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도 모른채 맞았어요"…묻지마 공격하는 그들, 왜?
2020-06-12 09:01:00
지난달 서울역서 여성 광대뼈 함몰돼
동작구선 일면식 없는 두 여성 폭행해
"경제발전 이뤄진 나라서 나오는 현상"
"빈부격차에 커진 사회적 불만 표출"
[서울=뉴시스] 정윤아 기자 = 경기도에 거주하는 직장인 여성 이모(35)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 가족과 통화를 하며 길을 걷던 이씨의 등을 누군가가 발로 차고 도망간 것이다.
이씨 휴대전화는 바닥에 떨어졌고 입고 있던 외투에는 발자국이 선명했다. 하지만 이씨는 도망가는 남성의 뒷모습만 봐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최근 지하철역, 도로변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이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행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발생
12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서울 동작구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 2명을 차례로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남성은 귀가 중이던 여성을 폭행하고 밀쳐 넘어뜨리고, 직후 골목길에서 마주친 여성의 머리를 가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발생한 '서울역 폭행' 사건에 대한 공분도 여전하다. 30대 남성 이모씨는 지난달 26일 공항철도 서울역에서 30대 여성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광대뼈 골절상을 입혔다.
이씨는 지난 2월에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여성에게 갑자기 욕설을 하고 침을 뱉는 소동을 일으키고, 지난달에는 이웃주민을 때린 것으로도 알려졌다.
지난달 28일에는 서울 지하철 신림역에서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의 어깨를 부딪힌 후 욕설을 하며 폭행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같 달 21일엔 서울 강북구 수유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골목길을 지나던 청각장애인 모델 정담이씨를 무차별 폭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전문가들 "개인의 분노를 약한 대상에게 표출"
이런 '묻지마 범죄'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 특히 주요 타깃이 되는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두려움을 호소할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범죄의 원인을 사회적 약자를 향한 개인의 분노 표출로 봤다.
그러면서도 묻지마 범죄가 여성만을 타킷으로 하는 '여성혐오'라는 입장과, (여성혐오가 아닌) 여성·노인·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것이란 입장으로 나뉘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스트레스를 적정히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고 신체적 약자들을 보호하려는 문화적 성숙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전세계적으로 여성을 제일 많이 공격하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언론보도의 '묻지마 폭행'이란 명칭부터 고쳐야한다"며 "'묻지마'라는 것은 가해자가 의도 없이 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알아서 피해야하거나 폭행을 당해도 '재수가 없었다'는 식으로 비춰져 사안이 축소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김교수는 "이건 묻지마 폭행이 아닌 여성혐오 폭행으로 명확히 해야 원인을 짚을 수 있다"며 "(가해자가) 여성이 신체적, 물리적으로도 약자지만 사회적으로도 소수자여서 공격을 받아도 대응을 못할거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런 여성대상 폭행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묻지마 폭행은 경제발전이 이뤄진 나라에서 다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빈부격차가 커지고 사회적 불만이 커지는데 그런 것들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여성혐오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드시 여자가 아닌 사회적 약자, 즉 자신보다 힘이 센 사람에겐 못하는 분노표출을 힘이 약한 사람에게 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신이 현실에서 느끼는 어려움, 고통, 박탈감을 자신과 상관없는 제3자를 향한 공격으로 표출하는 것"이라며 "공격을 할 때도 자기가 공격해서 제압하기 수월한 사람을 대상으로 선택하다보니 여성, 노인, 아동 등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들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의 처벌의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육 필요
전문가들은 묻지마 폭행이 발생했을 때 처벌하려는 수사기관의 의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김교수는 "서울역 사건 피해자가 처음 수사기관을 찾아갔을 때 범인을 못 찾는다고 했지만 언론에서 공론화되자 잡았다"며 "수사기관이 이런 사건이 있을 때 의지를 가지고 추적해서 처벌해야 한다. 이런 선례들이 쌓여아 한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조기교육을 강화해 신체적,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상당히 중요한 소양으로 습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서울역 사건은 조현병 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저지른 것 같고, 이후 일어난 사건은 고의성이 있어 보이는 등 사건마다 발생이 다 다르다"며 "조현병 환자의 돌발 행위까지 여성혐오 범죄로 말할 이유가 있는가 싶다. 이렇게 되면 여성은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될 수 있고 모방범죄 등 사회적 손실이 더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성범죄는 성범죄대로 처벌하고 스토킹은 스토킹대로 불법화해서 처벌해야지 조현병 환자의 범죄를 '여성혐오'로 일반화해버리면 안 된다"며 "사건마다 각론으로 가는 게 맞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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