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8월 21일 월요일 비
‘참, 그놈의 비 줄기차게 쏟아지네. 올 농사 다 틀리는 거 아냐 ?’
비를 홈빡 맞으며 거름을 싣고 왔더니 마누라가 집에 있네 !
“당신 오늘 학교 간댔잖아 ?” “방학이라 조금 늦어도 돼” “그으래 ? 좋다”
“왜 내가 집에 있으니까 좋아 ?” “그럼, 당신이 없을 때는 너무 쓸쓸했어. 혼자 밥 먹기도 싫었고....” “그랬어요 ? 그럼 아침 뭐 먹을 거야 ?” “간단하게 빵 먹지 뭐” “나도 빵 먹었어요” 토스토에 쨈하고 계란후라이가 대령된다.
나 혼자서 밥 차려 먹을 때보다 백 배는 더 맛있다. 커피까지 대접 받으니 금상첨화고.....
“비가 저렇게 오는데도 갈거야 ?” “가야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뭐해 ? 정산가면 창의놀이라도 자를 수 있잖아” “내일 운사모 모임 땜에 또 와야 되잖아” “그래도 내일 낮에는 일할 수 있잖아. 하루가 그 게 어딘데.....”
안사람은 일이 밀려 똥끝이 타는 내 마음을 모른다.
원래 일 안 하길 바라는 사람이니까 알 리가 없겠지.
“학교에 태워다 줄 게” “정말 ?” 오늘은 차를 내가 써야 한다.
피부과를 들린 후, 핸드폰 액정을 갈고, 치과로 간 다음에 경호네로 매실액 배달까지 마치고 정산행이다. 바쁘다. 오전에 끝날래나 ? 차례대로 마치고, 치과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핸드폰에 ‘S 펜이 꽂혀있지 않습니다’라는 문자가 뜬다. ‘어라 이 게 뭐지 ?’ 처음 당하는 경우다.
급히 핸드폰을 살펴보니 펜이 꽂혀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만 뚫려있다.
‘이 게 어디로 갔어 ? 액정 깨져서 목돈 들어갔는데, 왜 너까지 속을 썩이냐.’ 마누라 잔소리가 눈에 선하다. ‘안 돼. 찾아야지’ 주머니 속을 샅샅이, 주차장까지 가서 차 내부도 눈이 뚫어져라 뒤집어 봐도 없네. 이 것도 꽤 비쌀 텐데.... 혹시 집에 떨어져 있는 건가 ?
경호네까지 들른 후 집으로 직행해 사방을 들쳐 봐도 없다. 낙심이 크다.
“고객님 댁이 어디시죠 ? 여기서 가까우세요 ?” 내 핸드폰 액정을 갈아 준 삼성 서비스 센터 직원의 전화다. “비래동인데, 왜요 ?” “아 가까우시군요.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전에는 어디 사셨죠 ?”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 대답은 해야지. “예, 금성백조 100동에 살았는데요” “그렇죠. 저도 거기 살았어요”
‘그 말 할려고 전화를 했나 ?’ “그런데요. 아까 액정을 갈아끼우느라고 S 펜을 빼놨다가 잊고 끼워놓지를 못 했어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얘기가 길었구나.
“아이구, 내가 그 걸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죄송합니다. 가까우시니까 한 번 들려주세요” 수단이 좋은 사람이다.
옛날 한 아파트에 살았다는 데 화낼 수도 없잖나. “알았어요. 다행이네요”
다시 한 번 들러 S 펜을 돌려받고 오느라 30분은 축내야 했다.
그래도 옛날 인연을 생각하면 밉지가 않았다. 이제야 정산으로 출발이다.
비가 보통 내리는 게 아니다. ‘가지 말까 ? 아냐. 정산에 가면 해가 뜰 거야’
그런데 정말 정산에 도착하니 해가 비친다. 얼마나 반가운 일이냐 ?
‘하늘도 내 정성을 알아주는구나’ “고맙습니다” 소리를 질러댔다.
‘빨리 빨리 서두르자. 언제 또 빈덕을 부릴지 모르잖나’ 불당골로 올랐다.
군데군데 거름을 떼어 놓은 후 예취기를 잡았다.
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즐거웠다. 비야 조금만 참아다오.
한 시간쯤 지났을까 ? 땀 한 번 흘리고 났는데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또 온다. 참 어지간하다. 뭐 하자는 건가 ? 정말 농사를 그만 두라는 얘긴가 ?
아미 깎아 놓았던 풀들이 저렇게 자란 모습을 보면 한숨만 나오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 이틀이나 쉬었고 겨우 한 시간 일했는데 또 그만두란 말입니까 ? 너무 하지 않나요. 당장 그쳐요” 허공에 소리를 질러댔다.
그 서슬에 놀랐는지 정말 비가 그치네.
어두워질 때까지 풀을 베고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하여 산을 내려왔다.
마실 가셨던 장모님이 배추 모종에 물을 주시고 있었다.
“어머니. 몸은 어떠세요 ?” “응 괜찮어. 그날 11시가 되니깨 살아나대. 사위따라 대전 갈 걸 그랬나 봐. 좋은 구경만 못했어” 역시 부모님은 다르시다.
“충희 에미가 공부 잘했다고 상으로 받은 홍삼이예요. 어머니 드시래요”
“그 걸 왜 가져왔어 ? 젊은 사람들이나 먹고 힘써야지. 늙은 게 뭘 하겄다구....” 세상 엄마들이 한 마음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어머니 혈압 약은 드셨어요 ?” “응 뭐든 다 먹었어. 보약두 먹구”
“지난 번 병원 안 가셨더라면 큰 일 날뻔했어요” “풍으루 쓰러졌겠지”
“이제부턴 안 좋으시면 금방 병원 가자고 하세요” “그려, 염려 마”
장모님께서 고분고분해 지셨다. 느끼신 게 많으신가 보다.
우리 엄마는 잘 계실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