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곡군(漆谷郡)
◯ 사양서당(泗陽書院)
-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7호(1985. 8. 5)
- 소 재 지 : 칠곡군 칠곡면 사수동
- 시 대 : 1651년(孝宗2년 辛卯)創建.
- 제 향 : 정 구(鄭 逑: 號寒岡 贈吏判 諡文穆).
이윤우(李潤雨: 參議 贈吏叅).
이원경(이원경: 號 송암)
조선 효종2년(1651)에 한강 정구(寒崗 鄭逑)(1543~1620)선생이 일생동안 학업을 닦았던 칠곡면 사수동(현 대구광역시 편입)에 향인들이 건립하여 한강선생을 주벽으로 석담 이윤우선생을 배향하였다. 숙종20년(1694)에 이곳으로 이건(移建)하면서 송암 이원경선생도 함께 배향하였다. 그 당시에는 묘우(廟宇)와 강당(講堂), 폄우재(貶遇齋), 정완재(訂頑齋), 봉하문(鳳下門), 양현청주고(養賢廳廚庫)등이 있었으나 고종5년(186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에 의하여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강당(講堂)인 경회당(景晦堂)이 남아있다. 경회당이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인데 평면은 어간(御間)의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는 반칸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막돌 헛튼쌓기 기단위에 자연석으로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전면에는 원주(圓柱:단면이 둥근 기둥)를 사용하였으며, 주두(柱頭:기둥머리를 장식하여 공포부재를 받는 네모지게 만든 재)上에는 이익공(二翼工:기둥머리에 두공과 창방에 교차되는 상하 2개의 쇠서로 짜여진 공포(기둥 중간에 창방과 도리, 장여 사이에 화반을 놓음))으로 장식하였다.
◯ 화산서당
-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0호(1989. 5.29)
- 소 재 지 : 칠곡군 석적면 중리
- 시 대 : 1651년(孝宗2 辛卯) 創建
- 제 향 : 장경우(張慶遇: 號 晩悔堂)
조선 효종2년(1651)에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선생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석적면 성곡리 화산아래에 건립하였으나 사림(士林)의 중론에 따라 헌종6년(1840)에 중리에 이건(移建)하면서 묘우(廟宇)를 신축하여 봉정지소(奉亭之所)로 삼았다. 그러나 묘우는 고종8년(1871)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에 의하여 훼철되고 지금은 강당(講堂)과 양예청(養藝廳)이 남아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서당으로서는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인데 평면은 6칸,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꾸민 중앙협실(中央夾室)의 형태이다. 오량가(五樑架:지붕 전후면에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중앙에 종도리를 걸어 지붕틀을 꾸민 집)의 팔작(八作:지붕 마루부분에 삼각형의 벽을 꾸며 까치박공을 달은 집, 합각집)기와집이며, 익공(翼工), 화반(花盤)등은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첫댓글 제춘님. 카페를 번성시키는 비결 하나만 조언해 드릴께요. 지금의 이 자료를 조급하게 올리지 마시고 매일 하나씩 올려 보셔요. 전국의 자료를 가지고 계신다면 1년 넘게 올릴 자료가 확보된 것입니다. 하루에 여러편을 올려버리면 회원들이 다 소화를 해 낼 수가 없답니다. 조회수가 올라가지를 않거든요. 보지도 않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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