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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다시 오실 때 믿음을 볼 수 있겠는가? 눅18:1-14
이번주 수요일인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세종대왕은 1446년 음력 9월 10일 훈민정음을 반포했는데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 9일로 올해가 한글창제 578돌을 맞이한 것입니다. 지금은 전세계가 한류의 확산으로 K팝이나 K드라마 K뷰티 등 한류 붐이 불면서 좀더 한국에 대해서 알고자 전세계 젊은이들이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인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어느 유트브를 통해서 보니 인도국립대 한국어과 경쟁률이 3000:1이라는 보도를 들으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 지금은 인도만이 아니고 영어권인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일부 학교에서는 한국어를 교과목으로 도입하였다고도 한다. 사실 영어권에 사는 사람들이야 다른 나라 말을 배워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지금은 K드라마나 k팝을 더 잘 알고자 그들 스스로 인터넷을 통해 한글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한류 붐을 타고 우리 문화의 근간인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는 것이다. 한류 등의 영향으로 좋아하는 K팝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 한다거나, K드라마를 자막없이 보고 싶어하는 한글에 대한 열망이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2007년도에 해외에 처음 세운 세종학당이 13개소에서 740명의 수강생으로 시작이 되었는데, 이제는 256개소에서 수강생 숫자가 21만 명에 달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한글을 상품로고에 도입하는 외국회사들도 있는데 이를테면 코카콜라는 K컬쳐에 반하여 한글 역동성을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자 13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글로고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마케팅 전략과 광고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들과 감정적 유대관계를 이용하고 있으며 글로벌 패션 브랜드인 꾸찌도 올 초 한글 티셔츠를 선보이고 있는데 티 셔츠에다 한글로 구찌라고 로고를 넣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마케팅에도 한글을 넣어야 더 잘 팔린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는 것인데 이런 현상만 보더라도 오늘날 가장 많이 학습되는 언어인 우리 한글이 지금은 세계 7위권을 형성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많은 학습자들이 분포돼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한국어에 대한 매력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한글은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영어든 일본어든 중국어는 누가 언제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는데 한글은 세종대왕이 1446년에 14개 자음은 목구멍에서 소리가 날 때 입 모양이나 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으며 10개 모음은 하늘과 땅과 사람 즉 천지인을 기준으로 만들었다니 정말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만들었으므로 배우기 쉽고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이하로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한글을 기념하는 한글날도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1945년에서야 지금의 10월 9일로 정해졌지만 한글날도 정권에 따라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글의 중요성을 안 박정희 대통령은 모든 공문서를 한글로만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일제가 허문 광화문을 제자리에 옮겨 한글 현판을 세웠으며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이름도 직접 붙였다고 하며 1962년에는 한글을 국보 제70호로 지정하였다. 박 대통령은 1965년 한글날 담화문에서 “세계 어떤 민족도 제 나라 글자를 위해서 기념하는 날을 가지는 민족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은 “한창 일해야 할 가을철에 쉬는 날이 너무 많아 수출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1991부터 한글날은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다가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로에 한손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든 세종대왕 동상이 설치되던 날 이 대통령은 “독립일이나 승전일을 기념하는 나라는 많지만 문자를 만든 날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며 2013년부터 다시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노태우 대통령이 공휴일에서 제외한 지 22년 만에 한글날이 달력에 붉게 표시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기독교가 이땅에 들어온지도 130년 밖에 되지 않는데도 기독교 역사상 교회가 이렇게 부흥된 적이 있었던가? 그 원인은 한글성경을 구독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고 생각한다면 한국교회의 부흥 원동력은 한글성경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은 성경을 읽어야만 우러나오는데 한글 성경은 교회가 부흥하는데 최고의 원동력이었음에도 요즘와서는 교회도 쇠퇴의 길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서글프다. 신약의 핵심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인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 내가 올 때 믿음을 볼 수 있겠는가? 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오늘의 신앙상황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길이 행복한 삶이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행복을 향해 살아가는 길이 너무나 다양하다. 민족마다 지역마다 개인마다 믿는 대상이 다르지만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모든 인생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생길을 가는 사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우리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을 때 기뻐하신다고 하셨다. 예수님을 모르고 산다면 정말로 헛된 삶이라는 말이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참으로 성공하는 인생이 되려면 우리의 삶의 의제인 어젠다를 하나님의 어젠다에 맞추어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도우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주께로 향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인생은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 장거리 경주한다고 말한다. 인생의 목적은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잘 끝내는 데에 있다. 인생 마라톤에 대한 참된 평가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데 인생길의 평가기준은 주를 경외하면서 경주하였는가 기준이다.
(잠1:7)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마라톤 경주는 처음에 앞서 갔다고 아니면 반환점을 먼저 돌았다고 면류관 받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도착지점을 누가 먼저 들어왔느냐에 따라 면류관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시작은 늦더라도 마지막 승리자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씌어지는 것이 마라톤 하이라이트이며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라톤 경주처럼 처음보다는 마지막 인생마감하기 까지 주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없었다면 그는 헛된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애플 창시자 스티브 잡스도 자기 자녀들에게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한다고 하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컴퓨터의 대부인 스티브 잡스가 누구보다도 컴퓨터의 중독피해를 일찍 체험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세상일이란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하지만 지나치면 중독되어 버린다는 것인데 돈 버는 것도 게임 즐기는 것도 그리고 각종 취미 생활하는 것도 절제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중독되면 인생을 망친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탐정소설 같은 책이라도 밤새워 읽었던 것도 생각나는데 하물며 컴퓨터 같은 테크놀로지 기기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데는 소설과는 비교도 안될 것인데 요즘처럼 스마트폰에 정신을 뺏긴다면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내가 세상 사람과는 달리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될 인생이라면 그 믿음이란 무엇일까? 물론 히브리서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라고 했지만 입으로만 줄줄 외운다고 믿음이 온전한 것도 아니다. 이처럼 세속적인 것에 헤매다가 주님 오신다면 과연 내가 주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인지 다시한번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보자. 신앙은 누구를 믿느냐 하는 단순한 믿음의 대상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믿어야만 그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히11:1)”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 이상으로 믿고 행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요3:16) 하신 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을 행하는 것인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도 믿음을 더 달라고 하였을 적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10)고 말씀해 주시면서 순종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마귀는 불순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순종하는 자들이다. 믿음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인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같은 믿음을 끝까지 지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고 말씀하심에 우리 모두는 어찌보면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때로는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은 믿음이라고 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믿음이 얼마나 약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때 사람들은 어느 요인으로 인해 믿음이 약해질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고 하셨으며,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 원인을 디모데전서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라고 하면서 마지막 때에는 재물에 대한 탐심이 인생들을 믿음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였다. 마태복음6장에서도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믿음이 파선된다면 결국은 영혼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돈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정도가 아니라 영혼이 멸망당하게 된다는 말이니 금보다 귀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올 때 믿음을 볼 수 있겠느냐는 말씀속에는 즉 마지막때 사는 사람들은 성경말씀대로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거짓진리에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을 두고서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이단이 번성하던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단이라는 것은 대부분 같지만 끝이 한두 가지 상이한 것이 지옥과 천국을 갈라 논다고 생각해 보자. 이단들의 교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의 본질적인 것을 부인하니 그들이 믿는 것은 거짓 진리이다. 오늘은 여러 이단들 중 가장 많은 교인수를 거느린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 다른 말로 몰몬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배를 신으로 삼는 이단을 경계하여야 한다.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교(몰몬교)는 1830년대 미국에서 자생한 이단 중 교세가 500만 정도가 되는 가장 큰 이단으로서 현재 3만에 육박하는 선교사들이 세계 전역에 파송되어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 선교사들은 현시대의 선지자로서 사도들로서 제사장들로서 자신들이 그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초대 교회 시대부터 배도가 일어났는데 그들이 믿는 예수는 우리가 믿는 예수와는 다른 예수, 즉 하나님과 마리아 사이의 성적인 관계로 출생한 예수를 믿고 있는데 우리와는 다른 복음이다. 그들의 황당한 이야기는 몰몬경에 그대로 들어 있다.
(1) 몰몬교의 기원
몰몬교는 1820년 당시 14살 요셉 스미스가 기도하러 숲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실제로 구분된 두 인격체)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823년 한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황금판들이 담겨있는 상자가 묻혀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는데 그는 그 황금판들을 뉴욕의 팔머라시 근처에서 찾아내어 신적인 도움을 받아 몰몬경이라는 책을 만들었고 그 후 1830년 6명이 모인 가운데 교회가 세워졌는데 스미스가 교회의 예언자이자 계시자이자 수석선지자였다. 이렇게 시작된 몰몬교회는 오늘날 몰몬교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유타로 옮기면서 성장하였는데 1830년 불과 30명이던 규모가 1950년까지는 무려 1백만을 넘었고 오늘날은 5백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몰몬교의 성장배경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의복 및 여러 구제품들을 주며 경우에 따라서는 재정적인 도움도 주며 건장한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일자리도 준다. 또 몰몬교도는 젊은이들을 위한 활동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는데 젊은이들을 위한 춤 무대도 있으며 음악, 연극 등의 분야에 재능을 사용할 기회를 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그들 중 능력있는 사람은 누구나 교회의 무보수 사역자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한다. 남자 아이들은 12살에 사제 수업을 받으며 교회는 그들을 장래의 지도자로서 양육시키는데 소명은 2년 임기의 선교사가 되는 것인데 이는 그 교회의 명예이기도 하다. 모든 회원을 사역자로 세우고자 하는데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 아래 일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인 권위를 부여받았으며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라고 주장한다. 몰몬교도는 그들만이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제사장직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성경보다 더 큰 권위가 있다고 믿는 신성한 계시들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데 필요한 많은 일들을 규정해 놓은 "회복된 복음"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메세지를 가지고 있으며 결국 몰몬교는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여러 신들 가운데 한 신이 될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2) 몰몬교도는 다신론자들이다
열정적이고 깔끔한 용모의 젊은 선교사들에게는 누구라도 쉽게 매료될 듯하지만 그들은 사단의 능력을 힘입은 거짓사도요, 가장된 빛의 천사요 의의 사역자로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고후11:13-15).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미혹되는지도 모르지만 몰몬교의 주요 교리들은 성경과 비교해 볼 때 몰몬교도는 다신론자이다.
"만일 우리가 현 태양계와 같은 세계가 수백만 개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만큼의 신도 존재한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강화집에 수록된 사도 올슨 프레트의 말, 2권 p. 345).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세 신"이므로 여러분도 스스로 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유일신론자인데 비해 이 거짓말을 하는 요셉 스미스는 "신의 복수성에 대한 교리가 성경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데 자신들도 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다신론자들이다.
(3) 해괴망칙한 교리
성경에는 나는 주라 변지 아니하노니(말3:6).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약1:17). 그 존재의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13:8). 그분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셨으나(요1:1), 몰몬교의 5대 교주 로렌조 스노우는 하나님은 전에 현재의 인간과 같았으므로 인간은 현재의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것이 아니라 변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망칙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어머니인 아내를 가지고 있다고 해괴망칙한 주장을 한다. 몰몬교리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자녀라는 기독교 진리 속에는 모든 인간은 또한 영원하신 어머니의 자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몰몬교 선지자로 스미스의 뒤를 이은 브라이험 영은 하나님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고 믿었으며 몰몬교도는 천국에서도 결혼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지 않았다고 한다. 동정녀 마리아는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합법적인 아내였음에 틀림없다"(올슨 프레트 저 "관찰자", p. 158)고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동정녀 마리아 사이의 성적인 관계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마2:18,20) 18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을 때에 그들이 함께 하기 전에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것이 드러나매 20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그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부인하는 것으로서 성경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거스리는 가증스런 개념이다. 또 예수님은 결혼하여 자녀가 있다고 하는 그들 주장은 그 어떤 이단보다도 기가 찰 노릇이다. 그들 교리 책에는 "구주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자신의 육신의 자녀들을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대하듯이 대하셨다"(강화집, 4권, p. 210)고 한다. 성경어디에도 예수님의 결혼이나 자녀들에 대한 기록은 일체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한 죄사함에 대해서도 몰몬교의 교리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호의)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부인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편파적인 교리는 사단을 위해 일해왔을 뿐이다(신앙록 연구, p. 480). "완전한 구원은 지식과 진리와 의로움과 모든 참된 원리들에 의해 달성된다고 하면서 구원이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구원과 복음과 제사장직과 성령의 능력 없이는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지속적인 계시와 섬기는 천사들과 기적의 역사와 성령의 은사의 나타남이 없이는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결국은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떠나서는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다"(몰몬 교리, p. 670)고 주장한다. 최종 권위는 성경이 아니라 몰몬의 저작들이라고 한다. 과연 몰몬경이 어떤 책들보다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가? 몰몬경 지지자들은 그 책이 기적의 책이라고 주장하지만 몰몬경은 "1830년 최초로 발행된 이래 4천 번 가량이나 내용이 변경되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니 거기에는 다른 자료들을 도용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랄프 포스터는 "몰몬경의 정체에서 지적하기를, 몰몬경은 오래 전 BC 600년에서 AD33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주장되나 사실 그 속에 나오는 2만 7천여 단어가 킹 제임스 역에서 그대로 빌려온 것이라고 했다. 알마 40장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문 32장(1647년)과 매우 흡사하게 전개되어 있다. 다른 내용들도 외경 자료에 포함되었다.
(4)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사단에게 기원을 두고 있으므로 당신이 당면한 싸움은 어두움의 권세들과의 싸움임을 명심하라(엡6:12). 그들은 영생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고 그들이 믿는 예수는 우리가 믿는 예수와는 다른 예수를 믿는다. 신자수가 5백만명이나 되는 몰몬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 정체성을 모르고 다니는데 몰몬교 말고도 여호와증인, 안식교, 신천지, 영생교, 천부교 등 너무나 많은 이단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그들의 주장은 자기 교회에 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기존의 교인들을 포섭하는데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향해 주님은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8절까지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은 (8) 인자가 오는 날까지 낙심치 말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기도하라고 함이 분명한데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날 다시 말하면 곧 인자가 오시는 날은 마치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도 같다고 하시면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눅17:26-30)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이 말씀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육체의 정욕과 쾌락을 위해 살았지 전혀 주님오실 마지막을 위해 준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기 때문에 노아의 때나 롯의 때와 같이 멸망되지 않기 위해서는, 본문에서 보듯이, 마치 어떤 도시의 재판장이 교만하고 안하무인일지라도 그를 끝없이 찾아 물고 늘어지듯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 과부와 같이 낙심치 말고 항상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고 기도에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끝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고 하십니다. 즉 세상 끝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우리가 변함없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낙심치 말고 인내하면서 기도에 힘쓸 것을 특별히 당부하신 것입니다. 또 본문 뒤 9절부터 이어지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바리새인이 아니라, 염치불구하고 끈질기게 호소하는 비천한 과부와도 같은 세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한 세리 입니다. 이같이 한 과부나 한 세리와 같은 자세로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며 겸손하게 기도해야, 주님 오시는 날에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 잔을 가지사 이것은 내 피며 떡을 가지사 이것은 내 몸이라고 하시면서 이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내가 세상에 다시 오는 날까지 나를 기념하라 하신 것이다. 성찬식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언약을 지키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간청을 듣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미루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속히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주님을 믿는 믿음을 볼 수 있겠느냐?”
이런 말씀은 주님께서 마지막 때 살아가는 교인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마지막 때 사는 교인들은 큰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도 마음이 세속적인 일과 공유하고 있다면 부하고자 하는 탐심에 빠져서 어리석은 정욕에 빠져 멸망하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 원인은 돈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과연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믿고 있을까? 말은 믿을지 몰라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오실 주님은 정결한 신부를 데리고 공중에서 혼인잔치에 참여하고자 오시는데 과연 그렇게 준비된 신부를 몇이나 만나실 수 있는가에 대한 말씀이시다. 다시 한 번 주님의 비유를 보자. 한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과 과부가 있는데 과부가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해도 이 재판관은 듣지 않다가 과부가 매일 번거롭게 하니까, 그것이 귀찮아서라도 원한을 갚아 주었듯이 하나님께서도 택한 자의 기도를 속히 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늘 번거롭게 함으로 그 원한을 풀어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심판의 때에 낙심하지 말고 항상 주님을 번거롭게 함으로 우리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기도가 응답된다는 날은 수많은 연단과정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지 공짜로 오는 법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다는 약속은 사람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꼭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날이 오기 전에 죄악 된 내 안의 본성이 고침을 받는 것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재판관이 듣지 않는 기간이 꼭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재판관이 들어 주지 않는 이 기간 동안에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주님을 번거롭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때,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들 중에 교만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 잘난 맛에 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그를 낮추기 위해서 기도를 곧 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원망하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에 있는 교만한 마음은 나를 죽이는 원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주님 제가 저의 교만함으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줄도 모르고 마귀의 종노릇 하고 있었던 것을 해방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부가 자주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나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것이 밤낮 주님께 부르짖는 택한 자들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 내용은 혹 물질이 풍성하게 있어야 하겠고, 평생 아프지 않게 살다가 죽지 말아야 하겠고, 교회가 부흥되어야 하는 이러한 기도는 여기 등장하는 과부의 기도가 아니고 세리의 기도가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기 위한 기도는 단 한가지, 오직 자신 안에 있는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달라는 기도가 바로 이 과부의 기도이고 세리의 기도이고 우리가 해야 할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제대로 주님을 알고 주님께 부르짖을 때, 우리의 원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새롭게 변화된다면 우리는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믿음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때 이런 믿음을 가진 자를 볼 수 있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1) 주님 다시 오실 때의 상황
요한계시록은 주님 오실 때를 기준으로 일어날 상황을 미리 알려준 것인데(계11:15,19) 15 7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19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신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그 순간, 번개가 치고, 천둥과 지진이 일어나며, 큰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계16:19-21) 19 큰 성이 세 조각이 나고, 온 나라의 도시들이 무너졌습니다. 20 모든 섬들이 사라지고, 산들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21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들이 하늘에서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우박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이 세상은 너무나 끔찍한 재난의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으로 온 나라 도시들이 무너지는 재난으로 인류 생존이 무너졌는데 주님이 아직 오시지 않는다 하여도 절망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하루가 일년같이 길고 위험한데도 믿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마24:21-22, 30-31) 21 그 때는 세상이 생기고 나서 지금까지 이 같은 환난은 일어난 적이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것이다. 22 하나님께서 그 기간을 감하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 줄여 주실 것이다. 30 그 때에 인자가 올 징조가 하늘에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울며,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31 인자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낼 것이다. 그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택함받은 백성들을 모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오실 때 기록된 말씀을 아는 사람은 끝까지 믿고 기도하다가 주님을 만날 것이므로 믿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신실한 복음주의자들마저도 세상과 타협하고 배교하는 위험한 때에 살고 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지옥과 관련된 설교나 가르침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온 세상이 성공과 번영을 추구하다 보니 교회조차도 세상의 영향을 받아 교인 숫자와 교회 건물의 크기로 목회의 성공여부를 판단하게 되었다. 얼마나 천국 백성을 배출하는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뒷전이다. 우리는 이 땅에 잠간 머무는 나그네요, 순례자임을 망각하며 살아간다. 하물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과 별반 다르게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들의 삶에서 감동을 받지 못하니 점점 예수님과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핵심이요, 죄인들에게는 진노와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이전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든 그들의 삶의 결과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단12:10) 오직 지혜있는 자는 깨달아서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악을 행하며 살 것이다.
지혜있는 자는 깨달으라고 하셨는데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는데 거기에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모든 종교와 사상이 한결같이 기독교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사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누군가를 공통적으로 미워한다면 그들은 한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세상 종교는 한가지 목적 즉 예수를 반대하는 일에 하나가 된다. 사탄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악한 생활에 빠지게 되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사탄이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탄인 루시퍼는 교만한 생각 때문에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이 세상으로 쫓겨나 세상 임금이 되었으나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이 세상 임금은 불타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마25:41) 나를 떠나 마귀와 그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도 범죄한 천사들처럼 하나님께 반역의 마음을 품고 나면 마침내 죽음이 그들을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지옥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과를 가장 적절하고 공의롭게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거울이다. 예수님께서 첫번째로 가르친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의 의미는 지옥이 어떤지를 알게 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라는 극형에 처해졌다면 복음을 거절한 자들에 대한 댓가에 대해 회개하지 않는 영혼은 반드시 지옥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지옥은 죄인들을 벌하고 응징하는 곳으로 악인들이 영원히 거하는 지옥은 예수를 거부한 사람들이 가는 곳인데 그들이 가장 많이 짓는 죄에 대해 알아보자.
(2) 마지막 사람들이 많이 짓는 죄
1) 우상숭배
십계명 중에서 첫째와 둘째 계명으로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대적하는 것이므로 가장 근본적인 죄에 속한다. 우상이란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것이다. 십계명중 첫 번째가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출20:3). 예수님께서는 세상계셨을 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행위도 우상숭배에 속한다고 말씀하셨다. 현대인이 가장 좋아하는 재물과 명예와 인기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2) 살인
인간이 다른 피조물을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을 살인하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기에 사악한 범죄가 된다. 그래서 육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인데 물론 자신이 자신을 살해하는 자살역시 살인죄가 된다. 그래서 살인죄는 지옥을 향하는 무서운 죄악이다.
3) 간음
성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간음을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세워 주신 결혼제도를 파괴하는 것이기에 심각한 죄에 속한다. 신약에서는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가르치셨다. 간음죄는 몸안에 짓는 죄이므로 더욱 용서받지 못할 음란한 죄인에 이런 음란한 마음을 거부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누가 여기서 자유롭겠는가? 오직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믿음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4) 동성애는 성적타락의 극치
오늘날 동성애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과거에는 동성결혼이라는 말이 없었는데 이제는 이것을 합법화하는 추세인데 하나님은 동성애를 매우 증오하시는 것은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성을 완전히 왜곡시키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부부의 특별한 복에 대해 반기를 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한번 동성애를 시작하면 이성간의 성적쾌락보다도 더 끊을 수 없다고 한다. 모든 피조물 중 인간만이 하는 짓이고 보니 그 배후는 사탄이 조종하는 전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레20:13) 남자가 여자와 함께 눕듯이 남자와 함께 누우면 둘 다 가증한 짓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그들을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그들에게 돌아가리라
(레8:22) 너는 여자와 함께 눕는 것 같이 남자와 함께 눕지 말라, 그것은 가증한 것이니라.
(롬1:27) 남자들도 이와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는 것을 버리고 서로를 향해 욕정이 불 일 듯 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함으로 자기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 속에 받았느니라.
5)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죄
마지막 때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반드시 오신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님 자신이 마태복음 26장에 말씀하셨고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 기록을하였다.
(마26:64)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들가운데서 오는 것을 이후에 너희가 보리라, 하시더라.
(살전4:16-17)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뒤에 살아 남은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주와 함께 항상 있으리라.
마지막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주님의 재림을 믿고 준비해야 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 사람들이 재림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가를 말씀하시면서 이런 믿는 자들의 믿음을 볼 수 있겠는가 하신다.
4. 사탄의 전략이 먹히는 시대
주님이 오시는 날 지옥으로 떨어진 루시퍼(마귀)가 하나님에 대한 원한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지만 사탄에게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며 매일 엄청난 숫자가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귀의 추종자들인 악귀들이 얼마나 충성되게 열심히 일을 하며 지옥백성으로 만드는 장치들을 세상에 교묘하게 심어 놓았는지 그들 나름대로 승리에 도취되어 있다. 악마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오류에 빠진다.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되 심각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축구 서포터스 클럽 이름을 붉은 악마로 만들었겠는가? 악마를 친근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런 순진한 생각들이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만큼 우리 영혼은 세속주의에 젖어 있으며 세상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반드시 존재하며 세상은 한가지 목적인 예수님을 반대하는 일에 일치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의 배후는 사탄이 온갖 사악한 함정을 세상에 든든히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5.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네 믿습니다.'라고 대답 할 것이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할 때 과연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믿음인지 계명을 지키는 믿음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양은 영생에 염소는 영벌에 처하신다는 말씀인데 기준은 이웃을 사랑했느냐이다. 이웃사랑이 신앙생활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닥쳐오는 환난이나 고난, 풍파 등 힘겨운 시련을 만났을 때 그런 것을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무조건 순종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사랑을 실천한다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특별사랑을 받은 민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들은 걸핏 하면 불평하며 원망했다.(출16;3) 우리가 차라리 애굽 땅에서 고기 솥옆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주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굶주려 죽게 하는도다.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한다면 하나님의 베풀어주신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 된다. 불평과 원망하는 이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주께 온전히 순종한 여호수아와 갈렙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을 거울삼아 오늘날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 세상에서 온갖 유혹과 시험을 다 이기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들을 강하게 훈련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은 자들은 시련도 크고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강한 훈련을 받아야만 믿음의 장부가 되고 장성한 믿음의 용사가 되어 시험을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 또한 연단 과정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면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를 깨닫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된다면 그들은 다니엘의 세친구처럼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신앙을 소유할 것이며 '죽으면 죽으리다 '라고 믿었던 에스더의 신앙으로 목숨을 바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인생은 마라톤하는 경주자이므로 출발할 때 앞서서 가더라도 들어 올 때 제일 먼저 들어와야 월계관을 받듯이 신앙생활은 시작도 중요 하지만 끝은 더욱 더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경주는 끝에 가서 잘못하면 다 잘못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 동안은 충성하며 왔는데 끝에 가서 배도의 길로 간다면 이는 예수님 믿지 않은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므로 완주 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10;22, 마24:13)
(눅18;8)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참 믿음을 보겠느냐! 주님 말씀처럼 참 믿음은 참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 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을 사랑하고 따라 갑니다. 주님을 참으로 믿는 자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인생 전체를 주님께 다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친구의 우정 사이에서도 신뢰가 깨지고 믿음에 금이 가면 관계유지가 지속될 수가 없듯이 우리 신앙인들도 주님과의 믿음에 금이 가지 않도록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주님은 누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인지 다 알고 계십니다. 사랑은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합니다.(엡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갈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권세자시요,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 하시는 심판주 이십니다. 우리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려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함이 곧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데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교만하여 자기 뜻대로 사는 자는 저주를 받는 것이며 멸망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에 대한 말씀은 영원한 진리로 이렇게 말씀합니다.(눅21: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 시민이며 하늘나라의 유업을 받을 자이며 주되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마귀에게 속지 말고 감사와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오직 예수님 한분만 붙잡고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천국을 바라보며 앞에 올 영광과 기쁨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