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위조 사건으로 잠적했던 큐레이터 신정아 씨가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2007년 9월 16일.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초췌한 그녀의 얼굴보다도 몸을 휘감은 `명품 귀국패션`이었다. 금단추가 달린 베이지색 재킷은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돌체&가바나` 제품으로 250만원대로 밝혀졌다. 40만원대 버버리 청바지, 크로노그래프 시계 등도 화제가 됐다. 가짜 의혹에 휩싸인 그녀의 옷을 놓고 `짝퉁이냐 진품이냐`는 논쟁도 벌어졌다. 매스컴을 탄 후 이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졌다.
2000년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이 검찰에 소환될 당시 착용했던 에스까다 선글라스도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검은 렌즈에 테두리에 큐빅이 박힌 이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옷로비 사건(1997년) 때는 페라가모와 라스포사가 주목을 끌었다. 로비에 활용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페라가모 한국 지사장이 청문회까지 불려나가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자와 로비, 명품은 뗄 수 없는 패키지로 자주 등장한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야기한 사람의 패션과 스타일을 따라하는 현상을 `블레임 룩(Blame Look)`이라고 한다. 스캔들을 비난하면서도 빠져드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도박으로 물의를 빚었던 가수 신정환이 입국할 때 입은 몽클레어 패딩,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의 미쏘니 쫄티도 전형적인 `블레임 룩`이 됐다.
국정농단 의혹으로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석한 최순실 씨는 이탈리아 명품 `프라다 구두`로 화제를 뿌렸다. 인산인해 취재진을 뚫고 청사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구두 한 짝이 벗겨졌는데 프라다의 `블랙레더 슬립온 스니커즈`였다. 72만원짜리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포털은 시끌벅적했다. 호화 생활의 단면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상류층이 사용하는 브랜드에 관심을 갖는 이중적인 감정이 이번에도 작동한 것 같다. 네티즌들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패러디해 "악마는 프라다를 신는다"며 최씨를 공격했다. 나뒹군 프라다 구두 한 짝은 동화 주인공 신데렐라의 벗겨진 유리구두를 연상시켰다. 다행히 구두가 그녀를 구원해 줄 왕자님 손에 들어가지 않아 신데렐라 같은 달콤한 결말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다만 또 `블레임 룩` 열풍이 불면서 `최순실 구두`만 대박나고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은 흐려질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