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는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국가는 아니다. 대부분이 사막이고 매우 가난하며 정치적으로 예측이 어렵고 비싼 나라다. 또한 황폐하다. 분쟁과 더불어 지뢰 또는 말리, 세네갈, 모로코의 서 사하라 국경지역에서의 폭력사태는 모리타니 여행은 여행의 가치보다 문제를 일으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모래를 제외하면 볼게 없고 차분한 수도인 누악쇼트(역시 모래가 많다)는 계획과 운이 필요하다. 낚시와 조류관찰과 서핑이 해안을 따라 적합한 곳이 있고 내륙에 있는 카라반 타운은 흥미로울 것이다. 이를 제외하면 모리타니의 가장 큰 매력은 황폐함으로 다수의 사람들을 멀리하게 만든다. 진정한 모험을 원한다면 적어도 모리타니가 지구상에서 밟고 지나갈 만한 국가가 될 것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여행자들은 모래로 절반이 잠식된 마을을 통과하거나, 화려한 텐트 안에서 유목민과 차를 마시거나, 달처럼 생긴 분지를 횡단하거나, 선사시대 암벽화와 고대사하라 건축물을 바라본다면 모리타니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신을 위해 흔든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완전히 독특하고 잊기 어려운 곳이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곳이다. |
- 통계 자료
- 국명 : 말리 공화국
면적 : 1,240,140 sq km 인구 : 10,800,000 명 수도 : 바마코(Bamako) 인종 : 밤바라, 투아렉, 도곤, 송하이, 세누포, 푸라니 언어 : 프랑스어, 주요 아프리카어(밤바라, 송하이, 투아렉, 아랍어) 종교 : 무슬림(90%), 아프리카 전통종교(9%), 기독교(1%) 정부 : 공화국
- 지리 및 기후
- 면적 : 1,030,400 sq km
인구 : 2.4 million 수도 : 누악쇼트(Nouakchott) 인종 : 흑인 무어족(40%), 무어족(30%), 흑인 아프리카인(소닌케, 푸라아르, 뻬울스, 월로프;30%)언어 : 아랍어(공식언어), 프랑스어, 다양한 종족언어 종교 : 이슬람 정부 : 공화국 대통령 : 마유야 울드 시디 아마드 타야(Maaouya Ould Sidi Ahmed Taya) 수상 : 체이크 엘 아피아 울드 모하메드 쿠나(Cheikh El Afia Ould Mohamed Khouna)
- 역사
- 말리의 역사는 암벽화가 있을 정도로 오래돼 사하라가 축복 받은 낙원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처음 알려진 제국은 가나였으며 11세기에 모리타니아와 모로코에서 온 무슬림 베르베르에 의해 지배당했으나 이슬람의 보급에는 미온적인 제국이었다. 13세기 중반에는 만딘카족의 지도자인 순디아타 케이타(Sindiata Keita)가 이슬람을 대체하고 금과 소금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장악했다. 진보적인 마나스(제왕)의 영향으로 인해 젠네(Djenn'e)와 팀부크투(Timbuktu)는 서아프리카의 샹글릴라가 됐으며 막강한 제국의 힘을 건설하기 위해 모스크와 대학교가 설립됐다. 송하이의 동부지역은 가오(Gao) 주변에 자체적인 도시가 성립됐는데 그들은 힘이 세고 잘 조직됐으며 전문적인 군대를 창설하기 위해 분주했고 말리 제국이 대학교를 건설하는 동안 사회시설을 만드는데 노력했다. 송하이 제국은 세할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했으나 학생과 상인들은 군인으로 전환되기에 불충분했고 승리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모로코 베르베르인에 의한 유혈의 침략을 당하게 되고 동시에 유럽인 선박이 서아프리카 해안에 도착한다. 유럽인들은 사하라의 무역루트를 방해하고 세헬의 부유함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팀부크투가 금지되고 낡은 평판을 받기 시작한다.
1883년 말리는 프랑스의 식미지가 됐으며 서아프리카의 이웃국가와 더불어 가난하던 말리에 철도와 관개시설을 건설한다. 1960년 6월 말리는 드디어 독립을 획득하고 세네갈과 연합정부를 구성했으나 얼마 못 가 동조는 깨지고 난폭한 세네갈의 지배자 모디보 케이타(Modibo Keita)가 말리 공화국의 대통령까지 차지한다. 케이타는 정치/경제적으로 프랑스와의 협조를 통해 두 지역에 대한 정치적인 구분을 만들었으나 소련 군대의 조언을 너무 많이 의존했다. 1962년 국가적인 자랑거리인 말리의 프랑 지대에서 탈피와 함께 새로운 통화를 신설하고 사회주의적인 경제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파탄되고 재정이 위축됐다. 물가를 절감하려는 모험적인 시도는 호응을 얻지 못했고, 1968년 무사 트라오레(Moussa Traor'e)가 무혈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다. 트라오레는 1968년부터 1991년까지 말리를 통치했지만 모든 면에서 잘하고 언제나 인정받은정부는 아니었다. 말리는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몇 번의 쿠데타 기도와 1979년의 학생 시위를 제외하면 비교적 평화로운 국가였다. 투아렉 반군에 대한 잔혹한 진압과 정치적 다원성의 요구에 대한 거부와 시위자들에 대한 사격 진압정책 등 트라오레 정부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1991년 아마두 투마니 투레(Amadou Toumani Tour'e) 장군 주도하에 군부가 국가 통치권을 장악하고 민간인 수마나 삭코(Soumana Sacko)를 임시정부 대표에 임명한다. 1992년 다당제에 의한 선거가 실시되고 알파 코나레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기근을 확대시킨 황폐한 가뭄으로 인해 1980년대 말리의 경제는 비탄에 빠진다. 사람들과 가축들이 사망하고 의지가 약해졌으며 마을들은 사막 속으로 사라져 갔으며, 메뚜기와 쥐들이 먹을만한 음식으로 남아있고 장작으로 쓰기 위해 나무가 뿌리 채 뽑혔으며, 그토록 바라던 비가 오면 비로 인해 가축, 토양과 초목들이 쓸려 내려갔다. 말리 경제는 회복되지 않고 있으나 최근에 발견된 금광은 말리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
첫댓글 아멘!!
아멘!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