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7시간. 고속버스나 기차, 그리고 다시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도착하는 시골 마을 회진. 이곳에 28명의 학생이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는 장흥 명덕초등학교가 있다. 앞으로는 바다를 바라보고, 뒤로는 산이 지키고 있는이 작고도 아름다운 곳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이 과학실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남자아이 7명에 여자아이 1명. 총 8명이 이 학교 3학년의 전부였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에게 핀홀카메라 만들기 세트가 나누어졌다. 바늘구멍사진기라고도 불리는 핀홀카메라는 안쪽을 까맣게 칠한 통의 한쪽 면에 작은 구멍을 뚫고, 반대쪽 면에 인화할 수 있는 약품을 묻힌 유리를 장착하는 방식의 카메라이다. 이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물체 또는 사람의 상이 유리에 맺히면서 사진이 찍히는 원리인데, 촬영을 위한 버튼도 없고,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도 적기 때문에, 유리에 상이 충분히 맺힐 때까지 촬영 대상자가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특징이 있다. 이날의 수업은 바로 이 핀홀카메라 모형을 만들고, 핀홀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어보는 체험이 주된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카메라로 핀홀카메라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선생님, 이렇게 하면 돼요? 여기다 테이프 붙이면 되는 거예요?” 때로는 제대로 만들지 못해 다시 뜯어 처음부터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옆자리의 잘 만들지 못하는 친구를 도와 함께 만들기도 하면서 핀홀카메라를 완성했다.
그렇게 45분의 수업이 끝난 후, 이제는 밖에 나가서 직접 만든 핀홀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어볼 차례였다.
운동장에서 바라보면 바로 바다가 펼쳐지는 이 아름다운 학교에서 아이들은 한쪽 눈을 찡긋 감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핀홀카메라를 통한 세상은 사람도 나무도 모두 거꾸로였고, 색감은 빛바랜 필름 사진처럼 특이했다. 어떤 아이는 태양을 찍고 싶다며 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고, 또 어떤 아이는 푸르른 나무를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진을 찍은 후 아이들과 선생님은 교실에 다같이 모여 찍은 사진을 노트북으로 한 장 한 장 감상했다. “우와~ 너 이거 어떻게 찍은 거야?”,“어? 이거 내 팔이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서로의 사진을 칭찬했고, 때로는 자신의 사진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아이들의 핀홀카메라 속에 담긴 세상은 거꾸로이면서, 또한 자유로웠다. 어떠한 구도, 어떠한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이렇게 수업이 진행되는 올 한해 동안 아이들은 촬영한 사진 중 잘 나온 사진을 직접 선택한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모아 사진 앨범을 제작할 예정이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으며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배우고,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내는 작업에서 욕심을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하는 법을 배운다.
전성진 강사는 명덕초등학교 아이들의 사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곳 자연이 이토록 아름다워서일까요? 아이들이 자연과 사람을 대하는 데 스스럼이 없어요. 대담하고 자유로운 시선으로 담아내는 사진이 때로는 저도 깜짝 놀랄 정도로 멋질 때가 많답니다.
현실적으로 이곳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보다 문화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전성진 강사는 “예술 수업이 없었으면 어쩜 이 아이들은 사진 촬영에 관한 재미를 느끼거나, 숨겨졌던 사진에 대한 재능을 모른채 자랐을 수도 있다”며“이 수업이 아이들이 미래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서편제>의 작가인 이청준의 고향. 천년학 모양의 산이 마을을 지키는 곳 전남 장흥군 회진면. 이곳에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꿈을 키우며 쑥쑥 자라는 8명의 열 살배기 아이들이 있다. 오늘도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마음이 온 마을을 가득 채운다.
글∙사진. 김소라
첫댓글 아이들이 렌즈를 통해 많은 행복한 경험을 쌓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