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스 철자법과 게마트리아 표기법
최광희 목사·신학박사
예레미야 25:26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될 나라 중에 세삭 왕이 마지막으로 마실 것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세삭은 어느 나라인가? 그것을 모르면 이 본문은 아무 의미가 없는 암호로 남을 뿐이다.
세삭이 어느 나라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아트바스(atbash אתבש) 철자법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아트바스 철자법이란 어떤 내용을 암호화하기 위해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를 뒤집어 정반대로 배열하는 방식이다. 이는 다른 말로 데칼코마니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첫 글자 알레프(א)는 마지막 글자 타우(ת)과 치환(置換)하고 두 번째 글자 베이트(ב)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 글자인 쉰(ש)과 치환해서 표기하는 방식이다. 어떤 말을 드러내 놓고 할 수 없을 경우 히브리인들은 아트바스 방식으로 철자를 바꾸어 암호로 표기하곤 했다.
히브리어가 아닌 다른 언어는 이렇게 알파벳을 치환하 말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영어 Love의 알파벳을 아트바스로 치환하면 Olev이라는 그럴듯한 단어가 나오지만 Apple의 알파벳 순서를 뒤집으면 Zkkov라는 괴상한 단어가 나온다. 하지만 히브리어는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언어이기에 이것이 가능하다. 히브리어는 자음만 써 놓고 읽는 사람이 알아서 모음을 붙여 읽는다. 물론 현대의 히브리어 성경에는 자음만으로는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 모음을 붙여 놓을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트바스 철자법으로 표기한 세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삭(שֵׁשַׁךְ)을 아트바스로 다시 치환해보면 쉰(ש)은 베이트(ב)가 되고 카프(כ)는 람다(ל)가 된다. 이렇게 바꾸어 보면 세삭(שֵׁשַׁךְ)은 바벨(בָּבֶל), 즉 바벨론을 의미한다.
예레미야는 왜 바벨론을 바로 표기하지 못하고 아트바스 철자법으로 암호화하여 세삭이라고 기록했을까? 당시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위협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바벨론의 멸망을 드러내어 예언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사용한 아트바스 철자법을 바벨론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라도 히브리어를 모국으로 쓰던 히브리인들은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은 아트바스(atbash אתבש) 표기법과 함께 게마트리아 표기법을 통해 암호화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게마트리아(גימטריה)란 히브리어로 수비학(數祕學 numerology)을 의미하는데 게마트리아 표기법은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문자를 숫자로 바꾸어 암호화하는 방식이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재미있게도 각각의 알파벳이 고유한 의미를 가지며 또한 숫자 값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알레프(א)는 황소를 뜻하며 숫자 값은 1이다. 또 베이트(ב)는 집을 뜻하며 숫자 값은 2이다. 이렇게 해서 히브리어 알파벳은 순서대로 1, 2, 3, 4, 5, 6, 7, 8, 9, 10, 20, 30, 40, 50, 60, 70, 80, 90, 100, 200, 300, 400까지의 숫자 값을 가진다. 추가로 변형 글자가 500, 600, 700, 800, 900까지의 숫자 값을 가진다.
이렇게 글자를 숫자로 바꾸어 표기하면 다윗(דָּוִד)은 14가 된다. 그래서 마태는 마태복음 서두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14대씩 나누어 놓았는데 이는 예수님이 14(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14대씩 나누어 놓은 것을 볼 때 이방인들을 아무런 의미를 못 느끼지만 “14로 쓰고 다윗으로 읽는” 유대인들은 마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또 요한계시록 13:18에서 666은 사람의 수라고 말하는데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가? 666을 히브리어 문자로 바꿔보면 נרונקסר 라는 글자가 나온다. 여기에 모음을 붙여서 읽으면 Nerwn Qesar, 즉 네로 카이사르가 된다. 물론 666은 다른 글자의 숫자 값일 수도 있다.
한편, 이런 게마트리아 표기법은 무슨 비밀 결사대나 전문 지식인들만 사용한 것은 아니며 히브리인들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당대 지중해권 세계에서 널리 쓰이던 기법이었다. 아마도 유대인들이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게마트리아 표기법이 재미있어 보여서 헬라어 사용자들이 따라 사용한 모양이다. 그래서 폼페이 유적의 한 벽에서는 “나는 그 수가 545인 여자를 좋아한다”라는 헬라어 낙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 로마 시인 사르데스 스트라톤은 항문(πρωκτός)과 황금(χρυσός)의 숫자 값이 똑같은 1570이라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는 풍자시를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히브리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두 암호 표기법, 아트바스 철자법과 게마트리아를 표기법을 이해하면 성경의 수수께끼를 재미있게 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