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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 불상 앞의 할머니 (1930년대)
"할매, 오늘도 나오셨수?"
동네 꼬마가 절 마당을 쓸고 있는
나를 보며 묻는다. 나는 손에 든
빗자루를 잠시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절이 내 집 같애.
서른 해를 매일같이 왔으니 말이제."
1930년, 일제 치하의 조선.
나, 김순이는 마흔여덟 살 과부였다.
남편은 십 년 전 광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우며
절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불교는 내게 그저 종교가 아니었다.
죽은 남편의 명복을 빌고, 자식들의
무탈을 기원하며, 내 가난한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전부였다.
대웅전 불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향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목탁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중얼거렸다.
"부처님, 제 아들 영수가 일본 놈들
공장에서 다치지 않게 해주시고,
딸아이 영희는 좋은 데 시집
보내주소서.
그리고 돌아가신 남편이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기를..."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 그 부처님이
정말 들어주실까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젊은 스님이
서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스님 옷을 입었지만 조금 다른 차림이었다.
검은 두루마기에 성경책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저는 개신교 선교사입니다.
부처님께 기도하시는 걸 보고...
혹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요즘 마을에 이상한 예수쟁이들이
들어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조상에게 절하지 말라느니,
신주단지를 버리라느니...
"우리 조선 사람은 조선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천 년 넘게
우리를 지켜주셨는데,
무슨 서양 신을 믿으란 말이요?"
선교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처님도 좋은 가르침을 주셨지요.
하지만 부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돌에게 기도하시는 것보다,
살아계신 분께 기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리 가시오.
나는 내 방식대로 살겠소."
하지만 그날 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이.
제2장 - 유교의 그늘 아래서 (1940년대)
아들 영수는 스물다섯이 되었고,
일본 공장에서 일하다 조선으로 돌아와 장가를 들었다.
며느리 옥순이는 양반가 딸로,
예의범절이 바른 처자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며느리가 시부모
기제사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조선의 유교 전통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싶었다.
"어머님, 제사상이 이렇게
차려졌습니다."
옥순이의 목소리는 공손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무언가 불편한
기색이 있었다.
"왜 그러느냐, 며느리야?"
"어머님은 절에 다니시면서,
왜 유교식 제사를 고집하십니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야 조상을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불교는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한 것이고, 유교는 집안의 법도를 지키는 거란다."
"그렇다면 어머님은 무엇을 진짜로
믿으시는 겁니까?"
며느리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불교도 좋고, 유교도 좋고,
조상도 섬기고... 그런데 정작 내가
무엇을 믿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날 밤 제사를 마치고, 나는 마루에
홀로 앉아 있었다.
달빛이 마당을 비추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십 년 전 절에서 만난
그 선교사의 말이 떠올랐다.
돌에게 기도하는 것보다,
살아계신 분께 기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내 방식이 있다.
제3장 - 해방과 혼란의 시대 (1945년)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고, 나도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들 영수는 친구들과 어울려 좌익
활동을 시작했다.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며 흥분했고,
집에는 이상한 책들이 쌓여갔다.
"어머니, 이제 새로운 세상이 옵니다.
양반도 상놈도 없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요!"
영수의 눈빛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불안했다.
"영수야, 너무 앞서가지 마라.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란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 옥순이가
교회에서 돌아왔다.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어머님, 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뭐? 교회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양반집 규수였던
며느리가 예수쟁이가 되다니.
"미국 선교사님들이 마을에 학교를
세우셨어요. 거기서 한글도 가르치고, 성경도 가르치는데... 어머님,
그 말씀이 참 좋았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요."
옥순이의 얼굴에는 평화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부러움? 질투? 아니면 동경?
"그 미국 사람들이 뭘 안다고...
우리 조선 사람 마음을 알겠어?"
하지만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옥순이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머님도 한번 나가보시지
않으시겠어요? 교회에서 쌀도
나눠주고, 무료 진료도 해준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흔들리고 있었다.
제4장 - 전쟁의 포화 속에서 (1950년)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졌다.
북쪽 군대가 쏟아져 내려왔고,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좌익 활동을 했던 영수는 인민군에
협조했다가, 서울이 수복되자 체포되어 끌려갔다.
"어머니! 저 사람들이 영수를
데려갑니다!"
옥순이가 울부짖었지만, 군인들은
무자비했다.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부처님... 하늘님...
누구든 좋으니 제발 내 아들을
살려주소서..."
그날 밤, 옥순이는 교회로 달려갔다.
나는 혼자 집에 남아 밤새 울었다.
새벽녘, 옥순이가 돌아왔다.
그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평온해 보였다.
"어머님, 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이
밤새 기도해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영수를 지켜주실 거래요."
"그게 무슨 소용이냐! 영수는 지금
감옥에 있는데!"
나는 소리쳤다. 하지만 옥순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어머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요."
맡긴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평생 무언가에 매달리며 살아왔다.
불상에, 조상에, 미신에...
하지만 정작 평안은 없었다.
항상 불안했고, 두려웠다.
일주일 후, 기적이 일어났다.
영수가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조사 결과 강제로 동원되었을 뿐
적극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옥순이는 무릎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혹시 정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는 걸까?
제5장 - 늙은 여인의 선택 (1953년)
전쟁이 끝나고, 나는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몸은 쇠약해졌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어느 일요일 아침,
옥순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님, 오늘 저랑 교회 가시겠어요?"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거부해 온 그곳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기로 한 것이다.
교회는 작은 한옥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울렸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했다.
"여러분, 야고보서 1장 22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지 말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성경을 아는 것과 성경대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제는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 말이 가슴에 꽂혔다.
나는 평생 많은 것을 들었다.
불교의 가르침도, 유교의 예법도,
무당의 주문도... 하지만 정작 내 삶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웠다.
예배가 끝나고,
나는 목사님께 다가갔다.
"목사님... 저 같은 늙은이도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
목사님은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날 나는 평생 처음으로 진심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평생 당신을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불상도 섬기고, 조상도
섬기고, 온갖 것에 매달렸지만 진정한 평안은 없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면...
이 늙은 몸을 받아주소서."
눈물이 쏟아졌다. 칠십 평생 쌓였던
무게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제6장 - 변화된 삶 (1955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일흔둘이었지만,
마음만은 젊어진 것 같았다.
가장 큰 변화는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었다. 예전에는 밤마다 죽음이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도 죽고, 친구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며 내 차례가 언제 올까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성경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배웠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순이 할매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됐네.
예전엔 그렇게 욕심도 많고 짜증도
잘 내더니..."
나도 그걸 느꼈다. 예전엔 이웃과
작은 일로도 다투곤 했는데,
이제는 양보할 줄 알게 되었다.
남의 것을 탐내지도 않게 되었다.
어느 날, 아들 영수가 물었다.
"어머니, 교회에 다니시면서 정말
좋아지셨어요. 그런데 제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는데..."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 아버지를 잊은 게 아니란다. 하지만 이제는 제사상을 차리는 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기도하마.
하나님께 아버지의 영혼을
부탁드리는 거지."
"그게... 괜찮을까요?"
"얘야,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란다. 네 아버지도 이제 천국에서 편히 쉬고 계실 거야.
우리가 음식을 차려놓는다고
드시는 게 아니잖니?"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 후, 자기도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변하신 걸 보니까...
저도 그 예수님을 한번 믿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날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먼저 변하니까,
가족이 따라오는 것이었다.
제7장 - 세 번의 기도 (1960년)
나는 이제 일흔일곱이 되었다.
몸은 많이 약해졌지만, 영혼만은 날로 강건해지는 것 같았다.
어느 봄날 아침, 나는 마당에 앉아 지난 세월을 돌아보았다.
첫 번째 기도는 불상 앞에서였다.
그때 나는 두려움 속에서 매달리듯
빌었다. 남편의 명복을, 자식의 무탈을, 내 안위를 구걸했다.
하지만 불상은 대답이 없었다.
내 마음은 여전히 공허했다.
두 번째 기도는 전쟁 중이었다.
아들이 끌려갈 때, 나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든 좋으니 제발이라고
울부짖었다.
그때 하나님은 들으셨다. 아들을
돌려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것조차
우연이라 생각하며 외면했다.
세 번째 기도는 교회에서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무릎
꿇었다.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고백했다.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 이제라도 받아주소서.
그리고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평안으로,
기쁨으로,
변화된 삶으로.
"할머니!"
옥순이가 손주를 데리고 왔다.
다섯 살 난 손자 민수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할머니, 저 오늘 주일학교에서 성경
구절 외웠어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나는 민수를 껴안으며 웃었다.
이 아이는 나처럼 칠십 년을 헤매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진리를 배우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것이다.
"할머니, 그런데 예전에는 할머니가
절에 다니셨다며?
왜 이제는 교회에 다니세요?"
민수의 순진한 질문에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응, 할머니는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맸단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
불상도 섬기고, 조상도 섬기고,
무당도 찾아갔지.
하지만 진짜 집은 찾지 못했어."
"그럼 이제는 찾으셨어요?"
"그럼, 찾았지. 예수님이 집으로
데려가 주셨어. 그리고 알았단다.
집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안에 있다는 걸."
민수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괜찮았다.
언젠가 이 아이도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혼자 성경을 펼쳤다.
요한복음 14장 6절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길은 하나였다. 나는 칠십 년을 돌고
돌아 결국 그 길을 찾았다.
마당에 저녁 햇살이 비쳤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늙은 몸이
얼마나 더 이 땅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은 날들을 당신의 영광을 위해 쓰게 해주소서.
그리고 제가 떠난 후에도, 이 가족이
대대손손 당신을 섬기게 해주소서."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니, 옥순이가
저녁상을 차려 들고 왔다.
"어머님, 진지 드세요."
"그래, 고맙다."
나는 밥상을 받으며 미소 지었다.
이 평범한 저녁 식사도,
가족과 함께하는 이 순간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
불상 앞에서 빌 때는 몰랐던 것.
형식적인 제사를 지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
그것은 바로 진정한 평안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주님, 이 음식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에필로그
김순이 할머니는 1965년, 팔십이의
나이로 평안히 눈을 감았다.
임종 직전, 그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두려워 마라. 나는 이제 집으로
가는 것이다."
장례식은 기독교식으로 치러졌다.
관 위에는 십자가가 놓였고,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손자 민수는 훗날 목사가 되어,
할머니가 다니던 그 작은 교회를
섬겼다.
그리고 설교할 때마다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우리 할머니는 칠십 평생을 헤매다가, 마지막 십 년을 진리 안에서
사셨습니다.
하지만 그 십 년이 이전의 칠십 년보다 더 값진 삶이었습니다.
왜일까요? 말씀을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회중석에는 노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들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불교를 믿다가,
유교를 따르다가,
무속에 의지하다가...
결국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그들은 김순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았다.
늦지 않았구나.
지금이라도 괜찮구나.
예배가 끝나고, 한 할머니가
민수 목사에게 다가왔다.
"목사님... 저도 팔십이 넘었는데,
지금 예수 믿어도 될까요?"
민수는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물론입니다. 우리 할머니도 칠십에
시작하셨어요. 하나님은 나이를 보시지 않습니다. 마음을 보십니다."
그날, 여든 살 할머니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렇게 김순이 할머니의 신앙은 대를
이어 전해졌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말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