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에까지 이르는 데이트 폭력
변화순(한국한부모연합 공동대표, 팸라이프가족연구소 소장)
2010년 인천에서 20대 여성이 낙지를 먹다 질식한 것으로 사고사(死) 처리됐던 일명 ‘산낙지 질식사 사건’은 약 2년 만인 지난 3일 검찰이 남자 친구 김모(31)씨에게 위장·살해 혐의로 사형을 구형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로서 이 사건은 결혼전 연애하던 남녀의 살인사건으로 그치고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달 11일 1심 이 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을 앞둔 가운데, 피해 여성 A(당시 22세)씨의 여동생이 27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려 김씨의 행동을 추가 폭로했다(조선일보. 2012, 9.28).
이로써 데이트 폭력이 얼마나 심각하고, 심하면 살인에 까지 이르지만 법적 보호장치를 받을 수 없음을 보았다. 재판상에서도 가해자의 살인혐의를 밝히지 못하면 형량이 감량될 수 밖에 없는 한계점도 드러났다. 데이트 폭력은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아는 사람에 의한 폭력이자 살인이며, 심하면 모르는 사람에 의한 폭력보다 법으로도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우리는 데이트 폭력의 실체와 심각성을 너무 모른다. 그렇다면 이성이 만나 처음에는 사랑하지만 왜 상대방을 구속하고, 학대하고, 살인을 하게 되는 것일까?
알렝 드 보통(Alain de Boton)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면서 사랑과 집착으로 인한 스토킹은 근원은 동일하지만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고, 스토킹은 자신에 대한 집착이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사랑과 집착의 차이가 어디서부터 벌어지는지를 찾아내보자.
첫째, 낭만적 운명론. 어떤 특정한 사람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다’라고 믿는다. 인간으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운명인데, 어떤 사람(김씨)를 사랑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믿는 것은 사랑의 환상이다. ‘사랑’하는 것과 왜 하필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를 구별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둘째, 이상화. 그(녀)의 행동이 고통스럽고 약간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보인다. 왠지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고, 안심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로 인해 내 존재감을 확인하고, 그(녀)가 끌린다. 여기서 ‘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인연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 속성은 양자의 합치가 있어야 된다. 왜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셋째, 사랑의 환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를 사랑하기 바라기는 하지만, 너무 수줍어서 그렇다고 말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랑의 환상이다. 우리는 아주 주변적인 작은 것들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작은 것들이 가져다주는 연상, 심지어 말 한마디라도, 이 연상이 자신의 무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그리고 있는 상대방의 이미지와 상대방의 실체는 다르다.
넷째, 사랑의 마르크스주의. ‘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알렝 드 보통의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독일의 사회사상가 칼 마르크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희극인이 ‘나를 클럽회원으로 받아줄만한 클럽에는 가입할 이유가 없다(나 같은 놈을 받아줄만한 클럽은 품격이 떨어지기 때문에)’는 표현이다. 즉 내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고 상대방도 나를 사랑해주기 바라지만 막상 상대방이 그것을 감지하고, 나한테 사랑을 표현했을 때 그 감정이 식어버린다. 그리고 상대방을 평가절하한다. 이것은 자기비하에 의한 열등감의 발로이다. 대부분의 연애관계에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이 있다. 그러므로 사랑을 하고 받는 데는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를 잘 깨닫고 균형을 잘 유지하는데 달려 있다. 이것은 단순한 표현이지만 자신에 대해 깨달지 않으면 알기 힘들다.
다섯째, 엇갈린 음정. 사건의 발달은 작가가 애인인 클로이에게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그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는가?’. 는 진실을 생각하는 것이 불편하였다. ‘왜 보통 친구들에게 하듯이 예의바르게 거짓말 하지 않았을까?’ 그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담으려는 데서 사랑과 폭력이 갈라진다. 상대방이 가하는 폭력마저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나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자유를 제한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에 따를 것이냐 나의 자유의지에 따를 것이냐는 선택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여섯째, 사랑의 광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질투, 분노, 짜증, 소유, 집착을 통해 그 광기를 드러낸다. 분노와 사랑의 근원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다만 그 표현과 대처방법이 개인적 차이에 의해 달라진다. 데이트 상대를 조정하고 싶어 하고 분노표현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데이트 폭력을 더 자주 행한다는 결과가 있다. 그것은 분노와 분노표출 수준이 높고, 자아존중감이 낮고, 분노통제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서경현 외, 2002). 집착과 소유욕에 의해 강화된다. 폭력이나 자해, 정서적 의존, 충동성, 예측하기 힘든 감정의 변화, 질투심과 지나친 의심을 하게 된다.
동생에 따르면 김씨는 A씨는 사귄 지 3~4개월 후부터 김씨와 자주 다퉜다. 김씨는 A씨에게 자신과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모두 지우라고 요구하는 등 지나치게 구속했다고 한다. 즉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왜곡된 마음이 생긴다. 김씨는 A씨가 동생과 목욕탕을 가는 것조차 구속했다고 한다. 김씨는 A씨를 때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A씨와 만나면서 다른 여성 두 명과 동시에 사귀고 있던 사실이 검찰 조사결과에서 나타났다. A씨는 사고발생 4개월 전쯤부터 간호학원에 다니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됐고 결국 김씨와 크게 다투고 헤어졌다. 그러나 동생은 사고 전날 언니에게 전화로 '김씨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왜 헤어졌다고 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 어째서 피해자는 행위자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가해자로서 이러한 유형의 광기가 발동되는 것일까? 가해자, 피해자에 대한 사회ㆍ심리구조 분석은 ‘팸라이프논단-06’에서 좀더 깊이 다룰 것이다.
후기: 검찰 조사결과, 김씨는 A씨가 사망하기 한 달 전쯤 생명보험에 가입하도록 하여 사망 일주일 전에는 보험 수익자를 법적 상속인에서 김씨 자신으로 변경해놓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은 계획적 살인이라, 개인적으로 심도 깊은 분석을 요하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참고자료>
서경현 외(2002). ‘데이트폭력 경험자들의 분노, 정신병적 경향성 및 중독성’, 한국심리학회지: 건강 7(3), 353-368.
알렝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2007. 정영목(옮김), 청미래
조선일보, 2012, 9.28. http://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