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조기교육 미룰수 없다. - 어 윤대
일본 오부치 총리의 자문기구인 '21세기 일본구상'이 18일 제출한 보고서에는 일본이 21세기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영어공용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인터넷시대를 살아가는 데 어릴 때부터 영어를 실용화하지 않고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사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제조업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미국을 앞서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인터넷시대의 의사전달 수단인 영어 대신 일본말로 콘텐츠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해왔다.
세계는 하나가 되었다. 세계경제는 한 덩어리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한마디를 던지기가 무섭게 월 스트리트의 투자분석가에서부터 한국의 일반투자가에 이르기까지 그 내포된 의미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시간으로 세계 증권시장과 금융시장에 반영된다. 최근 타임워너(Time Warner)와 아메리카온라인(AOL)의 합병발표가 나기가 무섭게 한국의 인터넷 관련주들이 급등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코스닥시장을 모르던 일반 투자가들도 지금은 나스닥시장의 주가동향에 따라 한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20세기 들어 급속도로 발전한 인터넷 등 정보통신의 덕분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세계인구의 25%가 사용하는 영어가 그 전달매체로 확고히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국제금융센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물류, 교통, 금융, 통신 등의 제반 인프라가 구비돼야 한다. 하지만 언어적 요소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언어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국제금융센터로 크는 것은 가능하지만, 서울이나 타이베이에는 요원한 바람이다.
최근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애플컴퓨터 새 버전의 휴지통 아이콘을 영국식인 '웨이스트바스켓 (Wastebasket)' 대신에 미국식인 '트래시(Trash)'로 바꾼 데 대해 영국 국민들이 반감을 표시한 사실을 보도한 적이 있다. 영어는 더 이상 영국이라는 한 국가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이 의사 소통을 위해 쓰는 세계어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른바 '영어 논쟁'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어떤 이는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영어로 연설한 것을 두고 핀잔 섞인 말을 하면서 한국인의 주체성을 운운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실용주의적 입장에 서서, 심지어 환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한국 통화를 달러로 바꾸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을 채택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국어를 영어로 대체하자는 극단적인 방법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논외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하여 네덜란드, 싱가포르, 홍콩과 같이 일반 국민이 영어를 쓰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까지는 개선해 나가야 한다. 최근의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과열양상으로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교 교육까지 마치고도 새벽에 눈을 비비며 영어학원을 다니는 현 세대의 직장인들을 보면 영어 조기교육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영어 능력이 입사와 승진에 중요하다는 소극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국제적인 흐름을 능동적으로 읽어가는 개개인이 모여 한국경제의 국제화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적극적인 이유에서다.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생활화한다고 해서 한 국민의 주체성이 침해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는 컴퓨터나 자동차와 같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