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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 능력
제 목 :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성 경 : 창 18:1~15
찬 송 : 382장
저 자 : 이삼규 목사
출 처 : 20240901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창 18: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창 18: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창 18: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창 18: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창 18: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창 18: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창 18: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창 18: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창 18: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창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창 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창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창 18: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창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아프리카 선교의 구심점이 된 선교단체 HAM(Heart of Africa Mission)과 WEC(Wor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의 설립자인 C.T. 스터드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에 아주 자그마한 선교관을 짓고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관에 뱀이 들어온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해 선교사님은 사모님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이 우리를 덮고 있소, 오늘 아침에 식사를 하자마자 아이들이 들어와서 침대에 뱀이 있다고 하더군. 담요를 들쳐 보니 가느다란 초록색 뱀이 있었소. 물리면 죽는다고 원주민이 일러 주던 바로 그놈이더군. 감 밤에 그놈과 함께 잔거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자는 아마 한숨도 못 잤을 거요.’
이것이 스터드 선교사님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뱀이 이불 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고 피곤해서 정신없이 잤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뱀이 그를 물지 못하도록 밤새 지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고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세상은 주님을 보지 못하지만 내가 주님을 알도록 밤새 나를 지키시는 분입니다(유기성, 우리 서로 사랑하자/두란노).
여러분!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삶속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두 천사와 함께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러고는 아브라함의 땅과 언약을 계승할 이삭의 탄생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이삭이 탄생하기 1년 전, 곧 아브라함이 99세 때 일어난 일입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인류 역사에 구원과 심판의 이중 구조가 나타납니다. 18장에는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어 가시는 구원의 사건이 나타나며, 19장에는 죄악이 극에 달한 소돔과 고모라에 임하는 불의 심판이 대조적으로 이어집니다. 아브라함과 깊은 교제를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은 성육신해 세상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로 연결되고,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우리 맘에 오신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으로 이어집니다.
이삭의 탄생 예언에 웃음으로 반응한 사라에게 하나님은 ‘내게 능하지 못할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라의 웃음은 앞서 할례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의 후손 약속에 아브라함이 웃음으로 반응한 일(17:17)과 연결되면서, 이삭의 탄생이 얼마나 기적적인 사건인지 증거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전능자시며,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는 분이심을 증거 합니다.
사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방문과 초대
앞 장에서는 아브람의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뀌고, 그와 그 집의 모든 남자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받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장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신 사건을 보도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아브라함을 방문한 이들의 정체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먼저 시간적 배경을 이야기 합니다.
√창 18: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날이 뜨거울 때’는 해가 중천에 있는 가장 더운 시간으로, 아마도 사람들이 잘 활동하지 않는 쉬는 시간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군대에 가면 여름이 되면 오침 시간이 있습니다. 이탈리아도 더울 때는 모든 상가가 문을 닫고 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날이 뜨거울 때 아브라함은 장막에 앉아 있다가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창 18: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아브라함은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달려가서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혔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모범적인 모습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해밀턴은 손님을 보호해야 할 집주인의 의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근동의 윤리에 따르면 집주인은 자신의 집에 온 손님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만약 집에 머무는 손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집주인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 18: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창 18: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창 18: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은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이라는 정중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그들을 맞이합니다. 아브라함은 세 사람이 자신의 집을 그냥 지나치는 것을 만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물을 가져와 그들의 발을 씻기고 그들이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나무 아래에서 쉴 수 있도록 자신이 안내해 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또 먹을 것을 준비하여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겠다고 간청했습니다. 고대 근동 지역 사람들은 샌들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집에 손님이 방문했을 때 발을 씻을 물을 내어 주는 것이 기본예절이었습니다(눅 7:44). 아브라함은 자신을 ‘종’이라고 자칭하면서까지 극진한 태도로 손님들을 섬기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고, 세 사람은 아브라함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서 그렇게 했을까요?
히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아브라함은 부지중애 그들을 대접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나그네와 손님들을 대하는 기본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섬김의 정신은 신약 시대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롬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삶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과 섬김을 실천한다면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약속 성취가 더딘 것 같을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실 줄 믿습니다.
√대접과 식사
√창 18: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창 18: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창 18: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그림-방문자를 초대한 아브라함)
본문을 통해 아브라함이 최선을 다해 나그네를 섬기는 모습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6절을 보십시오. ‘급히, 속히’라는 말이 있고, 7절에 ‘달려가서, 급히’라는 말이 나옵니다. 나그네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열정적인 섬김을 보여 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급히 장막으로 가서 아내 사라와 종들에게 최상급의 고기와 많은 양의 빵을 준비시킵니다. ‘세 스아’는 약 21.9리터로, 세 사람이 먹기에는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그것도 고운 가루를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면서 요리하라고 시킵니다. 소고기 요리는 송아지가 고기가 아주 부드럽고 연하기에 최고급 요리에 해당합니다.
여기에 엉긴 젖과 우유까지 제공합니다. 엉긴 젖이 무엇입니까? 버터를 말합니다. 빵에 발라 먹을 때 버터가 필요합니다. 마실 우유까지 제공합니다. 아브라함은 버터와 우유까지 준비하여 나무 아래에 식사 자리를 베풀었고, 시중을 들고자 세 사람 곁에 서 있었습니다.
창세기 18장은 이렇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를 줍니다. 한편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모습은, 소돔을 방문한 두 천사를 대접하는 롯의 모습과 구별됩니다. 롯은 손님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기는 했지만, 무교병을 대접했습니다. 무교병이 뭡니까? 누룩이 들어가 있지 않아 딱딱한 빵을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아내는 아예 언급조차 없습니다(19:1~3).
이처럼 아브라함은 지극한 환대와 겸손으로 부지중에 나그네로 오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신 10: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이웃을 향해서도 항상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상황과 환경을 초월해 표현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고 섬깁니다. 아브라함은 99세의 나이에도 나그네를 영접하기 위해 ‘달려’ 나갔고, 모두가 쉬는 ‘정오’에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사랑이 필요한 자들에게 달려 나갈 수 있는 열정과 가장 귀한 것으로 섬길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을 향해 나아갈 때 필요한 태도는 겸손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종’이라 부르며 나그네들의 발을 씻었고, 예수님이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제자들의 발을 씻었던 것을 기억하며 우리도 겸손한 태도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부지중에 예수님을 대접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예고와 웃음
창 18: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창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하나님은 최선을 다해 대접한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 아브라함은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확신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의 아내 이름이 ‘사라’이며, 그녀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창 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창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창 18: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창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나님은 내년 이 맘 때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생리가 끊어진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문 뒤에서 듣고 있던 것과 그 말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을 지적하시며 당신의 전능함을 나타내셨습니다. 14절의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를 직역하면 ‘어떤 일이 여호와께 경이로울 수 있겠느냐?’입니다. 인간에게는 기적으로 보이는 일도 하나님께는 그저 평범한 일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처지인 사라의 불신앙적인 태도를 불식시키기 위해 거듭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히 방문하셔서 자신의 전능하심을 보여 주시며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간과하며, 그 약속에 웃음을 보이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창 18: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사라는 자신이 웃었다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 선택하신 백성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죄인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아들 낳을 것을 예고하실 때, 장막 뒤에서 말씀을 듣고 있던 사라는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은 고목나무에 잎이 피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지 않고 아브라함과 자신의 늙은 모습만 바라보았습니다. 지극히 무능하고 연약한 인간은 주어진 운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처지만 바라보면 아무 소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며 만물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초월하신 능력을 힘입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가 우리가 대망하는 구원도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망의 그늘이 드리워진 십자가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셨고, 결국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진정한 성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우리를 생명과 평안으로 인도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소망을 얻고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나그네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생면부지의 나그네를 진심으로 환대합니다. 그 섬김에 답하기라도 하시듯 하나님은 1년 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환대할 때 우리는 부지중에 주님을 대접할 수 있습니다.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나그네와 작은 자를 섬기며 살 때 주님께서 칭찬하시고,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