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조사어록
제8장 출가 사문에게 보내는 글
2. 초발심 수행자의 생활규범 ① [野雲·自警文]
첫째,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받아쓰지 말라.
밭 갈고 씨 뿌리는 일에서 먹고 입기까지 소와 사람의 수고는 물론,
벌레들이 죽고 상한 것은 한량없을 것이다.
남을 수고롭게 하여 내 몸을 이롭게 하는 것도 옳지 못한데,
하물며 남의 생명을 죽여 내가 살려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농사짓는 사람들도 늘 헐벗고 굶주리는 고통이 있고
길쌈하는 아낙네도 몸 가릴 옷이 없는데,
나는 항상 두 손을 놀려 두면서 어찌 춥고 배고픔을 싫어하랴.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은 사실 빚만 더하는 것이지 도에는 손해되는 것이다.
해진 옷과 나물밥은 은혜를 줄이고 음덕을 쌓는다.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 물도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풀뿌리나 나무열매로 주린 배를 달래고
송낙과 풀잎으로 몸을 가리네.
허공을 나는 학과 흰 구름으로 벗을 삼아
높은 산 깊은 골에서 남은 세월 보내리.
둘째, 내 것을 아끼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삼악도의 고통을 가져오는 데는 탐욕이 으뜸이요,
여섯 가지 바라밀다에는 보시가 제일이다.
아끼고 탐내는 것은 선한 길을 막고 자비로 보시함은 나쁜 길을 방비한다.
가난한 사람이 와서 빌거든 아무리 구차하더라도 인색하지 말라.
올 때도 빈손으로 왔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내 재물도 아끼는 마음이 없는데 어찌 남의 것에 마음을 두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평생에 지은 업만 이 몸을 따를 것이다.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낸 물건은 하루아침 티끌이다.
어찌하여 괴로운 삼악도가 생겼는가.
오랜 세월 익혀온 애욕 탓이다
부처님의 가사 바리 이대로 살 만한데
무엇하러 쌓고 모아 무명 기르나.
셋째, 말을 적게 하고 행동을 가벼이 말라.
몸을 가벼이 움직이지 않으면 산란한 마음이 가라앉아 선정(禪定)을 이루고,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을 돌이켜 지혜를 이룰 것이다.
진실한 본체는 말을 떠난 것이고, 진리는 어떠한 일에도 흔들림이 없다.
입은 화의 문이니 반드시 엄하게 지켜야 하고,
몸은 재앙의 근본이니 가벼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자주 나는 새는 그물에 걸리기 쉽고,
가벼이 날뛰는 짐승은 화살에 맞을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육 년을 설산에 앉아 움직이지 않으셨고
달마스님은 소림굴에서 구 년을 말이 없었다.
후세에 참선하는 이가 어찌 이 일을 본받지 않을 것인가.
몸과 마음 선정에 들어 동하지 않고
토굴 속에 홀로 앉아 오가지 말라
잠잠하고 고요하여 아무 일 없이
내 마음속 부처님께 귀의하리라.
넷째, 좋은 벗은 친하고 나쁜 이웃은 멀리하라.
새가 쉴 때에는 숲을 가려 앉듯이 사람도 배우려면 그 스승을 잘 택해야 한다.
좋은 숲을 찾으면 편히 쉴 수 있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학문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좋은 벗은 부모처럼 섬기고 나쁜 이웃은 원수처럼 멀리해야 한다.
학은 까마귀와 벗할 생각이 없는데 붕새인들 어찌 뱁새를 짝할 마음이 있겠는가.
소나무 숲에서 자라는 칡은 천 길이라도 올라가지만 잔디 곳에 선 나무는
석 자를 면할 수 없다.
어리석은 소인배는 그때마다 멀리하고,
뜻이 크고 높은 사람은 항상 가까이 하라.
가고 오고 어느 때나 선지식 모셔
마음속의 가시덤불 베어 버리라
그리하여 앞길이 활짝 트이면
걸음마다 그 자리가 뚫린 *관문이어라.
다섯째, 삼경(三更)이 아니면 잠자지 말라.
끝없이 오랜 세월을 두고 수도를 방해하는 것은 졸음보다 더한 것이 없다.
하루 종일 어느 때나 맑은 정신으로 의심을 일으켜 흐리지 말고,
앉거나 서거나 가만히 마음을 살펴보아라.
한 평생을 헛되이 보낸다면 두고두고 한 이 될 것이다.
덧없는 세월은 찰나와 같으니 나날이 놀랍고 두려우며 목숨은
잠깐이라 한때라도 보증할 수 없다.
조사의 관문을 뚫지 못했다면 어찌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겠는가.
졸음 뱀이 구름 끼니 마음 달 흐려
도 닦는 이 여기 와서 갈 바를 모르네.
이 속에서 비수 검 빼어들면
구름이란 간데없고 달빛 밝으리.
여섯째, 잘난 듯이 뻐기거나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어진 행동을 닦는 데는 겸양이 근본이고,
벗을 사귀는 데는 공경과 믿음이 으뜸이 된다.
나니 너니 하고 교만이 높아지면 삼악도의 고해가 더욱 깊어진다.
밖으로 나타난 위의는 존귀한 듯 하지만 안은 텅 비어 썩은 배와 같다.
벼슬이 높을수록 마음을 낮게 가지고
도가 높을수록 뜻을 겸손히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나다 남이다 하는 집착이 없어지는 곳에 도는 저절로 이루어지며,
마음이 겸손한 사람에게는 온갖 복이 저절로 돌아온다.
교만한 티끌 속에 지혜 묻히고
나다 너다 하는 산에 번뇌 자라니
잘난 체 안 배우고 늙어진 뒤에
병들어 신음하니 한탄뿐이네.
*관문 : 진리에 들어가는 문. 주로 선가(禪家)에서 쓰는 말.
불교성전(동국역경원 편찬)
출처: 다음카페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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