앞에 빛이 바래고 아무 의미가 없음을 실감한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삶을 유지할 만큼 적당한 재물을 쌓은 후엔 부와 무관한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이런 저런 인간관계, 아니면 예술, 또는 젊었던 시절에 가졌던 꿈..
쉬지 않고 재물만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나 같이 뒤틀린 인간으로 변하게 만들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재물이 가져다 주는 그 환상이 아니라 각자의 가슴 안에 있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주셨다.
내 일생 동안 성취해 놓은 부를 나는 가져갈 수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에 빠졌던 기억들뿐이다.
그 기억들이야 말로 따라주고, 같이 해 주며 살아갈 힘과 빛을 주는 진정한 부다.
사랑은 1000 마일도 갈 수 있다. 삶에는 한계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을 가라. 오르고 싶은 곳으로 올라가라.
모든 것은 마음과 손 안에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는? "병상이다"...
운전해줄 사람이나 돈을 벌어줄 사람을 채용할 수 있지만 대신 아파 줄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
잃어버린 물건은 다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잃은 후에 절대로 되찾을 수 없는 것이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삶"이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아직도 읽어 내야 하는 유일한 책이 "건강한 삶에 관한 책"이란 것을 알게 된다.
가족을 위한 사랑을 귀하게 여겨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