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 적수 앞에서
루이나이웨이는 중국 불세출의 여성 바둑기사입니다. 18세에 국가대표가 된 그는 35세 9단에 오르며 바둑계를 평정했습니다. 그런 그가 중국 바둑 대표부와의 갈등에 직면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그는 일본 기원 소속으로 옳길 계획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일본 바둑계가 루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일본에 오면 여성 바둑을 휩쓸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위축됐던 일본 여성 바둑이 더 기가 죽을 거란 전망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루이는 한국기원의 객원 기사로 초청됐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루이 9단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연전연승 가도를 달리더니 결국 당시 무적이던 이창호 9단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2~3년이 지나자 한국 여성 기사들이 루이가 차지한 타이틀을 하나씩 되찾았습니다. 실력이 늘어난 한국 여성 기사들은 루이와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이에 비교해 일본 여성 바둑은 아직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저항이 있어야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강한 적수를 만나야 실력이 늡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버거운 장벽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회피하지 않고 뛰어 넘어가길 원하십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덧셈의 십자가
한 아버지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과 함께 주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목사님 설교가 어른인 아버지가 듣기에도 어려웠습니다.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옆에 앉아있던 아들을 돌아보니 아들은 열심히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오늘 목사님이 무슨 말씀하셨는지 알아들었니.”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아버지는 놀라 아들에게 되물었습니다.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고. 예배 때 목사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목사님만 쳐다보던데.”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뒤에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목사님 뒤의 십자가가 더하기 표시더라고요. 그 더하기 표시를 보고 ‘예수님 믿으면 플러스가 되지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목사님 뒤에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예요.”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설교 말씀보다 네 말에 더 은혜를 받았다. 예수님을 믿는 삶은 플러스가 되는 삶이지 마이너스가 되는 삶이 아니구나. 아들아 고맙다.”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슬픔과 고통
슬픔이 너무 크면 위로할 말을 잃습니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가 그렇습니다. 세상을 떠난 분들의 사연이 소개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제 주변에 20대 아들을 잃은 분이 계십니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터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이 가정의 고통이 점점 옅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아들이 떠난 달이 다가오면 매년 자신도 모르게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한 달 내내 기운을 차리지 못하곤 하셨습니다. 분명히 마음으로는 극복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고통이 여전히 몸에 배어 있었나 봅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슬픔을 위로하기보다 받아주고 함께 있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형식적이거나 섣부른 위로는 되레 고통을 가중할 뿐입니다. 오히려 슬픔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받아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공감이 필요한 겁니다. 나아가 슬픔당한 분들이 혼자 계시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슬픔에는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마음 나눔이 필요합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하늘이 열리고 새 세상으로
마가복음 첫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입니다.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첫 단어는 태초, 시작을 의미하는 아르케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가복음은 창세기와 닮았습니다. 창세기 첫 구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또 다른 공통점도 있습니다. 창세기는 창조 때의 하나님을 세 가지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과 물 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빛이 있으라’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 하나님과 성령과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음을 기록합니다.(막 1:10~11) 마가는 예수님의 세례장면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느꼈고, 예수님의 사역을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으로 고백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지난 12월은 온 국민에게 너무 힘든 한 달이었습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나라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또 지난 주일 아침 무안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땅의 혼돈과 깊은 흑암의 세상을 정리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로 새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도량발호(跳梁跋扈)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는 어떤 해였을까요. 교수신문은 2024년의 사자성어로 ‘도량발호’를 뽑았습니다. 살쾡이가 들보를 밟고 이리저리 날뛴다는 말이지요. 권력자가 권력을 제멋대로 휘둘러서 세상이 혼란하다는 뜻입니다. 살쾡이 떼가 날뛰면, 그 집은 온통 난장판이 되겠지요. 그런데 왜 살쾡이가 집안에서 날뛸까요. 주인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주인이 없으니 들짐승의 소굴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도 주인 없는 집의 불행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마 12:43~45) 악한 귀신이 집에서 나와 쉴 곳을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온 집으로 돌아가 보니 말끔히 잘 정돈되고 텅 비어 있었습니다. 주인 없는 빈집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귀신은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아예 그 집에 눌러앉았습니다. 악한 귀신 일곱이 날뛰니 그 집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그 집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얼마나 비참할까요. 그 집이 나라라면, 그 나라는 또 얼마나 참담할까요. 집도 나라도 주인이 깨어 있어야 든든하고 평안합니다.
서재경 원로목사(수원 한민교회)
영원한 현재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이 과거에서 시작돼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부터 달려와서 현재를 지나 과거로 흘러간다고 했습니다. 과거는 지나가서 존재하지 않고 미래도 아직 오지 않았기에 없는 시간이고 현재만이 존재하는데 그 현재도 우리가 말하는 순간 지나가고 있다며 영원한 현재(eternal now)라는 개념을 말합니다.
비행기를 탔을 때 출발지 시간(과거)과 도착지 시간(미래)은 각각 다르게 표기되지만 정작 현재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재하지만 규정할 수는 없는 현재적인 시간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히 13:8) 안에서 살아가면 그분의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영원한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제 곧 2025년 새로운 시간을 맞이합니다.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영원한 현재 속에 계시는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염려하지 마십시오. 시간의 마스터 되시는 주님 안에서 언제나 행복한 현재를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우리 동네 미화원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1월 6일 월요일인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올해 2025년도에는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늘 언제나 내내 더욱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어저께 김포는 약간의 눈이 내렸습니다. 지금은 거의 다 녹았습니다. 이번 주도 늘 언제나 하나님의 크신 영광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저는 지금 ‘힐링코드’라는 책을 보고 있습니다. 암 의학 전문의사요, 심리학박사인 벤 존슨이 쓴 책으로써 에너지 파동에 의한 치료 효과를 강조하는 대체의학 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기(氣) 치료를 강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도의 능력과 한방(특히 침) 치료 효과를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이 책의 요지는 우리의 모든 질병의 근본 원인은 대부분 스트레스로 인한 결과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질병은 순수한 사랑 에너지 진동으로 고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마음은 생각을 지배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 질병의 치료는 우리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갖느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것만큼 멋진 모습은 없습니다. 그 사실을 저는 우리 동네 미화원을 보고 실감했습니다.
월, 수, 금 오후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동네에 나타나던 미화원 아저씨는 허투루 일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길가에 내놓은 종량제 봉투를 그대로 가져가면 빠르고 편할 텐데, 일일이 열어보고는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를 다시 한번 정확히 분리한 다음 수레에 실어 수거해갔습니다. 부지런하고 꼼꼼한 손길이 닿은 자리는 언제나 말끔했습니다.
뭐라고 말하는 이도 없는데 스스로 완벽을 기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언젠가 아픈 동료를 위하여 성금 모금을 하고 있다는 아저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직접 대화를 나눠본 그는 역시나 자신의 일에 긍지와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수거는 원래 저녁 6시부터인데, 더 일찍 나와야 그날 작업량을 간신히 마칠 수 있어요. 그래서 4시 30분에 일을 시작해야 해요. 일반 쓰레기봉투와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잘못 버려진 것들이 많아서 꼭 확인해야 해요. 힘들지만 내 일이니 열심히 해야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화원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근하거나 지각한 적이 없던 그였기에 부재의 이유가 한동안 몹시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소식을 알 길 없었던 저는 그의 사정을 여러 가지로 짐작해 볼 뿐이었습니다. 그가 보이지 않는 날이 하루 이틀 늘어가면서 머릿속에서도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던 10년이 지난 어느 날, 골목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담당 구역이 바뀌어 그동안 다른 구역에서 일하다가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저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우리 동네 골목은 요즘 구석구석 깨끗하고, 배출 허가 스티커 없이 길에 무단으로 버려지는 커다란 생활용품들도 많이 줄었습니다. 다음번엔 그를 만나면 좀 수다스러운 인사를 건너야겠습니다. 우리 이웃으로 돌아온 것을 열렬히 환영한다고!(출처 ; 샘터 2025년 1월에서, 노청한, 전직 보호관찰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성실하게 하십시오.[골3:23]
●나는 나한테 주어지는 모든 세계를 빠짐없이 살아보고 싶습니다(안윤)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하지 말 것’ 정하는 역발상 새해 결심
역발상을 하면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새해 결심에 그런 역발상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하고, ‘덧셈’이 아니라 ‘뺄셈’을 하면 삶의 무게는 줄어들고 질은 높아집니다.
‘잠자리에서 게임하지 말 것’부터 ‘뒷담화하지 않기’ ‘다른 사람 원망하지 말 것’ ‘시기하지 않기’ ’쓸데없는 불평 하지 말 것’ 등 도움 되지 않거나 짐 되는 행위를 “새해부터는 하지 않겠다!”고 작정해 보라는 얘기입니다.
행복 연구 전문가인 미 하버드 대학교 아서 브룩스 교수는 이 같은 정반대 접근 방식을 주장합니다. 덧셈이 아니라 뺄셈에 집중해야 행복해진다고 설득합니다. 현명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이 멍청한 짓거리를 피하는 일인 것처럼, 즐거움을 좇는 것보다 괴로움·불쾌감 주는 요소를 제거하는 편이 더 이롭다고 말합니다.
그러려면 ‘to-do list(해야 할 일 목록)’와 별도로 ‘to-don’t list(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도 만들어봐야 합니다. 우선 나쁜 습관, 의무감, 남들의 기대감 탓에 어쩔 수 없이 해온 것들을 적어봅니다. 실연한 젊은이들이 한창 좋았던 연애 시절에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며 어렵사리 깨닫는 것과 닮은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감정 흡혈귀’와 시간 보내지 말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기운 빠지거나 우울하게 하는 사람과는 접촉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부정적인 얘기 듣지 않기”는 비관적이거나 좌절감 주는 대화에는 아예 끼지 않겠다는 것이고, “완벽한 시간 기다리지 말기”는 사람·사물·환경이 시시각각 변화하는데 이제나저제나 하며 허송세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단번에 정복하려 하지 말 것” “과거 문제에 집착하지 말 것” “모든 것에 매달리지 않기” “항상 나만 옳다고 우기지 말 것”.
‘to-don’t list’는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행위· 습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입니다. 그래야 비생산적·소모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해 가장 효율적으로 재능을 ‘올인’할 수 있게 됩니다.(출처; 윤희영의 News English)
(돌맷돌)
시야의 차이
리더십의 대가로 알려진 존 맥스웰(John Maxwell) 목사님이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목회를 하던 때의 일입니다.
목사님이 한 성도와 꽤 먼 거리의 교회를 함께 가던 중이었습니다.
성도는 갑자기 목사님에게 다람쥐를 봤느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잠시 뒤 성도는 이번에는 방금 오리가 지나갔다고 말했으나 여전히 목사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성도는 수시로 사슴이나 토끼 같은 산짐승을 발견했지만 목사님은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고 오직 고속도로만 눈에 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도의 직업은 포수였습니다.
이때의 경험으로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나누었습니다.
“운전자에게는 눈앞의 도로만 보이고, 포수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동물도 눈에 들어오듯이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더라도 우리의 눈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다면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를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이 앞으로 베풀어 주실 은혜를 기대하십시오.
약속의 땅을 하나님의 선물로 바라봤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받아들이십시오. 아멘!
주님,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이 주신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하루하루 주님께만 집중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그럼에도 유일한 문
전도자 무디가 한 성도의 소개로 강경한 무신론자를 만났습니다.
무디가 담대하게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하자 무신론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붙였습니다.
“나도 교회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예수는 분명히 존경할만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안다면 교회에 누군가를 나오라고 초청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보다 당신이 더 잘 알겠지만 저는 교회의 위선자들을 정말로 꼴도 보기 싫습니다. 진정한 성도만 교회에 남는다면 그때는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무신론자의 반박에 무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도 가룟 유다라는 위선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싫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옥으로 갔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교회 내의 위선자가 아닌 당신을 위해서 전도하는 겁니다.”
전도자 무디는 어떤 사람에게라도 하루에 1명에게는 복음을 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평생 실천했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지혜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유일한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담대히 세상에 전하는 지혜롭고 충성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지혜의 입술을 허락하소서.
비판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전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인간관계의 지혜
요즘 시대의 화두는 ‘개인화’로 많은 청년들이 직장과 사회에서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사회적인 존재로 창조하셨고, 관계가 건강할 때 인생이 행복해지며 복음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저명한 심리상담가인 고코로야 진노스케가 말한 「단단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6가지 지혜」입니다.
1. 사실이 확인되기 전에는 오해하지 말라.
2. 내 기억과 감정으로 상대방의 의도를 예측하지 말라.
3. 약간의 손해는 괜찮다는 생각으로 먼저 베풀라.
4. 약점을 감추지 말고 적절한 방법으로 나타내라.
5. 진짜 나의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나아가라.
6. 관계를 통해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라.
관계를 통해 사람은 성숙해지고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혹독한 훈련이 있어야 승리의 영광이 있는 것처럼 관계를 통해 말씀을 실천할 수 있고 세상에 복음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과 말씀의 지혜로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가꾸십시오. 아멘!
주님, 저도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단단한 인간관계를 만들게 하소서.
위에 있는 6가지 목록 중에 내게 부족한 부분을 기도하며 보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믿음의 시작점
그리스와 러시아의 전통 기독교인들은 부활절에 독특한 의식을 치릅니다.
부활절 전날 저녁, 성도들은 삼삼오오 모여 작은 촛불 하나를 들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닙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자정이 될 때쯤 한두 명씩 교회로 향하지만 예배당으로 들어가진 않습니다.
자정을 넘기면 한 남자가 교회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습니다!”
그제야 성도들은 교회로 몰려듭니다. 부활의 소식을 듣고 나서야 성도들은 다시 이전과 같이 성찬을 하고, 찬양을 드리고, 말씀을 들으며 주님을 예배합니다.
마을 밖을 돌아다니는 성도들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체를 찾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사셨기에, 즉 부활하셨기에 그 시체를 찾을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나고 나서야 비로소 말씀의 모든 예언이 이루어지고 구원의 역사가 완성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 믿음의 시작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없이 구원은 완성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이 만들어낸 거짓 소문이었다면 복음은 지금처럼 모든 족속에게로 퍼져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부활의 증인이 되어 만방에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가 삼일 만에 사심을 증언케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교회로 VIP들을 초청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내 마음속의 경건생활 365일
『많은 분들이 성경 필사를 통해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극동방송 애청자인 울산에 사는 한 성도님은 「경건생활 365일」로 필사를 하며 은혜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 6권째라고 밝힌 이분은 필사를 하게 된 동기에 대해 10년째 연락이 끊어진 아들과 손자로 인해 가슴이 너무 아프고, 힘이 드는데 그때마다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준 것이 이 책이었다면서 책이 너무 귀하고 복돼 한자 한자 필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펜을 들고 글을 쓰면서 그 글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집사님은 한 권이 완성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지인에게 기도하며 선물로 주었고, 그 선물을 받은 사람 가운데 네 명이 전도가 되어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있다는 놀랍고도 반가운 소식도 전했습니다.
이 책의 필사가 무엇보다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사용된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말씀을 읽고, 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기록하고 계신 집사님을 통해 저 또한 큰 감동과 은혜를 받습니다.』 - 「김장환 목사의 인생 메모」 중에서
한 말씀 한 말씀, 손끝으로 써 내려가는 말씀이 마음에 기록되고 삶으로 적용되며, 성령님께서 주시는 귀한 열매를 맺게 되는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
주님, 주님의 말씀을 한 말씀이라도 더 심비에 새기게 하소서.
성경 읽기나 성경 필사 등을 통해 경건생활에 힘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암벽 위의 나무
미국 애리조나주는 ‘사막과 선인장의 땅’으로 불립니다.
일반적인 모래사막이 아니라 붉고 단단한 화강암이 대부분이라 대부분의 사막 지역에서는 선인장을 제외하고는 식물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이 광활한 사막을 다니다 보면 계곡 틈 사이에 열대지방에서나 자랄 법한 종려나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애리조나의 사막은 종려나무가 자라기에는 너무 덥고 계곡의 틈 사이에서 자라기에는 햇볕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곳에서 자라는 종려나무들은 지역을 불문하고 하루에 2시간 정도밖에 햇볕을 쐬지 못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 이 기적은 ‘암벽’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종려나무 주변의 암벽들이 햇볕을 적절히 반사해 준 결과 사막에서도 자랄 수 있는 적당한 온도가 되었고, 이런 조건들이 유지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종려나무들이 자라났습니다.
사막의 높은 암벽들이 인생의 어려움과 고난이라면 따스한 햇볕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때로는 고난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암벽 위에서도 굳건히 자라는 나무들처럼 주님의 은혜로 척박한 세상에서 자라나는 아름드리나무가 됩시다. 아멘!
주님,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또한 피할 길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암벽과 같은 어려움을 통해 주님께 더욱 나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조심해야 할 사랑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라고 가르치셨고, 성경은 “원수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미시건의 스프링 아버 대학교(Spring Arbor University)의 영성신학 교수인 리처드 포스터(Richard J. Foster)는 “섬기고 싶을 때만 섬기는 것이 가짜 사랑의 특성”이라고 말했습니다.
탁월한 변증가 C.S.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자기가 선택한 사람에게만 베푸는 사랑이 위선적인 사랑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자기와 가깝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쉽게 사랑을 베풀 수가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Bonhoeffer, Dietrich)는 무엇보다도 루이스가 말한 위선적인 사랑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영적인 사랑은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도, 주님에게도 접근할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베푸는 사랑을 보고 세상이 우리가 제자인 것을 알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주님의 진짜 사랑을 되도록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께서 보이신 본 대로 주님을 바르게 섬기게 하소서.
진정한 사랑의 속성을 깨닫고 주님의 사랑을 따라 다른 이를 사랑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결점이라는 장점
세상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칭찬은 좋아하지만 아부는 싫어합니다.
미국 심리학 협회가 뽑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인 엘리엇 애런슨(Elliot Aronson)은 칭찬에 대한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대상자들은 지인들이 자신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몰래 엿들었습니다.
지인들이 하는 칭찬은 다음 4종류 중에 하나였습니다.
1. 무조건적인 칭찬
2. 무조건적인 비난
3. 비난으로 시작해서 칭찬으로 끝남
4. 칭찬으로 시작해서 비난으로 끝남
사람들은 실험에 참가하기 전에는 대부분 ‘무조건적인 칭찬’이 가장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실험이 끝난 뒤에는 ‘비난으로 시작해서 칭찬으로 끝나는 경우’를 가장 선호했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줄 정도가 아닌 약한 비난은 오히려 이어지는 칭찬의 강력한 근거가 됐습니다.
결점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장점에 집중할 때 결점은 오히려 장점을 드러냅니다.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께서 이미 풍성히 주신 달란트를 바라보십시오. 아멘!
주님, 인간적인 약점은 인정하며 하나님이 주신 장점에 집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께서 내게 주신 장점에 감사하며 더욱 계발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죄를 사할 수 있는 분
중세 시대 면죄부 판매 위원장인 요한 테젤(Johann Tetzel)에게 한 귀족이 찾아왔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미래에 지을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테젤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귀족은 큰돈을 냈고 테젤은 “미래에 지을 죄를 용서하노라”라는 내용의 인장을 면죄부에 찍어줬습니다.
그런데 귀족은 면죄부를 받자마자 테젤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작센주의 게오르그 공작은 귀족을 잡아다가 이유를 묻자 그는 면죄부를 보여주며 대답했습니다.
“이 면죄부에는 제가 지을 미래의 죄를 용서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제가 지을 죄가 바로 이 폭행이었습니다.”
성직자를 때렸다는 이유로 크게 화를 냈던 공작은 면죄부를 보고는 죄를 묻지 않고 그냥 풀어줬습니다.
마틴 루터는 테젤의 면죄부 판매와 연옥에 대한 설교에 강력하게 반발했고 이 논쟁이 종교개혁의 불씨를 일으켰습니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시며 우릴 구원하실 수 있는 분도 오직 예수님 한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만을 온전한 진리로 믿으며 다른 가르침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진리임을 철저하게 믿고 전하게 하소서.
혹시 주변에 잘못된 복음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바른길로 인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맥주병 위에 떠 있는 빈 배
1995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이른바 현대 설치미술이 대종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종래의 예술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중 대상 수상작인 쿠바 작가 크초(Kcho)의 작품 앞에서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대화를 나눴습니다. 크초는 맥주병 2000여개 위에 빈 배를 올려놓았습니다. 쿠바 난민들의 처지를 은유한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을 본 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보채며 말했습니다. “이게 다 뭐다요?” 할아버지가 답했습니다. “뭐긴 뭐여. 인생이란 맥주병 위에 떠 있는 빈 배라는 말이지.”
핵심을 꿰뚫는 할아버지의 촌철살인 해설을 옆에서 들은 한 평론가는 즉시 무릎을 쳤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해설은 곧 고달픈 인생을 술잔 없이는 살 수 없었던 한 사람의 통찰이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술병 위에 떠 있는 빈 배 같은 인생’일지 모릅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맞으며 우리는 기대합니다. 술병 위에 떠 있는 빈 배 같은 인생이 아닌, 고난의 바다를 통과하여 평안의 포구에 도착하는 만선(滿船)의 행복으로 가득 찬 인생을.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길 기대해 봅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쓰레기 된 복권 용지
20년 동안 복권을 구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번호를 수첩에 기록해 놓고 20년간 같은 번호로 복권을 구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권번호를 맞춰보니 당첨번호가 수첩에 기록해 놓은 번호와 일치했습니다. 당첨 금액도 무려 20억원이 넘었습니다. 이제 복권 용지를 들고 당첨금을 받는 일만 남았습니다. 당첨된 복권번호는 수첩에 적혀 있었지만 사둔 복권 용지는 집에 있어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복권 용지 둔 곳을 모르겠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집이 너무 지저분해 복권 용지 둔 곳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집 안만 더 어질러질 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쓰레기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린 것도 같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려고 집 앞에 나가보니 이미 청소차가 실어갔습니다. 그는 쓰레기 처리장으로 달려갔지만 그곳에서도 복권 용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복권에 당첨됐지만 복권 용지를 찾을 수 없어 당첨금을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치워야 할 것을 깨끗이 치우고 복된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선배 시민
인간은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한번은 주일예배 중 장로님 한 분이 쓰러지셨습니다. 다행히 회복되셨고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힘이 나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바로 ‘선배 시민’입니다. 어르신 세대를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사회 안에서 선배로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도 어르신을 기능적으로만 바라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 보자는 의미가 담겼다고 이해했습니다.
성탄절을 지나며 성경에 나타난 아름다운 선배 시민인 시므온과 안나를 생각해 봅니다. 두 분 다 연세가 많았지만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 그들의 인생 마지막 단계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 2:25),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 2:37)라고 기록합니다. 아름다운 선배 시민의 모습입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2024 몰래 산타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교회는 어김없이 기독교사회적기업연대와 함께 ‘몰래 산타 성탄선물상자’ 나눔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5만원에 구입하는 상자 안에는 사회적 기업들이 후원하는 20만원 상당의 생필품이 담겨 있습니다. 구청 소속 복지센터의 추천을 받아서 집집이 방문해 선물을 전달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방문사역이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토요일 오전 50여명의 교우들이 모였습니다. 준비한 산타 복장을 하고 차량에 탑승해 복지센터에서 알려준 아파트 단지로 향했습니다. 2~3인이 한 조가 되어 초인종을 누르고 방문 목적을 알리고 승낙하면 휴대전화 반주에 맞춰 캐럴을 부르고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미처 연락을 받지 못한 경우에는 의아스럽게 여기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반갑게 문을 열어주고 벗이 생긴 것 같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올해는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몰래 산타가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카페나 빵집, 국밥집, 분식집 등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선결제해 주는 몰래 산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주님의 성탄으로 말미암은 사랑이 점점 늘어가는 증거이겠지요.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당나라 시인 이백은 공부하다 지쳐 하산하다가 개울가에서 도끼를 가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걸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어느 세월에 그 도끼를 다 갈까요. 그러나 할머니는 갈고 또 갈면 바늘이 된다며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백은 발길을 돌려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말이 나왔지요. 공부는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일과 같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없애려 했지요. 그에 반해 아기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감사드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간절히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안나’라는 여자 예언자가 있지요.(눅 2:36~38) 그녀는 결혼한 지 일곱 해 만에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에서 밤낮으로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도끼를 갈고 또 갈며 그리스도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약속을 믿고 기다리며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오십니다.
서재경 원로목사(수원 한민교회)
평강의 왕
캐나다 출신 여가수 사라 매클라클런의 ‘에인절(Angel)’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영화 OST로도 많이 알려진 이 곡은 1990년대 후반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가수의 삶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만든 작품입니다. 뒷부분에 ‘날 무릎 꿇게 하는 이 찬란한 슬픔이여’라는 가사와 함께 이렇게 끝이 납니다.
“You’re in the arms of the angel, may you find some comfort here.(당신은 천사의 품 안에 있어요. 이곳에서 쉴 수 있기를 바라요.)”
2024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이 시대 많은 사람이 이 가사의 내용처럼 자신을 무릎 꿇게 하고 눈물 나게 하는 숱한 슬픔과 고난 속에서 참된 위로와 평안을 갈망합니다. 사람들은 천사든 희망고문이든 뭔가 소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평안을 갈망합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 품 안에서 참된 쉼과 위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소망의 빛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 소망과 평강을 충만하게 경험하는 성탄절을 보내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시간, 우리의 생명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12월 30일 월요일인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즘 김포는 조금은 푸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도 늘 언제나 하나님의 크신 영광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얼마 전, 저는 사랑하는 외손녀의 손을 붙잡고 장모님이 계신 곳을 찾아뵈었습니다. 장모님은 외손녀이며 저의 딸인 한나를 조금 더 공부시키려고, 한나 앞에 앉아서 속회공과를 계속 읽었다고 합니다. 적어도 10번 이상 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속회공과가 너덜너덜해졌다는 겁니다. 어쩌면 오늘의 한나가 있게 된 것은 그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나의 머릿속에는 그때 그 모습이 어른 거릴 겁니다. 참으로 고마우신 우리 장모입니다. 그리고 존경스러운 장모입니다.
김형석 교수가 지방에서 강의를 하던 중, 조부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서둘러 서울로 돌아왔지만, 결국 조부의 임종을 맞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병실에 들어선 김 교수에게 곁에 있던 이들이 전한 조부의 마지막 말씀이 ‘5분만 더 기다려 봤으면 좋겠는데…’였습니다. 오래전 포켓북으로 나왔던 김 교수의 책 마지막 장 제목이 바로 ‘5분만 더 기다려 봤으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시간이 되면, 5분도 더 기다릴 수 없는 것이 우리 목숨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시간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이 끝나면 우리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시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생명 그 자체입니다.
한 신학생이 총장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불타올라 한시라도 빨리 졸업하고 싶습니다. 3년 과정을 1년으로 줄여줄 수는 없는지요?” 그때 총장이 대답했습니다. “물론, 가능하지. 그런데 문제는 자네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에 달려 있어. 호박은 3~4달이면 키울 수 있지만, 박달나무는 적어도 50~60년은 커야 재목으로 쓸 수 있거든. 자네는 호박이 될래? 박달나무가 될래?” 생명이 성장하고 성숙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어떤 이가 모세의 생애 120년을 정리했습니다. “모세는 생애 첫 40년 동안 애굽의 궁궐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살면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40년 동안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들어 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빛과 소금 2024년 12월호에서, 서정오 은퇴 목사)
●야곱이 대답하였다. '나그네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살다 보니 내 나이 올해로 백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우리 조상님에 비하면 그리 많이 먹은 것도 아니고 또 우리 조상님들처럼 그리 많이 헤매며 돌아다닌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때껏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 왔습니다.(창47:9)
●길을 가다 보면 돌아가야 하는 때도 있고,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하는 때도 있다. 아예 목적지를 바꾸어 가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도착할 때까지 계속 가는 것이다.(신순규)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완벽주의라는 덫
고2까지 전교 1등을 하던 남자가 한 번의 시험 때문에 내신이 추락한 후, 시험 공포증으로 사회 진출을 못 했다는 사연을 들었습니다. 글자 하나만 틀려도 새 제품을 사느라 수십 권의 쓰다 만 다이어리를 갖게 된 여자의 사연도 들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들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 건 완벽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작은 것까지 신경 써 최상의 결과를 만드는 전문가의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청결 완벽주의자라고 소개한 남자의 방은 의외였습니다. 창틀 먼지, 손톱 위 거스러미 하나 참을 수 없다던 남자는 왜 떡진 머리로 쓰레기 방에 고립됐을까요? 그는 책상 하나를 닦기도 전에 이미 지쳤습니다. 방 안의 먼지와 쓰레기를 완벽히 치울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완벽주의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의하는 이유입니다.
완벽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떨어질 일이 없고,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면 삼진 아웃 되는 위험은 없습니다. 성공의 정의가 성취로 나아가는 게 아닌, 실패를 막는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완벽주의자의 또 다른 얼굴은 타인의 시도를 지적하며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방구석 평론가입니다.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환경을 걱정하면서 왜 탄소 배출이 많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가느냐고 따지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완벽주의를 게으름이나 회피에 대한 방어 논리로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주의를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 정의하면 우리의 기도는 ‘실패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아닌,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으로 바뀔 것입니다. 내가 쓰는 글 역시 완벽해서가 아니라 써가면서 점점 완성도를 높여 가는 것입니다. 요리를 해본 사람은 압니다. 모든 재료가 완벽하게 있어야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게 아닙니다. 완벽한 준비란 없습니다. 준비하면서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배는 항구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있으라고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백영옥의 말과 글, 소설가)
(돌맷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