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끊기자 업주들 궁여지책
찜질방 간이식당 " 임대료 벌려면"
영업 못하는 PC방은 더 절박
"컵밥.냉동식품 팔아 적자 메워
만화방도 합류 "매출 80%가 배달"
'치킨 앤 핫도그 00 PC방' 'XX만화 앤 카페 울산점' '△△PC방&쿡 인천심곡점' . . .
2일 오후 스마트폰 음식 배달 앱에서 '볶음밥' '컵밥' 등을 검색하자 이런 이름이 줄줄이 떴다. PC방. 만화방 등이 돈가스나 돼지 불고기 덮밥 등을 주문받아 배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매장 내 식사 제한'으로 소비자들의 배달 음식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PC방이나 찜질방 내 스낵코너(간이식당)에서 음식을 팔던 자영업자들이 잇달아 배달 음식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확산으로 휴업을 강제당하거나,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자 생존을 위해 짜낸 궁여지책이다. 배달 전문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주 (24~30일) 일주일의 전체 주문 건수는 7월 마지막 주(20~26일)보다 26.5% 늘었다.
1일 오후 7시쯤 서울 중구의 한 찜질방 내 스낵 코너 주방에서는 마스크를 쓴 종업원이 배달 주문을 받은 돼지 불고기 덮밥을 만들고 있었다. 이 종업원은 "오늘은 8000원짜리 제육볶음이랑 오징어볶음 같은 음식 배달 주문이 총 10건 들어왔다" 며 "요즘에 식당에 오는 손님보다 배달 주문 건수가 더 많다"고 했다. 저녁 시간대였지만 이 스낵 코너의 4인용 식탁 20여 개는 텅텅 비어 있었다. 종업원은 "지금쯤이면 손님이 바글바글해야 할 시간인데..."라고 했다. 찜질방은 방역수칙을 지킨다는 전제 아래 영업이 가능한 '집합 제한 시설'이다.
하지만 손님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이날 오후 9시까지 간이식당을 찾은 손님은 6명이었다. 저녁 시간 매출은 5만원 남짓, 견디다 못해 지난달 초부터 외부 배달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음식 배달을 시작했다. 돈가스나 제육 같은 메인 메뉴에, 찜질방의 상징인 구운 계란 또는 미역국을 세트로 끼워 판다. 이곳 주인은 주문해주는 손님을 위해 밤마다 직접 볼펜으로 감사 메모를 한 장 한 장 써서 배달 용기마다 붙여 보낸다. 하트 표시도 다섯 개나 그려 넣는다. "외부에서 일부러 음식을 주문해주는 손님이 너무 고마워서"라고 했다.
PC방 점주들은 더 절박하다. PC방은 지난달 19일부터 영업을 전면 강제 중지당한 상태다. 국내 대부분 PC방은 '휴게음식점'으로 등록해, 음식 판매가 가능하다. 과거엔 컵라면, 핫바 등 간단한 간식 정도만 팔았지만, 최근에는 등심 스테이크 덮밥, 가쓰동, 치킨 마요 덮밥, 연어 덮밥 등 '진짜 한 끼'를 판매한다. PC방을 장시간 이용하는 고객들을 위해 식당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150좌석 규모의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30)씨는 최근 배달 대행 업체와 제휴를 맺고 PC방 내에서 팔던 컵밥과 냉동식품 등을 조리해 배달하기 시작했다. 은행에서 대출금 1억원을 받아 pc방 문을 연 이 씨는 한 달 원리금과 월세 등으로만 1000만원을 내야 한다. 지난 6월부터 400만~500만원씩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는 이씨는 "컵밥이나 떢볶이 등을 매장 내 조리대에서 직접 조리하고, 소분해서 메뉴 1개당 5000원 이하 가격에 판다"며 "적자나 메우는 수준이지만, 영업금지 전 유통 회사에 500개 이상 메뉴를 주문해 둔 상황이라 일단 남은 음식이라도 조리해 팔자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배달 음식 전문 앱에서는 'J PC방 중랑점' 'I PC방 인천심곡점' B PC방 서대문구점 ' 등 지역별 PC방 수십 곳이 등록돼 있다. 각 지역 구청 관계자는 "조리 시설이 설치돼 있는지 등의 기준으로 따로 영업 신고를 한 것이기 때문에, PC방 영업 금지 명령과 별개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관련 법규상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만화방도 합류했다. 영업은 가능하지만 찾는 손님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울산 울주군에서 만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안모(30)씨는 매장 내에서만 판매하던 아메리카노, 조리퐁 셰이크 등 음료와 스팸 김치 볶음밥 같은 음식을 지난달 초부터 주문받아 배달하고 있다. "낮 시간엔 대행 업체를 통해 배달을 하고, 오후 9시 이후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지인과 함께 가게를 보며 내 승용차를 타고 직접 배달한다"고 했다.
안씨는 "요즘 하루 전체 매출의 80%가량이 배달 수입"이라며 "만화책 대출 비용이 권당 500원인 걸 감안하면, 4000~5000원씩 하는 음료나 식사 배달 수입이 꽤 쏠쏠해서 매달 공과금 60만~70만원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20년 9월 3일 목요일 조유미. 남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