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3:10-15 공적을 쌓는 신앙생활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설계하고 건축하고 있는가?” 일생을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설계하고 건축해야 할 것이다.계2-3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기는 자’ 에게 주시는 약속의 복이 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자들에게 하나님이 상을 주신다. 계2:7에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셨고 계2:26에도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약속해 주셨다. 계3:5에 보면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고 하셨고 계3:12에 보면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하셨다. 계3:21에 보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 자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상을 받는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역사가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긴 사람들을 통해 나타났다. 초대교회는 300년 동안 로마의 박해를 이겨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함)
10절에 보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는데 ‘터’ 라는 단어다. 터를 영어 성경에는 ‘foundation’ 이라고 써 있다. ‘기초’ 혹은 ‘기본’ 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에 교회를 세운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세웠고, 그 터 위에 다음 사람이 세울 때도 기초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6절에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바울이 고백을 하면서 그 터가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그 터가 자신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바울이 개척하고 수고하고 애쓰면 세운 교회인데도... (바울의 헌신으로 세우진 교회였지만...) 11절에 보면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교회와 신앙은 바로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지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된다.” 것이 무슨 의미일까?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에서 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교회의 주인과 내 삶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아멘?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고린도 교회를 세웠는데 왜 문제가 발생했는가? 바울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교회를 세웠는데, 고린도에 있는 교인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사람을 인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서로 경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라인 형성 -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을 자랑하지 않고, 사람을 자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다른 라인에 서 있는 사람들,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했고 용납하지 않았다. 기독교 역사 속에 보면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을 주인 삼지 않고 사람을 주인 삼았을 때 타락하고 변질되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질 때 만 온전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변질’은 온전한 기초 위에 잘못된 것을 얹기 시작할 때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가 주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 과연 하나님의 생각인지, 하나님의 마음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먼저 분별해야 한다.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면 안 됨)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졌으면 이제 다른 터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상을, 사람을 올려놓으면 안 됨) 목수에게는 하나의 규칙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 번 자르기 위해 두 번을 재라“는 것이다. 잘 못 자르고 나면 다시 쓸 수 없고 다시 자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한다. ‘나의 신앙생활이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져 있는가?’
이렇게 변함없이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성도들만이 하나님이 주실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받게 된다. 여러분 구원과 상급은 다른 것이다. 12-15절을 보면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집을 지어간다. 이것을 13절에서 ‘공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공적’은 헬라어로 ‘에르곤’이다. ‘에르곤’은 ‘수고하다. 일하다’ 라는 뜻이다. 성도들은 누구나 예수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구원받은 자로서 예수님을 위해 수고하는 것은 다 똑같지 않다. 어떤 성도들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같이, 어떤 성도들은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은 것으로 수고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수고를 시험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적에 따라 상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구원과 상급은 다른 것이다.” (구원은 예수님의 공로로 값없이 받지만 상급은 에르곤 없이 수고 없이 받을 수 없음)
막10:29-31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25장에 ‘달란트 비유’ 에 보면 주인이 모든 종에게 달란트를 주었다. 그런데 그 중의 악하고 게으른 종은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 그에게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었다. 여러분, 하나님의 관심은 얼마를 남겼느냐가 아니고 그 달란트를 가지고 주인을 위해 일을 했는가? 일을 안 했는가? 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주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받은 자로서 ‘수고’를 아끼지 않기를 축원한다. 대하32:25에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하셨고 시116:12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였기에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늘 생각을 하였다. “무엇으로 보답할까...” 이 생각이 우리 모두의 생각이 되길 축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B와 D이다.” B와 D사이에는 무엇이 있나요? ‘C’가 존재한다.
즉 ‘Birth와 Death 사이에서 Choice’ 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선택) 구원받은 자로 무엇을 선택하며 살고 있나? 여러분들이 공적을 금과 은과 보석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고, 불에 타버릴 지푸라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의 선택에 따른 심판이 있음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공적을 쌓는다. 그 은혜를 모르는 자들은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길 때 풀이나 지푸라기로 한다. 여러분 꼭 기억하길 바란다. 하나님이 내가 심은 대로 받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을까? 왜 ,여러분들을 가나안 교회로 보내셨을까? 분명한 뜻이 있다. 그 소명 앞에 사명을 다하는 여러분 되길 축원한다. 암브로스 비어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들과 낙타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그들의 짐을 받는다.” 우리는 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변함없이 충성하고 헌신해야 한다. 그렇게 한 자만이 사명을 마친 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칭찬과 함께 그 공적대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구원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무한 감사하며 더 귀한 공적을 쌓는 신앙생활이 되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