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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이 사라지고 있다
최 화 웅
세상만사는 세월 따라 끊임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모든 것은 바뀌고 변하기 마련인가 보다.세상은 이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우리는 때때로 자연과 우리의 삶 또한 그렇다는 것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러나 한번 나온 책은 개정, 증보는 할지언정 그 내용이 송두리째 바뀌고 변하는 경우는 드물다. 책은 문명사회에서 지식을 전파·보존하는 일을 한다. 책방에 가면 공간적으로 동서양을 관통하는 광활함이 있어서 좋고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고전과 신간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책은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그림이나 글로 종이에 쓰거나 인쇄하여 꿰맨 것이다. 책은 문명이 가장 먼저 발달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300년경부터 찰흙으로 책을 만들었고, 이집트와 지중해 지역에서는 파피루스로 두루마리책을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나무 조각이나 대나무 조각에 글을 써서 가죽끈으로 꿰어 만들고, 명주 두루마리책도 있었다. 양피지는 기원전 200년경에 소아시아에서 발명되었고, 유럽에서는 5세기경부터 책을 묶어 만들었다. 미국 사회철학자 랄프 월드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가장 발전한 문명사회에서도 책은 최고의 기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옛날부터 책을 파는 소매점을 책방(冊房) 또는 서점(書店)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보아온 책방의 또다른 이름은 서점, 서원, 서관, 서포, 책사, 도서, 서림, 문고 등 다양하다. 해방 직후에는 소매점을 책방이라 부르고 출판사를 서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난 1977년 1월 부가가치세를 제정할 떼의 이야기다. 국세청이 책에도 당연히 부가가치세를 적용하려고 하자 책만큼은 제외되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고 수입하는 책에도 관세가 붙지 않는다
그만큼 책은 문화발전에 기여한다고 후한 대접을 받아온 셈이다. 그때는 책방이 없는 동네가 없었고 각급학교 주변에는 문구점과 함께 한두 곳의 책방이 반드시 있었다. 부산의 경우 70년대에는 서면의 청학서림, 광복동의 대학서림, 남포동의 문우당이 학생과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보다 221년이나 앞선 1234년(고려 고종 21년)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하여『고금상정예』를 인쇄했다는 역사기록이 있다. 근대 서점의 효시를 1889년에 창업한 회동서관으로 본다. 그 이후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고유상서포라는 이름을 거쳐 회동서관으로 불리며 신지식과 신문화의 창구 구실을 했다고 한다. 8. 15이후 노점과 떠돌이 등짐장수들이 서적상으로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책을 팔고 다니던 시절을 지나 서울, 부산, 인천, 대구, 광주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서점의 면모를 갖춘 책방이 등장하여 급격한 변화기의 물결이 되었다. 그때부터 책값의 5%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이윤으로 책방에 책을 공급하는 도소매상이 생기고 동네마다 우후죽순처럼 많은 책방들이 앞 다투어 문을 열었다. 책의 형태가 옥편과 팜프렛 형태의 단행본 등 다양하게 나오면서 책은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문화의 산실역할을 한 것이다. 정부수립 전후에 지역마다 민립대학이 세워지자 교재 중심의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이때는 사각모자를 쓴 대학생들로 책방은 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6.25 피난시절에는 불황 속에서 할인 덤핑이 성행하여 도서유통질서가 문란해지면서 큰 책방을 제외한 동네책방은 차례로 폐업하거나 전업의 길을 걸어야 했다. 휴전이 되고 문란해진 도서유통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부산의 대표적인 도매상 평범사, 문명사, 보문당이 주축이 되어 대한도서공급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러나 50년대부터 시작된 할인덤핑판매로 도서유통질서가 혼란해지자 폐업이 속출하는 가운데 부산에서는 ‘문화의 최종 결과물인 책을 단순한 돈벌이로 삼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출발한 문우당서점이 지도와 해사관련도서를 갖추고 남포동에 지하1층 지상 3층의 독립건물을 세우고, 대학교재를 중심으로 교양서적을 판매하는 대학서림이 광복동에서 청학서림이 서면로터리에서 문을 열었다. 당시는 부산지역 서적도소매상 업자들이 서점조합을 설립하여 동네책방들을 결속시켰다. 그러고는 도서정가제법의 제정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문화예술의 정보 전달기능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남포동의 문우당과 서면의 동보서적이 차례로 폐업하면서 부산의 책방가의 어려움이 표면화 되었다. 70년대 들어서는 부산시 서적조합마저 자본의 논리로 서울의 대형서점에 밀린 부산의 영세서점은 이에 맞서지 못하고 퍠업이 줄을 이었다. 마침내 동네책방을 비롯한 영세서점은 판매부진을 견디지 못하는 바람에 폐업과 전업이 줄을 이었다. 2000년 문화관광부에서 정부입법으로 도서정가제를 추진했으나 출판 및 인쇄진흥법이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듬해 2001년 11월에야 여야국회의원 27명의 발의로 2002년 7월에 국회본회의를 통과하게 되었다.. 통계로 보면 1997년 부산에 500여 개소에 달하던 서점이 2001년에는 316개소로 줄어들어 현재 250여 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2002년 교보문고의 부산 진출로 존패의 위기를 맞은 부산지역 책방을 중심으로 반대집회와 시위가 계속하였으나 기어이 문을 열었고 광복동 롯데백화점에 <영풍문고>, 센텀 롯데백화점에 <교보문고>가 차례로 입점했다. 한편 센텀 신세계백화점몰 지하 2층에 <반디앤루니스>, 기장 해변의 대규모 휴양단지 아난티 코브에 500평 규모의 <이터널 저니>, 명지국제신도시에 150평 규모의 <북앤컬쳐>, 부산대학교 부근에 북카페 <마들린책방>이 속속 들어섰다. 이제 대형서점을 책방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규모가 크고 모든 장르의 책을 구비하여 북카페 형태로 운영의 차별화 꾀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숨통을 틔어주는 곳이었다. 8.15와 6.25를 거치면서 부산 근대문화의 발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향토의 자랑으로 숱한 사연을 낳은 헌책방골목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이 서면 지하도에서 문을 연대 이어 센텀과 덕천, 경성대 앞, 반여동까지 진출하고 망미동 고려제강 공장에 F1963 테라로사 커피점을 겸한 대규모 헌책방 <부산예스24>가 들어섰다. 인터넷을 통한 10여 곳의 온라인 판매가 전국망을 형성하고 있다. 흔히 지하철에서 책 읽는 승객을 찾아볼 수 없다고 탄식하지만 눈여겨보면 테블릿PC와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는 승객도 종종 만나게 된다. 헐값의 전자책 등장과 과외학원도 학생들로부터 책을 멀리하고 불황을 부채질 하는 요인의 하나다. 요즘 나도 원하는 책을 서점까지 직접 나가지 않고 집에 앉아서 인터넷을 통해 10% 할인된 가격으로 주문한다. 이번 추석 때 가족들과 드라이브를 나갔을 때 들른 기장 아난티 코브의 힐튼호텔 <이터널 저니>의 규모에 놀랐다. 넓은 공간에 서점이 선택한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신간들이 부문별로 잘 분류 진열되어 있었다. 요즘 문을 여는 서점들은 하나같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준비된 카페식 서점이 문화의 산실, 문화의 쉼터가 되어 가족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인문학 서점으로 남천동의 인디고서원과 중앙동의 백년어서원은 인문학서점을 겸한 청소년과 일반인을 위한 강좌를 개설하기도 한다.
책의 철학은 인간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한다. 지배당하지 않고 독립적인 정신과 판단으로 살아가려는 자아를 형성해준다고 하겠다. 2008년 고전역사연구회의 ‘백과전서 연구 및 집필팀’의 일원인 한정주가 지난 1761년 조선시대의 간서치(看書痴)로 불리던 간서치전(看書痴傳)을 담당한 청장관 이덕무가『청장관전서』를 엮었다. 그 결과물인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에서 책에 대한 생각을 요약했다.. 세상은 독서광을 두고 ‘책만 읽는 바보를 간서치’라고 했다. 그러나 책은 외부에 의존하거나 지배당하지 않고 독립된 정신적 주체가 되어 스스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주체가 되어 세계, 자연만물과 우주를 이해하고 탐구하려는 인문학의 길이고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 바깥의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충족시켜준다고 했다. 나아가서 자기 주변의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을 통해 인간과 세계, 자연만물과 우주의 이치를 깨우치는 개방적 식견울 갖추게 한다고 요약했다. 절대권력은 책을 아무나 읽지 못하게 한 것이 인쇄술의 등장과 종교개혁으로 책이 쏟아져 나오자 그때부터는 지배 권력과 일부 종교 권력까지도 자기들과 다른 교리와 다른 사상을 불온한 책으로 분류하여 이단(異端)시하고 금서(禁書)로 묶거나 불태웠다. 몇몇 나라에서는 아직도 자기와 생각이 같으면 옳고 다르면 그르다거나 좌파로 배척하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시인 김수영은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라고 지난날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참 좋은 세상이다.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 심지어 레닌의 책까지 번역출판 판매된다.
우리가 읽는 책 중에서 고전(古典)은 가장 값진 문화유산 중 하나다. 책방, 즉 서점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중요한 문화 사업이고 의사소통의 매개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동네마다 도서관이 없는 나라에서는 책방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동네책방들이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다 옷집이나 심지어 술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며 전업하면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가에 그를 듯한 책방 하나 없다는 것은 더욱 슬픈 현실이다. 부산에서는 대자본의 논리로 대형화 추세에도 살아남은 향토서점, 서면의 영광도서가 대형 빌딩을 건설해 독자와 시민들에게 복합문화의 산실을 마련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지난 70년대 부전천변에서 시작한 작은 책방인 영광도서가 향토서점으로서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음반이나 영화와 공연티켓에 붙여서 거둬들이는 세금으로 마련되는 문화진흥기금을 책방과 출판사를 지원하는데도 유익하게 써야할 것이다. 지금은 과학기술이 인간지능을 앞지르려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게 감시와 통제 보다는 보호와 지원육성에 힘을 쏟아야할 부문이 국민독서생활화의 장려와 영세책방, 고전과 양서출판의 지원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책의 성격과 내용, 독자의 반응과 공감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반응이 나타나고 단순히 책의 내용을 이해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폭 넓은 언어 능력의 발달과 정서적 안정, 다양한 간접체험, 세상과의 소통, 인간관계의 이해, 나아가서 정의사회를 열망하는 이상과 교양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며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도 인문학적으로 한결 풍성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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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행복하고 풍성한 추석 명절 보내셨는지요~
그간 잘 계셨죠? 사비노와 온 가족들이랑.
탈없는 일상 속에서 책읽고 글쓰며 걷기운동에 열심입니다.
그리운 모두에게 안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