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냥 언어
최 양 귀
말과 글의 의미는 가슴에 느끼는 정도에 따라 인생행로 나침반이 달라진다.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인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완전하다고 성서는 말한다. 글은 눈으로, 말은 귀를 통해 가슴에 들어온다. 하루에도 무수한 언어가 우리주위를 맴돌다 사라지기도 하고, 가슴에 따뜻한 장작불로 새겨지기도 하며, 도끼날 같이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것은 마음의 표현이며 마음은 이것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중요한 언어를 구사하는 세치 혀가 빚는 위력은 대단하다.
지난 해 어디서나 성탄 음악이 흘러넘치는 날 딸이 장문의 예쁜 편지를 보여주며 흥미롭다는 듯 읽어 보라고 했다. 편지는 그녀가 근무하는 곳에서 연말 인사로 모든 교직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우리 학교는 전자편지가 일상의 의사소통인데 상대방을 정중하게 존중하는 감사의 마음을 언어로 참 잘 표현한다. 물질적인 보상도 중요하지만 편지 내용으로 가슴이 따뜻하고 오래 간직하게 한다. 영어는 상대방 의중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봄바람 같은 문장 구조여서 배려심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어 있다.”
는 것이다.
편지 내용은 상여금을 입금했다는 것과 연중 관찰한 활동 중 지적하는 내용은 없고 잘한 일만 구체적으로 구구절절 적었다. 그녀는 영어의 좋은 점은 “미국인들은 감사 인사를 상대방이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언어를 골라 정성껏 쓴다.”며 언어로 두둑한 연말 상여금을 대신한다는 것보다 마음에 보화를 심어 준다며 밝게 웃었다.
칭찬 편지는 가족이 돌아가며 읽는 동안 졸졸 흐르는 숲속 맑은 새소리 같이 가슴에 상쾌함을 주었다. 마음에 ‘천 냥의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한편 민감한 초등생일 때 말 한마디에 단란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우리 집 큰 대문 옆 문간방에 어부가정이 살았다. 가장은 원양어선을 타고 몇 개월씩 먼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다. 연중 세 번 정도 집에 돌아와 한 달쯤 쉬고 다시 바다로 떠났다. 그는 가장의 역할을 다하느라 무거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성실한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였다.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몸과 마음이 건장한 아저씨였다. 얼굴이 해맑은 아내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자녀들을 돌보는 현숙한 살림꾼이었다. 자녀는 연속으로 태어난 아들이 세 명이었다. 비좁은 단칸방에 모든 가족이 사랑으로 뭉친 행복한 가정이었다. 딸이 태어나길 기다리는 남편이 배를 타고 떠난 후에 소망하던 딸이 태어났다. 가정은 경사였고, 이웃도 함께 기뻐했다. 아내는 남편이 집에 돌아 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집에 온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안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깨동무 친구에게 축하잔치를 열었다. 그 자리에 있던 한 친구가 술기운에 농담조로 ‘너는 딸을 낳을 수 없어, 부인이 의심이 가지 않나’라고 지나가듯 말을 했단다. 아뿔싸! 이 말이 그의 가슴에 비수같이 꽂혀 버렸다. 그날부터 그의 생각은 부정적인 말이 꼬리에 꼬리를 달아 잠을 잘 수 없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성난 얼굴로 눈을 부라리며 허공을 향하여 큰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많이 자주 했다. 점진적으로 딸도 멀리하고 가족에게 자기가 집을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다그쳤다. 하루아침에 가정이 풍비박산이 되었다. 아내는 남편의 성화에 몸부림 쳤고, 아이들 학교생활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다. 그의 정신은 날로 피폐해졌다. 급기야 아내를 절대적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어느 날 부도덕한 아내를 죽여야 한다며 무기를 들고 온 마을을 찾아 다녔고 아내는 은둔생활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말 한마디로 미쳤다. 정신이상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에게는 어떠한 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사람의 왕래도 끊겼다. 그는 심성이 착한 때문인지 정신이 이상한데도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는 않았다. 늘 골똘히 흰색 눈동자로 허공을 무섭게 응시 했다. 가장의 역할을 상실하고 가정에 환자로 자리 잡았다. 자녀와 남편을 깊이 사랑한 아내는 남편의 눈길을 피하며 열심히 일해 가정을 지켰다. 안타까운 일은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어떠한 방법도 그를 정상으로 돌려놓지 못했다. 백발의 노쇠한 그가 양지바른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말 한마디가 그의 일생을 망가트렸다. 무심코 장난으로 던진 말이 한사람의 일생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인 아내와 네 자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한 가정의 문제가 현대의학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으련만 시대적 아픔을 안고 힘들게 살아야 했던 그들이 눈에 선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말을 조심하고 바른 말을 하도록 언어생활을 돌아본다. 누군가에게 적절한 말을 했는지,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주는 말의 훈련으로 삼가 실수가 없도록 해야겠다. 사랑의 마음 담아 아름다운 언어로 말하기를 다짐해 본다
첫댓글 최양귀님의 수필 < 천 냥 언어 >잘 읽었습니다.
참 좋은 수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