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다 저물어 간다. 묻힌 한 해를 되짚어보며 가슴 찔리게 자신을 성찰할 때이다. 이제 남은 열흘 남짓이라도 녹슬지 않게 닦고, 새해를 맞이해야겠지만 작금이 위태롭다. 얼마 전. 2024 갑진년 세상을 불안과 불운으로 몰아넣은 비상계엄사태를 누가 예상했겠는가? 운명이었다. 윤 대통령의 계엄사태는 성공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국민과 계엄 그 자체였다. 그는 정국타개를 위해 이 카드를 사용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선관위의 입성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냐 하는 문제는 아직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계엄의 얼개는 과연 무엇인지 아직 뚜렷이 나타나진 않지만 아마도 부정선거가 아니었나 싶다.
노아는 홍수가 난다고 했지만, 비가 내리기 전날까지도 세상은 태평스러웠다.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믿고 싶은가? 빗방울이 떨어지면 후회할 텐가?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우리는 과거에서 물려받은 유산 위에 살아가며 그것을 후대에 넘겨줄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추상적 이념을 들이밀며 세상을 단번에 통째로 들어 엎을 권리는 없다. 지금보다 한 발 나아진 세상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몹시 어렵다. 적어도 더 나빠지지는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과거를 받아들이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라면, 국민을 존중하고 미래 세대를 배려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보수주의다. 모두 ‘보수는 죽었다’며 마치 보수 자체가 결함이 있는 양 자해하느라 야단이지만 보수는 잘못이 없다. 다만 잘못 선택한 기수가 보수에 먹칠한 것이다. 새로운 기수를 뽑고 권토중래해야 하는 것이….
탄핵의 ‘탄’ 자만 나와도 그 나라는 결딴난 거와 마찬가지다. 민주당 의회 장악으로 쪽수에서 속수무책 당하는 여당이 지리멸렬 무너진다. 리더의 핸들링은 악수를 낳고 하차하고 만다. 정국을 책임진다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된 것 같다. 주인 된 자는 항상 물이 새는 배를 타고 불타는 지붕 밑에서 잠을 잔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자신을 믿고 국민을 바라보며 일당백으로 전투를 벌여서야 했다.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던 날 팽목항에 가서 사망 학생들을 향해 ‘미안하고 고맙다’라고 쓰기도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모습의 공통점은 비극적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관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여당 국회의원의 질의가 귀에 거슬린다고 조건반사적으로 고함을 지르며, 책상도 치며, 아우성의 연속이 민의民議의 장을 초토화했다. 이 땅의 자유 보수세력을 바퀴벌레 보듯 ‘궤멸’시키고 말겠다는 심정이었고, 자기 당 대표를 옹호하며, 보위하려는 작태였다. 과연 동료 의원에게 쉽게 던질 수 있는 말이었을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탄핵의 연속, 거기에 좁디좁은 도량까지…
친윤과 친한은 성정으로 볼 때 동거하기 어려운 파탄 가족인 줄 이제 알았다. 그들에게는 자기들 정치 생명을 걱정하기 이전에 세상 판 뒤엎기의 위험 앞에 불안해하는 이 나라 보수‧중도층의 생각을 대변할 더 큰 책무가 있다. 나는 약자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지만, 편을 가르지 않는다. 다만 많이 배우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다. 보수라면 정말 보수답게 하라는 거다.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위조한 사람이 애국자인 채, 잘난 체하고, 반미를 부르짖는 진보 인사는 자기 자식을 미국 유학 보낸다. 이런 위선에 대해선 어떻게 보겠나?
2024년이 과거로 사라진다. 사라지는 세월은 허무하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고, 엎질러진 물이다. 아! 언제쯤 대한민국의 봄은 오려나. 그렇다면 이제는 조용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자. 기각이든! 인용이든! 세상 모든 일은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기 마련이다. 모두가 이미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